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2 - 잉베를 사랑한 남자 (Mannen Som Elsket Yngve: The Man Who Loved Ynge, 2008)


  본지 일주일 되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일단 써보자. 한국에 개봉한 건 아니고... 잉베를 사랑한 남자의 주인공 '얄레 크렙'이 8년 뒤에 겪는 이야기. 철딱서니 없던 열일곱의 소년은 스물 다섯의 대학생이 되어 있다. 배경은 1997년. 스물 다섯 대학생이 된 얄레는 이상하게 잉베를 사랑한 남자 때보다 더 철이 없는 느낌이다. 그나마 그 땐 십대 소년이기라도 했지, 지금은 스물 다섯인 대학생인 주제에 철이 없다! 와 이거 속터진다고. 물론 이 시리즈가 얄레 크렙의 성장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전편을 본 사람으로서 스무살이 넘도록 이러고 있는 얄레를 보면 속터질 수 밖에. 게다가 잉베는 나오지도 않아... 엉엉 야 너 잉베 그꼴로 만들고 넌 이러고 살기냐ㅠㅠ

  그래 뭐 젤 친한 친구가 죽어도 굴러가는게 인생이더라, 해서 여튼 얄레의 이번 고난은 이렇다. 여자친구 하디스(잉그리드 볼세 베르달)와도 잘 지내고, 대학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에 대한 졸업논문을 쓰며 보내고 있는 얄레. 평화로이 잘 살고 있는 얄레에게 열일곱 당시에 파티에서 딱 한번 잤던 여자애 아넷(마테 아세스)에게서 편지가 온다. 난 너무 지쳐서 휴가가 필요한데, 내 딸을 맡아줄 사람이 없다. 근데 그 딸은 사실 네 딸이기도 하더라. 그러니 일주일간 맡아달라... 황당해 죽겠는데 유전자 검사를 해봐도 내 딸이 맞대. 기가 막힌 일이긴 한데 이 때 얄레의 거부 반응이 어찌나 심한지 쥐어박고 싶을 정도.

  어쨌든 애 엄마가 애를 혼자 얄레에게 보내고 휴가를 떠나버린 탓에 얄레는 울며 겨자먹기로 샬롯 이자벨, 약칭 로테(아미나 엘레오노라 벨그렘)을 떠맡는다. 혼자서 얄레가 사는 곳에 도착한 로테는 딱 고나이 또래의 아기 아가씨. 처음 보는 아빠가 낯설기도 하고, 낯선 장소에 적응하려 애쓰는 그런 애기다. 처음엔 그나마 얄레와 잘 지내나 했었는데 이런 스토리가 그러저러하듯이 사건이 생긴다. 그것도 제법 평범한 사건. 얄레는 여자친구에게 차였다고 애를 옆집 여자에게 맡겨놓고 놀다가 술이 떡이 되어 오고, 그런 옆집 여자에게 책임감 문제로 뺨을 맞고, 로테는 실망하고, 얄레는 자기 논문 문제로 너무 바쁘고... 뭐 그런반복적인 실망의 서클. 그런 일들에서의 회복은 얄레의 엄마가 이야기에 진입하면서 어느정도 수습이 되는 편인데 이게 얄레 스스로 변하지 않았단 점에선 좀 실망스러웠다. 로테가 한 번 크게 폭발하였을 때에도 그걸 해결하는 건 얄레가 아닌 얄레의 엄마였다. 어떻게 사람이 한번에 변하겠느냐마는 그래도 이건 좀 내 정서에는 맞지 않았다. 로테의 생일에 맞춰 아넷이 돌아오고 아넷과 얄레가 잘 되어갈 조짐을 풍긴다. 그 뒤는 뭐 그냥 평범무난한 스토리. 사실 스토리라인 자체가 잉베를 사랑한 남자보다 평범했고, 또 그 감정을 다루는 방식들도 전편보다 더 단순해지고 재미없었다고 본다. 로테 보는 재미는 쏠쏠하였지만...

  그렇다고 뭐 마냥 재미없는 않았고 그럭저럭하게 보았음. 얄레가 가족이라는 유대감을 다루는 방식에서 좀 더 성장했다는 것과, '생각하는' 일을 하는 대학에서의 마지막 과정을 무사히 끝마치고 성장하였다는 점 두 가지가 자연스레 다루어진 것은 괜찮았다. 마지막 돌아오는 차 안에서(이런 마지막 장면의 처리는 꼭 전편과 같은 게 난 마음에 들었다.) 얄레가 훔치는 눈물은 그 두 성장 과정에서 벌어지는 성장통을 뒤늦게, 또 한번에 느낀 것 처럼 보였다.

  그래서 잉베는 진짜 이제 더 이상 안 나오는거냐... 흑흑 얄레 크렙 이야기는 또 나올 것도 같던데.


잉베를 사랑한 남자
감독 스티안 크리스티안센 (2008 / 노르웨이)
출연 롤프 크리스틴 라슨,올레 크리스토퍼 에르트보그
상세보기

  전부터 좀 보고 싶었는데 어떻게 기회가 되어서 보았다. 노르웨이 영화. 8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그 중에서도 고등학생인 얄레(롤프 크리스틴 라슨)의 성장기를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롤프 크리스틴 라슨이 83년생인데 2008년에 고등학생 연기를 했더라... 그래도 썩 잘 어울렸음.

  고 시기의 노르웨이 정세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는데 뭐 이것저것 그 때의 정서가 보여지는 것 같았다. 얄레는 가정에 깊게 뿌리가 없고, 그렇다고 공부에도 흥미가 있는 것도 아닌 애다. 친구라고는 여자친구 카트리네(아이다 엘리세 브로크)와 밴드 메이트 헬게(아르투르 베르닝), 그 외 친하지 않은 밴드 메이트 몇 밖에 없는 학생. 딱히 문제아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범생은 아니고, 홀로 아웃사이더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닌. 어떻게 보면 흔하면서 흔하지 않은 학생인데... 사실 요것 만으로도 얄레의 인생엔 꼬일 거리가 많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밋밋하지. 이 얄레의 눈 안에 전학생 잉베(올레 크리스토퍼 에트르보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거부터가 문제의 시작이다. 예쁘고 충실한 여자친구를 두고 다른 애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거지. 그것만으로도 심각한데 잉베는 남자애다.

  이 영화를 딱히 퀴어영화로 분류하고 싶지 않은게, 퀴어 쪽보다는 얄레 본인의 성장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둘이 교감하는 장면은 있지만, 그보다는 얄레가 잉베를 지켜보고 사랑을 느끼면서도 카트리네를 여전히 좋아하며 고뇌하는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잉베를 통해서 얄레의 인생은 조금씩 바뀌어나간다. 갑자기 헤어스타일을 바꾸어도 보고, 그와 테니스를 치고, 듣지도 않던 신스팝을 들어도 본다. 그와 함께 하기 위해 지친 엄마(트리네 위겐)나 밴드 멤버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그와 만나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들은 단순하지만 여파가 크다.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얄레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와 엮인 얄레 본인의 위치를 확고히 흔들어놓을 만한 일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얄레의 세계는 폭이 좁다. 여자친구와 친구 하나, 그 둘만을 잃어도 그에겐 크나큰 상실이 되어버린다. 이 때문에 얄레는 갈팡질팡 하는 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사춘기니까. 친구들이 말하듯 얄레에게는 이기적인 면이 있어서... 카트리네에게도 상처를 주고, 헬게에게도 상처를 주고, 잉베에게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크나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그렇게 남들에게 상처를 주며 얄레 자신도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얄레는 성장해 나간다.

  얄레가 파티장에서 잉베를 호모라고 몰아세우면서, 그 와중에 목덜미를 끌어안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장면이 묘하게 슬프고도 마음에 들었다. 잉베가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안쓰럽다. 다리에서 뛰어내릴 정도로 상처를 받았으니까... 죽지는 않고 요양원에 들어갔지만, 정신이 크게 상처받은 모습은 요양원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얄레에게 제대로 된 대화를 내어주지 못하고 그 이전의 일상들을 말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구름 강아지는 자기가 사라질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도... 또, 얄레가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자 그걸 끌어안으며 위로하던 잉베의 모습도. 요양원 씬은 참 씁쓰름하면서도 달콤한 구석이 있었다.

  결말은 딱히 정해진 게 없다. 얄레 앞에는 앞으로 많은 길이 놓여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는 길에 얄레는 카트리네와 헬게와 함께하던 예전을 회상한다. 얄레는 그 둘을 되찾을 수 있을까?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닐 수도 있다. 잉베와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그것도 어쩌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얄레 앞에 놓여진 길들은 얄레가 어떻게 걸어나가는가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다. 성장기 영화에 어울리는 결말이었다.

  몇가지 마음에 드는 장면들이 있었다. 잉베를 바라보는 얄레의 시선들이 담긴 장면들이 좋았다. 샤워실에서의 모습, 테니스를 칠 때의 모습. 사랑에 빠진 소년의 모습이라 좋았다. 얄레가 엄마에게 두 사람을 동시에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모습도 좋았고...

  사운드트랙을 빼먹을 수가 없다. 2CD로 나와있던데 국내에서 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 시절의 영국 밴드 음악들과 노르웨이 음악들이 섞여있는데 다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스톤 로지즈의 I wanna be adored와, 결말에 나오던 조이 디비전의 love will tear us part agian은 참 마음에 들었다. 아, 얄레와 헬게의 밴드였던 마티어스 러스트 밴드의 노래도 좋았다.

  감독의 2011년 개봉예정 영화로 난 홀로 여행한다 (Jeg reiser alene)가 있던데, 여기에 얄레의 이름이 있더라. 얄레 크렙. 역할의 이름과 성도 같고 배우도 같기에 이 영화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을까 싶다. 안타깝게도 잉베나 다른 인물들의 이름은 없었다. 롤프 크리스틴 라슨이나 다른 배우들은 그 뒤 필모가 좀 있던데, 잉베 역의 올레 크리스토퍼 에트르보그의 뒤 필모가 전혀 없어서 좀 당황했다. 혹시 관뒀나 해서... 노르웨이 위키 보니까 연극학교 들어갔다고 하는거 보면 배우고 있느라 없나보다. 다행이야...

  꽤 마음에 들었다. 괜찮은 성장 영화.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