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즈 리턴
감독 기타노 다케시 (1996 / 일본)
출연 안도 마사노부, 카네코 켄, 이시바시 료, 테라지마 스스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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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패하지 않는 청춘, 『키즈 리턴』

  사람에게 감명을 주는 영화는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 진한 감동을 주어 눈물을 쏟게 만드는 영화라던가, 강한 기쁨과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영화라던가. 그런 종류의 영화는 의외로 굉장히 많다. 나는 감정의 배설이 심한 편인지라 그러한 영화를 보고 쉽게 감동하는 편이다. 예술성이 하나도 없는 영화에서 감상적인 싸구려 억지를 만들어내도 나는 쉽게 운다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감동적인 영화를 골라보라’ 라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나는 쉽사리 대답하지 못한다. 나를 울게 하고 감동시키는 영화는 하나 둘에 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비단 운다거나 하는 강한 감정을 느끼는 것만으로 감동을 받지는 않는다. 덤덤한 이야기가 가슴을 콱 찔러올 수도 있다. 영화를 보고 화려하게 감정을 내뱉지 않더라도 어떤 영화는 최고의 영화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내게는 그런 영화가 하나 있다. 그것은 일본 영화 『키즈 리턴』이다. 나는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키즈 리턴』이 아니라면 지금의 나는 존재할 수 없었노라고.

  영화 『키즈 리턴』은 무척 덤덤하다. 이야기의 커다란 줄기는 이렇다. 과거의 단짝 친구였던 미야자키 마사루(카네코 켄)와 다카키 신지(안도 마사노부)는 오래간만에 재회한다. 그들은 옛 추억에 빠져 함께 자전거를 탄다. 그리고 그 둘의 과거가 펼쳐진다. 둘은 고등학교 때 유명한 문제아였다. 그들에게서 학교는 탈출하고 싶기만 한 곳이다. 그래서 결국은 탈출하고야 만다. 미야자키 마사루는 야쿠자로, 다카키 신지는 권투 선수로서 성장해 나간다. 둘 다 유망주로서 성장해 나가지만, 종당에는 파국을 맞는다. 그리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중심 토대는 딱 저것뿐이다. 그것에 살이 되는 것은 학교생활의 모습, 야쿠자의 삶의 모습, 권투장 안의 모습이고, 곁들여지는 이야기는 그들의 친구인 만담꾼과 샐러리맨의 모습이다. 이 영화는 이해가 안될 만큼 잔잔하게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게 찔러내는 무언가가 있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 때 처음 보았다. 적절한 시기였다. 수능 공부와 내신 성적과 씨름하기 바빴다. 밤에는 학원에서 새벽까지를 보냈다. 그래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았다. 옆에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고3 중반 즈음의 나는 완전히 지치고 말았다. 공부는 영 손에 잡히지 않았고, 야간 자율학습은 밥 먹듯이 빼먹고 놀러 다녔다. 그리고 사람이 가득 찬 길거리에서, 누군가 내게 시비를 걸어오길 간절히 바랬다. 누군가 내게 먼저 시비만 걸어준다면 흠씬 패주든, 흠씬 두들겨 맞든 어느 상황이건 일어나길 바랐다. 나는 그 때 꽤 감상적인 사춘기 소녀가 되어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흘렀고, 아무도 건들지 않았음에도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사회의 모든 것에 불만을 가졌다. 문제아가 되어 마구 난동부릴 용기도, 자살할 용기도 없다고 자신에게 짜증을 냈다. 지금 생각하면 몹시 유치한 일이지만 그때는 꼭 그랬다.

  그렇게 불만이 쌓여 학교를 관둘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을 때, 나는 『키즈 리턴』을 보았다. 영화라도 보면서 마음을 식히려는 마음도 있었고, 사실은 그냥 시간을 때우고 싶기도 했다. 고른 것도 우연히 고르게 된 것이었다. 처음엔 그저 그랬다. 영화 초반부터 흐르는 그 담담함이 싫었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키즈 리턴』은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두 명의 주인공들이 문제아로서 학교를 휘젓고 다니는 방식만 봐도 그랬다. 그들은 억압된 틀 안에서 자유를 만끽하려 애쓰고 있었다. 교사를 골탕 먹이거나, 길거리에서 돈을 뺏거나, 성인 영화관을 전전하는 모습들. 그리고 똑같은 장소에 서있던 나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했고 또 갈망했다. 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며 정화와 새로운 욕구를 느낀 것이었다. 폭발하지 못해 안달 나있던 나는 그들을 보며 그런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그들이 제도교육을 벗어났을 때에는 그것이 더 했다. 드디어 거지같은 곳에서 탈출하는구나 싶었다. 그것이 비록 올바른 것은 아니지만 마사루가 야쿠자에 들어갔을 때에도(영화를 봤을 당시의 나는 그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않았다.), 신지가 체육관에 다니기 시작할 때에도 나는 마냥 보기 좋았다. 어찌 되었건 그들은 자신들의 억압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길로 한걸음 내딛은 것이었다. 그들이 운동장에서 한가로이 자전거를 타고 있을 때, 교실 안 학생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장면이 있다. 물론 교사는 한심한 놈들 하고 내뱉고 만다. 나는 교실 안 학생들처럼 그들을 바라본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승승장구했다. 중간 보스가 잠시 빠진 상황에서 마사루는 중간 보스를 꿰어 찼다. 신지는 권투에 재능을 보였다. 그리고 체육관의 유망주가 내려가며, 본인이 유망주가 되었다. 그들의 인생을 참 술술 풀렸다. 나는 더욱 더 열광했다. 제도 교육을 벗어나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어. 나에게도 길이 보인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살고 있는 곳은 참 비정한 세계이다. 잠깐 붙여지는 그들의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만담을 하는 두 아이들은 손님이 없는 곳에서 공연을 하고, 젊은 샐러리맨이 된 친구는 자살을 한다. 젊음은 자유로운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 성질이 몹시 고약했다. 그들은 점점 추락한다.

  마사루는 보스가 죽은 상황에서 다른 야쿠자들에게 말을 잘못하여 그것을 빌미로 추락했다. 안타까웠다. 처량한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신지가 추락하는 장면은 더 담담했지만, 더 극적이었다. 영화는 꽤 많은 부분을 권투 장면에 할애하고 있다. 권투를 행하는 장소는 체육관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인생의 여러 모습들이 담겨있다. 이제는 퇴물이 되어버린 늙은 복서, 이제 권투를 시작한 복서, 유망주가 된 복서. 그런 인생의 향연 속에서, 신지는 퇴물 선배와 함께 다니다 추락하고 만다. 그러나 그런 추락 앞에 신지는 담담하다. 첫 실패다. 그런 것 앞에서 담담한 것이다. 신지와 함께 했던 늙은 복서는 인생의 허무함과 존재의 무의미, 힘겨움에 대해 직설적으로 내뱉는다. 그가 한 말과 함께 신지의 실패는 무척 담담하게 느껴졌다. 인생의 쓴 맛을 대신 겪으며, 나는 내 가슴마저 쓰려왔다. 담담하게 느껴지면서도 가슴 한 켠이 그랬다.

  그들은 그들을 억압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의 성공을 쫒았다. 그리고 그것은 젊은 치기와 함께 바람 불 듯 사라져 버렸다. 나는 그것이 슬펐으나 별 도리는 없었다. 이 영화를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 즈음엔 영화는 새로운 결말을 내놓았다. 그 장면이 어찌나 평화로운지.

  그들은 재회 후에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탄다. 공기는 평화롭다. 교실 안의 선생님은 그들을 보며 여전히 혀를 차고, 교실 안의 학생들은 선망하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자전거를 타는 둘은 말없이 서로 교감한다. 그리고 신지가 묻는다. “우리 이제 끝난 걸까?” 마사루는 대답한다. “바보, 아직 시작도 안했어.” 그 얼마나 감동적인 대사인지. 보고 느끼지 않은 사람은 모를 대사이다. 그 말은 그렇게 불만이 가득 찬 내게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가득 차 있었고, 저 말은 내게 가장 용기를 북돋아 준 말이었다.

  그들은 성공하겠다는 굳은 신념,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앞에 있는 현실을 그때그때 대처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런 삶 안에서 성공도, 실패도 겪는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젊은 삶의 모습이다. 나는 지금도 젊지만 영화를 볼 당시 몹시 젊었다. 주인공들을 따라 쉽게 그들의 삶을 경험했다. 그들이 결국에는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젊음과 생각 없음이 부러웠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제도권을 벗어난 그들의 행로가 분명치 않음에도 그들은 젊기에 아름답다. 젊음은 아름답다. 성공하지 못해도 가슴 쓰리며 훌훌 털어내면 되고, 불확실성에 모든 것을 거는 걸어도 아깝지 않은 이유이니까.

  나는 『키즈 리턴』에 푹 빠져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가끔 이 영화를 찾아보며 용기를 얻는다. 이 영화 이후 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많이 극복했다. 가장 정서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매체였다. 다시 봐도 지루하지 않은 그들의 담담한 이야기. 모든 것이 꽉 막혀 있다 느낄 때 나는 이 영화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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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교 1학년? 2학년 때 쓴 옛감상. 나는 지금 꽉 막혀있다고 해도 이 영화를 찾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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