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파카바나
감독 마르끄 피투시 (2010 / 프랑스)
출연 이자벨 위페르,롤리타 샤마
상세보기

  위드블로그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갔다 왔다. 카피 탓에 모녀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속았다. 이건 모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중년마저 지나가려 하는 엘리자베스 '바부'(이자벨 위페르)의 인생 이야기다. 바부가 갑자기 변화하려 애쓰는 데엔 딸 에스메랄다(롤리타 샤마)의 역할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모녀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카피에 뒷통수맞기는 몇번 당해봤지만 독립영화쪽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어서 좀 당황했었다.

  카피와 상반된 영화라고 해서 이 영화가 별로다 라고 말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영화는 적당히 현실과 판타지가 섞인 듯한 모습으로 가벼운 즐거움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그 점이 어떤 이에게는 좋을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는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서(나는 개연성만 있으면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도 괜찮으니까) 결말을 보고서도 아, 이건 뭐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아니고 되게 쉬운 해결방식이지만... 뭐 어울리네. 싶었다.

  이 영화는 개인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인데, 정확히는 여태까지 자유롭게만 살아왔던 바부가 세상과 마주치는 이야기이다. 바부는 가볍다. 재미가 없으면 금세 관두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폐도 많이 끼쳤다. 어떤 직장이든 금세 관뒀던 바부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딸 에스메랄다가 바부에게 자신의 결혼식에 오지 말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에스메랄다의 입장은 이렇다. 엄마의 가볍고 돌발적인 행동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속에는 결혼식 비용에 관한 것도 얽혀 있어서, 뻔히 결혼식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엄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부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그녀를 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바부는 이에 격분하여 자신도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콘도를 파는 직장을 구해 벨기에까지 떠나온다.

  놀랍게도 이런 바부의 인생은 생각보다 잘(!) 풀려나간다. 살가운 성격 탓에 가림없이 친구를 사귀어 나가고, 그 와중에 남자친구 바트(유겐 델나트)도 만나고(바부 자체는 남자친구라기보다는 섹스프렌드로 생각하는것 같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좋은 지점을 찾아 고객을 많이 유치해 승진도 하고, 직장 상사 리디(오레 아티카)의 눈에도 든다. 물론 질투를 하는 성격 안좋은 직장동료 이렌느(챈털 밴리어)도 있지만 이 정도는 우습게 넘길 수 있는 배포가 있어서 괜찮다. 자기 인생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챙길 줄도 알아서 길거리 노숙 여행자인 소피(마갸리 보크)와 커트(귀욤 고익스)에게 지나칠 정도로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이런 팔랑팔랑한 진행은 바부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면서 영화를 보면서 약간의 청량감을 느끼게 해준다. 동시에 아슬아슬한 기분도 들고.

  바부의 캐릭터는 한없이 가볍다. 본인의 가벼움 탓에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단 생각없이 민폐를 끼친다. 도서관에서 떠드는 것, 친구 파트리스(루이 레고)의 구애를 가볍게 무시하는 것, 수잔(노에미 르보브스키)에게 차를 빌린다거나, 남자친구 같은 바트의 입장은 생각치도 않고 자신의 인생 경로를 결정해 버리는 것 같은 일들. 그러나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다. 소피와 커트에게 베푸는 호의만 봐도 그렇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로운 모습이 투영되어 있긴하지만, 바부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들은 일반적인 동정을 넘어선 호의이다. 한마디로 바부의 성격은 전형적인 '애는 착해요' 타입.

  영화를 보는 나로서는 한번 스쳐지나가는 인물이지만 주변 사람의 입장에선 그럴 수가 없다. 바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딸 에스메랄다와의 충돌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딸을 무척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바부이기에 그녀는 많은 인생의 결정들을 스스로만을 위해 내려왔다. 그 때문인지 에스메랄다는 정착하고 싶어 쥐스탱(조아킴 롬바드)과의 결혼을 서두르게 된다. 그나마 십대 시절에는 서로의 시선이 맞았던 것 같지만 딸이 성장한 이후로는 그럴 수 없어진 것 같아 약간 안타깝기도 했다.

  에스메랄다가 어머니를 무조건 나쁘게 보고 있진 않다. 그렇기에 벨기에까지 어머니를 보고 오고, 또 엄마의 무심함에 화를 내고 그랬던 거겠지. 결혼식에 오지말라고 해놓고서는 바부를 염두에 둔 계획을 짜는 것도 그랬다. 바부는 참 재미있는게 연애사에 있어서는 빠삭해서 그런가 에스메랄다가 왜 화가 났는지 잘 파악해 쥐스탱에게 조언을 주는 캐릭터면서, 정작 자신과 딸 사이의 문제는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마주치지 않는 평행선이 영화 끝까지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는 하늘하늘한 감각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지나가기에, 둘 사이의 마주치는 부분만을 강조하여 행복한 여운을 남겨 준 거겠지.

  영화에 큰 사건은 없는데 긴장감이 조금은 있다. 왜냐하면 지켜보기엔 바부의 행동들이 너무나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바부 커리어의 종말은 예상된 것이었다. 언제 오느냐가 중요했을뿐. 사실 바부가 직장을 관두고 나온 돈으로 카지노에 들어갔을 땐 이 영화 정말 이렇게 끝내려는 건가 싶었는데 판타지를 마음껏 발휘하여 해피하게 돌린 건 좀 의외였다. 카지노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쓰다니! 보통이라면 질색할 전개인데 이 영화에서는 묘하게 어울렸으니 다행.

  전반적으로 다들 연기가 편안해서 좋았다.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영화를 혼자서도 잘만 이끌어나가더라. 마치 바부가 이자벨 위페르 본인인 것처럼. 딸 에스메랄다 역은 이자벨 위페르의 친딸인 롤리타 샤마가 연기했는데 비슷한 수준의 편안함을 보여줬다. 둘이 있을때 아무래도 분위기다 더 자연스러웠던 게 좋았다.

  생각했던 것 같은 모녀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바부의 진정한 행복찾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바부에게는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니까.



제노바
감독 마이클 윈터버텀 (2008 / 영국)
출연 콜린 퍼스, 윌라 홀랜드, 펄라 하니-자딘, 호프 데이비스
상세보기

  위드 블로그 시사회로 본 영화. 아트하우스 모모는 처음 가봤는데, 1, 2관만 있는 영화관 답게 딱 작은 관이더라. 그렇다고 관람하는데 불편함은 없었음.

  이 영화를 뭐라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 사고로 어머니를 잃어버린 가족이,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나름의 애를 쓰고 있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그게 확 티나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건 아니라서 처음엔 조금 답답했다. 결정적으로 엄마 매리앤(홉 데이비스)을 죽게 만든 장본인인 막내딸 메리(펄라 하디-자딘)를 빼고, 아빠인 조(콜린 퍼스)와 큰 딸 켈리(월라 홀랜드)는 상황을 꽤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니까. 물론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조는 엄마가 없어져버린 이 상황에서 가족을 이어나가려고 애쓰고 있고, 켈리는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원인을 퍼트리지 않으며 혼자 무너진다. 본인은 그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지 몰라도, 남의 시선에서 봤을 땐 별로 그렇지 않았다.

  애라서 편하다.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기실 사고의 원인 제공자인 메리는 밤에 악몽을 꾸고 환상으로 엄마를 보고 그것을 표출해가지만, 어른의 경계에 서 있는 남은 가족들은 그렇게 하질 못하니까. 켈리의 마음은 남자친구 마우로(게라르도 크루시티)의 오토바이 위에서 흔들리는 영상을 통해, 조의 마음은 메리를 찾아다니면서 보여지는 흔들리는 영상을 통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조가 느낀 그 긴박함은 이미 아내이자 아이들의 엄마를 잃은 상태에서 아이까지 잃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나타날 수 밖에없는 필사적인 모양새가 느껴져서 마음이 안좋았다.

  마지막에 메리를 위험에서 빼냄으로써 가족 모두 구원된 것일까? 학교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조의 모습은 아직은 쓸쓸하다. 엄마가 죽은 가정을 치료하기에 6개월은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들에겐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

  가족 모두가 겉으로는 평안함을 내세운 채 부스러져가고 있지만, 나는 그 안에서 가장 힘들 사람으로 켈리를 꼽고 싶다. 사춘기만으로도 버거운 성장의 기묘한 줄타기 아래 어머니를 잃었고, 동생을 위해서 비밀을 지켜야 하니까. 메리에게 중간에 네가 내 인생을 망쳤어! 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처음으로 본 켈리의 분노 표출 장면이었다. 내가 같은 상황이었다면 더 심하게 했을 것 같았다.

  조야 바바라(캐서린 키너)가 옆에서 더 잘 도와줄 것 같고... (로사(마게리타 로미오)는 좀 아니지 않나) 메리는 어쨌거나 좋은 아빠와 언니가 있으니 잘 될 거 같다.

  제노바라는 도시 이름을 사용한 영화 치고는 빤한 관광 영화처럼 도시를 보여주진 않았고, 오히려 도시 풍경에서 보이는 그 미로스러움, 빽빽함을 통해 가족들 마음을 보여주는데 그쳐 좋았다. 전반적으로 그냥 무난무난히 보았던 영화. 하지만 시종일관 어지러운 카메라워크 덕에 마지막에 가서는 어지럼증이 생겨 메스꺼울 지경이었다. 으.

  나쁘지 않았지만 크게 감동한 것도 아니었다. 마지막의 결말은 여러 사람이 허탈해 할 거 같기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감독 시드니 루멧 (2007 / 영국, 미국)
출연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에단 호크, 앨버트 피니, 마리사 토메이
상세보기

  위드 블로그에서 하는 시사회에 당첨되어 다녀왔다. 시사회만 한 게 아니고 진중권 교수와 함께 하는 시네토크도 있었음. 영화 2시간, 시네토크 1시간 정도 진행되었다. 시네토크라는거 영화에 대한 해설도 되고 좋긴 했다. 하지만 관객들과의 토론은 그저 그랬음. 도대체 저 질문은 왜 하는가? 싶은 수준낮은 질문들도 많았다. 아무튼, 이 영화 2007년 영화인데 좀 뒤늦게 개봉한다는 감이 있지만, 뭐 여러 상들을 휩쓴 영화 답게 영화는 좋았다. 시드니 루멧은 어떻게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이렇게 잘 빠진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걸까. 광화문 시네큐브 단독개봉이라는데 그게 아쉽다.

  영화 제목은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 반 시간이라도 천국에 가 있기를.' 이라는 아일랜드 속담에서 나온 것이라 하는데, DJUNA의 영화평 아래 달린 사족을 보면 아일랜드 건배에서 나왔다고. 'May you have food and raiment, a soft pillow for your head; may you be 40 years in heaven, before the devil knows you're dead.' 어느 게 맞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앤디(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행크(에단 호크)의 팍팍한 일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앤디는 번드르르한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약때문에 횡령했던 회사 돈을 감사가 나오기 전에 메꿔야 하고, 에단 호크는 애당초 가난하다. 누구나 한 번쯤 돈이 궁할 때 범죄를 저지를 상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걸 실행하느냐 마느냐겠지. 그리고 이 형제들은 실행한다.

  앤디가 생각한 대로 모든것이 잘 풀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는 결코 그렇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보안이 허술한 부모님의 보석상을 턴다. 이 보석상엔 나이든 노파인 점원 한 사람만 있을 테고, 총은 장난감 총을 가져갈 것이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앤디가 행크를 조용히 꾀어낼 때만 해도 이 계획은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모든 인간이 저지르는 자그마한 실수들은 우연과 섞여 전체적인 그림을 뒤섞어 버린다. 작게는 그 날 출근한 사람이 점원이 아닌 엄마 나넷(로즈마리 해리스)였다는 것부터, 앤디가 행크에게만 일을 맡겨버린 것, 행크가 친구인 바비(브라이언 F. 오바이런)을 끌어들인 것, 앤디가 장물상에게 명함을 준 것. 행크가 앤디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모든 사소한 일들은 결국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연쇄작용에 힘을 실어준다. 그리고 이것들이 초래한 재앙은 그 재앙만으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재앙으로 등장인물들을 몰아갈 뿐이다. 형제가 원했던 건 지금의 경제난을 해결할 돈 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소한 실수만으로 보면 행크의 더 많았긴 했지만, 앤디가 행크를 몰아세우는 장면에서는 좀 속이 쓰렸다. 애당초 시작점이 앤디였던 것을 생각하니 더 그랬을지도. 나는 과정보다 결과와 시작을 중요시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앤디가 평소 생활에 만족했다면, 아내(마리사 토메이)와의 성관계에 만족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뭐 행크는 혼자서는 그럴 배짱도 없는 사람이다. 경제난에 휘둘리긴 했지만 실제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몇 번이나 망설이고, 결국은 친구까지 끌어들였으니까. 보는 내내 은자와 헉 행크 찌질해... 를 외친 것 같다. 거기다 형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바람까지 피우는 걸 보면 기가 차는 캐릭터였음. 아버지인 찰스(알버트 피니)가 행크를 더 걱정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앤디는 그거 때문에 또 열등감을 가지기는 하지만.

  가족 내에서 어머니가 죽었다는 작은 재앙이, 원래 묻혀 있던 재앙의 뿌리들을 끄집어냈다는 기분도 들었다. 이미 뿌리가 튼튼치 못했던 가정이 그 이후에 더 크게 흔들리게 되었달까. 찰스가 앤디에게 조금만 더 신경을 썼다면? 뭐 그런... 하긴 이런 식으로 시작을 따지면 끝도 없겠지.

  배우들 연기는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은 역시 뭔가 꿍꿍이가 있는 비열한 타입에 잘 어울린다. 에단 호크는 다정할 땐 한 없이 다정하지만, 찌질한 모습을 연기할 땐 정말 미친 듯이 잘 어울린다. 엘리트와 루저 사이를 넘나드는 느낌이다.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전에에서는 유약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을 온 몸으로 드러내 주었다. 마리사 토메이는 비중이 생각보다 크진 않았지만 넘실대는 감정을 잘 보여주더라. 알버트 피니가 대박이었다. 마지막에 앤디를 보며 괜찮단다. It's all right 할 때, 이미 표정이 그렇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얼굴을 막 찡그린 것도 아닌데 그 안에 담긴 분노와 용서못함의 감정이 느껴져서 사뭇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연기자 셋 중에서 가장 도드라졌다는 느낌.
 
  좋았다. 하지만 명작인데 기분나쁘고 재미있는데 찝찝한 기분. 그걸 감출 수는 없는듯.
 


버터플라이
감독 필립 뮬 (2002 / 프랑스)
출연 미셸 세로, 클레어 부아닉, 나드 디유, 자케 보아니흐
상세보기

  위드 블로그에서 하는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갔다 왔다. 명동에 있는 스폰지하우스에서 봤는데, 생각보다 관이 작았다. 특별히 불편했던건 아니고 그냥 아담하니 좋았다. 은자랑 같이 봤는데 나보다 은자가 더 마음에 들어한 것 같다.

  프랑스 영화에 대한 작은 편견이 있었다.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그 동안 봤던 프랑스 영화들은 모조리 지루했고, 특히 난 그 발음을 견딜 수 없었다. 프랑스어 발음은 날 졸리게 만들었고, 프랑스 영화를 볼 때면 난 어김없이 잤었는데... 이 영화는 좀 다르더라. 쉴새 없이 쫑알대는 엘자(클레어 부아닉)를 보고 있으면 영화에서 눈을 뗄 새가 없었다.

  엘자 캐릭터는 처음엔 좀 별로였다. 어린애가 너무 제멋대로라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또 생각해보니 그게 어린애긴 하더라.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가출을 감행하는 시도 자체는 귀여웠다. 줄리앙은 그냥 나비를 수집하는 평범한 노인. 심술궂은 척 하지만 사실 엘자를 많이 걱정하고, 아끼고 보살펴주는 모습들이 보여 좋았다. 그리고 엘자에게 많이 약했다. 유괴소동을 불러올만큼 허술했던 건, 줄리앙 자신도 많이 외로웠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역시 며칠이 다 되도록 전화 한 통 제대로 못한 건 문제가 있긴 하다. 엘자 엄마는 지나치게 책임감이 없었다. 별로 비중있다고도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잔잔할 때도 있지만, 마냥 조용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여행담이라기엔 끊임없이 이어지는 사건도 있고, 엘자와 줄리앙의 담화의 덕도 크다.

  엘자와 줄리앙(미셸 세로)의 담화들은 가볍고 쉼 없이 이어지지만, 때때로 철학적이다. 우리 삶 속에 있는 단순한 물음들은 엘자를 통해 던져지고, 줄리앙의 입을 통해 어린이의 시선에 맞게 설명된다. 줄리앙이 엘자에게 하는 설명들은 노인의 입에서 나올 법한, 경험에 입각한 사실들이 많아서 좋았다.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는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야. 믿음이 없다면 사랑도 없어.
하지만 그 새는 날아가지 않았어. 나는 그게 너무 기뻤어. 왜게? 내 곁에 계속 남아 있다는 것은 날 사랑하기 때문일꺼니까.

  이거 말고도 사람이 순간을 위해 아둥바둥 살아간다는 것,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는 것...(사실 난 이게 가장 좋았는데 대사가 잘 기억 안난다.) 이런 심각한 이야기들이, 엘자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의 말들로 전해지는데 그것들이 참 좋았다. 줄리앙이 엘자에게 그림자를 통해 해주던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라기엔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에서는 두 배우가 함께 부른 '나비Le Papillon'가 엔딩곡으로 쓰이는데, 그 가사를 보면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담화의 수준과 그 안의 철학을 알 수 있다.

  좋았다. 커다란 난관이나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 없더라도 충분히 즐겁고 재미있는 영화였다. 우리나라에선 뒤늦게 개봉한 셈인데, 그렇다고 해도 어색한 건 전혀 없었다. 뭐 특별히 도시풍경이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이 아름다운 자연 안에서 진행되었으니까.

  두 배우가 함께 부른 뮤직비디오와 가사를 첨부한다. 스튜디오 모습을 보니까 또 신기한 기분이다.

  검색해보다가 충격받았다. 줄리앙 역을 한 미셸 세로가 2007년에 암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다시 한번 죽음은 갑자기 찾아온다고 했던 영화 속 대사가 떠오른다. 좋은 데 가셨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신기전
감독 김유진 (2008 / 한국)
출연 정재영, 한은정, 허준호, 안성기
상세보기

  시사회로 봄. 용산 넘멀어ㅜㅜ... 생각보다 길었다. 최종 편집 전이겠지? 잘라야 할 장면이 좀 많아 보였다. 무대인사 있을 지 몰랐는데 무대인사 해서 놀랐음. 안성기, 정재영, 도이성, 류현경이 무대에 올랐는데 아.. 안성기 멋있어...

  사극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는 편이 아니어서 기대 안했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적당히 유머랑 진지한 부분을 잘 섞어놓았더라. 유머 부분은 거의 정재영이 담당하고 있음. 내가 뻘개그를 좋아해서 그런지 그런 부분에선 빵빵 터졌음. 실제 역사 부분에 있어선... 음, '신기전' 그 자체 외에선 별로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난 그냥 역사물이라고 생각 안하고 봐서 재미있었지만, 군데군데 역사 묘사에서 모자란 부분이 보였다. 한국의 위상을 띄우는 건 좋지만 뭔가 억지로 끼워맞춘 구석이 있긴 했음. 그래도 그런거 생각 안하고 보면 꽤 재미있는 편.

  생각보다 창강(허준호)과 세종(안성기)의 비중이 적다. 오히려 세종보다 그 아들인 세자(박정철)가 비중이 많고, 그 셋보다 설주(정재영) 패거리 조연들의 비중이 높다. 특히 인하(도이성)와 방옥(류현경)... 더하면 봉구(인지 봉주인지 배우 이름을 모르겠다.  아직 크레딧이 안떴음.) 정도? 네임밸류 면에서 포스터에 넣은 건 이해하겠는데, 뭐 실질적인 주인공은 설주와 홍리(한은정).

  신기전을 만들기 위해 고생하는 내용+연애담+명에게 몰리는 조선의 상황 정도 되겠다. 고생+조선상황이 주가 되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고생+연애담이 더 강조되는 느낌이었음. 사실 난 연애담은 뭉텅뭉텅 뺐으면 하는 장면이 많았음. 쓸데없이 들어가는 샤워장면도 그랬고. 홍리 잡혀가는 그 상황에서 왜 고백이나 하고 있는건지... 헉. 연애담으로 만들어지는 개그 빼고는 다 지우고 싶더라. 신기전 만들기 위해 고생하는 건, 사실 그 정도 고생은 고생이라고도 보이지 않아서... 견본도 다 있었고. 오히려 그 아버지가 고생하는 장면을 보고 싶었다. 설계도 빼오는 그 장면 빼고는 별로 고생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설계도 빼올 때 인하 완전 멋있음. 기둥에 자기 몸 묶는 장면에서 뻑갔다. 집 안에 들어가서는 의외로 쉽게 빼와서 심심했다. 아니 물론 설주가 고생하긴 했는데... 나올 때 고생스럽게 하기보단 그 과정에서 고생스럽게 해야했는데, 인하 빼고는 그냥그냥.

  여진족이랑 명나라 군사 표현하는데 CG를 잘 썼더라. 괜찮아 보였음. 하지만 모래밭 전투방면에서는 영. 거기서 제대로 썼어야 했는데 그 부분은 허하다 싶은 느낌이 들었다.음. 아 CG 얘기 나왔으니 말인데, 날아가는 화살을 보고 있자니 영웅 생각이 안날  수가 없더라. 거기다 영웅에 비해 너무 CG티가 쩔어서 아쉬웠다.

  마지막 전투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에 비해 아쉬운 점이 많았다. 너무 감동 위주로 가려는 스토리도 그랬고, 전투 장면이 한창 멋있다가 허술해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제일 이상했던건... '엎드리면 산다'는 거. 엎드리기만 하면 다치지도 않나요?! 순간 어이가. 팩션이라지만 결말도 나로선 좀 아쉽고.

  배우들 연기는 대부분 좋았다. 정재영이나 허준호, 안성기야 말할 것도 없고. 조연인 류현경 연기가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음. 그러나 한은정은 아직 멀었다 싶은 게... 사극 호흡에 익숙치 않은건지 뭔지, 확실히 대사 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쉬웠음.

  써놓고 보니 왠지 줄줄이 악평만 했는데 그래도 재밌게 봤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이 하드 4.0
감독 렌 와이즈먼 (2007 / 미국)
출연 브루스 윌리스, 저스틴 롱, 매기 큐, 티모시 올리펀트
상세보기

  다음에서 한 시사회로 7월 13일 금요일에 지누와 보고 왔음.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한 시사회였는데, 다음에서 당첨 된 인원만 천 명(동반 1인까지 하면 이천 명)이었고, 다른 사이트에서 한 인원도 있었을 테니 꽤 대규모 시사회였다. 실제로도 엄청난 인원이 바글바글 했음. 7시에 시사회가 시작이고, 6시 30분까지 입장해 달라고 해서 6시까지 갔으나... 의외로 사람이 별로 들어차지 않아 있어서 괜찮은 자리에서 봤다. (라고 해도 앉은 자리에 별로 구애받지 않을 것 같았지만;) 입구에서 행사장 스탭이 7시부터는 시사회 관련 행사 진행하고, 8시에 영화 시작이라고 했으나 코리안 타임이 당연히 적용되어-_- 8시 반에 시작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첨된거 확인하고 입장권으로 찍어주던 스탬프. 내 팔목은 털이 많아 부끄러우니까, 지누 팔목.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렇게 반대편에 있었던 스크린. 저래 뵈도 엄청 컸다; 양 쪽엔 커다란 스피커가 매달려 있었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게 영사기. 되게 커다란 거에 여러 사람들이 매달려 있었다.

  행사 시작까지 예고편을 주구장창 틀어주더라. 판타스틱4 예고편하고, 심슨가족 더 무비 예고편하고, 다이하드 예고편. 지겨울 정도로 많이 봤다. 판타스틱4는 안 봐도 내용 알 것 같아 인제... 무슨 예고편에 이야기를 다 담아 놨더라. 

  행사도 영화처럼 좀 더디게 시작했는데, 뭔가 재미 없고 지루했다. 진행하는 아나운서도 좀 센스가 없는 타입이어서...ㄱ-  행사 내용 중 존 맥클레인 닮은 꼴, 매기 큐 닮은 꼴 선발대회는 전혀 닮지 않은 사람들이 나와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공연은 두개 있었는데, 처음에 했던 B보이들 공연은 솔직히 무대가 너무 멀고 황량해서... 호응도도 별로, 보기에도 별로. 춤은 잘 추시더라만은... 무대가 가까웠으면 좋았을걸. 그렇지만 마지막 영화 상영 전에 했던 슈퍼키드의 공연은 좋았다! 역시 무대가 멀어서 아쉬웠지만 너무 열심히 하고, 사람들 호응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참 보기 좋았다. 이 사람들 인상 좋아졌어; 가뜩이나 그때 사람들 기다림에 지켜 좀 짜증이 나 있었거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무대는 멀어서 사이드의 전광판. 공연 좋았슈()

  자, 이제부터 본론. 영화 이야기. 아 벌써 4편이다. 게다가 그 사이에 10년쯤 흘렀어, 시간의 갭이 엄청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니까 영화 속 대사가 생각나더라. "넌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형사야!" ...근데? 그래서 뭐 어쩌라구. 아날로그적으로 뛰어다니는게 얼마나 재밌고 멋졌는데ㅠㅠb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의 상황은 정말 더 남루하고 비참해졌다. 3편에서 좀 화해하나 했더니-_-; 결국 아내와 이혼당하고, 딸 루시(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테드)는 아빠를 아빠라 부르지 아니하고(야) '존'이라고 이름 찍찍 싸갈기질 않나, 자긴 루시 맥클레인이 아니라 루시 제네로래. (제네로는 엄마 성) 1, 2, 3편에서 개고생한거 나라에선 무시하는건지 퇴직금도 쥐꼬리만하다네? 야 그 고생하면 나라도 양심이 있지, 좀 직급도 올려주고 그래야 하는거 아니니. 양심없어 정말. 거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 소시민적 영웅. 우리들의 아버지가 생각나서 눈가가 시큰해진단 말이다.

  다이하드 3편에서 존 맥클레인이 제우스(사무엘 L. 잭슨)과 호흡 맞춰가면서 뛰는게 좋았었는데, 이번에는 새끼 해커 매튜 패럴(저스틴 롱)과 짝을 맞춰 뛰어다닌다. 소심한 매튜 패럴 캐릭터가 얼마가 귀여운지, 보면서 막 웃음이 나오더라. 아 물론 존 맥클레인이 비정상적으로 대범한거긴 하지만-_-;;

  존 맥클레인은 매튜 패럴을 FBI로 호송하는 간단한(!) 임무를 맡게 되었었는데, 요놈이 어쩌다 보니 토마스 가브리엘(티모시 올리펀트)의 계획과 얽힌 거라. 그래서 매튜 패럴을 보호하려던 간단한 임무는 나라를 디지털 대란에서 구해야 하는-_- 거대한 임무로 발전. 매튜 패럴을 죽이려는 토마스 가브리엘 무리들로부터 매튜는 보호해야하지, 나라 체계는 무너져서 연락도 시원찮지, 헬기로 추격을 해오질 않나, 가스관을 다 돌려 폭파시키질 않나, 하다하다 딸을 납치하지 않나. 존 맥클레인 인생 너무 고달프다.

  그래도 존 맥클레인 캐릭터가 1편에서만큼 고립된 느낌은 아닌 것이, 매튜라던가 마법사(케빈 스미스)의 도움도 충분히 있고, FBI인 보우먼(클리프 커티스)의 도움관계도 나름 탄탄하더라. 1편에서는 진짜 완전 혼자서 아내 구할려고 안달복달 했잖아. 요번에는 매튜의 도움도 많고.. 아니 사실 매튜 없으면 못할 일도 많고... (아날로그 형사잖아, 컴맹이고.) 좋았다. 그래도 원맨쇼가 쪼끔 그리워지기도 하지만-_-.. 음 그래도 이것도 나름 좋아. 3편에서의 협력관계라던가, 인간적 교감이 느껴지잖아. 나중에 맥클레인이 남으라고 하는데도, 매튜가 자진해서 따라나설 때 저자식 영웅심리! 라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귀여웠음. 에어백 터트려서 응급상황 만드는 장면 같은 거에서 그런 교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 그때 존 맥클레인은 딸년이 아빠를 무시하고 있었으니까.

  존 맥클레인과 루시가 다시 부녀로서 교감하게 되는거 좋더라. 모니터로 존 맥클레인이 바라보고 있는 줄 몰랐겠지만, 아빠한테 연락해 달라고 하는 거. 찡. 루시 이거 은근히 아빠 생각하고 있을 줄 알았어! 뭐 여튼 루시의 명대사는 "다섯 명 남았어요." 

  메이 린(메기 큐)생각보다 일찍 죽더라. 난 뭔가 좀더 독하게 오래 살줄 알았어. 그리고 토마스 가브리엘 애인이잖아. 너무 일찍 죽어서 좀..ㄱ- 개인적으로 악당 중에 죽을 때 가장 좋았던 놈은 트레이(조나단 새도스키). 요새키 혼자만 약아 빠진게 왠지 맘에 안들었어.

  토마스 가브리엘 캐릭터 좀 불쌍했지 싶다. 나름대로 좋은 사람일 수 있었는데 나라 탓에 싸이코가 되어버린 셈이잖아-_- 꼭 미국 영화에서는 1. 나라가 잘못한다. 2. 본디 착한놈이던 애가 충격받아 악당이 된다. 요런 스토리가 꽤 있더라. 좋은 재능 좋은 데 쓰지 꼭 나쁜 데 써서. 츠츠. 얼굴도 반반한데<-야...

  액션들 참 좋았다. 홍보한대로 CG 많이 안쓴다는 정신으로, 몸으로 뛰는 액션이 참 좋았다. 아 브루스 윌리스는 왜 늙어도 섹시한거니. 멋있어요 아저씨ㅜㅜ 예고편에서 나온 액션들 참 좋던데. 헬기 폭파장면도 좋고... 터널에서 자동차들 미친듯이 충돌하는것도 멋졌어. 근데 전투기 장면은 쪼끔 오바다 싶더라 ㅋㅋㅋ 나만 그런가.

  여러모로 난 재밌었다! 이 정도면 엄청 만족스럽다! 다들 꼭 보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
감독 래리 찰스 (2006 / 미국)
출연 사챠 바론 코헨, 켄 데이비찬, 파멜라 앤더슨, 루에넬
상세보기

  짜증이 나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영화다. 시사회로 보지 않았다면 못봤을 것 같다. 카자흐스탄 비하요소가 너무나 많다. 미국 비판하는 정신까진 좋은데, 저러한 방법을 썼어야 했나. 더군다나 나는 본인은 모르는데, 웃음거리가 되는 그런 분위기 자체를 싫어해서 이 영화가 많이 불편했다. 블랙 코미디라지만, 웃을 수 없었다. 곰 나오는 장면 빼고는 웃지도 않고 봤다.

  미국 비판 요소는 가득하다. 이게 보랏 이라는 인물이 찍는 다큐멘터리 형식이 아니었다면 다소 진지하게 보였을 지도 모른다. 근데 너무 짜증나. 너무 불쾌해서 그 비판요소보다는, 불쾌함에 더 감정이 쏠렸다. 상영 시간이 조금만 더 길었어도 못참았을 것 같다.

  더 쓰고 싶은 말도 없다. 시사회 분위기는 그냥 그랬다. 사람들이 웃는 부분에서 웃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뭐라 할 말이 없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