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는 인간에게 완벽함을 요구한다. 실제로 완벽이라는 건 모든 상황이 빈틈없이 맞아떨어져야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어느 한 가지 특출한 능력을 요구하기 보다는, 이것저것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을 원한다. 모든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도 아닌, 모든 분야에 뛰어난 사람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모든 일에 있어서 완벽할 수 있을까? 지켜질 수 없는 명제와 그 간극을 메워보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딜레마는 발생한다.

  서유미의 「저건 사람도 아니다」는 이런 딜레마에 빠진 현대인들의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싱글 맘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주인공은 완벽해야 한다. 밤늦게까지 회식을 하고 난 다음날에도 멀끔한 모습을 다음 날 직장에 나타나야 하고, 회식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의 숙제는 꼭 도와주어야 한다. 이러한 갈등 상황은 현대 여성 모두가 가지고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주인공은 두 역할 중 어느 한 역할도 제대로 해 낼 수가 없다. 그것은 그녀의 능력이 부족해서 라기 보다는 사회가 제시하는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갈등 상황은 해결 방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다.

  완벽한 직장인, 완벽한 어머니 안에서 갈등하던 주인공은 그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하나의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이양하기에 이른다. 여러 명의 파출부를 전전한 끝에 그녀가 도달한 타협점은 ‘트윈 사이보그’라는 가상의 존재이다. 이는 소설적 허구이다. 현실 상황과 맞닿아 있는 실제적 문제를 소설 안에서 허구적 존재를 통해 해결하려 드는 모습은, 우리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상황이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던져주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이 트윈 사이보그라는 존재는 실제의 주인공과 같은 모습을 한 존재이다. 나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완벽할 수 있다면, 나라는 존재의 필요성은 어디로 사라지는가? 여기에선 현실을 사는 현대인들의 딜레마와 그에 의해 흔들리는 정체성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현실적 문제를 다루는 비현실적 해결방법이라는 것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건 소설 안에서는 이러한 허구적 대상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려 한다. 이러한 해결 방법은 소설 내에서 어찌되었건 잘 통한다. 주인공과 닮은 트윈 사이보그의 존재를 주변 사람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며, 트윈 사이보그는 주인공의 갈등 상황을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주인공은 더 이상 육아 문제로, 지친 다음 날의 출근 문제로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완벽함의 고삐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 주인공에게는 새로운 딜레마가 등장한다. 너무나 완벽한 자신의 대체품에 의해 자신의 진짜 존재까지 대체되는 상실감을 겪게 되는 것이다.

  트윈 사이보그는 아이를 완벽하게 잘 돌보고, 회사 일을 완벽하게 잘 해내며, 심지어 헤어진 전남편을 상대할 때에도 완벽하게 행동한다. 오히려 주인공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려 할 때 그녀는 최근까지의 완벽을 이유로 비난을 받는다. 직장 동료인 ‘구’나 ‘홍’은 물론이요, 자신의 아이까지도 그녀를 비난하게 되는 것이다. 집안에서도 회사에서도 반복되는 이러한 패턴의 반복은 결국 그녀가 설 자리를 완벽하게 잃게 만든다. 그녀는 어디에서도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다. 소설 안에서 그녀를 증명하는 모든 것은 고작 완벽한 행동들뿐이다. 그녀의 성격이나 인간성 들은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주인공이 느낄 허전함과 허무함으로 나타난다. 이 쯤 되면 그녀는 트윈 사이보그의 사용을 중단하고 본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갈 법도 하다.

  그러나 주인공은 그런 선택을 하지 못한다. 사회는 여전히 그녀에게 완벽함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와 홍을 보며 ‘저건 사람도 아니다’라고 끼적거리던 주인공은, 사실 사람이 아닌 트윈 사이보그를 통해 차지할 수 있었던 인간답지 못한 위치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완벽함에 길들여진 주인공은, 자신 또한 그 완벽한 모습을 포기하지 못한다. 비록 그것이 껍데기이고 본연의 자신이 아닐 지라도 그녀는 더 이상 완벽하지 못한 자신을 드러낼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인이 만들어낸 사회 전반적인 딜레마 자체가 개인의 심리 안에 틀어박힌 현실을 말하고 있으며 또한 이 딜레마들이 어떻게 보면 개인의 욕심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 반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홍’의 등장은 다소의 웃음과 함께 미적지근한 감정을 전달한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완벽함의 요구가 비단 주인공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그 완벽했던 ‘홍’ 또한 사이보그였다는 것을 통해 진실한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건 사람도 아니다」는 허구적인 존재를 통해 굉장히 현실적인 문제들을 말하고 있다. 무한 경쟁에 휩싸인 사람들, 자신을 몰아세워서라도 완벽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우리는 완벽을 추구해 왔다. 하지만 진실한 완벽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완벽을 위해 자아가 손상을 입어야 한다면 그것이 진짜 완벽한 완벽이라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나를 휘감아왔다.

  소설 안에서도 현실에서도 진실한 의미의 완벽이란 찾기 힘들다. 소설 안에서 완벽의 모습을 오벼주는 트윈 사이보그는 결국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 인간은 그 도구만큼 완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하물며 진짜 현실에서는 그런 도구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완벽을 추구하며 한없이 스스로와 남들을 재고 따지며 상처 입힌다. 이것은 일종의 가학적이고도 피학적인 모습으로 내게 다가온다. 어쩌면 완벽함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인간은 그 완벽을 쫒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에서 말하듯 이런 완벽은 추구는 자칫하면 인간 자아의 상실까지 초래할 수 있는 듯하다. 적절한 선에서 현실의 완벽 요구에서 타협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혹은 우리 사회 전반에 깔린 의식을 변화시키던가. 둘 중 어느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다.

텍스트 - 서유미, 「저건 사람도 아니다」, 『창작과 비평 2009.봄』, 창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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