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카피하다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0 / 프랑스,이란,이탈리아)
출연 줄리엣 비노쉬,윌리엄 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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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코파카바나 볼 때 같은 영화관에서 하길래 관심 좀 생기네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보게 되었다. 감독이름을 참 많이 들어서 그렇기도 했고, 줄리엣 비노쉬도 뭐 데미지에서의 연기를 잊을 때라는 생각도 들어서. 그땐 역할이 워낙에 뻣뻣해서 매력이 진짜 반감됐을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만...

  근데 이 영화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진행의 영화더라. 요컨대 비포 선라이즈/선셋 타입의 두 남녀가 만나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길을 걷는 그런 영화. 그래서 처음 시작하고 십분쯤 만에 아 난 죽었다, 하긴 했으나 그럭저럭 재밌게 보았다. 영국인 작가 제임스 밀러(윌리엄 쉬멜)이 자신의 책 '기막힌 복제품'의 강연 차 이탈리아에 들렀다가 팬인 엘르(줄리엣 비노쉬)와 만나며 진행되는 이야기. 엘르가 하루동안 근교의 시골 지역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여 그 곳에 들러 많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부분에서부터 두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더라. 다소 철학적인 담론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개인의 경험 차이에서 묻어나는 간단한 대화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은 참 달랐다. 가볍게 보면 남녀차이일 수도 있겠고.

  비포 선라이즈/선셋 시리즈와 달랐던 거라면 중간부터 펼쳐지는 역할극. 이게 또 재미난데 15년간 산 부부처럼 역할극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극은 실제와 교묘하게 맞물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 무엇이 사실이어도 상관없겠지만 연기와 진행되는 내용이 맞물려 처연한 기분을 내는 데 참 묘하더라. 식당에서 립스틱을 바르던 엘르의 모습은 여느 사랑에 빠진 여성 같아서 귀여웠고, 침대에 누워 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모습은 차분하면서도 깊게 슬펐다. 제임스는 똑똑하면서도 어눌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서투름이 마음에 들었지만, 뭐 9시 기차 이야기로 단호함을 엿볼 수도 있었지. 사랑 이야기로 보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해도 별 상관없는 그런 이야기. 다만 두 사람이 나누던 수 많은 대화 안에서 나는 오히려 제임스의 쪽에서 생각하게 되는 걸 보니 이전부터 그랬듯 내 사고방식도 참 남성쪽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촬영이 좀 신기한 게 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내가 말하는 상대방을 보게 되는 촬영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면 엘르가 말을 할 때면 나의 시선은 제임스가 보고 있는 것을 담고 있는 것. 몰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담론을 좋아한다면 추천. 연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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