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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로 오래간만에 편지 정리를 했다. 수업시간이나 평소에 편지를 주고받던 건 주로 중·고등학교때 이야기. 고등학교때 편지는 따로 보관했으니, 어릴때부터 중학교때까지 받은 편지만 정리하면 되었다. 쪽지류만 담은 상자가 한 박스, 편지봉투에 담은 편지류가 한 박스였다. (사과박스 말고-_- 그냥 작은거...)

  중학교때 편지는 참 펼쳐보기 난감했다. 중학교때 친구중 연락하는 친구는 지누하고 또 다른 한명 뿐이니까. 상자안의 편지들은 도대체 어떨 애들의 것일지 짐작도 안갔다. 결국 내가 그 속에서 솎아낸 편지들은 어릴 때 연락하던 한 명과, 중학교 이전부터 친했던 애들 둘의 편지, 그리고 지누의 편지로 족했다. 친구도 별로 없었는데, 무슨 편지는 그리도 많은지. 네 명의 편지를 골라내는 것은 정말 고된 작업으로 보였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시작했던 작업이었는데 정말 내 생각보다도 더, 모르는 애 투성이였다. 이름 보고 얼굴을 떠올릴 수 있었던 한 다섯명 정도? 나머진 전혀 떠오르지도 않는 사람들. 가장 멋진건 나와 비밀친구를 맺자는 그런거-_-;;였는데, 이름도 안써져있어서 추측조차 할 수 없는 편지였다.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음... 나는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상대들과 이렇게 많은 교류를 했다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내 기억을 송두리채 도둑맞은 그런 기분이랄까. 물론 기억하려 들지 않은 내 잘못이 크지만. 내게 있어서 중학시절은 송두리채 지워버리고 싶은 그런 종류의 기억이니까. 지누 빼고-_-... 지누는 같은 중학교 나온 유일한 친구다.

  그에 반해 고등학교 시절 받은 편지들은 어찌나 소중하던지. 이름이 안써져있는 편지조차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있어서 기뻤다. 단순히 가깝고 먼 기억의 차이가 아니라, 기억의 소중함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것이겠지.

  그 많은 편지들은 하나의 박스로 줄어들었다. 또다시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 박스를 열어보았을 땐, 이들 모두를 기억할 수 있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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