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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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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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하 장편 소설은 처음 읽었다. 대체로 소재가 어두워 보여서 선택하고 싶지 않았었다. 이건 다른 소설들에 비해 가벼워 보였고 그래서 샀었다. 예상대로 질척이게 무겁진 않았다. 단편의 재기발랄함이 묻어나면서도 호흡이 길다는 느낌이었다. 나쁘진 않았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을 꺼내기 위해 반절이 넘도록 끌어가던 서사들이 마음에 들었다. 촘촘하단 느낌은 덜했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았다. 딱 좋은 정도.

  주인공 이민수는 딱 철딱서니 없는 20대다. 그것도 살아온 방향이 나랑 좀 비슷한 거 같아서 읽으면서 울컥했다. 때려주고싶어서.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자기 능력 파악은 하지도 못하고, 그 와중에 자존심이나 내세우고. 뭐가 앞이고 뒤인지 구분도 못하는 거 같아서 속이 터졌다. 적당히, 생각없이 실제로 삶에 관련된 일은 생각치도 않고 무의미한 스펙을 쌓으며(아 이건 아니려나, 민수는 제대로 쌓지도 않았지) 실제 문제 앞에서는 도망치기만 하는 이민수. 얄밉지만 차라리 빛나 같은 애가 실속있게 사는 걸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민수는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도 도망칠 궁리만 꾀한다. 민수가 하는 행동들이 다 그렇다. 목표가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기실 목표도 없고, 그를 위한 노력도 없다. 간단히 말하면 좀 철이 없다. 궁지에 궁지에 몰려도 그랬다. 그런 민수가 유일하게 몰입하는 게 퀴즈. 근데 이건 사실 별 거 없다. 퀴즈를 통해 '벽 속의 요정' 지원을 만나고,  퀴즈를 통해 퀴즈를 위한 '회사'에 스카웃되어서 거기 생활을 한다거나 하는 일이 있긴 하지만... 퀴즈 자체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친 않았다. 거기에 의미가 있다면 비상구로써의 의미 정도일까. 결국 중요한 건 민수가 퀴즈를 통한 도망에서 벗어나 현실세계에 입성하게 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거야, 라던 민수의 말이 이번에는 제법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성장소설이다. 그것도 이십대를 위한. 마치 내 치부를 들추는 듯 부끄럽고 화가 났지만 그래도 썩 괜찮았다.
2010/01/23 -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 김영하

엘리베이터에낀그남자는어떻게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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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김영하 (문학동네,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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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엘레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에 관한 감상글은 올렸고, 요건 단편집에 관한 내용. 읽은 지 좀 됐는데 이제서야 쓰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사진관 살인사건
흡혈귀
피뢰침
비상구
고압선
당신의 나무
바람이 분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

  이렇게 아홉개의 단편이 들어있다. 호흡이 짧고 매우 잘 읽히는 문장인지라 누구에게라도 추천하고 싶은 단편집. 난 이런 식의 호흡 빠른 글들을 참 좋아한다. 전에 이기호 단편집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가 몹시 취향이었던 것처럼. 새삼스레 이 단편집 읽고서 김영하 단편이 진짜 내 취향이구나, 그런 생각하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흡혈귀'랑 '비상구'를 가장 즐겁게 읽었음.

  '사진관 살인사건'은 결국 이런 식으로 진짜 범인이 아닌 사람들을 조사하면서 그 사람들의 내면을 파헤치는 소설이었다. 흥미로웠지만 특별히 충격적이진 않았다. '흡혈귀'는 소재가 즐거웠다. 내가 뱀파이어 너무 좋아하겠지... 비단 소재의 문제만은 아니고, 그 소재를 풀어내는 방식(편지글)이나 담고 있는 내용도 마음에 들었음. '피뢰침'은 판타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글쎄. 뭔가를 갈구한다는 느낌 자체는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상구'는 말투가 꽤 현실적인데(지금에 와서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청춘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압선'은 묘하게 슬프다. 지극히 판타지 적이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투명인간이라는 소재를 이렇게 슬프게 쓸 수도 있다. '당신의 나무', '바람이 분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는'은 셋 다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인상이 전체적으로 쓸쓸했음.

  재치있으면서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단편들. 아주 좋아한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김영하 (문학과지성사,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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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김영하의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단편집인 「오빠가 돌아왔다」였다. 전체적으로 참 유쾌한 글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조금 가슴 한구석을 쓰라리게 한다는 느낌도 있었다. 또,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내지만 동시에 그를 통해 몹시 비꼬아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평범한 일상 혹은 현실을 그려내는 척 하면서 그 안에서 이리저리 현실을 비꼬고 있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데에서 조금의 메스꺼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읽게 된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내가 알고 있는 김영하 특유의 글을 복습하게 한 기분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가 먼저 나온 작품이지만 말이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김영하의 다른 작품들처럼 현실을 비꼬면서 그것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이 안 풀리는 듯한 날이 있다. 모두가 겪어봤을 법한 그런 평범한 사건에서 하나의 극적인 요소(즉,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발견하게 된 것)가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팽창되며 나중에는 펑 터져버려 의외로 맥없이 끝난다. 마치 이건 그냥 이런 이야기야 라고 말하는 듯 하다. 읽고 느끼는 건 순전히 읽는 너의 몫이야. 라고 말하는 듯도 하고. 

   내가 봤을 때 이 소설은 엘리베이터에 낀 남자를 119에 신고하기 위해 하루 종일 노력하는, 그러나 잘 풀리지 않는 남자를 통해 요즘 사람들의 냉혹함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휴대폰 하나 빌려주지 않는 사람들과 같이 엘리베이터에 갇혔음에도 혼자 나간 뒤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여자. 크게는 이런 뼈대부터 세세한 화자의 감정 표현에까지 이런 현실의 냉혹함이 묻어나온다. 화자가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 하며 마지막에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 남자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은 씁쓸함을 더해주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는 이전에 읽었던 김영하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읽고 난 뒤 기분이 조금 메스꺼웠다. 이게 정말 현실에서도 일어날 법 하기 때문이다. 모르는 이에게 휴대폰 하나 빌려주려 하지 않는 태도, 매일 보는 얼굴이라도 요금이 없으면 매몰차게 내리라 하는 버스 운전기사, 같은 위험 안에 있었음에도 자신이 그 위험에서 빠져나가면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 모두 현실 안에서 제법 있을 법한 인물이고 그렇기에 이 소설을 읽고 메스꺼움을 느낀다. 이 현실이 냉혹하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 하듯 유쾌하고 스스럼없는 말투로 전달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더욱 배가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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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감상. 아마 책 전부를 읽진 않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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