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제이 아셰르 (내인생의책,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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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드 블로그에서 당첨되어서 보았다. 소설인 데다가 전부 대화 + 화자의 마음 속 생각으로  이루어진 서술 덕에 몰입도는 꽤 높았다. 난 책 읽는 속도가 느린 편인데도 하루만에 다 읽었다. 서너시간 걸린 듯? 그만큼 가볍다는 느낌도 좀 들었긴 한데, 다루는 소재가 있다 보니까 그런 부분이 많이 상쇄된 듯 하다.

  진행 방식이 흥비로운 편이었다. 이게 나름의 과거 회상과 현재의 상황이 얽혀 있어서. 주인공이자 이 소설의 화자인 클레이가 자살한 해나 베이커의 목소리가 담긴 테이프를 받는 데에서부터 이 소설은 시작된다. 1인칭인 주인공의 생각과 상황묘사가 계속 진행되는 가운데, 테이프에 담긴 해나 베이커의 목소리가 교차되어 나오는 식이다. 

  작가로선 테이프 안의 이야기만 쓰는 편이 좀 더 편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까, 아무래도 좀 전개가 무뎌진 감이 있었다. 주인공인 클레이는 모든 장소를 이동하며 하루만에 테이프를 전부 다 듣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작가가 급하게 이 소설을 끝내려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흡조절이 좀 덜 되는 느낌? 뭐 중요한 것은 해나 베이커의 테이프 내용이니까, 사실 클레이야 어떻게 이동하건 말 건 상관이 없다. 다만 아쉬웠던 건 클레이가 해나 베이커의 리스트에 있는 악인이 아니었다는 거. 처음부터 잘못한 게 없다고 말하는 클레이가, 진짜 잘못한 게 없다는 식으로 흘러가니까 나로서는 좀 재미가 떨어졌다. 해나 베이커가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면... 이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하려는 의도는 알겠지만서도, 그 정도는 다른 사람들의 에피소드―이를테면 상담선생님―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

  원서 제목과는 달리 한국 번역본의 제목은 '루머의 루머의 루머'인데, 해나 베이커가 자살로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의 첫 시작은 저스틴이 만들어 낸 루머 탓이니까 저런 제목을 붙인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나는 저 제목 탓에 루머가 완연하게 퍼지는 과정 따위를 상상했는데 그런 식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생각치 못하고 벌이는 사소한 행동들로 인한 오해가 어떤 식으로 타인에게 작용하는 지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소설이었다는 느낌. 물론 진짜 못된 행동들을 한 아이들도 있었고,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을 벌인 아이들도 있었지만... 결국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사람의 죽음―어떻게 보면 노인까지 합해야겠다만―을 초래했다.

  해나 베이커가 테이프 안에서 말하는 논리들이 다 옳은 것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건 클레이가 계속 짜증날 정도로 말해대는 '네가 손을 내밀었어야 했어'의 탓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 모든 일들이 본인의 죽음까지 바칠 만한 일이었는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내 속에 남아있다. 차라리 그 힘으로 살아서 모든 엇나간 상황을 바로잡아 보려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느낌도 있고. 죽으려는 사람에게 그런 의욕이 어디에 있겠느냐고? 그렇다면 애당초 테이프를 만들어 낸 것조차도 말이 안된다. 죽으려는 사람이 테이프까지 만들고 있으신가요. 쓰고 보니 내가 이 소설을 다 읽고 느꼈던 허전함 같은 게 여기에서 유래된 것 같다. 현실성이 조금, 떨어진다. 물론 모든 소설은 허구라지만 이건 설득력의 문제인 듯.

  뭐 이러저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몰입도나 흥미로서는 좋았다. 소재가 가볍지 않아서 내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해나 베이커의 죽음이 좀 더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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