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올더스 헉슬리 (문예출판사, 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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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류의 강력추천으로 산 책. 사실은 스트록스 노래인 'soma'가 떠올라서... 난 디스토피아 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볼까 말까 꽤 망설였었는데, 열고 나니 굉장히 재미있어서 거침없이 읽을 수 있었다. 디스토피아 물이지만 특별히 어두운 느낌을 준다기보다 묘사하는 모습들이 너무 깔끔하고 정제되어 있다는 느낌이라서 읽는 데 편했던 거라고 생각한다. 1984를 읽으며 느꼈던 그 불안감이나 갑갑함이 없었다.

  처음엔 주인공이 버나드인줄 알았다. 멍청한 레니나를 옆에 끼고 뭔가 하는건가 했었어... 헬름홀츠도 뭔가 있어 보였었는데, 막상 정말 요주의 인물은 '야만인' 존이었다. 1/3이 지난 시점에서야 등장하는 인물인지라 뭔가 했었어. 어머니가 있는 자연상태로 태어나, 소위 문명세계란 곳에 성인이 되어 돌아온 야만인 존. 문명세계의 씨를 타고 났기에 '야만인 보호구역'에서는 따돌림을 받았던 존은, 행복할 줄 알았던 문명세계에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다. 야만인의 세계에선 배척당했다지만 그곳의 정신을 가지고 자랐기에, 문명세계에는 그가 추구하는 사랑과 영혼의 가르침이 없기 때문에. 만약 린다가 좀 더 책임감 있는 엄마였다면, 야만인 세계의 사람들과 동화되어 잘 자랄 수 있었다면 존이 이렇게 불행해지진 않았을텐데. 그런 생각도 들었고...

  이런 존의 혼란은 총통과의 대화가 나오는 17장에서 가장 두드러지고, 읽으면서 어느 쪽이 맞는가에 대해 몇번이고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물론 지금 현실의 나는 존의 손을 들겠지만, 만약 그렇게 교육받아진 사람이라면 나도 멍청이 레니나처럼 행동하려 들지 않을까. 혹은 책임감 없이 술만을 찾고 종당에는 소마와 함께 죽어버린 린다처럼.

  철학적인 질문이 오가는 것도 괜찮았다지만, 사람이 공장에서 만들어지듯 만들어지고,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있으며, 세뇌받으며 자라는 신세계의 모습이 나오는 초반 부분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징그럽게 보여야 할 모습인데 이 부분이 꽤 깔끔하게 묘사되며 넘어간다. 게다가 이 세계의 사람들은 반그램, 혹은 일그램의 소마 한 알로 행복해 질 수 있기 때문에 모두가 행복하다. 불행한 세계가 아니라는 점 때문에 어둡고 컴컴한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도 읽는 내가 현재의 사람이며 그들이 말하는 야만인이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불쾌함은 어쩔 도리가 없다.

  * 소립자에 나왔던 미래상과 이런 미래 상 중에서 고르라면, 나는 차라리 지금의 인류가 몽땅 없어지고 새로운, 종이 다른 인류가 등장하는 소립자 쪽의 미래상이 낫다고 생각하는데... 이건 왜일까.

  "여러분들은 노예 신분이 좋습니까?"
  그들이 병원으로 들어갔을 때 야만인이 말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망울은 정열과 분노로 빛나고 있었다.
  "여러분은 갓난아기 상태가 좋습니까?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갓난아기들입니다. 보채고 앵앵우는 젖먹이들입니다."
  야만인은 그들의 짐승 같은 우둔성에 어찌나 분개했떤지 자신이 구해주러 온 대상인 그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붓고 있었다. 모욕적인 언사는 거북등과 같은 완강한 그들의 우둔성 앞에서 무력한 메아리처럼 되튕겨왔다. 그들은 분노에 찬 표정을 눈에 담고 야만인을 멍하고 침울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앵앵 울고 있을 뿐입니다!"
   비애와 회오, 연민과 의무―이 모든 것을 이제 망각한 상태였다. 이제 이들 인간 이하의 괴물들에 대한 강렬하고 위압적인 증오심에 빠져들고 있었다.
  "당신들은 자유롭고 인간답게 살고 싶지 않습니까? 인간다움과 자유가 무엇인지도 모릅니까?"
  분노가 원동력이 되어 그의 말이 유창해지고 있었다. 어휘가 술술 터져나왔다.
  "그것도 모릅니까?" 그는 반복해서 물었다. 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한 응답은 없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그는 단호하게 말을 계속했다.
  "그러면 내가 가르쳐주겠습니다. 당신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신들을 자유롭게 해주겠습니다."
  그러고는 병원의 안뜰로 향한 창문을 열더니 약상자를 열고 소마 알약을 한 주먹씩 꺼내어 던지기 시작했다.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문예출판사, 1998, pp.269-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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