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마망이 말했다.

  "내가 너 뭐 한다는 데 안시켜 준 건 거의 없지 않아?"

  응, 진짜다. 연극 영화 학원 보내달라는 거 빼고는 다 시켜줬다. 꼬꼬마 시절이지만 미술 학원도 다녔었고, 피아노도 배웠었고, 글짓기 학원도 다녔었다. 커서는 남들 다니는 학원 다 보내줬고, 일본어 배우고 싶다니까 학원도 보내줬었다.
 
  저 중에 끝장을 본 거? 없다. 난 항상 끈기가 부족해서 뭐든 간만 보고 끝낸다.

  미술 학원도 한 반년 다니다가 관뒀고, 피아노는 두 번에 걸쳐서 끊었다. 그것도 두번 째는 자의 로 간 거였지만 관뒀다. 글짓기 학원은 유일하게 재미있게 다닌 곳이긴 했는데 그래도 관뒀다. 남들 다니는 학원? 빼먹기를 밥먹듯이 했고, 학원도 꽤 자주 옮겼다. 단과도 다니고 종합반도 다녀보고 그랬다. 일본어? 한 달만에 관뒀다. 버겁다고.

  그래서 난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만화 스케치는 그럭저럭이지만 수채화는 완전 꽝이다. 최하점도 받아봤다. 피아노? 손가락 굳어서 악보 쪼끔 보고 건반 두드리는 정도. 음감도 없다. 글짓기? 적당히 내가 끄적거리고 싶을 땐 끄적거리지만, 순간적으로 다 쓰지 않는 이상 끝까지 쓰는 거 거의 없다. 공부? 학교 다닐 때 성적이 완전 들쑥 날쑥. 수능 공부는 정말 적당히 해서 지방대학 갔다. 일본어, 하고 싶을때만 했다 말았다 해서 누구에게 설명하라고 하면 못한다. 감으로 하는 야매 일본어다.

  반대로 말하면, 난 뭐든 참 적당히 할 줄은 안다.

  미술도 적당히, 피아노도 모른다고는 할 수 없지. 글짓기? 적당히 하고 있다. 공부는 시험때만 피치 올려서 쫙. 다른 때는 안한다. 일본어도 손짓 발짓 섞어가며 대충 말할 수 있다. 배운 거 말고 적당히 습득한 건 컴퓨터 지식 정도? 컴퓨터 한 다섯번쯤 망가뜨리고 나니까(양아젤 바이러스라 한다) 대충 알겠더라.

  마망이 그랬다.

  "넌 끈기가 없어."

  그래서 나는 대답했다.

  "응."

  뭐든 쉽게 수긍하고 마는 것이다. 싸우기 귀찮은 것도 어쩌면 끈기가 부족해서 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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