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 : 강영걸


  이만희 작으로, 벌써 상연된 지 10년이 넘은 작품이다. 본디 남자 스님들의 이야기인것을 요번에 비구니 버전으로 각색해 재상연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수강하고 있는 희곡작품론 수업 때문에 단체로 관람하게 되었다.

  저번에 봤던 '염쟁이 유씨'는 꽤 유쾌한 작품이었다.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연극. 그래서 이번 작품도 즐겁기를 바랬다. 제목을 듣고 나서는, 윽. 이었지만. 그런데 막상 극장에 들어서, 연극에 대한 신문기사(극장 안에 비치되어 있더라)를 읽고 나니까 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되더라. 여자배우들도 머리를 밀 때, 단순히 미용시에 가서 자른 것이 아니고 직접 스님들에게 민 것이고... 여러 모로 정성이 들어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연극인들 정성이 안들어갈리 있겠느냐만은.

  이 연극에서는 스님들의 이야기를 통해, 불교의 정신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일체유심조란 뭐 풀어 이야기 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 따라서 마음이 움직이면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그렇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지한 스님이 나올 때에도, 발랄하고 즐거운 모습의 스님들이 나올 때에도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뭐 맞는 말. 일체유심조. 그래서 중간까지는 몹시 괜찮게 보았다.

  그런데 망령과 도법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나는 좀 심기가 불편하더라. 도법은 조각가 출신의 비구니이다. 세속에서 집단 강간을 당한 상처로 인해 불교에 귀의한 자인데, 이 자를 두고 망령은 옛 일은 모두 잊고 깨달음을 얻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투가 몹시 강제적이고 기분이 나빠 나까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망령은 곧 하나의 부처이고, 도법에게 깨달음을 주려 온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체유심조'를 말하는 방식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강간당한 상처를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일까. 그것을 잘 이해 못하겠으니, 역시 나는 범부인가보다.

 망령은 인간을 두고 모든 인간은 완성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제 자신이 완성자인 것을 모른다도 말하고 있다. 온 세상을 다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목탁구멍 속의 작은 어둠 밖에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목탁구멍은 인간 자체이고, 어둠은 상처이다. 그런데 이 어둠은 작은 어둠이다. 이것은 어둠, 즉 상처가 곧 작고 덧없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미·추가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 그리 보는 것이라고 연극은 말한다. 눈은 세속적인 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도법이 마지막에 제 눈을 찌른 것은 그 때문이다. ...아, 쉬우면서도 참 어렵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알겠는데, 그것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실천하기는 왜 이리 어려운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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