사육장쪽으로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편혜영 (문학동네,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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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읽은 소설집이 다 왜 이러지. 취향에 썩... 이것도 나중에 되파는 목록에 올려야지.

  이 작가 읽을 때 든 느낌이, 꼭 천운영 명랑 처음 읽을 때 같았다. 불쾌하고 스멀스멀한 기분이 막 드는 소설집 읽는 기분. 나오는 주인공들이 모두 덫에 걸려 있고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지만 썩 성공정이지 않는 거. 그래도 천운영은 아 그래도 요 부분은 취향이다, 이런 게 있었는데 편혜영은 내게 그런 게 없다. 그냥 막 불쾌하고 다시 보고 싶지가 않다. 글은 참 잘쓴다. 정말 잘쓴다. 문장 연습 하고 싶으면 베껴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 되게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데 내 취향은 아니다. 소설이 은근히 사실적이다. 아니 대놓고 사실적... 너무 사실적이라서 보고 싶지가 않은가 보다.

  전반적으로 소재들이 독특하고 특이하다기보다는 우리 현실세계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평소에 잘 보면 볼 수 있는 건데, 잘 안봐서 모르는 이야기들. 그래서 읽다 보면 이거 내 이야긴데, 아 이거 주변 이야긴데... 싶은 기분이 든다. 현실같은데 소설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라는게 죄다 절박하고, 급하고, 답답한 것들이니 읽는 나까지 불쾌해진다. 이건 순전히 취향의 문제다. 이런 게 취향이라면 진짜 재미있게 읽었을텐데. 하다못해 천운영 소설의 소재들처럼 그로테스크 하면 내가 아 이거 취향이네... 했을거 같은데 이건 읽으면서 아 답답해 아 답답해... 이러고 있었으니 이거 재미있을 수가 있나. 어쨌든 꾸역꾸역 읽긴 했다만, 역시 다시 펼칠 거 같진 않네.

  아쉽다. 이렇게 좋은 작가의 좋은 소설이 내 취향이 아니라서. 꼭 명작 영화 보고 지루해... 하고 읊조리는 기분.
솔라리스
카테고리 소설 > 장르소설 > SF소설
지은이 스타니스와프 렘 (오멜라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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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거 읽는데 꽤 오래 걸렸다. 글이 안읽혀서가... 아 맞구나... 재미가 없어서... 영어본을 중역한 거던데 그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문장도 당췌 눈에 들어오지 않는데다가 내용도 영 께름측하고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고 그랬다. 뭘 말하고자 하는건지 감만 잡히고 확실히 알진 못하고 책장을 넘겼다는 느낌?

  솔라리스라는 행성에 연구하러 간 과학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는데, 1인칭이라 그 심리가 잘 드러나 있긴 하다. 솔라리스의 바다에서 느껴지는 두려움, 경이 같은 것들이 확 다가왔달까. 그 바다에서 만들어진 존재들, 이를테면 켈빈의 죽은 약혼녀 레야의 등장같은 것들은 내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더 불쾌했던 것 같다. 그래도 그 점 빼고는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부분이 거의 없었다. 난 애당초 SF나 근미래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데 왜 이 책을 샀는지 그 때의 자신에게 되묻고 싶은 심정. 판타지인 어둠의 왼손은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 어째서 인간 심리를 이토록 꿰뚫는 이 책은 이렇게 끔찍했는지 모르겠다.

  레야라는 존재가 영 별 거 없이 가버린 것 같아서 아쉽다. 물론 그게 작중의 '나', 켈빈에게는 엄청난 일이지만...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는 소리. 하긴, 그게 레야의 본질인가. 켈빈에게 거대한 의미로 다시 다가오는 것. 처음에는 그 레야를 떼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던 켈빈이, 레야가 떠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하는 것을 보는 건 흥미로웠다. 초반 부분에서 강렬하게 남았던 부분이 있는데,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레야를 두고 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라고 표현하는 부분. 이랬던 주인공의 감정이 레야를 떠나보내지 못하게 변했으니 내 기분이 어땠겠어.

  확실히 흥미롭고, 인간 자체를 잘 파고들었지만... 아... 이 묘하게 불쾌한 기분 덕분에 또 읽을지는 모르겠다.
까트린이야기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빠트릭 모디아노 (열린책들,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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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자끄 상뻬의 그림을 아주 좋아해서 샀던 책. 중학교 때인가...? 아무튼 내용같은거 하나도 안보고 그냥 오 상뻬 그림이다, 하면서 샀던 책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내용을 지지부진하게 읽었었고 그 뒤론 책장에 처박아두기만 했던 기억. 이번에 외출할 때 짧게 읽을 책이 필요해서 꺼내들었다. 책 무지 얇고 읽는 것도 빠르게 읽을 수 있다.

  회상하는 느낌이고, 아빠와의 생활을 말하고 있어서 일상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편안함을 준다.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묘사되고 있어서 자세한 현실의 상황을 전해주진 않는다. 그렇지만 대충 아, 어떤 사정이 있구나 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정도. 이 애매모호함이 꿈속을 보는 것처럼 희망을 주기도 하고, 안타까워지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도 전체적인 분위기에 잘 맞는다.

  아빠 조르쥬 세르띠뛰드는 확실히 딱부러지는 타입은 아니고, 좀 엉뚱하고 애처로운 모습도 있다. 그렇지만 까트린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는 확실히 보이는 그런 아버지였다. 아빠 성격이 잘 보이는 에피소드가 많다. 발레학원을 다니는 까트린이 거기에서 만난 여자애 오딜의 집에 초대받았던 에피스드가 기억이 난다. 까트린이야 어려서 그렇다쳐도, 아버지가 어떻게든 허세를 부려보려고 노력한다던가 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부끄러우면서도 짠했다. 그 뒤에 아빠가 파티에서 만난 르네 따벨리옹 씨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시도하는 모습도 그랬다. 분명 소설을 보는 나는 아빠가 너무 순진하다, 안쓰럽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조르쥬는 여전히 그 사람에게 무슨 문제가 생겨 연락을 못받는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까. 조르쥬는 그런 사람이다.

  아빠의 동업자 레옹 카스트라드씨는 확실히 건방지고 마음에 안드는 어른이지만 그래도 천성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저 좀 허세가 있을 뿐... 주변에 있으면 피곤하지만 도움을 주기도 하는, 뭐 그런타입? 이 둘과의 에피소드만으로도 아기자기하고 모양새가 괜찮았다.

  이건 까트린 이야기라기보단 조르쥬 이야기 같기도 하다. 까트린이 지켜보는 세상엔, 학교나 학원의 이야기보다 아버지와의 이야기가 더 많다. 아... 또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까트린의 발레선생님인 갈리나 디스마일로바의 이야기. 러시아 출신 발레교사로 이상한 러시아 억양을 구사하는 디스마일로바가 사실은 프랑스 출신 오데뜨 마르샬이었다. 이 사실을 아빠가 까트린에게 살짝 말해준다. 발레리나였던 까트린의 어머니 탓에 그녀를 이전에 본 적이 있었던 거. 그 사실을 밝히라는 까트린의 말에 조르쥬가 대답해주는 태도가 좋았다.

  「너는 내가 <안녕, 오데뜨…… 생 망데의 부모님은 안녕하신가요?> 하고 말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빠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아니야……. 나는 그녀에게 그렇게 할 수가 없었어……. 그녀가 꿈을 꾸게 내버려둬야 해. 그녀와 그녀를 찾아오는 고객들의 꿈을 깨뜨리면 안 되는 거야……」

『까트린 이야기』, 빠트릭 모디아노, 열린책들, 1996, p. 89

  낭만적인 작은 동화. 누가 읽느냐에 따라 또 느끼는 게 많이 다를 것 같다.
명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천운영 (문학과지성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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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받아서 산 책인데 내 취향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똑같이 기괴한 소재라고 해도 한강의 '어느날 그는'같은 건 굉장히 느낌이 좋았는데, 이 소설집에 실린 몇 개의 단편은 소재는 내 취향인가 싶다가도, 다 읽고나면 그렇게 찝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찝찝한 느낌이 소설집 전반에, 모든 소설 안에 있기 때문에 이건 천운영 본인의 느낌인 것 같다. 확고하게 밀어붙이는 천운영만의 감성이 있는데 이게 썩 나와 맞는 것 같지는 않다. 꼭 내가 졸졸 따라붙어도 별 대답을 내어주지 않는 무심한 표정의 여자를 만나는 느낌이다. 그런데 난 그녀의 속마음이 빤히 보인다. 뭐 그런거?

  주인공들은 꼭 뭔가가 결핍되어 있다. 그 때문인지 소설들 안에서 느껴지는 욕구, 욕망에 대한 절박함이 있다. 어떻게 보면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인데 이게 내게는 불편하다. 간절하고 절박하게 뭘 갈구하고 있는데 표정은 안 힘들다, 난 괜찮아.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속이 문드러진 담담함이 나는 싫다. 근데 못썼다는게 아니라 그냥 내 취향에 안 맞는 거다. 소설 자체는 마음에 든다. 느낌이 싫어서 여러 번 읽기는 싫은 거. 그 와중에도 '멍게 뒷맛' 같은 건 몇번이나 들춰봤지만...

명랑
늑대가 왔다
멍게 뒷맛
모퉁이
세번째 유방
어버지의 엉덩이
입김
그림자 상자


  '명랑'이라는 제목 때문에 명랑한 내용인 줄 알았더니 뜻밖에도 진통제 이름이야. 힘이 없어진 할머니, 억척스럽게 살고 있는 엄마, 어딜 가야할 지 모르는 백수인 나. 전체적으로 '나'의 시점에서 관찰되고 있는데 나름의 서늘한 긴장감이 좋았다.

  '늑대가 왔다'는 불쾌한 동화를 읽는 기분이었다. 꼬질꼬질하고 때묻은 채 애정을 갈구하는 어린 여자아이를 생각하면 불편한 기분이 든다.

  '멍게 뒷맛'은 철저한 열등감 속에 갇힌 주인공 여자 때문에 흥미로웠다. 모두가 이런 심정을 완벽히 100퍼센트까진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다른사람에게 느껴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이 여자는 좀 더 극단적이었고 찌질했다. 사실 문을 안열어준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만, 그 뒤의 행보들이 좀. 어울리면서도 웃긴.

  '모퉁이'는 묘하게 마음에 들었었던 소설. 어린아이 시점에서 보여지는 가족의 모습이 썩 달갑지 않으면서도 파고드는 맛이 있었다. 인상적인 문장이 있는데,

네 엄마는 참 예뻤어. 키도 크고, 새침데기였지. 어떻게 해서든 네 엄마랑 결혼하고 싶었다. 아빠는 결혼식 사진을 보며 말하곤 했다. 나는 아빠가 말한 '어떻게 해서든'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모퉁이」, 『명랑』, 천운영, 문학과지성사, 2004, p. 103

이거다. 담담한 느낌으로 읽다가 소름이 쫙 끼치더라.

  '세번째 유방'은 어쩔 수 없이 '모퉁이'의 오빠가 주인공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다른 것보다도 이 남자의 결핍된 삶이 그냥 좀 불쌍했다. 마지막에 그런식으로 폭발하게 된 것도 안타깝고.

  '아버지의 엉덩이'는 이 소설집에서 가장 밝지 않나 싶은데... 할머니니가 죽은 뒤 남겨진 나와 아버지 사이의 모습이 좋았다. 팽팽한 줄타기를 하는 듯하던 나의 심리가 점차 안정적인 느낌으로 이동해나가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초반에 아버지가 할머니의 무덤을 타고 오르는 장면이 독특하게 느껴졌었다.

  '입김'은... 음... 엄청 소름끼치고 불쾌하다기보다는 그냥 힘이 쭉 빠진다. 그런 내용이었다. 사채를 끌어다 쓰고,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은 남자가 텅 비어 보였다. 돈보다도 가족을 잃은 게 더 큰 것 같았다. 그렇게 건물과 하나된 사내의 절망의 깊이가 엘레베이터 통로 만큼이나 어둡고 깊어보인다.

  '그림자 상자'는 가족에 상처입은 남녀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뭐 읽으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좀 비정상적이 되어버린 여자와, 그런 여자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된 남자. 연애 이야기는 아닌데 둘의 공통점을 보고 있노라면 둘이 통하는 부분이 많겠다 싶기도... 여자가 느끼는 공복은 식욕보다는 다른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가족에 대한 감정이라던가) 느껴지는 공복이겠지...

  모르겠다. 아 내 느낌은 아냐! 하고 몸서리쳐지다가도 또 마음에 드는 구석도 분명히 있는 이상한 소설집.
2010/01/23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엘리베이터에낀그남자는어떻게되었나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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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관한 감상글은 올렸고, 요건 단편집에 관한 내용. 읽은 지 좀 됐는데 이제서야 쓰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사진관 살인사건
흡혈귀
피뢰침
비상구
고압선
당신의 나무
바람이 분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이렇게 아홉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호흡이 짧고 매우 잘 읽히는 문장인지라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단편집. 난 이런 식의 호흡 빠른 글들을 참 좋아한다. 전에 이기호 단편집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가 몹시 취향이었던 것처럼. 새삼스레 이 단편집 읽고서 김영하 단편이 진짜 내 취향이구나, 그런 생각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흡혈귀'랑 '비상구'를 가장 즐겁게 읽었음.

  '사진관 살인사건'은 결국 이런 식으로 진짜 범인이 아닌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그 사람들의 내면을 파헤치는 소설이었다. 흥미로웠지만 특별히 충격적이진 않았다. '흡혈귀'는 소재가 즐거웠다. 내가 뱀파이어 너무 좋아하겠지... 비단 소재의 문제만은 아니고, 그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편지글)이나 담고 있는 내용도 마음에 들었음. '피뢰침'은 판타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뭔가를 갈구한다는 느낌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상구'는 말투가 꽤 현실적인데(지금에 와서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청춘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압선'은 묘하게 슬프다. 지극히 판타지 적이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슬프게 쓸 수도 있다. '당신의 나무', '바람이 분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은 셋 다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인상이 전체적으로 쓸쓸했음.

  재치있으면서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단편들. 아주 좋아한다.
고래제10회문학동네소설상수상작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천명관 (문학동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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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두께가 좀 있어서 오래걸리려나 했더니 생각보다는 금방 읽은 편. 내가 생각했던 방식의 소설이 아니라서 처음에 좀 당황했는데, 곧 자리를 잡고 나서는 후딱후딱 읽을 수 있었다. 굉장히 신기한 소설이었다. 방대하게 짜여진 몇십년의 역사와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재미있고, 말이 되는 방식으로 풀어낸 소설이라니. 쓸모없는 등장인물을 하나도 없이 언젠가는 다시 등장하기 마련이고, 사소한 행동 하나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그냥저냥 옛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보다가, 책장을 넘길 수록 한 방 먹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더라. 한마디로 신기했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잘 구사하는 사람을 요샌 거의 못봤었으니까. 진짜 탄탄하고 재미있었다.

  노파-금복-춘희 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얼키설키 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금복의 이야기이지만, 결론은 춘희의 이야기이며 시작은 노파의 욕망과 집착인 것 같다. 여러모로 세 인물 모두 비중이 크다.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쓰기는 귀찮은데... 제일 얄밉고 짜증나는 건 금복이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인물이었다. 특히 초반에 걱정과 칼자국 사이에서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그 여파가 계속 남았던 것 같다. 엄마로서의 점수는 빵점이지만, 그 연애 이야기가 너무 콱 박혔나보다. 여튼간에 금복이는 나름 행복하게 죽은 것 같고, 춘희가 너무 안쓰러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노파는 열외.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히 춤을 추는 소설이라 처음엔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건 우리나라 역사와 섞여있는 부분들이 간간히 드러나기 때문에 더 그랬다. 뭐 이건 중요한 건 아니다. 굳이 역사 이야기 안 섞어도 일들은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며 현실적이다. 중간중간 숱하게 나오는 그것이 ~의 법칙이다. 라는 구절들은 진짜 현실에서 통하는 것들이라서... 흥미로웠음. 그리고 이런 정교한 현실에 묘하게 섞어놓은 환상으로 인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춘희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걱정의 씨라는 것만 봐도 얼마나 흥미로운지. 걱정을 좋아했기에 춘희가 걱정의 씨앗이라 좋았다. 금복은 그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튼 즐거웠다. 두꺼운 책인데도 술술 읽히고 누가 옆에서 옛 이야기 해주는 것마냥 재미있게 읽었음!
나의아름다운정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심윤경 (한겨레신문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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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 장편이지만 꽤 잘 읽히고 이어지는 맛이 강해서 두어시간이면 다 읽을 것 같다. 나는 텀을 두고 읽었는데 텀 안두고 쭉 읽는거 추천하고 싶은 장편이었다. 어른스러운 점이 있는 아이, '동구'의 시선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가부장적인 아빠, 시집살이를 독하게 시키는 할머니, 다정한 어머니 사이에서 살고 있는 동구의 집에, 동생 '영주'가 태어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본적으로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독재정권 이야기가 좀 섞여 있어서 그 시대 정치상황을 비춰주긴 하는데 이게 꼭 주는 아니다. 오히려 가족간에 벌어지는 갈등이 더 눈에 들어오고 (특히 고부갈등), 겉으로는 철없는 아이처럼 비춰지는 동구의 알차고 어른스러운 마음 씀씀이를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개인사에 집중해서 보는 편이 내게는 더 즐거웠다는 거. 어린아이의 시선에서 어른들의 싸움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른들이 생각없이 던지는 말에 아이가 어떤 식으로 상처를 받는지 하는 일들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다. 어린 영주를 챙기는 동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릿해진다.

  동구네 집은 볼수록 열이 받으면서(...) 책장을 덮지는 못하게 하더라. 이건 마치 드라마를 보는 기분이야... 진짜 이렇게 못된 시어머니와 이렇게 짜증나는 남편이 있었다는게 믿기지 않는다. 근데 있었겠지... 아주 많이. 시대가 좀 바뀌어서 다행이다. 나는 아무리 봐도 저렇게는 못살 것 같아...

  주리네 삼촌과 박선생님, 이태준으로 대표되는 그 시절의 깨어있는 무리들은... 긍정적으로 그려지긴 하지만 그만치 좌절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가 아이의 시선을 통해 중화되는 그 부분도 마음에 들었었다. 여기에 나오는 동구는 한없이 순수하고, 착하고 또 어른스럽다. 비록 주변의 어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동구가 생각하는 것들이 동구의 아빠보다 더 어른스럽고, 상황 판단이 잘 된다 생각될 때가 있다. 특히 결말쯔음 가서 동구와 동구 아빠가 중국집에서 요리를 먹는 장면에서 그랬다.
 
  재미있는 성장 소설인데... 아 근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 가을에 읽기 적당한 소설이었다.
카탈로니아찬가(세계문학전집46)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조지 오웰 (민음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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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전쟁 초반에 관한 이야기와, 전쟁 막바지의 이야기는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정치상황에 관한 이야기는 왠지 지루하고 피하고 싶고 그렇더라. 일단 스페인 역사를 잘 모르니까 그거 모르는 상태로 확립해가면서 읽는게 참 힘들었다. 묘하게 우리나라랑 비슷하다는 느낌은 많이 들었고. 이념싸움... 지겨우면서도 눈을 뗄 수는 또 없고. 전쟁 이야기가 썩 취향은 아니더라. (아 새의 노래 사놨는데 큰일이다...)

  소설이라기보다는 르포 같았다. 일기처럼 쓰인 르포. 전쟁에 직접 참여한 기자가 기사를 계속 써 나른다는 느낌이었다. 소설로서의 재미가 있다기보단 그 당시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데 의의가 있었다. 그 역사라는게 흥미롭긴 하지만, 그렇게 확 내 취향은 아니었다는게 문제라면 문제. 소설 읽고 스페인 역사 좀 찾아봤는데 이 나라도 깝깝... 그 이후에 독재자가 정권잡고 흔든것도 그렇고. 참 우리나라 떠올리게 한단 말이지... 내전 관련해선 더 읽어봐야겠다. 역사 좋아하지 않는데 궁금한 건 또 그래서...

  굉장히 현실적이라서 소설 같지 않다. 장점이자 단점. 스페인 내전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일 듯.
채식주의자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한강 (창비,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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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세 편이 실려있는 소설집. 세 편이 각기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단편이면서 동시에 연작. 연결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아서 세 편을 같이 읽는 편이 좋다.

  사실 읽으면서 재미 있었고 흥미롭다 생각했지만, 동시에 아 이거 과제로 읽은 소설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이런 생각도 마구 했다. 가끔 이런 소설들은 내가 이해를 못한다는 기분에 미친듯이 불편해진다. 그렇지만 재미있으니까. 채식주의자는 영혜의 남편,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 나무 불꽃은 영혜의 언니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몽고반점'이 제일 강렬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로 선선하니 마음에 들었던 건 '채식주의자' 쪽. 형부나 언니는 영혜와 관련되거나 혹은 영혜의 심정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었지만, 남편은 영혜를 이해하지도, 이해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그는 영혜의 변화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결국은 자신의 안위와 체면만을 생각해 그녀를 병원에 데려가지도 않는 뻔한 인물이었다. 널리고 널린 그런 평범한 인물이라는 게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내가 평범하니까. 그리고 '채식주의자'쪽은 영혜의 변화가 극적으로 보여지고, 영혜 내면의 트라우마가 꿈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보이기에 좀 더 이해하기 쉬웠다고 할까.

  '몽고반점' 쪽은 반면 이미지는 강렬했지만 영혜의 심리를 잘 모르겠다는 느낌... 아 그래도 형부라는 인물의 속마음은 드러나긴 하지만. 난 이 형부 진짜 싫었다. 꼴같잖아. 예술에 눈이 멀었고 이미지에 눈이 먼 건 알겠는데 그러면서 현실 감각은 땅에 처박았나? 영혜 언니 말대로 진짜 나쁜새끼다. 아무리 포장하고 감싸고 변명해도 그래서는 안됐다. 여튼 이모저모 불편한 구석이 강했다. 그런 심리를 이해는 하면서도 으... 그래도 안돼. 그래도 그래선 안돼. 이런 생각이 자꾸 떠오르게 하는.

  '나무 불꽃'은 가장 이해가 안됐다는 느낌인데... 내가 이해한 방식을 굳이 억지로 털어놓을 부담감이 없으니까ㅋㅋㅋ 느낌만 말하자면 참 애처로웠다. 현실을 묵묵히 받아내던 두 사람이 어떻게 변화했느냐, 그런 현재 못습을 보고 있자니까 참 그랬다. 영혜는 현실을 버리고 나무가 되어버리는 쪽을 선택했고, 인혜는 자식탓에 다시 정신을 차리고 과거를 노려보는 쪽을 택한 것 같았다. 두 자매의 기본 바탕이 되는 트라우마가 같아서 그런가 그걸 다루는 둘의 방식이 흥미로웠음. 아 물론 더 피해를 입은건 인혜의 말대로 영혜 쪽이었지만.

  여튼간에 재미있었다. 이거 모티프가 한강 자신이 썼던 단편 소설 '내 여자의 열매'에서 확장한 거라는데... 마침 그 책도 샀으니 곧 읽어봐야지.
갈팡질팡하다가내이럴줄알았지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이기호 (문학동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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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담 아니고 최근 읽었던 한국 문학 중에서 제일 재미있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의 소설들이었는데(몇몇 단편은 진짜 그런 형식을 취하고 있기도 하고), 입담 바른 사람에게 이야기 들으면 이런 느낌일까.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너무 재미있고 즐겁고, 상상력을 자극하고 그랬다. 담으려고 하는 것이 마냥 가볍지도 않은 이야기들인데도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웃기고 즐거웠다.

나쁜 소설-누군가 누군가에게 소리내어 읽어주는 이야기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원주 통신
당신이 잠든 밤에
국기게양대 로망스-당신이 잠든 밤에2
수인
할머니,이젠 걱정 마세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렇게 소설들이 실려있는데 맨 처음의 '나쁜 소설' 읽을 때까지만해도 아리까리 했는데 으 두 번째부터 빵 터졌다. 일단은 재미있으니까 생각없이 읽다가도 아, 하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만드는 그런 점이 있었다. 소재도 기발하고 그러면서 또 현실적이야. 이럴 수가 있다니. '수인'같은 경우에는 전에 줄거리를 들은 적이 있는데 소설로 읽는 거랑 또 차원이 다르데? 한 세계가 멸망한 뒤 예술가들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다니. 잠깐 피아니스트의 구와덱의 처지가 생각났다. 근데 이건 유쾌해. 주인공은 미치도록 절실한데 보는 사람은 재미있다. 이건 수인 말고 다른 단편들도 마찬가지.

  '원주 통신'같은 건 묘하게 현실이랑 결합해 놔서ㅋㅋㅋ 진짜로 토지 라는 주점이 있을 거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비참한 주인공이야. 당신이 잠든 밤에 1, 2에서 모두 나오는 시봉이라는 캐릭터는 참 모자라면서도 매력적이다. 너무 순진하고 진실되어서 오히려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고, 그 우스꽝스러운 조화는 참 불쌍하면서도 우습다. 작가의 다른 단편들에서도 나온다는데 그것들도 보고 싶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를 사길 잘했지... 그거 말고 다른 책에서도 나오던데.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는 살짝 소름끼쳤다. 할머니 입으로 할머니의 조카 이야기를 들을 때의 그 무게감이란. 이런 무거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또 웃긴다...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는 제일 많이 웃은 거 같은데... 아 진짜 미치도록 운없는 주인공의 인생사다. 진행방식이나 화자의 태도 전부 재미 있었다.

  엄청 재미있음! 그래서 읽는 속도도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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