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민음사, 2009년)
상세보기

  문득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 읽었다. 1인칭이고 고등학생 시점이었는데 술술 읽혔다. 처음에는 홀든 콜필드를 보며 뭐야 이거, 완전 사춘기 소년이잖아... 그렇게 생각했는데 다 읽고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홀든 콜필드는 그냥 자기 고민이 많고 세상에 대해 불만이 많은 녀석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홀든은 약간의 허세야말로 그나이에 꼭 걸맞는 것들이었고, 그 외의 부분에서 딱히 악행이라고 할만한 것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순진하고 마음씨 좋은 행동들을 더 했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서 그 정도 허세에 젖은 행동을 하지 않거나, 그 정도 불만에 찬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야 말로 더 드물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십대라면. 그 점에서 샐린저는 이 소설을 참 잘썼다고 생각했다. 그 시기의 감성들이 생각할 만한 것들을 일인칭으로 정확하게 서술했다는 느낌이었다.

  홀든이 고등학교에서 또다시 퇴학을 당한 뒤 집으로 돌아가기까지의 며칠 동안 그가 겪는 일들은 단순한 노선을 따르면서도 여러 모로 험난한 세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미 동생 앨리의 죽음과 몇 번의 퇴학 등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을 겪은 반항아 아닌 반항아 홀든은, 그 사흘 간 더 더럽고 치사하며 나쁜 세상의 모습을 다 겪게 되었다. 어떻게 삐뚤어지게 나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택하는 것들은 나쁜 쪽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그저 먼 곳으로 떠나 혼자서 살아가겠다는 다짐이었다. 나아가야할 멘토가 되어주어야 할 어른들은 그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그나마 마지막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선생마저 그를 성희롱 하려 했으니, 그에게 어른들이 쥐어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어봤자 부모님이 쥐어준 알량한 돈 몇푼 뿐.

  방황하는 그를 구원하는 것은 어른들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어린 여동생 피비이다. 아직 초등학교에 다닐 뿐인 이 소녀의 맑은 영혼은 홀든을 구원하는 밧줄이었다. 고작 아이들이 노는 호밀밭을 지키는 게 꿈일 뿐인 순수한 홀든의 영혼은, 마찬가지로 순수한 아이에게서 구원을 얻는다. 그가 '사회적으로' 나쁜 길을 선택하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동생 뿐이다. 그가 나아갈 길로 이끌었어야 할 어른들은, 그를 이해시키거나 혹은 그를 이해하기에 너무나 더럽혀져 있었다.

  피비가 아니었다면 어쩌면 홀든은 이대로 가다간 사회의 낙오자가 될 지도 몰랐지만, 그렇더라도 영혼만은 순수한 채로 유지되었을 지도... 마지막에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말에서 조금 멍해졌다. 홀든같이 순수한 이에겐 사회로 적응하기 위한 치료가 필요했나보다.

  음, 잘 모르겠다. 내가 좀 더 어릴 때 이 소설을 읽었더라면 무슨 생각을 했을지. 다만 지금 읽어도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그게 정리가 잘 안 되어서 아쉽다. 그 짧은 며칠 동안에 진행되는 홀든이 겪는 일들과 그에 대한 심리묘사가 참 좋았다.

  「그건 그렇다치고,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 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 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민음사, 2001, pp.229-230

  「지금 네가 떨어지고 있는 타락은, 일반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좀 특별한 것처럼 보인다. 그건 정말 무서운 거라고 할 수 있어. 사람이 타락할 때는 본인이 느끼지도 못할 수도 있고, 자신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거야. 끝도 없이 계속해서 타락하게 되는 거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어느 순간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환경이 줄 수 없는 어떤 것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네가 그런 경우에 속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이 속한 환경에서 찾을 수 없다고 그냥 생각해 버리는 거야. 그러고는 단념하지. 실제로 찾으려고 노력도 해보지 않고, 그냥 단념해 버리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하겠니?」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민음사, 2001, p.247-248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 빌헬름 스테켈

『호밀밭의 파수꾼』,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민음사, 2001, p.248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