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트릭트 9
감독 닐 브롬캠프 (2009 / 미국)
출연 샬토 코플리, 제이슨 코프, 나탈리 볼트, 데이빗 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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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슥헤랑 쇼핑하다가 노원에서 봄. 내가 내용에 대해 알고 간 건 '외계인을 지구인이 가두는 지역'에 관한 이야기, 정도였는데 그 외에 정보는 하나도 모르고 봤다. 그렇고 아무런 정보 없이 보러간 게 오히려 보는데 더 재미있었다. 개체의 틀과 그 안에 뭉쳐있는 이야기들의 방향까지 전부가 흥미로와서 굉장히 몰입해서 봤다.

  이 이야기는 이미 사건들은 다 벌어졌다 치고 그것을 재구성해서 보여주는데, 그 방식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관객에게 이야기의 진실성을 잠깐이나마 믿게 하는데 이는 이 영화가 함유하고 있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적 문제와도 맞닿아 큰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주인공. 정말 평범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인간 중 하나인 비커스(샬토 코플리)의 모습은 이야기를 누구의 시선에서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은근히 관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이면서 어느 부분에선 바보같이 순진하기까지 한 비커스가 겪는 일들은 우리의 일이 되어 다가오기 때문에, 관객은 그것을 관망하는 역할이기보다는 비커스의 편에서 이 영화를 바라보게 된다. 비커스가 겪게 되는 모든 변화(육체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환경적인 것이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때문에 이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시스템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모습도 비꼬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피해를 입으면 그제야 문제를 인지한다. 비커스 또한 자신의 일이 되기 전까지는 외계인의 일들을 다수의 눈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외계인의 알들을 터트리면서 아 저게 알 터지는 소리예요, 라며 웃었고 외계인의 이주에 동의하는 서류에 서명을 받고 다녔다. 그게 자신의 일이 되고나서야 비커스는 크리스토퍼에게 아냐, 디스트릭트 10은 좋은 곳이 아니야 라고 털어놓는다. 그야말로 인간적이다. 살아있는 것이라면 외계인도 죽이기 힘들어하던 비커스는 자기가 공격받으면 사람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면 자신을 도왔던 외계인을 내버려두고 내빼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모두 이렇게 하지 않을까. 오히려 사람들이 그렇게도 경멸하는 외계인인 크리스토퍼가 돌아온다는 약속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하다.

  사실 이 영화에서 이용해 먹은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걸 만들어내는 데에는 진짜 평범한 사람들이 쓰여서 문제점을 시사한다. 영화 앞부분에 등장하는, 외계인에 대해 불평하는 주민들은 실제 남아공의 주민들이다. 문제는 이게 영화에 쓰일 필름입니다, 말하고 찍은 부분이 아니라 그곳에 기거하는 '영화 안의 외계인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에 대해 평범한 주민들이 인터뷰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영화 제목인 디스트릭트 9은 실제 남아공의 1966년 흑인 이주정책이었던 디스트릭트 6를 의미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외계인들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기보단 주변인이며 관찰대상에 가까웠다. 지도체계가 전부 죽어버린 후 나머지 외계인들은 저지능에 짐승같은 본능만을 가지고 있는데, 대단한 무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지능이 낮고 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 짐승같은 본능과 그들이 불러일으키는 혐오감이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아공의 하층민 모습과 맞닿아 있다. 얘네는 거기다 겉모습도 곤충을 확대해놓은 것 같은 혐오스러운 모양새. 이게 단체라서 그랬던 걸까? 그나마 달랐던 것은 비커스의 모든 것을 바꿔놓았던 크리스토퍼와 그의 친구, 그리고 크리스토퍼의 아들 뿐이었는데... 개개인을 조명해서 그런건지, 얘들이 단순히 다른 개체보다 지능이 높기 때문인지 헷갈림. 하긴 그러고 보면 지능이 높은 인간 무리들이 또 정말 처절한 악행을 보여줬으니... 지능보다는 단체와 개체의 문제.

  진지한 이야기지만 웃기고 재미있는 장면도 꽤 많았다. 초반부에는 그 재미가 비커스의 멍청한 순진함에 있었다면, 중반 이후에는 크리스토퍼의 아들이 너무 귀엽고 장난기많아서. 비커스의 변화한 팔에 자신의 팔을 대고 똑같아요ㅎㅎ 이러면서 좋아하는 장면(역정내는 비커스도 웃김)이 제일 웃겼고, 크리스토퍼가 다시 자신들의 별로 못돌아간다니까 왜 못가? 난 가고싶은데! 하면서 칭얼대는 장면도 귀여웠다. 나중에 비커스가 모선을 조정하면서 "삼촌이 운전하잖니!" 이럴 때 너무 웃었다. 인정하지 마, 이사람아.

  주변인물보다는 커다란 사회 체계나 시스템이 중요해서... 뭐 크게 중요한 사람들이 있었나 싶은데... 아내인 타냐(바네사 헤이우드)는 딱 고만큼의 위치. 비커스를 지옥으로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결국은 그를 놓을 수 없는 아내... 타냐의 아버지는 말할 가치도 없는 인간쓰레기. 고작 그 정도의 인간이었다면 애당초 어떻게 딸을 비커스에게 주었는지 의문이다. 용병 대장(제이슨 코프)은 아무리 용병이라지만 너무 기계같더라. 외계인에 대한 혐오만으로 사람들이 그렇게 무섭게 터져나가 죽는데도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만큼 외계인에 대한 혐오가 크다는 것일까? 흠.

  정치적인 문제를 떼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영화이지만, 정치적인 것에 관심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다. 보는 내내 스릴 넘치고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영화. 마지막 장면이 특히 여운이 남는다. 나오지 않아도 좋을 것 같지만, 뭐 제작자나 투자자 모두 원한다니 디스트릭트 10이 나올 것 같다.

  양파님의 리뷰를 보면 몰랐던 부분을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보기를 매우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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