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 갑자기
감독 루카 라가지,쿠스타브 호퍼 (2008 / 이탈리아)
출연 쿠스타브 호퍼,루카 라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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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벼운 유머를 섞어 제작된 다큐멘터리. 하지만 내용은 한없이 무겁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의 미혼·동성 커플의 권리를 승인하는 법안 DICO와 관련된 이야기를 다룬다. 지난 겨울, 갑자기 발표된 이 법안은 통과된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찍을 2007년 당시 이미 8년 차 연인이던 구스타프 호퍼와 루카 라가지는 이 법안의 통과에 긍정적이었고, 그런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하지만 바티칸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기독교 문화에 깊이 물든 이탈리아 사회는 이 법안의 통과에 걸림돌이 된다. 한 순간에 이 다큐멘터리는 동성 결합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다큐멘터리가 되어버렸다. 따뜻한 가족과 친구들 덕에, 그 동안 동성애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걸 몰랐다가 이 영화를 찍으며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알게 되는 구스타브와 루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특히 루카는 정신적으로 굉장히 많이 지쳐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하더라. 
 
  구스타브와 루카는 길을 걷는 일반 시민들을 많이 인터뷰한다. 그들은 너무나 태연한 얼굴로 동성애를 반대한다(우습지도 않은 표현이다만)고 말한다. 심지어 구스타브와 루카가 연인이라는 말을 함에도 그 앞에서 그건 옳지 않다고 말한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가족의 날' 따위를 지지하며 시위를 하는데, 거기엔 논리가 없었다. 이성적인 논리가 아닌 그저 귀를 막고 교회의 뜻을 따르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해 대는데 가슴이 답답해 지더라. 어떤 여성 정치인은 성서에 쓰여진 걸 보라고, 창세기에 신이 남자와 여자를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느냐 하는데 어이가 없었다. 그녀가 믿고 있는 정치적인 믿음이 고작 교회의 이론에 바탕한 거라니! 그녀가 내세울 수 있는 말이 고작 성경에 적힌 말이라니. 그게 자신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할 만한 근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놀라웠다. 여튼 DICO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논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들이 왜 그런 주장을 하는 지도 모르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구스타브는 특히 열성적으로 그 사람들에게 이유를 듣고 싶어했지만, 그들 중 아무도 구스타브가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어주지 못하더라. 내가 만족할 만한 대답도.

  이탈리아의 2007 게이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장면도 나왔다. 내내 우울하다가 이 퍼레이드를 보니 기분이 좀 환기되었다. 그래도 끝까지 관련 법은 통과되지 않았고 새 법에 관한 이야기만 나왔지만... 어쨌든 그 게이 퍼레이드 중 정치인 '블라디미르 럭셔리아'의 연설을 보고 눈물이 났다.

우리는 가족이 뭔지 가르치는 위선적인 선생은 필요 없어요. 땅에서 솟아난 사람들이 아니니 가족이 뭔지는 잘 알죠. 우리도 가족 속에서 태어났어요! 가족의 품에서 사랑받으며 자랐다면 더 없는 행운아죠. 하지만 신부님의 축복을 받은 기독교 집안에서는 저희 같은 사람은 온갖 질타와 미움, 차별을 받고 쫓겨나죠. 동성애자 아들을 정신병원이나 퇴마사에게 보내거나 남성 호르몬을 주사하는 사람들은 가족이 아니죠. 반드시 이성의 만남으로만 가족이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여성이 핍박받지 않고 자녀가 억압받지 않는 곳은 모두 가족입니다. 관심과 존경, 사랑만 있으면 평범한 가족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가족입니다!


  여러 모로 생각할 게 많았던 다큐멘터리. 우리나라는 이런 법률에 대한 이야기조차 나오고 있질 않으니 더 씁쓸하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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