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세계문학전집108)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라우라 에스키벨 (민음사, 2004년)
상세보기
 
  도대체 왜 '쌉싸래'라는 표준어를 두고 쌉싸름을 선택했는지 모를 일이다. 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분량이었지만서도 술술 읽히던 책. 부엌에서 시작된 티타의 삶과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인생의 이야기. 티타의 인생을 따라가며 티타가 느끼는 절망과 기쁨, 슬픔과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이 기복은 한없이 비참하다가도 희망의 실마리를 주기 때문인지, 읽는 내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줄거리만 따지면 조금 이상한 느낌을 준다. 가부장도 아니고, 가모장이라고 해야하나? 막내딸의 인생은 무조건 어머니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집안의 이상한 법도에 따라 티타의 인생은 철저하게 희생된다. 집안일 뿐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결혼도 못하고 평생 마마 엘레나만 수발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이 마마 엘레나의 폭압 앞에 티타는 사랑하던 연인 페드로가 큰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하는 꼴을 보아야만 했다. 페드로는 '사랑하는 그녀의 옆에 평생 있기 위해서' 라고 생각하며 로사우라와 결혼했는데 이 부분은 정말 싫었다. 차라리 둘이 도망을 갔으면 가지, 도대체 몇 명에게 상처를 주는 페드로인지.

  부엌과 함께 자란 티타이기에 각 에피소드는 각각의 요리가 등장하며 티타의 감정을 표현해준다. 요리를 만들어내는 감정 뿐 아니라, 요리를 통해 각종 신기한 묘사로 감정을 표현했기에 이런 부분이 참 좋았다. 그 요리들에 영향을 받는 주변인물들에 대한 표현도 좋았고. 특히 둘째언니였던 헤르트루디스가 펄펄 날아서 도망가버리는 이야기에서는 장미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페드로와 로사우라가 떠나고 티타가 혼자 앓던 시간들이 보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 같다. 기력을 완전히 쇠해버린 티타의 마음을 보듬어줄 사람이 곁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유모 나차가 죽은 후 티타가 더 힘들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시간 만큼은 티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다. 티타가 의사 존을 만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헌신적이고,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존과 함께 행복하길 바랐다. 티타 인생에 소박한 행복이 찾아온 것 같았으니까. 존을 만난 후 티타는 강해졌고,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고, 자기 의지를 똑바로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티타의 변화가 좋았다.

  하지만 역시 아쉬운 것은 티타의 마지막 선택. 평생을 마마 엘레나를 돌봤고, 언니 로사우사를 위해 아낌없이 주던 티타가 좀 더 이기적인 결정을 하길 바랐다. 이 선택 자체도 자신이 한 선택이라 티타를 탓할 수 없지만, 아쉬운 건 사실. 마지막에 가서 갑자기 급 찌질해지던 페드로는 정말 싫었는데. 그리고 티타의 선택을 받아들인 존은 정말 좋은 사람이로구나.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딸인 에스페란사와, 존의 아들인 알렉스가 맺어진 것, 그리고 그 오랜 시간 후에야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페드로와 티타. 남들의 시선이 어땠건간에, 티타는 자기 자신이 선택할 수 있어 행복했을 것 같다.

  이야기를 보니 뭐 혁명이니 뭐니 나오던데... 역사같은걸 알고 봤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뭐 몰라도 재미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페드로와 눈길이 마주쳤다. 그 순간 티타는 팔팔 끓는 기름에 도넛 반죽을 집어넣었을 때의 느낌이 이런 거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얼굴과 배, 심장, 젖가슴, 온몸이 도넛처럼 기포가 몽글몽글 맺힐 듯이 후끈 달아올랐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민음사, 2004, p.24

  "아시다시피 우리 몸 안에도 인을 생산할 수 있는 물질이 있어요. 그보다 더한 것도 있죠.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걸 알려드릴까요? 우리 할머니는 아주 재미있는 이론을 가지고 계셨어요. 우리 모두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혼자서는 그 성냥에 불을 당길 수 없다고 하셨죠. 방금 한 실험에서처럼 산소와 촛불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거에요. 예를 들어 산소는 사랑하는 사람의 입김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촛불은 펑 하고 성냥불을 일으켜줄 수 있는 음식이나 음악, 애무, 언어, 소리가 되겠지요. 잠시 동안 우리는 그 강렬한 느낌에 현혹됩니다. 우리 몸 안에서는 따듯한 열기가 피어오르지요. 이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사라지지만 나중에 다시 그 불길을 되살릴 수 있는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납니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 자신의 불꽃을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만 합니다. 그 불꽃이 일면서 생기는 연소작용이 영혼을 살찌우지요. 다시 말해 불꽃은 영혼의 양식인 것입니다. 자신의 불씨를 지펴줄 뭔가를 제때 찾아내지 못하면 성냥갑이 축축해져서 한 개비의 불도 지필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영혼은 육체에서 달아나 자신을 살찌워 줄 양식을 찾아 홀로 칠흑같이 어두운 곳을 헤매게 됩니다. 남겨두고 온 차갑고 힘없는 육체만이 그 양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말입니다."

(중략)

  "그래서 차가운 입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장 강렬한 불길이 꺼질 수 있으니까요. 그 결과는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런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입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가 훨씬 더 수월하답니다."

(중략)

  "축축해진 성냥갑을 말릴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이 있어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민음사, 2004, p.124~12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