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비닛제12회문학동네소설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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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언수 (문학동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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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자 작가들이 취향인건지, 이거 엄청 재미나게 읽음. 시작과 진행에 비해서 결말이 약간 부족한 거 같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즐겁게 읽었다.

  최근 읽은 여자 작가들 소설은 집요하고 세세하고, 감성을 톡톡 잡아내거나 혹은 서늘한 느낌이었는데... 남자 작가들은 대부분 그런 거 없었다. 넉넉거나 위트 가득, 혹은 메말랐지만 장대한 느낌. 꼭 성별로 이러하다, 라고 말하자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내가 받은 인상이 그랬다. 취향에 따라서 가겠지만 나는 너무 꽉 막히거나 몰아세워지는 기분 안좋아해서... 남자 작가들 소설이 좀 더 취향이었던 듯. 뭐 요새 내가 읽은 작가들 성향이 그런 거 같긴 한데... 여하튼.

  무료함에 빠진 직장인 공대리가 13호 캐비닛을 열어 그 안에 있는 '심토머', 징후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관리하게 되는 게 큰 바탕. 일반적인 인류라기엔 뭔가 특이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야이기. 이게 해괴하기 짝이 없는 예가 대부분이라서, 요런 상황 자체는 현실성이 제로다. 손가락에 은행나무를 키우는 남자라던가, 마법사, 혀 대신 도마뱀을 키우는 여자. 이런 사람들이 나오니까...

  재미있는 건 이런 다양하고 특이하고, 있을 수 없는 사람들을 말하는 챕터마다 있는 현실과의 접점들은 뼈저리게 현실 같다는 거다. 그들이 겪고, 느끼는 현실은 내가 지금 느끼는 현실과 같다. 소재를 보면서는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에 놀라고 재미있어 하면서도, 또 동시에 그 안에서 느껴지는 현실의 모습에 깜짝 놀라게 된다.

  큰 이야기는 뭐... 캐비닛의 원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권박사와의 관계나, 비대한 몸을 웅크리고 사는 손정은씨 이야기가 좀 있는데 전체적으로 연관성이 그다지 긴밀해 보이진 않았다. 그게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세 챕터 중 마지막 챕터는 큰 이야기에 거의 쏟아부었는데도 이 간극이 잘 메워지지 않더라. 근데 이거 진짜 작은 단점이고... 충분히 즐거웠다.

  즐거웠다. 동시에 생각할 것도 많았고. 이렇게 양 쪽을 다 채워주는 소설 흔치 않다.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아니면 남자로 태어나고 싶습니까?"

"저는 이 폭력적인 이분법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네오헤르마프로디토스', 『캐비닛』, 김언수, 문학동네, 2006, p.195

"(…)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통째로 빌린다 해도 결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가 없어요. 타인의 입장이라고 착각하는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니 함부로 타인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바로 거기서 끔찍한 폭력이 발생합니다."

'다중소속자', 『캐비닛』, 김언수, 문학동네, 2006, p.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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