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
감독 라세 할스트룀 (2005 / 미국)
출연 히스 레저, 시에나 밀러, 제레미 아이언스, 올리버 플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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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도 제레미 나와서 본거... 라기엔 히스 레저에게도 관심 있었으니까. 감독도 라세 할스트룀이라서 보고싶었고. '개같은 내 인생'은 여전히 떠올리면 마음이 포근해지는 영화다.

  소재에서 약간 걱정되긴 했는데 그럭저럭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만들어 진 것 같다. 가볍긴 한데 현대식 로맨틱 코미디처럼 팔랑팔랑 날아갈 것 처럼 가볍다는 느낌은 안들었던 게, 배경 때문인 것 같다. 화려하게 꾸며진 옛 베니스의 모습을 보면 아무래도 시선이 분배가 되어버리니까. 여기까지가 그럭저럭한 장점. 무겁지 않으니 볼거리에 집중하게 되고, 그 볼거리란 것도 아기자기하니 예쁘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답게 줄거리 자체만 떼어놓고 생각하면 엄청 가벼웠다. 가볍다는 건 이런 장르에서 별로 문제가 안된는데, 진짜 문제는 로맨틱 코미디인데 우습지 않았다는 것일까... 이야기가 진행되는 품새가 급박하지도 않고(상황은 분명 급박한 것인데 어째서), 그 과정 자체가 재치는 있지만(그렇다고 엄청 머리쓴 것도 또 아 아니란 말이다.) 엄청 재미있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뭐 따로 교훈이랄 게 없는 이런 로맨틱 코미디가 재미가 없으면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소소하고 자잘하게 미소는 지어도 으응, 그래서 어쩌라고? 하는 생각이 들어버리니까. 별 거 없이 그냥저냥 볼만했다는 이야기.

  카사노바(히스 레저)라는 캐릭터를 좀 더 매력적으로 그릴 수 있었던 거 같은데, 여자들이 왜 이 남자에게 빠지는지 그런 설명이 부족했던 거 같다. 애당초 명성이 드높아진 상태에서 시작해 버리니까... 그리고 꼭 이런 남자에게는 똑똑하고 정절을 지킬 것 같은 여자만 붙더라? 프란체스카(시에나 밀러)가 딱 그랬고 더 어긋나지도 않는데 사랑 때문에 멍청해지는 것까지 똑같았다. 처음에 다른 인물 역할 한 것도 그렇고, 자기 약혼자 파브리찌오(올리버 플랫)인척 한 것도 그렇고 이것저것 많이 속여먹었는데 자기 대신 감옥에 잡혀가 죽을뻔 했다고 다시 사랑 모드로 바뀌어버린다니. 양심 때문에 자기가 베르나르도 구아디라고 말할 수는 있어도 사랑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한 순간이고 짧지 않나... 음. 그래... 자기를 줄 수 있는 남자란 말인가.

  주연보단 조연들이 눈에 많이 밟혔던 영화. 특히 자코모 카사노바의 하인인 루포(오미드 다릴리)는 빼놓을 수 없이 유쾌한 조연이었고, 프란체스카의 엄마인 안드레아(레나 올린)는 허영심 가득하면서도 귀여웠다. 프란체스카의 약혼자 파브리찌오는 멍청한 캐릭터지만 순하고 본성은 착해서 거슬리는 점 하나 없었고... 프란체스카의 동생인 지오반니(찰리 콕스)만 좀 거슬렸나. 너무 찌질해... 빅토리아(나탈리 도머)한테 제대로 고백도 못하는 점이라던가, 창녀들이랑 한바탕 놀고 나서 자신감을 약간 되찾는 것도 어이가 없을 지경. 빅토리아는 그냥 세상물정 모르는 여자애.. 치고는 귀여운 점이 있어서 좋았다. 이 영화의 유일한 악역이었던 푸치 주교(제레미 아이언스)는 뭐 이렇다 할 힘도 못쓰고 휘둘리는 점이 그냥 귀여웠습니다. 행동들이 별로 미워할 느낌은 아니었다. 나 종교재판관이나 이런 캐릭터 엄청 싫어하는데... 원체 뭐 딱 부러지게 하는게 없으니.

  문제의 해결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이뤄질 줄도 알았고 간단할 줄도 알았는데, 그 때문에 막판 쯤에 카사노바의 어머니(헬렌 맥크로리)가 나오지 않을까나 싶었다. 역시나 딱 고 타이밍에 남편 티토(레이 로우슨)와 함께 등장하시더라. 그 뒤론 그냥 약간 유쾌한 탈출극 같았는데, 요기서 약간 재미있었던 게 탈출이 너무 쉬워... 느린 배인데도 그 시대배경 때문에 못따라잡는게ㅋㅋㅋㅋㅋ 좀 웃겼다. 아무튼 그래서 해필리 에버 애프터...

  초반에 보면서 느끼는 지루함을 참을 수 있다면 끝까지 참을 수 있을 거 같은 영화. 클라이막스랄 게 별로 없어서 아쉽다.

베니스의 상인
감독 마이클 래드포드 (2004 / 미국,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영국)
출연 알 파치노, 제레미 아이언스, 조셉 파인즈, 린 콜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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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샤일록 너무 불쌍해...... 감상 끝.

...이 아니고, 아니 그래도 진짜로 너무 불쌍했다. 마이클 래드포드의 베니스의 상인은, 주인공이 샤일록(알 파치노)이라고 해야 옳았다. 다른 이들은 거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안토니오(제레미 아이언스)와 베사니오(조셉 파인즈)의 눈물겨운 우정이니, 베사니오와 포시아(린 콜린스)의 사랑이야기니, 포시아가 남자로 변장해 판결을 내려주는 기지고 나발이고 샤일록만 불쌍하다.

  원전을 그대로 잘 해석했다는 평이 많지만 원전 자체가 불평등한 모습을 담고 있는 관계로 영화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차별은 꼴사납다. 애당초 유태인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서 고리대금업을 한다고 몰아세우는 작자들이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거 같진 않지만 말이다. 차별의 근본조차 내겐 와닿지를 않아서. 내가 보기엔 어차피 한 뿌리인 것을(...)

  알 파치노의 샤일록 해석이 너무 좋았던 관계로 샤일록이 나오지 않는 장면에선 오히려 재미가 떨어지는 신기함이. 처음부터 유태인 지구를 나누고 빨간 모자를 씌워 유태인을 차별하더니, 안토니오는 더러운 고리대금업자라며 자신을 개라 부르고, 돈 빌리러 온 주제에 이자는 낼 수 없대서 살덩이 하나 걸고 돈빌려줬다. 끝까지 꼿꼿한 이 크리스천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딸년 제시카(줄레이카 로빈슨)는 그 크리스찬 로렌조(찰리 콕스)와 눈이 맞아 돈을 훔쳐 떠나버렸으니... 나라도 그런 복수심을 품을 것 같았다.

  나머지 캐릭터들의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샤일록에게 더 눈이가고 그랬다. 흥청망청 있는 재산을 탕진하고 친구의 돈과 살덩이를 걸고 아내를 맞으러(!) 떠나는 베사니오가 제일 꼴보기 싫었다. 그다지 능력있는거 같지도 않았고... 도대체 포시아는 어느 부분에서 베사니오에게 매력을 느꼈던 걸까? 알 수가 없다. 베사니오와 포시아의 시종인 그라티아노(크리스 마셜)와 네리사(헤더 골든허쉬)도 주인들처럼 한눈에 반했으니 딱 어울리는 주인과 하인의 짝들이다. 안토니오도 그렇지, 아무리 우정이 중요하다 한들 베사니오같은 치에게 돈을 빌려주다니. 안토니오와 베사니오의 관계는 둘만 있을 때에는 너무 노골적인 동성애가 들어있어서... 그래 뭐 사랑으로 감싸안으신건지.

  샤일록의 딸도 너무 마음에 안들었던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둘러싸고있는 상황을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아버지를 떠날 수 있느냐다. 그래 이것도 뭐 사랑으로 감싸안았겠지. 그래도 너무 짜증이 났다. 중간 중간 망설이는 듯한 모습이라던가, 영화 마지막에 가서는 후회나 회한에 찬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한들 용서가 안 되는 캐릭터더라.

  하이라이트인 법정 모습에서는 주변을 둘러싼 패들이 모두 샤일록을 욕하며 자비를 베풀라 말하는게 너무 가소로웠다. 먼저 자비를 베푼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하대하며 멸시했던 자에게 자비를 바라는 건지 그 심리가 우스웠다. 자신들이 강할때는 자비를 주지 않으면서 약할 때에는 자비를 베풀라 간청한다니? 모든 상황이 변장한 포샤로 인해 뒤집혔을때 바닥에서 온 몸을 끌어안고 끅끅대는 샤일록의 모습은 세상 누구에게라도 동정심을 불러 일으킬 것 같았다. 자비, 그 놈의 자비를 백번은 외치다가 상황을 뒤집어놓고서 그런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들의 모습은 어떻고? 돈을 빼앗고, 목숨을 구걸하게하고, 종교까지 앗아가는 그들의 자비에 역겨움으로 속이 메스꺼웠다. 끝까지 유태인은 들어라, 라는 식으로 '유태인'으로 규정하는 것도 너무 이상했다.

  요새 제레미 아이언스가 너무 좋아서 본 거였는데 도저히 공감이 안 가는 캐릭터라서 보다 지쳤다. 법정에서 살덩이 베어내기 준비할 때, 기절하듯 쓰러지는 장면이 아름다웠다는 거 정도만 내 마음의 위안(...) 알 파치노는 연기 잘한다 잘한다 했지만서도 여기서는 진짜 사무쳤다. 빗속에서 딸 이름을 부르면서 우는 모습, 기독교인들에게 유태인들은 기독교인과 같지 않은가 하며 몰아붙이던 모습, 법정에서의 모습들. 모두가 완벽했다.

  연기도 좋았고 원전도 잘 살렸지만 내용에 있어서 내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많아서 보면서 힘들었다. 카타르시스가 아닌 스트레스가 쌓이는 영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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