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스톤베리
감독 줄리언 템플 (2006 / 영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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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영국의 음악 페스티벌이며, 전 세걔적으로도 그 규묘를 자랑하는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비씨에서 제작한 걸 보니 이 나라는 정말 락의 나라로구나...ㅜㅜ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여튼간에 두시간 십분 정도로 길이도 꽤 길었고, 보는 내내 약간 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벌써 4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축제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왔는지에 대한 역사. 마이클 이비스라는 젊은 농부가 시작한 이 축제는 이제 전 세계적인 규모의 축제로 발전해버렸다. 처음에는 천 오백명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십오만명이 참가하는 축제. 어설펐던 진행이 점차 견고해지고, 원래의 히피 정신 같은게 사라져 가는걸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축제 내부의 상황이 나오는데 빠지지 않는 건 마약. 징글징글하게들 하더라...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 락페가 낫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음. 그리고 나체족들 보고 깜짝 놀람. 어째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안을 활보하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뭐 그래도 다들 음악 즐기고, 그러는 건 좋더라만.

  진행에 관한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던데, 그럴 만도 한 듯. 한 인터뷰가 인상깊었다. 인터뷰어가 "축제에 가실 건가요?"라고 묻자, 주민이 이렇게 대답하더라. "가야지. 총을 들고."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법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담장에 관한 것. 지금 담장 둘레나 높이가 어마어마하던데 끊임없이 그걸 뚫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릴을 위해서... 그거에 대처하는 방식도 무지막지하더라. 감시카메라도 많고, 경비들도 많았고... 여러모로 신기했다. 2000년에 결국 담장이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오고, 그래서 2001년엔 쉬고 담장을 '제대로' 쌓았다는 데서 이거 장난아니구나, 생각했음. 그 와중에 로스킬레 페스티벌에서는 10명이 깔려죽기도 했다고 해서 막 놀람. 놀러가서 저게 무슨 개죽음이냐.... 오폐물 처리 과정 나올때는 역겨워서 혼났고.

  축제를 통해 사람들이 가지는 낭만도 은근히 잘 드러낸 것 같다. 한 보험회사 직원이 인터뷰가 있었는데, 여기 와서 진짜 자신을 찾는다고.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럭저럭 이 페스티벌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듯. 그런데 난 왜인지 이걸 보고 글래스톤베리에 가고 싶은 생각은 사라졌다... 무서워요.

지난 겨울, 갑자기
감독 루카 라가지,쿠스타브 호퍼 (2008 / 이탈리아)
출연 쿠스타브 호퍼,루카 라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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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유머를 섞어 제작된 다큐멘터리. 하지만 내용은 한없이 무겁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미혼·동성 커플의 권리를 승인하는 법안 DICO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겨울, 갑자기 발표된 이 법안은 통과된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찍을 2007년 당시 이미 8년 차 연인이던 구스타프 호퍼와 루카 라가지는 이 법안의 통과에 긍정적이었고, 그런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하지만 바티칸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기독교 문화에 깊이 물든 이탈리아 사회는 이 법안의 통과에 걸림돌이 된다. 한 순간에 이 다큐멘터리는 동성 결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렸다. 따뜻한 가족과 친구들 덕에, 그 동안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몰랐다가 이 영화를 찍으며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알게 되는 구스타브와 루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특히 루카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많이 지쳐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더라. 
 
  구스타브와 루카는 길을 걷는 일반 시민들을 많이 인터뷰한다. 그들은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동성애를 반대한다(우습지도 않은 표현이다만)고 말한다. 심지어 구스타브와 루카가 연인이라는 말을 함에도 그 앞에서 그건 옳지 않다고 말한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의 날' 따위를 지지하며 시위를 하는데, 거기엔 논리가 없었다. 이성적인 논리가 아닌 그저 귀를 막고 교회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해 대는데 가슴이 답답해 지더라. 어떤 여성 정치인은 성서에 쓰여진 걸 보라고, 창세기에 신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느냐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녀가 믿고 있는 정치적인 믿음이 고작 교회의 이론에 바탕한 거라니! 그녀가 내세울 수 있는 말이 고작 성경에 적힌 말이라니. 그게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할 만한 근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놀라웠다. 여튼 DICO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논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들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 지도 모르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구스타브는 특히 열성적으로 그 사람들에게 이유를 듣고 싶어했지만, 그들 중 아무도 구스타브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어주지 못하더라. 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도.

  이탈리아의 2007 게이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장면도 나왔다. 내내 우울하다가 이 퍼레이드를 보니 기분이 좀 환기되었다. 그래도 끝까지 관련 법은 통과되지 않았고 새 법에 관한 이야기만 나왔지만... 어쨌든 그 게이 퍼레이드 중 정치인 '블라디미르 럭셔리아'의 연설을 보고 눈물이 났다.

우리는 가족이 뭔지 가르치는 위선적인 선생은 필요 없어요. 땅에서 솟아난 사람들이 아니니 가족이 뭔지는 잘 알죠. 우리도 가족 속에서 태어났어요! 가족의 품에서 사랑받으며 자랐다면 더 없는 행운아죠. 하지만 신부님의 축복을 받은 기독교 집안에서는 저희 같은 사람은 온갖 질타와 미움, 차별을 받고 쫓겨나죠. 동성애자 아들을 정신병원이나 퇴마사에게 보내거나 남성 호르몬을 주사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죠. 반드시 이성의 만남으로만 가족이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여성이 핍박받지 않고 자녀가 억압받지 않는 곳은 모두 가족입니다. 관심과 존경, 사랑만 있으면 평범한 가족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가족입니다!


  여러 모로 생각할 게 많았던 다큐멘터리. 우리나라는 이런 법률에 대한 이야기조차 나오고 있질 않으니 더 씁쓸하기도 했고...
 
낮은목소리 2
감독 변영주 (1997 / 한국)
출연 강덕경, 김순덕, 김복동, 박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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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2』 - 할머니들의 말 건네기

  일제 강점기 시절, 일제는 잔혹한 만행들을 수없이 저질렀다. 그 수없이 많은 문제 중, 인간의 삶을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짓밟았던 것은 위안부 문제일 것이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젊은 소녀들을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며 속여서 혹은 강제로 끌어가 위안부로 만들었다. 끌려갔던 그녀들은 위안소라는 곳에서 청춘을 짓밟혔다. 전쟁이 끝난 후에야 위안부 생활도 끝났다.

  그렇게 짓밟힌 그녀들은 당당할 수가 없었다. 그녀들은 스스로 나서서 위안부가 된 것이 아님에도 그것을 몹시 수치스럽게 느꼈다. 더욱 우스운 것은 그녀들의 가족조차 돌아온 그녀들의 과거를 알았을 때 그것을 부정하거나, 믿지 않으려 하거나,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가족들마저 그러한데 사회는 어떠했겠는가. 사회에서는 잠정적으로 위안부들을 ‘창녀’, ‘작부’라고 부르며 천대했으며, 그녀들을 수치로 여겼다. 그래서 그녀들은 더욱 더 숨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은 그렇게 50년 세월을 고통 받았다.

  위안부 문제가 물 위로 떠오른 것은 겨우 1990년대에 들어서이다. 사회적으로 위안부 문제가 이슈화 되면서, 그제야 위안부 문제는 ‘역사의 수난’이 아닌 현실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위안부였던 그녀들을 이제 할머니가 되어 자신들의 겪었던 불행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 2』는 이러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낮은 목소리 2』는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그냥 다큐멘터리 영화가 아니고, 과거 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을 소재로 삼고 있는 다큐멘터리이다. 때문에 영화에 대한 소개를 들었을 때에는 영화가 무겁고 어둡고, 또 암울할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든다. 나 또한 그랬다. 아, 굉장히 어둡고 눈물 흘리게 만드는 영화이겠구나. 싶었다. 동시에 재미는 전혀 없겠다. 그녀들의 증언만 줄줄이 나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것은 이 영화를 다 보지 않았을 때의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낮은 목소리 2』에는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러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이다.

  『낮은 목소리 2』의 시작은 강덕경 할머니의 인터뷰로 시작된다. 빠릿빠릿한 말투로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말하시는 강덕경 할머니의 모습은 진지하고 결의에 차 있으며,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잠시 뒤에는 할머니의 힘겨운 투병 생활의 모습이 보여진다. 몸에도 힘이 없으시다. 그렇게 의지에 불타셨으나 세월과 병마 앞에 약해지신 것이다. 앞에서의 빠릿빠릿한 모습은 아마도 전편인 『낮은 목소리』에서의 인터뷰 같다. 인터뷰와 대비되는 강덕경 할머니의 모습이 슬프게 느껴졌다. 처음엔 짙은 어둠, 그 후에 보여지는 인터뷰의 인상은 강렬했고, 강덕경 할머니의 모습은 너무나 한에 차 있었기에 그녀의 병세는 더욱 더 슬프게 느껴졌다. 영화는 강덕경 할머니의 투병과 죽음으로 처음과 끝을 맺으려 하고, 이는 영화 『낮은 목소리 2』가 중간 중간의 밝은 모습들에 중심을 잃지 않으려 깔고 있는 기본적인 베이스 같다.

  『낮은 목소리 2』는 어둡지 않다. 밝은 부분이 많다. 어느 쪽이느냐 하면, 전체적으로는 밝고 중간 중간에 어둠을 껴 넣은 식이다. 도입부는 경건하게 시작했지만은 중간은 할머니들의 생활상이다. 이 생활상이 몹시도 즐겁고 경쾌하기 이를 데 없기에, 영화의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밝게 느껴진다.

  할머니들은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나눔의 집에서 할머니들은 아옹다옹 살아간다. 푸른색 자연 안에서 소일거리로 농사도 짓고, 예배 혹은 묵상도 하고, 자신들이 겪었던 상처를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하면서 할머니들은 그렇게 남은 생을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일상적이고 편안해 보여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내 마음속으로, 그들이 아직까지 일상생활에 있어서 상처받고 고통스러워하며 피폐한 생활을 하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건가 싶어서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한 생각 자체가 내 마음 속에서 그들에게 수치심으로 가득 찬 삶을 강요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부끄러웠다.

  할머니들의 삶은 너무나 평화롭고 즐거워 보였다. 정말로 일반적인 할머니들 같았다. 물놀이도 가고, 가끔은 서로 언쟁도 벌이고. 그런 일상적인 모습들이 참 보기 좋게 느껴졌다.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는 설정이 보기에 편했다. 또, 순수한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박두리 할머니가 닭장을 치우면서 투덜거리는 가벼운 넋두리 모습은 몹시 귀여우셔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밝은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괜찮아요. 우리는 멀쩡한 사람들이에요.’ 라는 메시지를 전달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우리를 이상하게 보지 말고, 관심을 가져 달라’고.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생활 중간 중간에, 강덕경 할머니의 투병 생활이나 할머니들의 인터뷰, 그림을 그리는 모습들이 나오기도 해 밝은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한 할머니께서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 위안부 시절을 테마로 가진 그런 그림이었다. 소녀의 표정이 너무나 슬퍼 보여서 가슴이 아렸다. 영화를 다 본 후에 나눔의 집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할머니들이 그림 그림들이 올라와 있었다. 위안부를 테마로 한 그림들은 일제에 대한 분노와 할머니들 마음속의 한이 잘 담겨 있었다. 그들의 한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그림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더 마음에 와 닿았다.

  강덕경 할머니의 투병생활은 더욱 더 표면으로 드러나는 슬픔이었다. 결국에는 강덕경 할머니가 돌아가심에 더 마음이 아팠다. 변영주 감독도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해 몹시 죄송스러워 했다. 『낮은 목소리 2』는 울음이나 웃음을 쥐어짜내지 않는다. 할머니들의 일상생활을 통해 그 안에서 그들의 감정을 전달하려 한다. 강덕경 할머니의 죽음도 그랬다. 예정되어 있는 듯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막상 할머니의 죽음을 영상으로 보아도, 싱숭생숭한 기분만 들 뿐이었다. 그러나 장례식장의 모습을 잡아 주었을 때에는 정말로 슬픔이 복받쳐 올랐다. 다른 할머니들은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하고 가게 된 동료, 친구의 죽음을 슬퍼했다. 그 슬픔의 모습이 슬펐다.

  할머니들의 인터뷰는, 『낮은 목소리 2』가 보여주는 주제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부분이다. 나는 할머니들의 인터뷰 내용도 그렇지만, 인터뷰를 할 때의 그들의 모습이 또한 인상이 깊었다. 열심히 기도를 하는 울산의 할머니의 모습이 나왔다. 집에서도 할머니는 기도를 했다. 이는 종교로서 상처를 극복하는 모습이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그러한 모습에서 종교의 필요성을 느꼈다. 열렬한 기도에서 그만치의 상처를, 그 깊이를 알 수 있었다.

  할머니들의 인터뷰는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것만 같다. 변영주 감독이 중간 중간 끼어드는 것은 우리가 끼어들 때 하는 말과 별로 다르지 않다. 인터뷰는 말 건네기이다. 할머니들이 우리에게, 우리는 이렇게 살았노라. 그러니 우리를 알아 달라. 하는 그런 모습이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그들의 진실성을 느꼈다. 그들의 말이 거짓이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인터뷰 하는 그 모습이 너무나 진실해 보였다.

  한 할머니는 인터뷰 중간에 자신이 했던 기도를 말한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이 생명 거두어 주시고 다시 부활시켜 주세요. 시집도 가고, 여자로서 부활시켜 주세요. 자식도 낳고 싶어요. 다시 부활시켜 주세요.’ 이 얼마나 슬픈 말인지. 어린 시절 멋모르고 납치당해가서 당했던 일들을 모두 깨끗하게 지우고, 그 후에 돌아와서 받은 멸시를 깨끗하게 지우고, 남들처럼 오순도순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소원. 그 소원이 너무나 작고도 깨끗해서 가슴이 먹먹했다. 남들은 쉽게 이룰 수 있는 일들이 그 할머니에게는 소원이었던 것이다.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슬픈 일이었다.

  할머니들은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더 많은 이들이 『낮은 목소리 2』를 보고 그들의 상황을 알고, 돕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들은 또 말한다.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일제의 만행을 두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고. 이렇게 말하고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이 기쁘다고도 말한다. 군인이 되어 이 나라를 지키고 싶다고도 말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낮은 목소리 2』가 전하고자 하는 바이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한을 풀기를 원한다. 일제의 사과를 원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들을 알아주기를 원한다. 2세들이 그들을 묻어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의 진실한 마음이 정확하게 전해져 온다.

  『낮은 목소리 2』는 일상을 소소하게 담으면서, 중간중간 인터뷰를 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를 통해 나는 이 영화를 좀 더 즐겁게 보면서 동시에 그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는 효과적인 방식이었다. 묻고 답하기는 그들의 속내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 방식이 좋았다.

  『낮은 목소리 2』는 우리에게, 보는 나에게 어떠한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낮은 목소리 2』를 봄으로써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달아 주기를 바라고 있다. 할머니들의 소소한 삶을 통해, 강덕경 할머니의 한 맺힌 죽음을 통해, 할머니들의 한 맺힌 삶의 일화를 통해 그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이다. 강요하지 않으나 정확하게 의미 전달이 되었다. 『낮은 목소리 2』는 그래서 더 느낄 것이 많은 그런 영화다. 그들은 우리를 붙잡고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말을 건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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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제로 냈던 옛감상. 지금 봐도 처절할 것 같아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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