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즈
감독 앤 플레쳐 (2009 / 미국)
출연 산드라 블록, 라이언 레이놀즈, 베티 화이트, 크레이그 T. 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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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맨틱 코미디는 뻔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연애에 얽힌 적당히 재미있고 얼빠진 에피소드들을 엮어놓고, 사고가 생기고 결국은 해피엔딩이 되는 그런 장르. 어쨌거나 결론은 다 해피엔딩이고 때문에 우연도 많고 작위적이고 그렇다. 그런데 난 이 장르를 싫어하지 않는다. 재미있게 만들면 좋아한다. 모든 것은 모방이다. 다만 얼마나 창조적인 모방인지가 중요한 거지. 별 것 없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엮어나가는 것도 능력이다. 모든 우연과 작위적인 것들은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하에 이해된다. 적당하면 다 좋은 거다. 로맨틱 코미디를 볼 때는 별로 진지한 걸 보고싶지 않고 마음을 풀고 싶을 때고, 예술적인 영화가 필요할 땐 그런 걸 보면 된다. 그렇게 긴장을 풀고 싶어 본 영화가 재미 없을 땐 짜증내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를 볼 땐 폭탄을 밟을 확률도 참 높은 것 같다. 그 뻔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든다는 건 참 능력이 필요한 일이니까. 뻔한 이야기엔 더더욱 큰 정성이 필요한 거다.

  사람들 평이 좋아 보게 된 로맨틱 코미디. 난 늘어져있을 필요가 있었고 무거운 영화따윈 보기도 싫었다. 다행히도, 무척 즐겁게 봤다. 물론 작위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그럭저럭 통과 수준. 부하직원을 협박해서 가짜 결혼을 하려 드는 상사와 기에 눌려 수락한 부하직원의 이야기일 줄 알았더니 그 쪽은 빨리 끝맺음질. 오히려 서로 티격태격하며 기누르는 거에 가까웠다.

  처음에 마가렛(산드라 블록)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앤드류(라이언 레이놀즈)를 봤을 땐, 진짜 찌질해 보였다. 그런데 결혼 때문에 우위가 달라지자 앤드류의 태도가 장난스레 싹 바뀌어서 깜짝 놀랐음. 엄청 착하거나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던 거다. 그냥 착실히 자기 인생 살아가고, 나쁜 맘도 먹어보고 그러는 애. 마가렛은 부하직원들에게는 인기 없을 지 몰라도 제 할일은 확실히 하는 커리어 우먼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었다. 그런 사람이 어쩌다가 이민 비자 갱신 생각을 안했던 건지는 의아하지만. 뭐 여튼.

  위장 결혼 결정 후 앤드류의 가족인 팩스턴 가족과 둘러싼 에피소드가 대부분. 알고보니 앤드류는 알래스카 쪽 지방 유지(..)인 팩스턴 가문의 외아들. 90세를 맞으신 할머니 애니(베니 화이트)와 무뚝뚝하고 가업을 물려받으라는 아버지 조(크레이그 T. 넬슨), 상냥한 엄마 그레이스(메리 스틴버겐) 속에서 올곧게 자라 자기의 꿈을 쫓는 청년이시라니. 이런 캐릭터가 어디있냐. 마가렛은 지극히 현실적인데 반해 앤드류는 좀 꿈 속 왕자님 느낌이 있었다.

  쨌든 둘 사이의 관계에 확 중점을 두기보다는 가족과 화합 이런 걸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설정이 재미있어서 통했지만, 다 보고 나서는 아... 그런데 왜 앤드류는 마가렛을 좋아하게 된거야? 이런 기분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 전 애인 거트(말린 애커맨)가 등장해서 뭔가 삼각 분위기라도 비슷하게 내줄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고. 가족과의 관계, 사랑하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의 혼란 이런 걸 다룬 건 좋았지만 그 덕분에 둘 사이의 관계에서 중요한 점이 빠져버린 것 같아 아쉽다.

  그래서 요러한 단점은 있지만 그래도 참 보는 내내 유쾌했던 영화. 꿈과 망상이 적절히 들어가 있어서 즐거웠다. 나는 여전히 산드라 블록이 너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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