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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감독 이누도 잇신 (2003 / 일본)
출연 츠마부키 사토시, 이케와키 치즈루, 우에노 주리, 아라이 히로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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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상 보고싶다고 생각했는데, 결말을 알아서 안보고 있었다. 보면 너무 가슴 아플 것 같아서... 잘은 몰라도 조제의 테마를 들어보면 너무 기분이 미묘해지고 그래서. 그냥 보기 참 그랬다. 막상 보고 난 느낌은? 슬프다기보다는 아릿하게 남는 감정이 먹먹하게 가슴에 스며들었다. 참, 참 먹먹해. 영화는 여전히 이누도 잇신 감독 영화스럽게 깔끔하지만, 길게 남는 여운이 있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사랑의 변화에 관한 이야기. 장애 여성과 일반 남성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의 변화에 대해 참 담담한 차림새로 서술하고 있다. 조제의 할머니(신야 에이코)는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를 장애인으로 대했을 지 모르겠지만,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의 태도를 보면 그녀를 장애인으로 여겨 사랑한 것이 아니다. 중간에 보면 카나에(우에노 주리)도 말하지 않는가, 츠네오는 그렇게 봉사정신 넘치는 애가 아니라고.

  어쩌다 조제와 조제의 할머니와 마주치게 되는 츠네오. 처음엔 음식 때문에, 그 다음에는 조제의 지식과 말투 때문에, 그리고 나중에는 조제 때문에 조제의 집에 찾아가는 츠네오. 조제가 바깥 세상을 나들이하게 해주고, 소꿉친구 코지(아라이 히로후미)를 만나게 해 주고, 밤 늦게 타코야키를 사 들고 가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회사의 면접을 박차고 나오는 츠네오. 조제와 동거하게 되는 츠네오. 이 모든 것은 사랑의 모습이다. 사랑에 빠지는 모습이 정말 꾸밈없이 보여지고 있다. 

  그리고 일년 후.

  사랑은 변화한다. 츠네오는 더 이상 조제의 유모차를 고치지 않으며, 부모님을 뵈러 내려가는 중 그것을 취소한다. 조제를 업은 츠네오는 힘겨운 표정이다. 더 이상은 사랑으로 버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들은 부모님을 뵈러 가던 여행을 그들만의 여행으로 선회하고, 추억을 만들고 돌아온다. 그리고 몇달 간 함께 더 산다. 그 다음은? 이별.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사랑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너무 비관적이지 않겠냐고? 또 그렇지만도 않은게... 그들의 이별은 너무 담담하거든. 츠네오가 길을 걷다가 울음을 터트리긴 하지만, 그래도 잘 살아갈 것이라는 것을 안다. 중요한 것은 조제의 변화.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고 했던가. 여관에서의 조제의 독백처럼, 조제는 이제 이전과 같은 조제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러나 그 독백처럼 괜찮을 것이다. 조제는 이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스스로 장을 보러 나가고, 혼자 있더라도 집을 깨끗이 치우며, 생선을 구워서 먹는다. 마지막에 조제가 의자에서 힘껏 뛰어내리는 모습에서 조제의 활기를 느끼며, 조제가 괜찮을 것이라는 것을 느낀다.

  영화 마지막에 느끼는 긴 여운은 뭐랄까, 이별의 슬픔에서 오는 것이 아닌 사랑의 변화에서 오는 그런 것 같다.

  영상이 참 아름다웠음. 중간중간 셔터샷으로 나오는 모습들도 좋았지만, 전체적으로 화면이 참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메종 드 히미코'에서의 화면을 다시 본 느낌.

이누도 잇신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러브 스토리인 동시에, 사랑이 어떻게 한 소녀를 변화시켜나가는지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판타지를 만들어내지만, 그 환상은 곧 깨져버리고 현실이 어떤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 현실 속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을 발견하지만, 그녀가 절망을 느낄 때 그녀의 약함 뿐 아니라 그녀의 힘과 용기 또한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대사가 아닌 여배우의 외양으로, 추상적인 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녀의 힘과 용기를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관객들이 그것을 실제로 일어나는 일처럼 느끼기를 원했다. 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너무 많은 감정의 기복이 있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내 목표는 영화가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그들이 그 이야기를 처음부터 함께 겪으면서 시작한 곳으로부터 이만큼까지 왔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종류의 느낌이 영화 속 캐릭터들에게 더 어울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내 감상이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사랑을 묘사하는 것은 사람의 성장을 묘사하는 것이고 또 삶을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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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청춘
감독 토요다 토시아키 (2001 / 일본)
출연 마츠다 류헤이, 아라이 히로후미, 타카오카 소스케, 야마자키 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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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이 언제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는 올해 이 영화를 보았고, 당시의 나는 정신적으로 꽤 많이 지쳐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화를 한번 보고 푹 빠져들었으며 일주일 동안 이 영화를 여섯번쯤 보았다는 것.
  어쩌다가 고하토라는 영화를 알게 되어서 그 영화를 보았었다. 고하토는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사무라이들의 동성애 이야기이고- 칸느 영화제에 출품되었다지만, 상당히 지루한 영화였다. 거장이 만든 영화 치고는 맥빠질 정도인데다가 일본 정서 특유의 내용 전개는 이해 불가. 그 맥빠지는 영화의 히로인으로 나온 것이 우울한 청춘에 나오는 마츠다 류헤이이다. 고하토 영화 자체에서는 그닥 큰 흥미를 얻지 못했지만, 나는 이 영화에서 적어도 마츠다 류헤이라는 사람은 발견했다.
  첫 연기라고는 하지만 무리없이 연기하는 모습- (사실 고하토 자체가 매니악한데다가 그 중에서 가장 매니악한 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묘하게 사람을 이끄는 독특한 외모. 나중에 알게 된 그의 집안내력. 결국 마츠다 류헤이라는 사람에게 이끌려서 그가 나왔다는 다음 영화를 보았다. 그게 이 우울한 청춘이다.

  우울한 청춘은, 10대의 이야기다. 삼류 고등학교의, 삼류 학생들의 이야기. 세상이 보기에 '불량'인 소년들의 이야기. 속없어 보이는 그들에게도 자신만의 세계는 구축되어 있고 껍질같아 보이는 그들에게도 녹아있는 우정이 있다. 그리고 10대에 겪게 되는 사회와의 혼란과 내적 성장의 이야기.. 그것들을 어떠한 여지 없이 잘 표현해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용 부분에서는 이야기가 매끄럽지 진행되지 않는다던가 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 어떤가.
나는 이 영화처럼 공감하고 이 영화처럼 미친듯이 영화에 빠져들어 본 적이 없다.

"꽃은 피는 것이다."
(하나와 사쿠모노다.)

라는 난쟁이 교장 선생님의 대사가 머릿속에 남는다. 나도 피어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인가, 몇번이고 생각했다.

"꽃은 피지 않을거예요. 검은 꽃이라면 몰라도."

라고 말하던, 쿠조의 대사도. 응. 저 말에도 공감해버렸다.

"같이가, 쿠죠. 응?"

하고 말하던- 아오키의 대사도. 이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떨어졌다.

  영화 내용 자체는 희망적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이것은 이 영화가 토요다 토시아키 감독의 우울함 시리즈-첫번째는 포르노 스타, 두번째는 우울한 청춘, 마지막이 나인소울즈 이다.-의 일부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그렇지만 마지막에 꽃이 활짝 피어나는 장면이 계속해서 나오는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모순적이게도 나는 희망을 얻는다.
  모든것에서 방황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인물은 역시 쿠조라고 생각한다. 그가 옥상에서 박수를 칠때 하늘을 바라보는 그 표정을 잊을 수 없다. 친구를 바라보는 동경의 시선에서 버림받아 변하는 아오키의 모습은 공감이 가는 모습. 아라이 히로후미 또한 참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발전 가능성이 아주 큰.
  토요다 토시아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참으로 음악을 잘 활용했다. 영화 O.S.T는 THEE MICHELLE GUN ELEPHANT의 노래가 대부분인데, 이 노래라는 것이 화면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내지르듯 가슴을 피게 하는 미쉘건의 노래가 장면 장면마다 참 잘 활용되었다. 내가 알고 있는 O.S.T음악은 네가지인데 그 중 두가지가 영화의 묘미를 가장 잘 살렸다고 생각한다. 두 가지 음악 중 한가지는 赤毛のケリ-(붉은 머리의 켈리)인데, 처음 부분 즈음 아이들이 옥상에서 슬로우 모션으로 그들이 내려오는 모습을 잡을 때 사용되었다. 그 장면에 이 음악이 얼마나 잘 어울렸는가는 참 설명하기 힘들다. 다른 한가지는 ドロップ(드롭). 이것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 사용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검은 영상이 내려오면서도 이 음악은 계속되고, 마지막 숨겨진 컷 하나가 나온다. 노래의 가사는 자세히는 잘 모른다. 나의 짧은 일어 실력으로는 자세히 번역하기 힘드니까. 그렇지만 마지막의 그 우울함과 희망이 뒤섞인 미묘한 상황을 가장 잘 혼합해 주고 있다. 처절하게 울고 싶으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을 수 없는 그 상황을..

  최근의 나는 힘들다. 스스로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다시, 보고싶다. 몇번이라도. 혼란함을 겪고 있는 10대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이 영화에서 우울함만을 발견해서는 안된다. 여러가지 상황이 뒤섞인 가운데서 나타나는 그 얄팍한 희망을 쥐어야 한다. 그것이 이 영화가 영화를 보는 이에게 던져주는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한다.



04.09.11
전에 네이버 블로그에 있던 것인데, 꽤 감상적이다. 고3때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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