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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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구병모 (자음과모음,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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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누가 빌려줘서 읽기 시작. 제목이 끌려서 읽고 싶었었는데 오, 읽고 나니 더 좋았다. 목덜미에 아가미(와 몸에는 빛나는 비늘을)를 가지고 있는 남자 곤에 관한 이야기. 곤을 찾아온 여자 해류가 들려주는 회상과 현실이 얽혀있는데 이 과거를 되짚어나가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곤의 과거는 어찌 보면 슬플 수도 있지만 막상 본인은 담담하게 자라난 느낌. 아버지가 곤(그때는 곤이 아니었지만)과 함께 이내촌의 호수에 투신자살을 하고, 아버지는 죽었지만 곤은 이내촌에 사는 노인에게 거두어진다. 노인은 손자인 강하와 함께 살고 있고, 딸은 젊을 때 집을 나가 강하만을 맡기고 또 연락이 끊긴지 오래인 상황.

  처음에는 곤을 보내버리라던 강하는 곤의 목덜미에 있는 아가미를 보고 생각을 바꾼다. 이제는 오히려 노인에게 신고하지 말라며 곤을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하는데, 그렇다고 강하를 다정다감한 형제로 보긴 어렵고 곤을 대하는 행동이 좀 난폭하기도 하다. 근데도 이게 밉지가 않은게, 애가 삐뚤어졌다기보다는 오히려 감정표현에 서툴고 어려서 그런 느낌이라서 강하도 이해가 갔다. 곤의 비밀을 세상에 들키지 않도록 노력하는 강하의 모습은 신기하다. 이렇게 저렇게 곤을 구박하면서도 결국 곤을 보호하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곤이 호수에 빠진 아이를 구해냈을 때 강하는 그를 칭찬하기보다는 오히려 (심하게) 혼을 내며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한다. 아이의 목숨보다도 곤이 중요하다는 듯이. 밖에서 보면 강하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만 곤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곤에게 강하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비밀을 지키라고 말하는 감시자 같다. 곤이 그걸 상처로 여긴다기 보다는 좀 덤덤하게 아 그렇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는 거 같긴 하지만.

  그렇기에 이런 상황에서 강하의 엄마 이녕의 귀환은 무덤덤히 살아갈 수 있었던 상황의 반전을 만들어낸다. 연기자가 꿈이었지만 그 꿈을 잃고 나이 든 퇴물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이녕에겐 더 이상의 꿈이 없다. 그녀는 하루하루 환상을 만들어주는 약을 먹으며 남은 인생을 소진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상태를 눈치채는 것은 곤 뿐이다. 본디 무덤덤하고 또한 세상에 대한 이해가 조금 부족한 곤은 그런 이녕을 바라만 보는데, 어느 날 약에 취한 이녕은 몸을 씻던 곤을 우연히 보게 되고, 그런 곤에게 "예쁘다"고 말한다. 여태까지 자신의 몸을 감추고 숨겨야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곤은 그 말 한마디에 감화되어 이녕을 진짜로 신경쓰게 된다. 이런 깨달음의 과정이 좀 신기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일 이후 곤은 이녕을 진짜로 신경쓰게 되어 그녀가 먹는 약들을 한번에 다 버리게 되는데, 약물중독자들이 그러하듯 이녕은 금단증상과 환각에 시달려 곤을 살해하려 들고, 역으로 방어하던 곤에 의해 죽는다. 당황한 곤은 그대로 강하를 부르는데 신기한 게 강하는 자신의 어머니를 죽인 곤을 여태까지처럼 폭력적으로 다루지 않고, 오히려 당황하나 곤에게 후드티를 입히고 있는 돈을 챙겨주어 멀리 떠나 보낸다. 이곳은 자신이 처리하겠다며. 이 때 곤은 강하에게 "날 죽이고 싶지 않느냐"고 묻고 강하의 대답은 이렇다. "물론 죽이고 싶지"만 "그래도 살아줬으면 좋겠으니까". 여태까지 자신이 들었던 말 중에 "예쁘다"가 가장 최고의 찬사인 줄 알았던 곤은 강하의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존재 자체에 대한 소중함을 획득한 듯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강하의 "돌아오지 말라"는 말을 듣고. 그래서 일년에 한 번씩 자신이 머무는 곳의 풍경을 사진으로 보내며.

  소설은 아가미가 있는 곤에게서 시작하지만 이야기 전체는 곤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곤과 강하의 관계에 더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겉으로는 삐뚤어졌지만 속으로는 이상할 정도로 끈끈히 맺힌 관계. 곤의 몸상태보다는 곤의 내면이 더 궁금하고, 강하와 곤 사이에 남아있는 것들이 더 보고 싶은 그런 이야기였다. 그런 관계 면에서는 은교가 생각나기도 했다. 지누도 그 생각을 한 거 보면 나만 한 생각이 아닌듯ㅎㅎ

  어쨌든 난 즐겁게 봤다. 재미있었음. 곤이 강하를 어서 찾아내기를.

  곤, 당신 이름 있잖아요. 그거 할아버지도 아니고 강하가 지어준 거래요. 그렇게 부르기도 기억하기도 쉬운 단 한 글자뿐인 이름을, 막상 자기가 붙여놓고 부르지도 못했대요.
  그 무렵 강하는 『장자』를 어린이용 다이제스트 판으로 엮은 학급문고 도서를 읽고 있었대요. 장자의 첫 장에는 이런 얘기가 있거든요. 북쪽 바다에 사는 커다란 물고기, 그 크기는 몇천 리나 되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름을 곤이라고 한다……. 강하는 당신의 아가미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으로서 이거야말로 이 아이한테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하지만 그래 놓고는 당신의 이름을 부른 적이 거의 없었죠. 그건 그 다음 장에 있던 한 줄이 일종의 예언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래요. 이 물고기는 남쪽 바다로 가기 위해 변신하여 새가 되는데 그 이름을 붕이라고 한다. 그의 등은 태산과도 같이 넓고 날개는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과 같으며 한번 박차고 날아오르면 구만 리를 날아간다고요.
  언제 어떤 일로 떠날지 모르는 아이였잖아요. 오랜 기간 이내촌에 머물긴 했지만 실제로 당신은 불의의 사고로 떠나왔고요. 강하는 그 이름을 일상적으로 부르는 것조차 두려웠던 거예요. 한 번 제대로 마주한 적 없는 존재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한 글자가 혈관을 부풀어 오르게 하고 마침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아가미』, 구병모, 자음과 모음, 2011, pp. 180-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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