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타
감독 애드리안 라인 (1997 / 프랑스, 미국)
출연 제레미 아이언스, 도미니크 스웨인, 멜라니 그리피스, 프랭크 란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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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원작 소설인 '롤리타'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집에 있긴 있는데 엄청 좋아서 산 것이라기 보다는, 읽으려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안 읽고 반납하기를 두 번 한 끝에 오기가 생겨서(혹은 또 빌리러 가기 귀찮아서) 샀었다. 그냥저냥 끈덕지게 중간까진 읽었었고 중반 이후로는 꽤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책장에 남겨두고 있지만, 롤리타란 소설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는 소설은 아니었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려고 한 건 역시 제레미 아이언스 때문인데(...) 결과물로만 보면 원작을 잘 반영한 괜찮은 영화가 나온 것 같다. 험버트(제레미 아이언스)가 내 생각보다는 훨씬 잘생기고 멀쑥한 남자로 나온 것 말고는 그 성격은 꽤 비슷했던 데다 롤리타(도미니크 스웨인)나 샬롯 헤이즈(멜라니 그리피스)의 묘사는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꼭 들어 맞았다. 나름 중요한 인물인 퀼티(프랭크 란젤라)도 적당히 가려져있으면서 존재감을 나타내는 캐릭터로 알맞았다고 생각한다.

  신기하게도 내용을 화면으로 보여주는 영화가 원작인 소설보다 '덜' 역겨운데 이건 주인공의 외모 탓도 있겠지만서도, 롤리타를 만나기 전 험버트의 인생이 거의 나오지 않은 탓이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그 부분을 읽을 때 아주 짜증이 났었거든. 어릴 적 이야기를 단편적으로 끝내버림으로써 역겨움은 상쇄되긴 했는데 험버트가 어린 소녀를 좋아하게 된 동기나 그 내면에 깔린 질척질척한 배경들이 잘 나오지 않아서 그 부분은 아쉽다. 그 장면들이 역겹긴 했어도 험버트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엔 가장 도움이 되었었다.

  초반에는 험버트에게 운이 따라주는 듯 하지만, 어쨌거나 험버트에게 남은 건 잔혹한 파멸 뿐이라는 걸 모두가 안다. 험버트는 그걸 막기위해 애쓰지만 그의 시도들은 실패로 끝날 뿐이다. 실패로 끝나지 않으면 안된다. 아무리 자상한 모양새로 돌로레스 헤이즈, 롤리타를 감싸안으며 사랑한다 외쳐도 결국 그는 페도필리아를 가진 남자일 뿐이니까. 성장하는 아이를 가둬둘 순 없다. 롤리타는 아주 잠시동안 험버트의 손에 있었을 뿐, 어떻게 해도 달아나게 되어 있었다.

  롤리타의 성격은 소설을 보기 전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과 같은, 성인 남성에 위협받는 아이상(象)은 아니다. 자유롭고, 제멋대로이고, 때로는 버릇없고 난데 없어 험버트를 당황하게끔 만드는 존재이다. 그런데... 어떤 세상의 어떤 사춘기 아이가 그렇지 않을까? 사실 롤리타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녀들의 성격과 같았다. 험버트의 시선에서 험버트가 당황하는 꼴을 보고 있느라, 그녀가 영악하고 발랑까진 소녀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이다. 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롤리타는 명백한 피해자다. 여름캠프에 간 새 엄마를 잃고 의지할 데라고는 자신을 더러운 시선으로 핥아대는 험버트밖에 남지 않은, 고작 열몇살 남짓의 꼬마애라는 걸. 소설이나 영화나 이 점을 아주 자연스레 잊게 한다. 험버트가 롤리타에게 "그 남자가 누구냐, 제발 알려줘" 라고 울면서 섹스하는 장면은 일면 험버트가 불쌍하다고 느끼게 하지만 사실 그건 강간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롤리타가 할 수 있는 반항이라곤 고작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는것 뿐이었으니까.

  영화는 감옥에서의 이야기가 아닌 퀼티 살해 직후의 험버트로 앞, 뒤를 장식하고 있는데, 그건 험버트가 운전을 하는 장면이다. 비뚤비뚤 흐느적하게 도로를 지그재그로 질주하는 험버트의 차는 험버트의 마음이며 험버트 그 자신 같아 보였다.

  책과 비교해서 보기 괜찮았던 영화였다. 전반에 깔려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물론 내용은 책을 읽었을때와 마찬가지로 끕끕하기 짝이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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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재미있게 볼 게 뭐 있을까 하다가 본 시트콤 키친 컨피덴셜. 시즌 1까지밖에 안하고 캔슬되어 버렸다. 난 되게 재미있게 봤는데, 미국 사람들 이런거 안 보고 대체 뭘 보는거지... 하긴 주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시트콤 치고는 요리에 관한 부분 할당이 적긴 했다. 그래도 여러 가쉽이나 요식업산업과 미디어... 그런 부분을 재미있게 다뤄서 좋았었는데. 아쉬울 따름. 위 사진에선 존 조만 빼고 나머진 다 레귤러 멤버. 존 조는 가끔씩만 해물의 달인 다혈질 테드로 나왔다. 귀여워...

  요리의 달인이지만 음주가무에 빠져 제 일을 못하던 수석 요리사 잭 보데인이, '놀리타' 라는 새로운 식당에 수석 요리사로 채용되어 최고의 식당을 만들어 가며 생기는 에피소드. 잭 보데인은 놀리타의 오너인 피노(프랭크 란젤라)의 감시 아래 자신의 알콜중독 버릇을 이겨내야하고, 사고뭉치들인 다른 요리사들을 모으고 북돋아야하며, 피노의 딸이자 매니저인 미미와의 세력싸움도 해야 한다. 그 뿐인가, 연애도 해야하지!

  한 에피소드마다 놀리타를 둘러싼 소소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잭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가며 연애도 해야한다. 연애 쪽의 비중이 요리 드라마 치고는 꽤 높았지만, 잭 보데인이라는 캐릭터의 성격이 원체 재미있어서 난 질리지도 않았다. 잭이 같은 요리사 동료인 베키(에린 헤이즈)랑 하는 연애 빼고는 다 좋았음. 베키는 레귤러는 아닌데 레귤러만큼 비중있고 많이 나왔었다. 난 별로 안 좋아했다. 남 뒷통수 치는 성격 짜증나서...

잭 보데인 (브래들리 쿠퍼)

  매력적인 수석 요리사. 알콜중독의 늪에서 헤매이느라 자기 커리어 다 날려먹고ㅋㅋㅋ 아무도 받아주지 않던 가운데 재활해가면서 어째어째 놀리타에 들어오게 된다. 피노 눈치보랴, 직원들 다독이랴... 나름 고생이 많지만 그래도 실력 하나는 있고 스캔들메이커로서의 재능도 있어서 놀리타를 어느 정도의 위치에까지 올려 놓는다.

  좀 놀았던 바람둥이 주제에 여자들에게 뒷통수 맞는 일도 꽤 있어서 보는 내내 재미있었다. 요리사들과 잔 다음에 점수 매기던 여자라던가, 같은 요리사지만 매번 잭 뒷통수를 치며 연애하는 베키라던가. 기본 바탕이 아주 막되먹은 놈이 아니라 그냥 놀기 좋아하는 타입.

  놀리타에 있으면서도 그렇게까지 성실한 타입은 아니고 여전히 자기 성격이 짙다. 빌빌 떨던 건 피노 앞에서만. 미미가 놀리타를 넘겨 받았을 때에는 놀리타가 자기 세상인 줄 알았다. 다른 데서는 허풍도 좀 있고, 허세도 있고. 어디서나 있을 법한 자신만만한 인간.

미미 (보니 소머빌)

   정말 안좋아했던 미미. 처음에는 뭔가 능력있는 사람일 줄 알았더니만 이건 그냥 찡찡대는 사고뭉치다. 놀리타의 총 매니저인 것도 순전히 아빠인 피노의 레스토랑인 탓. 나중에 아빠의 정부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놀리타를 인수받는다. 열정과 열의는 있는데 영 똘똘치가 않아서. 어느 정도냐면 라이벌 레스토랑의 요리사와 사랑에 빠져 놀리타를 말아 먹을 뻔 하기도. 이러니까 잭한테 무시당하지... 항상 잭의 위에 있으려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막판 가서 로맨스 라인이 조금 생겼지만... 시즌 종료.

스티븐 데듈러스 (오웨인 요먼)

  영국 출신의 부주방장. 잭이 신임하는 요리사고 실력도 있지만, 손버릇이 좀 안좋았다. 요리 재료 트레이드를 불법으로 하고 막... 사실 그 점 때문에 잭이 얘와 친했던 거. 하지만 새롭게 태어난 잭이 절대 하지마! 라고 말리자 깨끗이 버릇을 털어내더라. 의외였다.

  성격이 단순하고 그냥 여자와 놀기 좋아하는데... 느끼한 동시에 귀여운 성격이었다. 중간에 베키와 '누가 먼저 자달라고 하나' 하는 내기를 벌이는데 그 꼴이 가관. 서로 폴로라이드로 야한 사진을 찍어 건네기도 하고, 전화로 온갖 음란한 전화를 하기도 하는데 결론은 베키에게 물먹었다.

  별거 아닌데, 난 오웨인의 영국 발음이 진짜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영국인이라길래 놀랐다. 그리고 아직도 얘가 채식주의자라는게 안믿겨...

세스 리치맨 (니콜라스 브렌던)

  파티쉐 담당. 세스에 관해서는 엄청 다혈질이고 짓궂은 성격이라는 거가 기억난다. 중간에 다혈질인 테드가 나갔을 때, 테드 대신 들어온 요리사를 괴롭히는 꼴이 장난이 아니다. 칼로 막 찌르고. 전에 있던 레스토랑에서는 자기가 반한 여자를 다른 요리사가 채갔다는 이유로 그 요리사를 폭행했다. (하지만 사실은 테드가 채 간 거였다...)

  타냐를 좋아하는 데 눈치가 좀 없는 편. 나중에 짐이 세스에게 '타냐에게 제가 데이트 신청을 해도 될까요' 하자, 마구 비웃으며 해 봐! 하고 허락해버렸다. 사실 이 때 이미 짐은 타냐와 사귀고 있었고... 세스는 자기가 뱉은 말을 되돌릴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불쌍...

짐 (존 프란시스 데일리)

  유타에서 온 요리사. 잭이 채용한 요리사가 아니다. 놀리타 전에 있던 레스토랑이 망했을 때 딸려온 존재. 잭에게 유타 요리 먹어 보셨어요? 제발 돌려보내지 마세요! 하고 빌어서 남게 되었는데 재능은 글쎄... 노력은 하는데 주방에선 천덕꾸러기 취급에 대놓고 장난감. 성격이 나쁜 건 아닌데 멍청하고 눈치없고 그렇다. 나중에 어째어째 타냐와 눈이 맞아서 동정 딱지를 뗀다. 이 때 둘이 연애하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타냐 (제이미 킹)

   나른한 느낌이었던 웨이트리스. 웨이트리스가 맞나. 플로어 매니저? 입구에서 손님들을 받거나 하는 일을 한다. 짐과 천생연분이라 할 정도로 눈치없는 짓을 하는데, 일단 예쁘고(!) 그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서 사랑받는 캐릭터. 나도 이 캐릭터 만큼은 되게 좋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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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고 나니 아쉽다. 시즌 2 보고싶어... 하지만 이제는 무리인 캐스팅. 브래들리 쿠퍼야 이 이후로 영화도 많이 찍고 뭐 되게 잘나가고 있고, 오웨인은 요새 멘탈리스트에서 릭스비 역할로 출연 중. 으윽 릭스비 넘귀여워... 니콜라스 브렌던은 크리미널 마인드에서 가르시아의 연인으로 나오는 걸 봤다. 존 프란시스 데일리는 본즈에서 막내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존 조도 그야말로 잘나가고 있고...

  재미있었는데 아쉽다. 시즌 다 합해봐야 열 몇편이고 각 편당 짧기도 하니 미드 처음 접할 때 보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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