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04/16 - 협박하기.


  옛날 포스팅 보다가 급 보고싶어져서 봤다. 포스터에 나오는 사진은 영화 안에 나오는 사진작가가 찍은 사진.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과 그의 페르소나였던 클라우스 킨스키 사이의 관계가 묻어나오는 사진이다. 짙은 애증. 클라우스 사후에 그를 기억하며 만든 이 영화는, 제목이 너무 적절한 것 같다.

  초반부엔 거의 웃으면서 봤다. 이게 추모 영화인지 코미디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웃겼다. 클라우스의 광적인 면모에 대해 주변 사람들이 설명하는데, 기가 막힐 정도로 또라이다. 일화들이 너무 재미있어서 한참 웃었다. 헤어조크 감독은 13살에 얹혀 살던 셋집에서 당시 가난한 연기자였던 클라우스를 처음 보는데, 그 당시의 일화가 사실 가장 재미있었다. 자신의 연극을 보고 '탁월하고 기념비적인' 이라고 평하니, 바로 그 사람의 얼굴에 뜨거운 감자 두 덩이와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던지고는, 식탁에 올라서 "난 탁월하고 특별한게 아니야! 나는 기념비적인 존재야! 획기적인 인물이라고!" 라고 외쳤다니... 48시간동안 욕실 안의 모든 물건을 깨부수며 난동을 부린 적도 있었고, 자신에게 무료로 집을 빌려주고 세탁도 해주던 셋집 주인에게 옷깃이 안다려져 있다는 이유로 "클라라 이 돼지같은 년!"하면서 욕을 쏟아부울 수 있는 존재. 이런 기이함이 어디서 나올 수 있었는지 참 궁금하다.

  촬영 중 일화도 참 많아서, 항상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했던 클라우스는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항상 자신에게 주목이 될 수 있도록 발작을 했고... 엑스트라에게 총을 쏘기도 하고, 칼로 내리치기도 하는 기이한 일들도 참 많이 했다. 촬영장에서 그가 난동을 부린 게 한 두번이 아니어서 어떤 때 헤어조크 감독은 그냥 얌전히 관전하기만 했는데.. 어떤 영화를 찍을 때에는 그 영화에 출연한 인디언 엑스트라들의 추장이 찾아와서, "당신을 위해 저 사람을 죽여줄까요?" 라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ㅋㅋㅋㅋㅋㅋ... 그 인디언들이 무서워 한건 클라우스가 아니라 헤어조크 감독이었는데, 클라우스가 그렇게 날뛰는데도 불구하고 헤어조크 감독은 항상 얌전히 상황을 관전해서... 였다고.

  제일 유명한 일화가 일전에도 썼던, "촬영할래, 죽을래" 인데, 헤어조크 본인의 말로 봐서는 내가 들은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짐싸려는 클라우스에게 손에 무기도 없이 가서 얌전히 말했단다. "지금 여기 총이 있는 건 아닌데, 다음 굽이를 돌아가기 전에 총알 8발로 당신을 쏘고 마지막 9발째로 날 쏠거야." ...아 참 얌전하셨던듯..ㅜㅜ 그래놓고 언론에는 자기가 카메라에 총을 달고 촬영했다고 소문이 나서 억울하다는 말도 했다ㅋㅋㅋㅋㅋ 둘 다.. 성격이 만만치 않다.

  영화 중간에 당연히 클라우스가 연기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참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로 연기를 잘 하는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아귀레, 신의 분노'에서 아귀레는 그냥 클라우스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다른 영화들에서도 기묘할 정도로 그 히스테릭하고 공격적인 면모가 잘 어울리게 연기하더라.

  클라우스 킨스키는 뭐랄까,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괴팍한 어린이 같았다. '많은 부분이 허구였던' 그의 자서전에 헤어조크 감독에 관한 욕을 잔뜩 써놓고도, 그 다음 장에는 강박적일 정도로 헤어조크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는 거... 그래놓고 헤어조크 감독에게 말하길 "내가 나쁜 이야기를 안 써놓으면 아무도 이 책을 안 사볼거야. 버러지같은 인간들은 나쁜 얘기에만 신경쓴다구." 라고 말했다니... 뭐랄까 귀여웠음. 항상 주목받고 싶어하는 면모같은거, 특별해지길 원하는 것... 헤어조크 감독의 말처럼 비겁함과 용감함이 섞여 있는 배우였다는 말이 적절했다.

  또, '보이체크'에서 여배우만 상을 받고 클라우스는 못받았을 때, 헤어조크가 "당신이 상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걸 우리가 다 알아요. 상은 기껏해야 당신의 가치를 떨어뜨려 싸구려로 만들 거예요. 온갖 미디어들이 당신을 괴롭힐 거라구요." 라고 말해주자, 클라우스는 기분이 좋아져서 헤어조크에게 키스하고 오랜 시간동안 그를 안아줬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클라우스가 너무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영화에 나온 여배우들은 클라우스를 다 좋게 평가 해 주는게 재미있었다. 평소에 괴팍하기 짝이 없는 이기주의자임에도 여배우들에겐 상당히 친절했던 것 같다. 심지어 '부끄러움을 타는' 배우였다고 말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 결벽증도 조금 있었던 것 같은데, 알콜로 소독을 한다던가... 짐승과 촬영을 해야 하는 장면에서 기가막히게 싫어한다던가 하는 것들. 이모 저모 독특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고, 클라우스 킨스키의 연기열정을 알 수 있는 장면도 많았다. 헤어조크가 말하길 자신과 킨스키의 마지막 영화 '코브라 베르데'의 결말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발산해서... 작열하듯 타올라서 그 후에 그가 재가 된 것 같았다고. 그가 없었다고. 이 때 클라우스가 "우리는 더 이상 계속할 수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없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클라우스는 그 뒤 자신이 감독한 영화 '파가니니'를 찍고 자신의 집에서 죽었다.

  마지막 부분 클라우스를 추억하는 헤어조크 감독의 나레이션들에서 참 많은 그리움이 묻어났다. 

  가끔 나는 한 번만 더 그를 내 팔로 안아보고 싶다. 하지만 이런 걸 꿈꾸는 이유는 내가 우리가 옛날에 찍은 필름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마치 늘 그래왔던 것처럼 친구인 척 하고 장난을 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린 서로에게 속해 있었다. 우리는 함께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정글로 돌아가 함께 보트를 타고 있는 우리를 본다. 세상이 전부 우리 것이었다. 하지만 클라우스는 거기서 날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 때 그의 영혼이 훨훨 날아다니고 싶어했다는 걸 믿어야 했을까?
  그리고 나는 그가 정말 부드럽고 가벼운 나비 한 마리와 같이 있는 걸 본다. 그 조그만 존재는 그에게서 멀어지지 않고 친한 것처럼 군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클라우스는 스스로 나비가 된다. 그리고 우리 사이의 심각했던 모든 일들이 부드러워 진다. 모든 일들이 잘 되어 간다. 나의 이성은 거기에 거스르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주문을 건다. 그렇게 해서라도 가장 사랑스러운 그의 모습을 내 기억 속에 간직하고 싶다.

  마지막 장면에선 정말로 나비와 함께 있는 클라우스 킨스키의 모습이 나온다. 그 때 그의 모습은 아주 평화로워서, 정말 잠깐이나마 그가 평화롭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줬다. 여운도 길게 남았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나의 친애하는 적.


볼링 포 콜럼바인
감독 마이클 무어 (2002 / 미국)
출연 존 니콜스, 딕 클라크, 에릭 해리스, 찰턴 헤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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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기 때문에 목구멍이 막혀 죽을거 같아하다가, 우연히 일찍 일어났는데 케이블에서 이 영화를 틀어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며칠 전에 일어났던 조승희 사건 탓에 편성한 듯 싶다. (뭐, 한달 전부터 편성했을 수도 있고...) 1년 전인가 중간까지 보다가 못봤었기 때문에 부스스한 차림새로 눌러앉아 보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재미있다. 정말로. 지루하다거나 그런느낌이 들지 않는다. 사회비판 다큐멘터리가 재미없다는 편견은 마이클 무어를 통해 사라진다. 마이클 무어의 다소 막무가내식의 진행이라던가, 사우스파크 제작자가 만든 애니메이션을 끼워넣는다던가, 마릴린 맨슨과의 인터뷰. 그런 것 통해서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니까. 어찌되었건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 다큐멘터리이다.

  이 영화는 콜럼바인 고교에서 일어났던 고교생 총격사건을 다룬다. 그런데 그 사건 자체만 딱 다루는것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그것을 통해 미국사회 전체를 비판하고 있다. 총기 규제에 관한 법, 총기 협회, 언론매체, 심지어는 관련없어보이는 사회보장법까지... 모든것이 그의 비판대상이다. 영화를 통해 본 미국사회는 바보같아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영화 또한 온연히 진실된 것은 아니다. 콜럼바인 총격사건의 범인들이 아침에 볼링을 쳤다던가, 은행에 계좌만 만들면 곧바로 총을 준다던가(열흘 정도 걸린다고...) 하는 것들은 사실이 아니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마이클 무어는 미국 사회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의 다큐멘터리를 여럿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한다. 그에게 영화감독은 그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그의 사상을 대표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한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소 과격한 연출로 이루어졌으며 마이클 무어의 사상을 피력하는 도구이기도 한 이 영화가 제법 마음에 든다. 미국이 싫어서? 아니 그렇게 광범위한 것은 아니고. 일단은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재거리를 던져주니까. 영화는 사실여부와 관계없이 논란거리를 제공했다는 것 자체부터가 썩 능력이 있어 보인다. 나의 이런 생각 자체가 마이클 무어의 마수에 걸려든 거라고 말해도 하는 수 없지만.

  덧붙이는 것은 마릴린 맨슨과의 인터뷰. 마릴린 맨슨과의 인터뷰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 언급되곤 한다. 아마도 무대에서 보는 괴이한 그의 모습과는 반대의, 정말 얌전한 말투로 논리적이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그의 모습에 놀라서이리라. 나는 무대는 본적 없고, 그의 노래는 열심히 듣는 편. 화장만으로도 무대를 알 법 하긴 하지만-_-; 아, 실제로 마릴린 맨슨은 무대 밖에서는 아주 예의바른 사람이라고. 
 

마릴린 맨슨  : 어렸을 땐 음악이 탈출구였죠. 음악만은 편견이 없어요. 옷이 재수없다고 야유하지도 않고, 내 모습을 긍정하게 만들어주죠. 내일 공연을 본 자들이 폭력을 휘두르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노'에요. 렉서스 광고를 본 사람 중 몇 명은 렉서스를 사겠죠. 왜 날 찍었는지 알아요. 노출된 표적이라 비난하기 쉽죠. 왜냐하면 난... 공포의 상징이니까요. 그들의 겁내는 것을 대변하고 거침없이 말하니까요.
  그 참사(콜럼바인총기사건)가 남긴 두 가지의 화두는 오락의 폭력성과 총기 규제인데, 다가올 선거에서 떠들어대기 좋은 건수가 생긴 거죠. 모니카 르윈스키도 잊고, 대통령이 미사일을 날린 것도 잊고, 락앤롤을 부르는 애꿎은 나만 악마 취급하겠죠. 내가 대통령보다 영향력이 클까요? 그럼 좋겠지만 대통령이 더 크죠. 웃기는 건 대통령이야말로 폭력의 주동자인데 언론은 그런 얘길 떠들지 않아요. 폭력이 그들의 장사 밑천이니까... 
  TV는 계속 공포를 조성하죠. 홍수, 에이즈, 살인, 중간 광고 아큐라 자동차를 사라, 입 냄새 나면  왕따 당한다, 여드름 나면 애인 떨어져 나간다... 공포심을 이용한 광고 일색이죠. 그런 게 우리 경제의 기초에요. 겁을 잔뜩 줘서 소비를 부추기죠. 아주 손 쉬운 방법이잖아요.

마이클 무어  : 콜럼바인 피해자가 여기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소?
 
마릴린 맨슨 : 말하는 대신 그들의 얘길 듣겠어요. 듣는 사람도 있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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