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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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박형서 (문학과지성사,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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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누네 집에 있길래 빌려온 책. 이전에 추천받았었는데 그 때 당장 사진 않았고 나중에 읽어야지 생각했었다. 지누 책에서 발견하고 첫장을 넘겼는데, 느낌이 아주 좋아서 바로 빌려옴. 그래도 그 때 몇 장을 넘길 때만 해도 이 소설의 배경이 태국인 지 몰랐다. 그냥 신기한 외국 이름이 나오기에, 어, 외국인들이 주인공인 이야기인가? 싶었다. 사실 모든 것을 지켜보고 또한 겪어내는 인물인 '레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국인이긴 한데, 그보다는 태국의 홍등가 '소이 식스틴'에 얽힌 삶의 이야기들이라고 하는게 옳겠다. 태국 홍등가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자세해서 처음에는 아니 대체 이걸 어떻게 자료조사했지 싶었을 정도. 그 곳에 가서 살기도 했다는데 그래도 참 세세하다.

  '새벽의 나나'에서의 이야기의 진행은 꼭 현재에 국한되어 있지 안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더 치중해 있다. 보면 꼭 삶의 연대기 같은 느낌이 드는데, 작가가 소이 식스틴을 대표하는 인물인 '지아-플로이-라노' 로 이어지는 연대기를 상상했다가 플로이의 시대를 쓴 것이라고. 지아와 라오의 이야기도 나오긴 하는데 비중이 엄청나게 크지는 않다.

  이야기엔 적절히 환상이 가미되어 있다. 그게 너무 자연스레 녹아있어서 실제와 환상의 경계가 간혹 흐트러진다. 환상조차 실제같다. 죽어버린 솜의 영혼이 자꾸 출몰하여 사람들과 이야기 하는 것, 그의 남편인 샨이 식물인간이 되어 금요일에만 깨어나는 것, 우웨의 몸집, 아잇의 죽음 묘사... 모든 것들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것 마냥 그려졌다. '소이 식스틴'에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말하고 있는 삶의 진실성은 전혀 흐트러지지 않고, 오히려 강조되는 느낌을 주어서 신기했다.

  아프리카로 떠나던 중이었던 한국인 청년 '레오'가 태국에 잠시 들렀다가, 소이 식스틴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플로이'를 만나게 되고, 이를 통해 독자는 소이 식스틴 내부의 삶을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레오는 소이 식스틴에서의 이방인이었기에 그들 중 일부가 될 수 없고, 그런 레오의 시선을 겪게 되는 독자 또한 그들을 이해한다기 보다 관찰하게 되는 것 같았다. 물론 레오 1인칭은 아니었지만 진행이 대체적으로 그랬다.

  소이 식스틴과 엮인 삶은 결코 아름답고 행복하지 못하다. 잠시 거쳐가는 여행자들만이 행복을 잡았다 갈 뿐이다. 레오는 '반' 여행자 였기 때문에 적절한 불행을 가졌고, 또 그만큼 그걸 쉽게 떨쳐낼 수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 당당한 플로이조차도 불행했다. 그녀가 가진 건 약간의 자존심과 알량한 숭배의 시선 뿐 실제로 가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본다. 늙은이 욘도 그랬고, 임신한 채 죽어간 까이도 불행했다. 그나마 자유로워 보였던 리싸는 너그러운 남편 마코와 함께 소이 식스틴을 떠나갔지만 교통사고로 죽어버렸다. 딸의 죽음을 자초해 무거운 몸으로 소이 식스틴에 눌러앉게 된 독일인 우웨, 진실된 사랑을 원했지만 스스로 그것을 잘못 판단하여 떠나보내고 섹스돌이 되어버린 콴, 콴을 사랑했지만 그녀에게 어울리는 방식의 사랑을 알지 못했던 에릭,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아이들을 먹여 살리기위해 살다가 식물인간이 된 샨, 죽어서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던 솜. 플로이를 너무나 사랑했던 스웨덴인 유하 교수. 이태리 남자의 말을 믿고 성전환 수술을 했지만 버려진 수진, 소이 식스틴의 사람에게 가끔은 경멸받는 까터이 나왈렛. 모두가 불행한 줄 모르고 불행했다. 소이 식스틴의 삶이란. 그 처절함이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일상으로 다가와 읽힌다는 게 슬퍼지더라.

  레오가 그렇게 미친듯이 사랑했지만 얻지 못했던 게 플로이. 아직도 플로이의 속을 잘은 모르겠는데, 자존심이 가장 크게 얽힌 문제가 아닌가 뭐 그렇게 짐작해 본다. 그리고 레오의 방식은 정말로 멍청했다. 플로이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레오가 실질적으로 플로이에게 해줄 수 있었던 건 알량한 돈 몇푼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믿음도 주지 못하는 남자가 비위를 거슬리게 했으니까. 행복한 전생 이야기는 비참한 현실을 더 드러내줄 뿐이다. 게다가 레오는 여행자였다. 언젠가는 떠나갈. 소이 식스틴의 창녀들은, 특히나 플로이는 그런 남자를 사랑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으니까. 그래서일까... 일상에서 벌어지는 그냥 사고 같았던 플로이의 죽음은 너무나 플로이 답더라.

  지아의 시대가 지나고, 이제 플로이의 시대도 갔고, 새롭게 라노의 시대가 오겠지만. 이미 많이 변해린 소이 식스틴의 안에서 라노가 어떻게 그녀의 시대를 알아갈지 궁금해졌다. 읽을 수 있으며 좋겠지만, 글쎄.

  레오는 우웨가 했던 말을 되씹어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말한 건 아무래도 실수였다. 그 자신은 우웨와 너무나도 달랐다. 저에게 여행인 것이 우웨한테는 유배였다. 저에게 가볍게 흘러가는 풍경인 것이 우웨한테는 생존의 엄숙한 배경이었다. 자신은 날렵하며 자유롭고, 우웨는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인간으로 그 거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토록 다른데 무슨 수로 이해한단 말인가? 인간은 그 자체로서 각각 하나의 우주다. 같은 태양계라 해서 화성이 지구를 이해할 수는 없다.
  이해가 아니었다. 레오가 소이 식스틴에서 그간 줄기차게 해온 작업은 이해가 아니라 해석이었다. 만약에 멋대로 남을 해석하는 대신 고스란히 상대에게 이입된다면, 저말로 이해한다면, 거기에는 사랑도 증오도 끼어들 틈이 없다. 상대의 즐거움과 아픔을 동시에 느끼며 상대와 동일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그건 사람한테는 불가능한 일이다. 우웨가 한 말은 그런 의미였다.

박형서, 『새벽의 나나』, 문학과지성사, 2001, p.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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