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감독 나홍진 (2007 / 한국)
출연 김윤석,하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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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가 보고 싶어서 룸메랑 보았는데... 하정우를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응? 이게 아니고 그 정도로 연기 잘했다. 진짜 보면서 아오; 저 자식을 그냥! 이러면서 봄.

  각본이 진짜 흥미로웠다. 살인자를 잡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잡은 살인자에게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고 그걸 어떻게 완전히 잡느냐에 가까웠다. 모든 패를 앞에 다 보여주고 내 앞에서 이리저리 섞어대는데 야 이거 재밌더라. 머리 쓴 시나리오라서 마음에 들었다. 그걸 표현하는 방식도 촌스럽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영화였다. 경찰들에 대한 묘사가 현실성 있으면서도 너무 지나칠 정도로 몰고가지 않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건 흠도 안 된다. 미행하는 장면만 없었으면 100점 만점에 100점. 미행 때문에 99점 정도...

  관객에게 완벽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주진 않는 것이 아무래도 미진(서영희)때문이긴 한데, 또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맨 마지막에 가서 엄중호(김윤석)가 지영민(하정우)을 마침내 잡았을 때의 느낌이 더 살아났다. 슬로우 모션이 들어가는 장면 두 번이 모두 쓰라렸다. 수퍼마켓에서 현장을 발견했을 때 달려드는 중호의 모습과, 맨 마지막에 지영민을 망치로 내려칠까 말까 고민하던 그 찰나에 경찰들의 제지로 실패하는 모습. 두 씬 모두 슬로우 모션이 쓰였는데 이상하게 내 손안에 움켜쥐어 있던 긴장마저 슬로우 모션으로 꾹꾹 눌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캐릭터들을 다루는 방식이 좋았다. 특히 지영민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에는 호감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게, 이렇게 현실적인 싸이코패스 살인마 역할은 또 오래간만에 보았다. 다른 곳에서 많이 나오는 '탁월한' 싸이코패스들을 볼 땐 다소 연극적이다 싶은 경우가 많았는데 이 살인마는 찌질한 그 일면까지도 참 현실적이더라. 웃다가 울다가 찌질했다가 냉혹해졌다가 이게 반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감탄만. 엄중호 캐릭터는 아무래도 내가 시선을 따라가게 되는 캐릭터인데 선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양심을 내팽겨쳐버리지도 않은 그런 적당한 속물, 특히 미진의 딸 은지(김유정)이 등장하면서 더 깊어진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묘사들이 마음에 들었다. 영민을 미친듯이 쫓을 때야 발휘되기 시작하는 숨겨져있던 형사의 감들도 좋았고.

  연기는 그냥 말할 필요가 없네요. 다들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 하정우는 진짜... 이렇게 연기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연기 잘하더라. 그렇게 이해가능한 캐릭터도 아니었을텐데 어쩜 이렇게 연기하나... 싶을 정도로 잘했다. 김윤석이야 언급할 필요가 있나... 서영희도 미진이 잡혀있을 때 묘사에서 나까지 소름끼치도록 연기 잘 했고, 다른 조연들도 좋았다. 오 형사 역의 박효주만 약간 아쉬웠는데... 왜 그렇게 느껴지나 모르겠다. 그 미행 연기 때문인가...

  무조건적인 해피 엔딩을 보여주는 영화도 아니었고 사실적인 묘사로 가득한 영화였는데 그 때문에 더 긴박하고, 더 슬펐다. 재밌었다.
2010/08/13 - 완득이 / 김려령 (창비, 2008)



완득이
감독 이한 (2011 / 한국)
출연 김윤석,유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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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다 보니 룸메랑 보았다. 원작을 좋아해서 보고 싶긴 했는데 이거 개봉일이 나 출국일이었나ㅋㅋㅋㅋ 그랬었음. 그래도 어떻게 보게 되네. 한국 영화 되게 오래간만에 보았다 싶다. 한국영화 싫어하는 거 아니고 오히려 좋아할 땐 몹시 좋아하고, 보고 싶어하는 것들도 꽤 많은데 이상하게 막상 보려 하면 한국 영화 피하게 된다. 왜 그런지 모르겠네.

  보고 난 느낌은 원작의 멀끔한 각색이라는 느낌이었다. 일인칭이었던 소설을 어떤 식으로 그려나가려나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원작 느낌이 더 많이 나서 좋았다. 일인칭이 가져다주는 사춘기 소년의 틱틱대는 말투가 크게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꽤 재미있지 않은가. 도완득(유아인)이라는 캐릭터는 영화 속에서는 좀 더 수줍고 청순한 느낌이 났지만 여전히 완득이었다. 개구지고 까불까불한 면도 강한 그런 십대 소년. 동주(김윤석)는 책보다 더 진짜 선생님같은 느낌이었다. 찾으려면 또 흔히 찾을 수 있는 고등학교 선생님인데, 동주라는 캐릭터의 가벼움과 진지한 면모를 둘 다 잘 섞어놓은 그런 모습이었다.

  스토리 진행 자체는 글쎄, 내가 원작을 봐서 그런가 신기할 거 하나 없었지만서도 이것 저것 뒤섞여진 이야기들을 하나로 잘 모아놓아서 좋던데. 완급이 괜찮은 드라마 한편을 본 기분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거 무거운 소재일 수도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을 허투르지 않게, 그러나 가벼운 모습으로 그려주어 좋았다. 때로는 이런 것들을 무겁지 않은 시선으로 보아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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