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의 설득
감독 애드리언 셔골드 (2007 / 영국)
출연 샐리 호킨스, 루퍼트 펜리-존스, 안토니 헤드, 토비어스 멘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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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오스틴 삼부작 TV시리즈 중 가장 음울했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결말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진행 내내 배경이 너무 어두웠고 두 주인공인 앤 엘리엇(샐리 호킨스)과 프레데릭 웬트워스(루퍼트 펜리-존스)사이에서의 감정이 확확 드러나지 않아서 보면서 아 답답해, 하고 가슴을 쳤던 작품. 앤이 일기를 쓰거나 하는 장면등으로 앤의 1인칭 시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주인공의 마음의 슬픔이나 억눌린 마음이 더 가슴에 확 다가왔다.

  크로포드 제독 내외(피터 와이트, 마리온 베일리)에게 부동산 중계업자가 한 말에 따르면, 엘리엇 집안에서 유일하게 분별있는 사람인 앤은 사람은 좋지만 이미 혼기를 놓쳐버린 노처녀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20대 중후반이긴 하지만 뭐 작중 시대인 18세기 후반, 19세기 초에는 노처녀인 듯. 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집안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마음씨 여리고 바른 아가씨. 엘리엇 집안은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 월터(안소니 헤드)와 맏언니인 엘리자베스(줄리아 데이비스)의 사치 때문에 재정에 관해서는 상황이 좋지 않다. 이전에는 부유하며 동시에 권위를 지닌 가문을 등에 업은 아가씨였지만, 지금 앤에게 남은 것은 나이와 허울 좋은 권위 뿐인 것이다.

  이런 앤은 젊은 시절 청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웬트워스이다. 프레데릭 웬트워스는 지금이야 높은 지위에 올라 성공한 젊은이이지만, 이전에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청년이었기에 당연히 앤은 집안의 반대를 맞았었다. 옆에서 멘토가 되어주는 레이디 러셀(앨리스 크리지)까지 '설득'했었기 때문에 앤은 웬트워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만다. 앤에게 그건 사랑하는 이를 자의로 떠나보낸 슬프고 괴로운 기억으로 남고 만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기억이고 추억에 불과했던 웬트워스가 앤의 동네로 오면서 앤은 웬트워스와 재회한다. 딱하게도 앤의 처지는 좋지 못하다. 아버지와 큰언니가 바스로 가서 자리잡고 있는 새 앤은 여동생 메리 머스그로브(아만다 헤일)의 집에서 잠시 더부살이 하는 처지니까.

  앤의 떨리는 가슴과는 상관없이, 당연하게도 웬트워스는 앤에게 관심이 없는 듯 굴고 앤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교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는 새 웬트워스는 메리의 딸인 루이자 머스그로브(제니퍼 하이갬)과 맺어지는 듯 하고, 루이자를 제치더라도 옆에는 헨리에타 머스그로브(로자먼드 스티븐)까지 웬트워스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앤의 심정은 더더욱 좋지 못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둘의 마음은 대화가 없이 더더욱 표류하는 배처럼 되어버린다. 

  루이자가 다치고, 앤이 바스로 돌아오면서 둘 사이의 오해는 더더욱 깊어져간다. 앤은 루이자의 혼인소식을 후에 듣게 되는데 철썩같이 그 상대가 웬트워스일 것이라 믿고 실망하며, 이 상황에서 자신의 사촌인 윌리엄 엘리엇(토비어스 멘지스)이 자신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알고 그와 맺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바스로 온 웬트워스는 반대로 윌리엄와 앤의 소문을 듣고 불쾌해하며 자신에게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때 앤이 나름의 용기를 내 그 소문이 거짓이라 말하고, 대화없이 켜켜히 오해를 쌓아가던 그들의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하게 된다. 루이자의 결혼 상대 또한 웬트워스가 아닌, 웬트워스의 친구인 벤윅(핀레이 로벗슨)이었던 것이다.

  런닝타임 내내 둘 사이의 침묵과 오해만을 보여주던 이 답답한 드라마는 끝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앤이 막판에 발바닥에 불이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내가 숨이 찰 정도(...) 그 과정에서 앤의 친구인 스미스 부인(메이시 딤블비)을 통해 윌리엄이 사실은 나쁜 사람이라는 것까지 확인시켜주다니. 그렇찮아도 바쁜데 말이다.

  원작을 안읽어봐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는데 원작 또한 이런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오해가 가득하고, 막상 주인공 남녀인 둘은 체면과 예의 때문에 자신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조차 잘 얻지 못하는 이야기.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유독 어두웠던 건 주인공 앤의 성격 탓도 컸다. 계속해서 갇혀버린 듯한 인생에 순응하니까... 계속해서 타인에게 설득당하니까 말이다. 거기에 끊임없이 제 탓을 해대는 독백 장면까지.

  결말이 해피엔딩인데도 참 멀리 돌아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했던 이야기. 다류가 말한 그대로, 요약하자면 '삽질' 일수도.


오만과 편견
감독 조 라이트 (2005 / 영국)
출연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맥퍼딘, 브렌다 블레신, 도날드 서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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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몽사몽 소설을 읽고 내친김에 영화까지 봤다. 오만과 편견은 재미있는 소설이다. 무슨 의미 붙이고 이딴거 다 제껴두고, 그냥 소설로서 재미있고 읽으면서 즐거웠다. 오래된 연애소설. 아무리 리지가 똑똑하게 구는 모습이 나와서 현대적인 여성의 모습이니 뭐니 나불거려도, 다아시의 완벽한 모습에 신데렐라를 바라는 여자들의 소망이 들어가 있지 않을리가 없잖아.

  아무튼 영화 오만과 편견은 각색이 산뜻하게 잘 된 작품. 소설의 오밀조밀한 에피소드를 제한된 시간 안에 담아내느라 아무래도 많이 깎여나가긴 했지만, 소설을 보고 봤는데도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보이는 편집이었다. 시간배열이나 인물을 대거 편집한 건 마음에 든다. 가드너 부부(피터 와이트, 페네로피 윌튼)같은 경우는 필요한 만큼 이외의 비중이 확 줄었으니까. 처음엔 너무 엘리자베스(키이라 나이틀리)와 다아시(매튜 맥퍼딘) 둘 사이의 감정에 치우쳐 있지 않나 했는데 뭐 생각해 보니 소설도 그랬어...

  엘리자베스나 다아시 모두 원작의 캐릭터가 활발하게 잘 살아났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정말 현대 여성같은 그런 모습이 있었다. 장난꾸러기 같은... 영화라서 소설 안에서만큼 진지하고 똑순이인척 하는 모습이 덜 들어간 것 같긴 하다. 그리고 다아시의 경우엔 음 다 좋았지만 매튜 맥퍼딘이 워낙에 슬프게 생긴 얼굴(...)이라 원작에서처럼 오만방자하다는 느낌은 덜 살았다. (이런 부분에서 BBC 드라마 판의 콜린 퍼스 캐스팅은 너무도 완벽했지.) 도리어 사랑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그런 모습으로 보여졌다. 사람을 나긋나긋하게 대할 줄 모르지만 자기 사랑앞에서 당당하고, 거절당하면 당황하고 그러는 모습들이 생동감 있는 것은 좋았다. 두 번에 걸친 사랑고백 씬은 정말 모든 여자들의 꿈을 다 담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빙리 씨(사이몬 우즈)나 제인(로잘먼드 파이크)의 연애는 그냥 풋풋하고 순백의 이미지. 워낙에 두 캐릭터가 순진해빠진 인물들이라... 그런데 빙리 씨 소설 보면서 느꼈던 이미지보다 더 백치같고 그랬다. 배우는 좋았지만 이미지가 그랬다고...

  소설에서 짜증나던 캐릭터들은 영화안에서도 짜증나더라. 베넷 부인(브렌다 블레신)이나 막내 리디아(지나 말론)는 영화에서도 짜증 만발. 베넷 씨(도날드 서덜랜드)는 소설보다 좀더 느긋하고 생각없다는 느낌... 메리(타룰라 라일리)나 키티(캐리 멀리건)는 소설보다는 의외로 비중을 주지 않았나. 위컴(루퍼트 프렌드)은 소설 안에서는 그래도 초반에는 아 괜찮네, 다정하네.. 이러다가 변모하는 캐릭터였는데 여기선 처음부터 그냥 짜증나고 허세있고 그런 모습이었다. 내용을 알아서였을까? 음 그건 아닌 것 같다.

  콜린스 씨(톰 홀랜더)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보기 싫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왔다. 샬롯(클로디 블레이클리)은 소설보다 간결하지만 생각보다 인상이 깊었음. don't dare judge me 이러면서 총총 뒤돌아가는 모습이 참 쓸쓸하면서도 그런 느낌. 캐서린 드 보아 공작부인(주디 덴치)은 짜증스러우면서도 오만한 모습이 잘 살아났다. 빙리 양(켈리 라일리)은 조금 심심했던 것 같다. 생각만치 눈에 띄는 얼굴도 아니었고.

  재미있었음! 소설 보고 바로 직후에 봐서 더 재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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