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곡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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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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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놓고 한참만에 읽은 듯.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읽은지 일주일이 지나서 감상을 쓰고... 집에 놀러왔던 친구가 이거 재밌어 해서 아 맞다 그거 읽어야겠다 하면서 읽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은 이게 처음인데 꽤 마음에 들었다. 글이 생각보다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어서 놀랐다. 왜 되게 가벼울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무겁다고 해서 재미없거나 지루한 건 아니고 오히려 파고들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다루고 있는 소재는 가벼운 듯 가볍지가 않았따. 판타지이면서 또 판타지가 아니었고.

  제목만 보고 처음엔 아, 서커스단에 들어가서 공중곡예를 연습하는 사람의 인생담인가. 뭐 그정도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진짜 하늘을 나는 이야기다! 오. 소설의 상상력이여. 소재부터 나의 상상력의 빈곤함을 일깨워주더라. 고아인 '월터'가 유대인 사부 '예후디'를 만나서 하늘을 나는 방법을 배우고, 또 그 이후의 월터 인생 전반을 통과하는 이야기. 예후디의 집에 간 월터는 당시 월터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이 소설의 시대배경은 1920년대 정도!) 흑인 '이솝'과 인디언 아주머니 '수'와 살게 된다. 또 한명, 같이 살진 않지만 현명하면서 또 약간 괴짜같기도 한 '위더스푼' 부인도 있다. 처음 월터는 이솝과 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혐오하지만 그럼 감정들은 교육으로 인해 점점 나아지며 결국 그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고, 또...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또 만나고. 험난한 월터의 인생 여정이 묘사된다. 1장이 끝날 때엔 너무나 충격적이라서 눈물도 안났는데, 2장 끝날 때엔 참 많이 울었음. "좋았던 시절들을 기억해라.", "내가 너한테 가르쳤던 것들을 기억해."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 하나에 펑펑 눈물이 나더라. 3장은 읽으면서 가장 심드렁하기도 했는데 월터의 삶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또 월터의 타락을 바라보는 심정이 편치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4장은 마무리되는 이야기였기에 나쁘지 않았고.

  나는 이 소설에서 월터가 하늘을 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진 않았다. 그걸 시작으로 엮인 인간관계와 이야기 진행들이 중요했지. 1장의 흥미로움과 2장의 진득한 무거움 속에서 묻어나오는 삶의 단면들이 참 좋았던 소설.

  앞으로도 몇 번 더 읽어볼 것 같음.
빵굽는타자기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폴 오스터 (열린책들펴냄,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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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오스터의 소설은 하나도 안읽어봤는데 어째 이것부터 읽게 되는구나. 카테고리가 소설이긴 한데 이거 에세이 아닌가? 본인의 이야기를 쓰고 있으니까. 뭐 소설처럼 쉽게쉽게 읽기는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미있었음.

  작가가 되기 위한 길을 제시하는 소설이 아닌,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나와있어서 흥미로웠던 책. 이런 면에서는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를 읽었을 때 같은 느낌이 났다. 그 책은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스티븐 킹이 작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가 더 재미있는 책인데 이 책은 아예 그런 테두리 없이 작가가 되기까지의 과정, 고난 뭐 이런걸 다루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기 인생사도 좀 다루는데, 중산층에서 가난을 모르고 자란 청년이 청구서를 걱정하는 지경이 되고, 돈이 너무나 급한 나머지 야구 카드 게임을 만들어 팔려는 생각을 하기까지의 그런 과정들이 남의 일이라 그런지 즐거웠다. 희희낙락했다는 게 아니라 과정이 흥미를 끌 만하고 아 이런 상황까지 몰아붙여졌구나 싶은 생각을 한 발짝 더 하게 되는.

  단순히 글만 쓴 게 아니라 경험을 많이 했다는 점이 내 시선을 끌었다. 남들이 다 겪는 그런 경험 외에도 파리에 가서 살아본다던가, 회사에도 다녀보고, 다른 작가의 영어본 책을 내는 걸 도와 본다던가, 희곡을 상연했던 경험 같은 것들이 한 데 모여 폴 오스터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경험에서 얻게 되는 생각의 향연은 날 충분히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여튼 이런 복잡한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게 주목할만한 일이겠지. 그런 부분이 있었는데, 생활고에 지쳐 번역 일만 하느라 글쓰기를 일주일 정도 놓게 되자 손에서 작가로서의 감이 떨어졌다고. 꾸준한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꼈다.

  부끄럽지만 나도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있는 편이라서 더 즐겁게 읽었다. 작가의 자전적 에세이는 대부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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