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연수 (문학과지성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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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의 일을 다루는 것만큼 어려운 소설이 어디에 있을까.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일들을 역사를 통해 간접체험하고, 그것을 자신만의 체험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김연수의 장편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1930년대 민생단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 나는 근현대사를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민생단 사건을 알지 못했다. 오로지 김연수의 시선을 통해 이 민생단 사건을 처음 알 게 된 것이니, 기초 정보가 좀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다 읽은 뒤 나는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는 민생단 사건 자체는 소설의 소재이며 배경이 될 뿐, 전체적인 이해를 방해하는 것임이 아님을 말해준다.

  「밤은 노래한다」는 시대적 상황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혼돈 속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인 김해연을 내세운다. 이데올로기의 혼란 속에서 처참하게 부서져간 사람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할 뿐 아니라, 주인공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개인의 삶이 입게 된 피해를 말하고 있다. 단순히 개인의 삶이 타인에 의해 휘몰아치듯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무게가 더해지는 느낌이 있다.

  이정희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나름의 액자식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정희가 죽기 전까지 김해연은 그저 사랑에 빠진 남자였을 뿐이다. 그 전까지 그에게 자신이 처한 역사적 현실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정희를 만나게 됨으로 인해 그는 이데올로기를 접하며 그를 통한 현실인식을 하게 된다. 주인공인 김해연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때문에 왜? 라는 물음이 많다. 이정희가 죽은 이유를 캐물어가던 것을 시작으로, 김해연은 지속적으로 그의 삶 주변의 굴레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그를 둘러 싼 모든 것들이 사실 같았던 거짓이었음을 발견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는 그때까지 현실인식을 제대로 하고 있지 않고 살았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질문을 하다 막혀버린 시점에서는 그는 목을 매단다. 가까스로 살아났을 때엔 운명적으로 이정희가 가졌던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맞닿은 인물들을 또 다시 만나게 된다. 새로운 연인이라 할 수 있는 여옥과의 만남도 그에 맞닿아 있다.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을 깨고 나왔을 때, 이 때 어쩌면 김해연은 다시 평범한 삶 속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질문을 하다 막혀버렸던 그 때처럼, 평화로운 길은 다시 막혀버린다. 여옥과 떠나기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들과 함께, 김해연의 삶은 다시 평화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로 이데올로기에 심취하여, 이제까지 무시하였던 현실의 한 가운데로 들어가게 된다.

  사회주의 이념에 푹 젖은 사람들과 그들의 생산적인 삶은 독자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답답한 구석이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 이념의 논리를 믿고 그를 굳게 따르지만, 사실 그들이 원하는 본질적인 것이 무엇인지, 혹은 사회주의 이념의 진짜 논리가 무엇인지는 모른 채 무작정 그것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집단논리에 매혹된 사람들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사실 본질적인 사상이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그저 집단을 따르고, 집단이 옳지 않다 하면 자신도 그것을 무작정 받아들인다. 그리고 이러한 집단논리는 생과 사의 기로 앞에서 의외로 쉽게 허물어지기도 한다. 마치 그것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알리려는 듯이.

  「밤은 노래한다」는 이정희와 박길룡, 안세훈, 박도만이라는 네 청소년들이 어떤 신념을 가지게 되면서 그를 통해 어떻게 살아가는 가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밤은 노래한다」는 어떤 이념적 바탕을 주장하는 소설이 아니다. 다만 이를 통해 그에 얽힌 사람들의 삶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 수 있는지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시작은 넷의 이야기였을지언정, 마지막에 가서는 수백 명의 사람이 얽힌 이야기가 된다.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던 김해연 외의 다른 사람들까지 전부 다 얽힌 커다란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 모두가 바로 우리가 입이 닳도록 말하는 민족이 되고, 그들의 사고가 뭉쳐 이데올로기가 된다.

  나는 한 민족이라는 개념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어떤 색 없이 하나의 민족으로 묶인다는 것을 다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주의 논리 또한 내게는 거북한 것이 된다. 그리고 「밤은 노래한다」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모종의 불편함은 이런 데에서 기인했다고 할 수 있다. 다수의 논리가 잘못 적용될 때 어떤 식으로 사람들의 사고가 굳어질 수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이다.

  「밤은 노래한다」는 민생단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기보단 그를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논리를 전달하려 한다. 모든 것의 바탕에 있던 개인적 인물인 김해연이 어떤 식으로 커다란 민족의 덩어리에 얽매일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김해연의 시점을 통해 세밀하게 그려내 이를 통해 집단주의의 폐단을 그려낸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김해연이 맑시즘을 잘 수용하여 그를 통해 새로운 발전을 이루어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밤은 노래한다」는 거기까지 이뤄내진 않는다. 다만 하나로 뭉쳤던 민족이, 어떻게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와해되는가를 보여주며 그에 섞여 혼란을 겪는 김해연의 이야기를 보여줄 뿐이다.

  김연수는 이런 것들을 드러내기 위해, 자질구레한 설명 대신 김해연을 등장시켰다.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김해연을 통해 그를 처참한 사지로 내몬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던 이정희와의 로맨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해 주는 장치이지만 그와 동시에 김해연의 개인적 삶을 민족의 삶으로 끌어들인 것이기도 하다. 내게도 그렇고 일반 독자들에게 있어서도 많은 설명보다 이런 전달 방식이 주제를 말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밤은 노래한다」의 주제와 맞닿아 있는 소재는 민족이다. 그리고 이 소설이 현재에 이르러 가지는 가치 또한 여기에서 드러난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단일민족을 강조하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집단주의가 좋은 식으로 발휘되기도 하지만, 좋지 않은 방식으로 발현되는 일 도한 허다하다. 문제는 이런 굴레를 그 굴레를 쓰고 있는 우리 자신들이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마치 일이 다 벌어진 후에 무언가 잘못된 것인지를 깨달았던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밤은 노래한다」를 통해 우리를 가두고 있으며, 자신의 생각이라 착각하게 만들어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는 집단의 굴레를 돌아보고, 그것을 벗어나는 시도를 해 보는 것 또한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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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제였는데 무슨 개소리를 쓴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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