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스미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세라 워터스 (열린책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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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기무니에게 빌려서 읽은 세라 워터스의 소설. 벨벳 애무하기에 이은 레즈비언 3부작 중 하나인데, 나머지 한 권은 언제 발매가 될지 모르겠다. 좀 됐으면 좋겠는데요...

  일반 사람들에게 레즈비언 문학을 추천하라면 벨벳 애무하기 보다는 이 소설을 추천할 것 같다. 벨벳 애무하기 쪽이 연애담으로서 훨씬 더 재미있었지만 아무래도 좀 강렬하니까. 가볍게 이 소설로 시작해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다고 소설이 가볍다는 소리는 아님. 1부 끝나고 나오는 반전에서 너무 놀라서 문자했을 정도니까. 2부 시작에 등장하는 모든 사건의 전말인 인물에 대해서는 정말 충격받았었고... 굳이 레즈비언 소설이 아니더라도 미스터리 소설로서도 좋았다.

  핑거스미스는 도둑을 뜻하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은어. 교수형을 당해 죽은 어머니를 가진 핑거스미스 수전은 석스비 부인의 손에서 자라난다. 석스비 부인은 자기가 맡고 있던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수전을 정성들여 키우고, 수전 또한 런던의 빈민가에서 자란 거 같지 않은 순수함을 간직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수전의 앞에 젠틀먼이 나타난다. 젠틀먼은 번듯한 사기꾼으로 종종 석스비 부인의 집에 들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결혼을 해야만 재산을 받을 수 있는 부잣집 딸 모드 릴리를 꼬셔서 재산을 가로채는 일을 하려 한다. 그리고 이 계획에 수를 필요로 하며, 수는 석스비 부인에게 한몫을 안겨주기 위해 이 계획에 동참하게 된다.

  그렇게 모드의 집에 가게 된 수는 연약하고 지켜줘야 할 대상인 모드를 맞이하고, 그녀와 수족처럼 붙어있으며 점점 공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이후 모드를 정신병원에 집어넣는 길까지 이어지는 둘 사이의 고뇌는 참 볼만했음. 삼촌의 손에서 억눌리며 자란 모드의 속이 드러나는 2부 이후로는 회상의 느낌이 강했었다. 교차편집이 되었다면 더 보기 편했겠다만, 1부 마지막의 반전을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듯. 2부에도 나름의 반전이 있는데 1부의 그것이 너무 격심해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수는 석스비 부인의 보호탓인지 주변 환경에 비해 머리를 못쓰는 느낌이 있었다. 독한 느낌도 그렇게 크지는 않고, 나쁜 짓을 좀 할 수는 있어도 속 마음까지 악한은 아닌 느낌. 모드는 반대로 겉으로 보기엔 한없이 연약하지만 강단이 있어보였고. 다만 갈수록 그 강단이라는 게 사라져가는 모습이라 보기 아쉬웠다. 똑똑한데, 세상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는 헛똑똑이였던지라 어쩔 수 없었다.

  수와 모드를 빼면 젠틀먼과 석스비 부인이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조연인데, 난 젠틀먼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번듯한 악역은 정말 좋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가리지 않으면서 자기를 번듯하게 꾸밀 줄 알고, 또 어느 정도의 예의도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곁에 있으면 얄밉겠지만 보는 재미가 있는 악역. 석스비 부인은 마음에 안들었던게 이리저리 선악 사이에 걸쳐있는 느낌이 있어서. 차라리 끝까지 일관되었다면 좋았을텐데 싶었다.

  총 3부로 나뉘어 있지만 1부 끝날때 까지가 가장 재미있었고, 뒤로 갈수록 그 재미가 감소하는 느낌이 드는 게 아쉬웠다. 특히 갈등의 해결파트가 좀 약하지 않았나 싶다. 모드와 수가 오해를 푸는 과정이 좀 이해가 덜 되더라... 드러나는 인물 중 누구를 봐도 하고 싶은 말은 그러게 사람은 정직이 중요한 거예요. 정도...?

  재미는 벨벳 애무하기 쪽이 더 있긴 한데, 이 책도 충분히 재미있었다.
벨벳애무하기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세라 워터스 (열린책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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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무니에게 빌려서 읽기 시작. 처음에는 약간 시큰둥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겼는데 (역사소설이 재미있을까?) 와... 1장 읽으면서 가슴 터지는 줄 알았다. 난 내용 하나도 모르고 보기 시작했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이건 낸시 애슬리의 레즈비언으로서의 성장기. 그렇지만 인간으로서의 성장기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낸시 자체가 소설 끝날즈음엔 꽤 철이 들어있다. 일단 얼굴만 밝히지 않아요... 아무튼 끝까지도 꽤, 아니 사실 엄청 재미있었다.

  1장, 2장, 3장으로 나뉘어서 낸시의 인생이 얼마나 널뛰며 변화하는지 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1장이 제일 재밌긴 했다. 로맨스 소설 읽는 기분이었다. 레즈비언판 로맨스 소설... 심지어 잘 쓴. 남장 가수였던 키티 버틀러에게 한 눈에 반해 그녀를 쫓고,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기까지의 장면은 진짜 여느 로맨스 소설 뺨치는 긴장의 연속. 이게 낸시의 시점이다 보니까 감정이 절절하게 전해들어와서 또 좋더라. 촌뜨기 소녀였던 낸시가 사랑때문에 런던에 가며 인생이 확 바뀌어나간다.

  다이애나를 만나기 전 까지 낸시의 삶은 그다지 풍요롭지 않았고 어찌 보면 비참하기 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낸시에게 완벽한 풍요와 향락을 가져다 준 다이애나를 만난 뒤의 일이 썩 즐겁게 보이지만도 않았다. 돈 많은 과부의 애인이 된 낸시의 모습은 완벽한 애완동물이었다. 예쁨받지만 자신의 의견을 낼 수도, 존중받을 수도 없었다. 화를 낸다 치더라도 한낯 어린애의 화처럼 치부됐을 뿐이지. 제나와 그렇게 사고를 친 게 잘했다는 말하려는 건 아니다. 애초에 낸시 자체가 썩 도덕적이지 않은데다 캐릭터가 철 없을 나이의, 철 없는 애인지라 좀 열받게 하는 구석이 간간히 있긴 했다. 그래도 그렇게 된 데에는 다이애나의 탓이 절반은 넘는다고 생각. 뭐 낸시를 옹호하고 싶은 마음이 없긴한데, 이 부분은 그랬다.

  플로렌스를 만난 뒤 낸시는 레즈비언으로서, 또 인간으로서 완성된다. 그렇게나 철없던 그녀가 처음에는 살려고 발버둥치고, 플로렌스의 집에 들어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마치 탕아가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더라. 처음엔 플로렌스의 캐릭터 역시 썩 마음에 들진 않았는데(아 죽은 사람 붙잡고 살다니 이게 무슨 말이요), 갈수록 좋아졌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만큼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질투하는 모습도 나름 귀여웠고... 둘 사이 연애가 크게 꼬이지 않아서 다행. 서로 솔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겠지.

  난 굉장히 재미있게 봤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추천하기 난감할 것 같다. 앞서 말했듯 생각보다 자세하게 묘사되어서. 퀴어문화에 조금 열려있지 않으면 난관일 듯. 그걸 감당할 사람에게라면 추천. 너무너무너무 재밌다. 핑거스미스도 완전 기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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