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 줄리아
감독 이스트반 자보 (2004 / 캐나다, 영국, 헝가리, 미국)
출연 아네트 베닝, 제레미 아이언스, 브루스 그린우드, 미리엄 마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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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포스터 영화랑 별로 연관 없는데 왜 저렇게 해 놨는지 모르겠다. 이 영화 출연진 중 그나마 이름있는 배우인 제레미를 강조하려고 했던걸까... 하긴 이런식의 상관없는 포스터 만들기는 이미 몇번이나 보긴 했다만. 그래도 안 짚고 넘어가기엔 아쉽다.

  정말이지 연기같은 삶을 살고 있는 배우 줄리아 램버트(아네트 베닝)의 이야기. 전체 진행 방식도 다분히 연극적이고 영화적이고 그렇다. 중간 중간 줄리아를 배우로 키워준 지미(마이클 갬볼)가 환상처럼 출연하고 그러니까.

  사십대에 접어든 연극 배우 줄리아에겐 일상이 지루하다. 남편 마이클(제레미 아이언스)과는 서로를 자유롭게 풀어주는 사이이고, 연기에는 탁월한 재능이 있지만 지치고 힘들 때가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줄리아는 젊은 미국인 청년 톰(숀 에반스), 티.오.엠, 을 만나서 장난스러우면서도 불꽃같은 연애를 하게 된다. 이런 불륜은 아슬아슬한 모습은 거의 없이 자유분방하게 그려져서 보는 사람들도 산뜻한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뭐 이런 연애의 끝이 으레 그렇듯 톰은 젊은 연극 배우 애비스 크라이튼(루시 펀치)에게 빠져 줄리아를 떠나게 되고, 줄리아 또한 질척이는 것 없이 관계를 끝내준다. 상처를 받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새 연극에 배역을 얻길 원하는 애비스 크라이튼과, 또한 그것을 바라고 있는 톰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준다. ...여기에서 끝났으면 이건 줄리아의 이야기가 아니지.

  줄리아는 싱그럽고 살아있는 캐릭터다. 이 배우는 자신의 삶에서도 연극적인 태도를 취하고있고, 그 때문인지 몰라도 그녀의 삶까지도 다분히 연극적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아들 로저(톰 스터리지)까지도 줄리아에게 줄리아의 삶과 연기가 너무 합쳐져 있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을 정도니까... 어쨌거나 줄리아는 사랑을 할 때는 생동감이 넘치고, 슬플 때엔 비 맞은 짚단마냥 축 처지고 그런 왔다갔다 하는 감정표현을 자유로이 보여줘 지루할 새가 없었다.

  이야기 자체는 어떻게 보면 뻔한 구석이 있지만 줄리아란 캐릭터가 워낙에 살아있다 보니 영화까지 힘을 얻는 거 같았다. 어떻게 보면 천방지축에 거만하고 가끔은 재수없기까지 한 배우인데, 이렇게 귀여워 보일 수 있다니. 영화 내에서도 그런 줄리아의 캐릭터가 매력이 있기는 한지, 찰스(브루스 그린우드)같은 진정한 친구도 있고, 틱틱대면서도 자기를 도와주는 이비(줄리엣 스티븐슨)도 주변에 있다. 부러운 여자로다... 

  애비스 크라이튼에 대한 깜찍한 복수는 그저 마냥 귀여웠다. 그 복수를 할 때 마이클과 톰의 표정이 볼만하다. 비.이.엔.을 외치던 줄리아가 너무 귀여웠다. 톰 못나가게 은근히 막는 로저도 완전 귀여웠고... 이 아들 캐릭터 꽤 마음에 들었다. 비중이 큰 건 아닌데 뭐 생각깊고 그런 역할이었다. 저런 부모 사이에서 이렇게 정상적이고 훈훈하게 자랄 수 있다니... 정말 줄리아는 모든 걸 다 가졌구나.

  그냥저냥 유쾌했다. 커다란 의미를 찾으라면 뭐 그런 건 없는데... 소소하게 보면서 재미있었던 영화였다.

보이 A
감독 존 크로울리 (2007 / 영국)
출연 앤드류 가필드, 피터 뮬란, 알피 오웬, 케이티 라이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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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보고싶어져서 동생이랑 같이 봤는데 막판에 펑펑 울었다. 너무 안쓰럽고 불쌍하고 슬펐다. 사회가 과거에 악행을 저지른 개인을 얼만큼 포용하고 받아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쓰리게 다가왔다. 10살에 친구와 저지른 살인사건으로 14년을 복역하고 막 사회에 복귀하게 된 청년 잭 버리지(앤드류 가필드)가 보호감찰원인 테리(피터 뮬란)의 도움을 받아 사회로 복귀하고, 또 그 사회에서 버림받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 그러나 이런 단순한 사건의 라인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기에는 아쉽다.

  영화에서는 잭의 사정을 보여준다. 왕따였고, 가정에서도 발붙일 틈이 없었던 외로웠던 소년 에릭(알피 오웬)곧 지금의 잭이기도 한 소년은, 비슷한 처지의 친구 필립(테일러 도허티)을 만나면서 제 삶의 희망을 얻는다. 아이들에게는 정당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옳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입장에서는 그들의 세상을 이해하게 만들어, 이해시키려 한다. 이런 부분에선 일본 영화 '아무도 모른다'가 생각났다. 왜냐하면 흉악했던 범죄를 미화하는 정당화하거나 혹은 미화하는 기능을 인물들의 과거사를 통해 부여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이런 과거사는 부가적인 이야기일 뿐, 결코 이 영화의 주요한 포인트가 될 수 없다. 이 영화는 결국은 용서와 편견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과거가 밝혀지기 전까지 크리스(숀 에반스)라는 괜찮은 친구를 사귀고, 미쉘(케이티 라이온스)이라는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얻고, 교통사고를 당한 여자아이를 구해내 사회의 훌륭한 일원이 될 수 있었던 잭은 소년 A였던 사실이 밝혀지는 것과 동시에 그가 가졌던 모든 지위를 박탈당한다. 현재의 훌륭한 사회의 일원은 과거의 잘못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잃는다.

   교도소가 범죄자들을 한 데 모아놓고 '반성과 사회에로의 재활'의 기회를 부여하는가? 비슷한 생각을 이전에 드라마 '오즈'를 보았을 때에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교도소에서 재활의 기회를 얻기보다는 새로운 범죄에 눈을 뜨게 된다. 범죄자를 드글드글하니 모아놓고 교육은 허술하게, 관리 또한 허술하게 하니 그럴 수밖에 없다. 시스템이 그들을 재활시키기에 역부족한데, 사회에 나와서는 사람들의 냉정한 편견을 맞닥드려야한다. 죄값을 교도소 안에서 치뤘음에도, 사람들은 그를 여전히 범죄자로 본다. 여기엔 그 사람이 가진 과거 행동의 과정은 드러나지 않으며, 오로지 서류에 적힌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다. 때문에 교도소는 재활의 기회는 커녕 오히려 낙인을 찍어버리는 결과를 낳고, 그들은 다시 교도소로 되돌아가기 일쑤이다.

  모든 것이 드러났을 때 패닉에 빠진 잭은 외친다. "아냐! 난 예전의 그 소년이 아냐!" 라고. 그러나 이 말은 진실이 될 수 없다. 아무리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마음을 먹었어도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는 예전의 그 소년이니까. 그런데 이게 참 모순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결과만을 본다. '잭은 이전에 살인을 저질렀다' 이런 결과다. 그런데 잭의 현재 결과를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가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고, 얼마나 선량하게 굴고 있는지 그 결과는 보지 않는다. 오직 나쁜 결과만을 묻고 책한다. 잭을 꾸준히 지켜보고 그에게 기회를 부여했던 테리는, 아들인 젭(제임스 영)이 "그 애는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고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 뭘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잖아? 걔의 현재가 말야. 과거는 무의미하고.

  죄값을 다 치룬 사람을 우리는 용서해야 한다. 우리는 그 사람이 일을 저질렀던 결과를 중시하면서 현재의 결과는 중시하지 않는 이상한 모순에 휩싸여있다. 이것이 우리가 가진 편견이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사실 이겨내긴 힘들다.

  이 영화는 사람들을 속이고 있다. 서글프고 수더분한 표정의 연기자를 앞세워,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무시무시한 살인자를 두고 그에게는 사정이 있었다. 그는 벌을 받을만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기만적이라고 말하기에는 참 힘들다. 왜냐하면 이런 설득을 들어도, 결국 우리는 똑같이 행동할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는 있다.

  참, 앤드류 가필드라는 배우를 여기에서 처음 봤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연기를 잘했다. 그 수더분한 행동들이 모두 연기라면 그것 또한 놀라운 일이다.


잭 버리지 씨께

절 구해주셔서 감사해요.
(그림의) 이건 당신의 칼이에요.
(그림의) 이건 당신의 날개예요.
난 당신이 천사라고 생각했어요.

캐서린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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