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구
감독 이윤택 (2003 / 한국)
출연 강부자, 이재은, 김경익, 전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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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학년 2학기 한국 민속의 이해 시간에 냈던 영화 '오구'의 감상문. 사실 몇몇 부분이 거짓말로 점쳘된 감상문이다. 종교는 안믿지만, 굿같은거 아주 재미있어 하거든. 구비문학개론의 도환님(ㅋㅋ완전 사랑하는 강사님)이 많이 생각의 폭을 넓혀주긴 했지만, 이전부터 재미있어 한것은 확실히 맞음. 감상 부분은 뭐... 판에 박힌 감상문이지만, 진짜 저렇게 느꼈음. 영화 보면서 막울었다. 연극도 꼭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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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
; 산 자와 산 자의 화해와 만남.

  전 학기에 수강하던 전공 과목 중에, 구비문학에 관련한 과목이 있었다. 구비문학에 관련해 여러 가지를 배우던 중 ‘굿’에 관한 내용도 배웠다. 그러면서 영상자료도 하나 보았는데, 『영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그 다큐멘터리 영화는 나의 굿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굿에 대해 다소 편협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굿을 예전의 미신으로 치부하여 미개의 것으로까지 보았다는 소리이다. 나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실재하지 않는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에 열중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거대한 종교에 대한 시각도 이러한데 굿에 대한 시각 또한 다를 바 없었다.
  『영매』는 굿을 하는 무당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굿은 민간신앙이다. 오늘날 우리는 무당을 두고, 단지 귀신을 불러들이는 터무니없는 존재로 볼 뿐이다. 『영매』에서는 이러한 부제가 붙어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무당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해주고, 그들 사이에 묵혀진 한을 해소하게 해 주는 자이다. 그렇다면 굿이라는 행위 자체는,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가 된다. 영화 『영매』 속에서 보여지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한 맺힌 모습, 죽은 혼들이 말하는 한의 모습. 모든 것이 굿에 대한 시각을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설령 저것이 사기라 하더라도 살아있는 사람에게 있어서 마음의 위로가 된다면 아무렇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더불어 사기꾼처럼 보였던 무당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된 영화였다. 굿과 무당을 하나로 전통 문화로 보게 되었다.
  그러던 중, 『오구』를 보았다. 처음에는 제목이 무엇인가 했더니, ‘오구굿’의 오구란다. 굿에 관련한 영화였다. 이전에 한번 광고를 본 적이 있었지만 재미없어 보여 보지 않았던 터였다. 지금에 와서 보자니 흥미가 생겨났다. 굿에 대한 시각이 바뀐 뒤였으니까. 그리고 굉장히 많이 울면서 보았다. 굿을 하는 모습 중간 중간에 눈물이 절로 났다. 정확히 이유를 설명하긴 힘들지만, 영화촬영을 위한 굿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그 한이 느껴졌다 하겠다.
  『오구』에서는 꿈에서 저승사자를 보고 죽음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나온다. 현대를 배경으로 굿을 하는 이 모습은, 황씨 할머니네 마을이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다. 황씨 할머니네 마을은 굿을 하지 않는 마을이기 때문이다.
  미연은 마을 청년들에게 강간을 당해 마을을 떠나고, 미연을 사랑했던 황씨 할머니의 자식 용택은 자살을 한다. 미연이 마을을 떠난 시점부터, 황씨 할머니네 마을에서 굿은 하찮은 옛것이 되고 말해선 안 될 금기가 되어버린다. 미연은 임신을 해 아들을 용택이라 이름짓고 읍내에서 산다. 그러나 황씨 할머니의 굿을 통해 미연이 마을로 돌아옴으로써 마을에는 커다란 파장이 일어난다. 첫째로는 금기시되었던 굿을 한다는 것과, 둘째는 자신들이 죄를 짓고서는 외면해 버린 미연이 돌아온다는 것에서 그러하다. 영화는 여러 가지 사건을 복합적으로 다루지만, 총체적으로 그 이야기들은 하나로 묶여져 있다. 이 ‘묶여진’ 이야기는 결국은 그들을 하나로 ‘묶는’ 역할도 하는 듯하다.
  황씨 할머니의 저승가기 위한 준비는 노망 난 늙은이의 모습 같기도 하다. 오구굿을 할 때 꽃단장을 해 시집가는 모습을 한 데서는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마저 나왔다. 왜 그런 옷을 입나 해서 찾아보았더니, 오구굿이 저승의 오구 대왕에게 시집가는 의식, '사혼死婚식'이라고도 불리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알았다. 결혼식을 하는 것인데 그냥 옷을 입고 갈 수는 없을 테니까. 옛 민속신앙을 절대적으로 믿는 모습 같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이승에서의 죄와 한을 모두 씻고 저승의 사람에게 가는 ‘산 자와 죽은 자의 만남’의 모습이었다.
  황씨 할머니의 이야기는 제목과 같은 ‘오구’의 의미를 나타내고 또한 ‘산 자와 죽은 자와의 만남’을 위해 등장했다. 그렇다면 미연의 이야기는 어째서 등장하는 것일까. 나는 『오구』라는 영화가 미연의 등장을 통해 ‘산 사람과 산 사람의 화해’를 이끌어 낸다고 보았다. 미연은 마을 사람의 범죄와, 마을 사람들의 침묵으로 희생된 이이다. 어쩌면 황씨 할머니가 굿을 한다는 것 보다는 미연이 마을로 돌아온다는 것의 파장이 더 컸을지 모른다. 자기 자식들의 범죄를 덮어놓기 바빴던 범죄자의 부모들과, 마을에 풍파가 이는 것이 싫어 무시했던 이들. 모두에게 있어서 미연의 귀향은 좋지 못하게 느껴졌을 테니까.
  그러니 그들은 종당엔 ‘굿’을 통한 화해를 이끌어낸다. 미연은 일단 돌아와 아버지 석출과의 만남을 통해 말 없는 화해를 한다. 앞서 싸우거나 틀어졌다는 서술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석출과 미연의 만남을 그렇게 보았다. 과거에 석출 또한 마을 사람들과 같이 자기 자식의 고통을 모른 체 했을 것이라고. 이제 와서 그들은 화합을 하는 것이라고. 미연은 굿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씻어낸다. 남이 좋은 곳을 가기를 빌어주면서 남의 죄를 씻는 동시에, 자신을 바로보고 용서하게 되는 것이다. 죄를 지은 자식을 둔 병규아빠는 훼방을 놓는다. 이제 와서 자기 자식의 죄가 드러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 황씨 할머니는 병규아빠를 야단치며 미연을 자기 며느리라 한다. 그러면서 굿 노래를 신청한다. 미연의 이 한스러운 노래는 그녀의 마음을 씻기고, 황씨 할머니의 한을 씻기고, 마을 사람들의 죄를 씻는다. 굿을 통해 그들은 모두 순결하게 하나 되는 것이다. 이런 씻김의 효과는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지는 병규 일당의 사과와, 황씨 할머니네 며느리의 ‘동서’라는 말에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오구』에서 굿은 ‘산 사람과 죽은 이의 만남’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더 크게는 ‘산 사람과 산 사람들의 화해의 만남’을 의미한다. 굿을 반대하던 이들도, 정작 굿판에 있어서는 같이 즐기며 함께한다. 굿판이 벌어졌다 알리는 행렬에서 마을의 늙은이는 신이 나서 춤을 추어댄다. 굿이 없어진 후 마을에는 어쩌면 하나 되어 즐길 장소가 없었던 것 같다. 옛 마을에 있어서 굿판은 서로가 함께하여 즐길 장소로 적당했을 것이다. 『오구』에서 굿은 적막했던 마을을 불러일으키고,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시켜 놓는다. 굿판 자체에서도 사람들은 굿판에 끼어들고 참견하며 굿판을 즐겁게 만든다. 『오구』에서는 굿이 단순히 죽은 이를 불러내고 산 사람의 한을 씻게 하는 본연의 일에 그치지 않고, 산 사람과 산 사람의 매개라는 부가적인 가치를 창출한다. 이를 통해 굿은 단순히 민간 신앙이 아닌 전통 문화의 일부분이 된다.
  『오구』는 환상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현실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어 놓았다. 나는 이것을 굉장히 흥미롭게 보았다. 현실의 이야기만 있으면 내용이 자칫 너무 진지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는 저승사자라는 환상적인 존재를 등장시킴으로써, 이것이 현재인지 과거인지 알 수 없게 하고,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가 되도록 강약을 조절해 준다.
  저승사자는 총 세 명이 나옴으로 인해 영화의 현재와 연결된다. 첫 번째 저승사자는 이미 해탈을 겪은 듯한 저승사자이다. 그는 황씨 할머니의 죽은 남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황씨 할머니를 보며 미소짓고 포근하게 다가오라 일러준다. 그는 굳이 산 사람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저승사자의 모습만 아니라면,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인 사람같다. 두 번째 저승사자는 미연을 사랑했던 용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현재를 살았던 기억마저 가지고 있어 다소 삶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직 저승에 있으면서 해탈하지 못한 인간의 모습 같다. 세 번째 저승사자는 아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 별 하는 역할이 없이 느껴지다가 마지막에는 황씨 할머니네 큰 아들의 자식으로 환생한다. 이것은 어쩌면 돌고 도는 인간의 윤회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세 저승사자는 죽은 뒤의 인간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오구』에서는 굿에 관한 것 말고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죽음을 바라보는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오구에서 황씨 할머니는 꿈에서 죽음을 보고 처음에는 두려워한다. 두려워서 나는 아직 죽을 수 없소 하다가도,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이 과정 자체는 조금은 암울하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굿이 시작되고 나서 보면, 황씨 할머니도 마을 사람들도 굿판 자체를 즐기며 황씨 할머니가 좋은 곳으로 가기를 축원한다. 늘어지고 슬픈 분위기는 별로 없다.
  장례식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더하다. 황씨 할머니의 장례식 모습은 재미있기까지 하다. 한쪽에서 사람들은 고스톱을 치며 이야기를 나누고, 아낙들은 한쪽에서 음식을 만들며 이야기를 나눈다. 곡을 한창 해야 할 황씨 할머니네 장남과 며느리는 곡하는 이를 고용해 곡을 하지만, 엄청나게 슬프다던가 하는 분위기를 내뿜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장례식장은 장례식 자체를 통해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 같다. 거기다 황씨 할머니네 며느리가 아기를 낳는 장면까지 포함하여 웃음을 더 해 주었다.
  『오구』는 현실적인 요소와 환상적인 요소를 잘 섞어낸 작품이다. 그 둘의 섞음을 통해 웃음을 자아내면서, 우리네 삶이 바라보는 죽음에 대한 의식과 굿판의 화합을 담아낸다. ‘산 자와 산 자가 화합하고 죽은 자와 만나는’ 굿의 모습과, ‘죽음은 하나의 축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의식’이라는 의식. 두 가지 우리의 전통적인 생각의 모습. 그것이 잘 드러나 있다. 내가 감수성이 예민해서 그런 것인지,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런 것인지 이 연극을 몹시 재미있게 보았다. 많이 울고, 많이 웃으며 보았다. 죽음에 대한 의식도 그렇지만, 화합을 전통 문화를 통해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더 크게 점수를 주고 싶다. 본디 연극이라고 하는데, 그 연극을 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게 만든다. 볼 것 많고, 느낄 것 많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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