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제10회문학동네소설상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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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천명관 (문학동네,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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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두께가 좀 있어서 오래걸리려나 했더니 생각보다는 금방 읽은 편. 내가 생각했던 방식의 소설이 아니라서 처음에 좀 당황했는데, 곧 자리를 잡고 나서는 후딱후딱 읽을 수 있었다. 굉장히 신기한 소설이었다. 방대하게 짜여진 몇십년의 역사와 그 안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재미있고, 말이 되는 방식으로 풀어낸 소설이라니. 쓸모없는 등장인물을 하나도 없이 언젠가는 다시 등장하기 마련이고, 사소한 행동 하나도 지나칠 것이 없었다. 그냥저냥 옛 이야기를 듣는 기분으로 보다가, 책장을 넘길 수록 한 방 먹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더라. 한마디로 신기했다. 이런 식으로 스토리텔링을 잘 구사하는 사람을 요샌 거의 못봤었으니까. 진짜 탄탄하고 재미있었다.

  노파-금복-춘희 로 이어지는 사람들의 모습 속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얼키설키 제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금복의 이야기이지만, 결론은 춘희의 이야기이며 시작은 노파의 욕망과 집착인 것 같다. 여러모로 세 인물 모두 비중이 크다. 설명하면 너무 길어지니까 쓰기는 귀찮은데... 제일 얄밉고 짜증나는 건 금복이면서도 가장 재미있게 읽은 인물이었다. 특히 초반에 걱정과 칼자국 사이에서의 관계가 너무 좋아서 그 여파가 계속 남았던 것 같다. 엄마로서의 점수는 빵점이지만, 그 연애 이야기가 너무 콱 박혔나보다. 여튼간에 금복이는 나름 행복하게 죽은 것 같고, 춘희가 너무 안쓰러워서 발을 동동 굴렀다. 노파는 열외.

  환상과 현실 사이에서 적절히 춤을 추는 소설이라 처음엔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건 우리나라 역사와 섞여있는 부분들이 간간히 드러나기 때문에 더 그랬다. 뭐 이건 중요한 건 아니다. 굳이 역사 이야기 안 섞어도 일들은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며 현실적이다. 중간중간 숱하게 나오는 그것이 ~의 법칙이다. 라는 구절들은 진짜 현실에서 통하는 것들이라서... 흥미로웠음. 그리고 이런 정교한 현실에 묘하게 섞어놓은 환상으로 인해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춘희가 죽은 지 4년이 지난 걱정의 씨라는 것만 봐도 얼마나 흥미로운지. 걱정을 좋아했기에 춘희가 걱정의 씨앗이라 좋았다. 금복은 그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여튼 즐거웠다. 두꺼운 책인데도 술술 읽히고 누가 옆에서 옛 이야기 해주는 것마냥 재미있게 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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