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감독 톰 튀크베어 (2006 / 독일, 스페인, 프랑스)
출연 벤 위쇼, 더스틴 호프먼, 알란 릭맨, 레이첼 허드-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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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에 은자랑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봤다. 약도에서 지하철 출구를 잘 확인했음에도 나는 한참을 헤맸다. 알고보니 길 건너서 있는거였어...ㄱ- 뭐랄까 롯데 시네마, 생각보다 눈에 잘 안 띄는 장소에 있었다. 그래도 같은 건물에 있던 콜드스톤 아이스크림은 몹시 마음에 들었다. 상관 없지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는, 내 돈으로 처음 샀던 책이었다. 중학교 때 어딘가에서 줏어듣고 생각없이 사왔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냥 생각없이 사온 것 치고는 너무나 푹 빠져들어서, 하루만에 몰입해서 다 읽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뒤로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도 읽어봤고, 깊이에의 걍요도 읽어봤고... 뭐 그랬다. 향수만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없다. 아; 싫다는건 아니다. 오히려 좋아하는 축. 아무튼 향수는 내가 가장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책. 오죽하면 주인공 이름도 외우고 있었다. 나같이 줄거리도 잘 까먹는 녀석에게는 놀라운 일.

  그래서 이 소설의 영화화 소식을 들었을 땐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알다시피 영화화를 통해 망가진 작품들이 잘 된 작품들보다 많으니까. 나중에 캐스팅된 사람들을 보고는 더욱 그랬는데, 나의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는 키가 작고 얼굴이 흉물인 곱추(디즈니 애니메이션 '노틀담의 곱추'에 나오는 그 곱추정도?)였는데, 캐스팅된 벤 위쇼는 훤칠하고 잘생긴 청년이어서 실망했다. 알란 릭맨이나 더스틴 호프만의 캐스팅은 좋았지만 도무지 벤 위쇼의 캐스팅을 좋아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외국에서 개봉도 하기 전에, 알지도 못하는 독일어 티저 홈페이지-_-를 드나들기도 하면서 관심을 보였다.(이 내가 영어 만세..ㄱ-를 외칠 줄이야.) 애증이란 이런 것일까.

  어찌되었건 한국에서도 개봉. 보러갈까 말까 하면서도 딴 영화들이나 보고 있었는데, 마침 은자가 보러가자길래 생각없이 쫄래쫄래 갔다. 괜찮아, 영화가 이상해도 알란 릭맨과 더스틴 호프만은 볼수 있잖아? 라는 기분도 조금.

  어라, 이거 괜찮다. 책에선 담담하고 건조했던 스토리가 영화에서는 좀더 볼륨있게 꾸며진 느낌이 들지만, 이거 나름의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잔가지가 많은 부분을 과감하게 잘라내고, 건조한 느낌의 소설을 조금 더 풍성하게 만들어 보기 좋게 만들어 냈다는 느낌. 이 정도면 실패는 아닌 것이다. 중간 중간 나레이션이 들어간게 조금 신경쓰였지만, 주인공이 다 설명해 줄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책에서 볼땐 담담했던 장면들이 실제로, 거기에 잘생긴 주인공으로 옮겨지니까 스토커 일대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려했던 주인공 벤 위쇼는 대사가 별로 없어서, 눈으로 말해요 신공을 펼쳐주었는데 그 때문인지 연기가 그닥 거슬리진 않았다. 그럭저럭 합격점. 캐릭터가 못생기고 흉물스럽지 않은것은 아쉽지만, 뭐 스토리에 영향을 줄만한 것은 아니니까. 이건 그냥 내 오기고.
  당연히 더스틴 호프만과 알란 릭맨의 연기는 좋았다. 향수 제조업자 주세페 발디니로 분한 더스틴 호프만은 다소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화장과 살짝 방정맞으면서도 어깨에 힘들어간 듯한 연기로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원작의 발디니는 이렇지 않았지만, 뭐 마냥 귀여워서...
  안토인 리치스역의 알란 릭맨은 그야말로 딸바보 아버지 그 자체. 딸의 죽음을 확인하고 무너져내리는 장면에서는, 아 역시 알란 릭맨이구나. 싶었다.
  로라 리치스역의 레이첼 허드-우드야 그렇게 비중있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냥 얼굴이 예쁜 누구였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마지막 운명의 향수를 시험하는 그 장면에서, 진지하게 손수건을 흔들어대는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를 보며, 나는 왠지 300의 크세르크세스 생각나서 막 웃었다. 그리고 정말 마지막 부분, 나는 살갖이 찢어지고 살점을 줏어먹는 사람들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미끈하게 넘겨버리더라. 뼈다귀 하나도 안남다니.

  근데 어째서 이게 15금이냐. 영등위는 나름 기준을 완화해가고 있는 것인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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