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2008)

C.R.A.Z.Y. 
7.6
감독
장 마크 발레
출연
미셸 꼬떼, 마크-앙드레 그롱당, 다니엘 프룰, 피에르 뤽 브릴란트, 알렉스 그라벨
정보
코미디, 드라마 | 캐나다 | 126 분 | 2008-02-05


  큰 기대는 안하고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퀴어영화는 흔히 성장담으로 빠지기 마련이지만 이건 그보다는 가족에 더 집중되어있는 느낌으로, 가족영화에 가까웠다. C.R.A.Z.Y. 라는 제목이 뭘 뜻하나 했더니 볼리외 가문의 다섯 형제, 크리스티앙(막심 트레블레), 레이몽(피에르-뤽 브리앙), 앙트완(알렉스 그뢰벨), 자크(마크-앙드레 그롱당), 이반(펠릭스-앙트완 데스파티)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동시에 아빠 제르베(미쉘 코떼)가 아끼던 레코드판에 새겨진 노래 제목(인가 앨범제목인가)이기도 했고. 사실 제목치곤 조금 유치하긴 한데 이 영화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다.

  자크가 메인 주인공이긴 했지만 다른 가족들에게도 많이 이입이 되는 영화였다. 배경 자체가 과거인데다가 볼리외 가문은 가톨릭교도, 거기다 아버지는 마초 캐릭터인지라 주인공이 겪을 고민이 뻔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그 모든 것들이 쉽진 않았지만 결국은 사랑으로 극복되는 듯한 모습들이 좋았다. 나는 퀴어영화가 흔히 가지고 있는,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너무 무거워 그것만이 영화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나 혹은 로맨스에만 집중해서 스토리는 고려도 안하는 두 가지 패턴을 너무나 싫어하는데, 이 영화는 가족을 다룬 드라마, 코미디로서의 모습을 잘 그려낼 뿐 아니라 자크의 고민과 가족들이 안고 있는 고민까지도 잘 그려내서 너무나 좋았다. 다섯 형제 중에서도 이야기가 가장 집중된 건 화자이자 주인공 격인 자크이지만 마약중독자인 레이몽의 이야기도 꽤 비중을 차지하고, 마초인 아버지 캐릭터에도 비중이 꽤 있었다. 이건 한 사람의 성장담이 아니라 한 가족의 성장담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자신을 부정하면서도 조금씩 표출하던 자크와 아들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마초 아버지 사이의 균열이 안타깝고 슬펐다. 크리스티앙의 결혼식 피로연 때 자크를 감싸기 위해 사고를 벌인 레이몽과, 그런 그의 모습 때문에 자크에게 더욱 더 화를 내야했던 아버지. 레이몽이 한창 아플 때 때 맞추어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자크에게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보기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자크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굉장히 이입이 되던 순간이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엄마 로리안느(다니엘 프룰)의 표정도 기억에 남는다.

  레이몽이 죽은 후, 해체되었던 가족은 다시 한 번 결합이 계기를 맞이한다. 누군가의 죽음이 이런 일을 만들어냈다는 게 슬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설득력있는 전개였다. 형제들이 집을 떠나며 어머니 아버지와 인사를 할 때, 그 마지막 순간에, 어색했던 악수를 제치고 다시 자크를 붙잡아 껴안아주던 아버지 캐릭터가 무척 좋았다.

  난 마음에 들었음. 시대배경이 배경이니만큼 나오던 락밴드의 음악들도 좋았고, 가끔 엉뚱하기까지 한 코미디식 연출조차도. 생각보다 따뜻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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