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나름 유명한 시리즈. 1-3화 밖에 안되는 장편 영화 정도의 길이고, 흡인력이 좋다고 해서 보았었다. 사실 이런 SF 스타일을 좋아하진 않는데... 피터 크라우즈 아니었으면 볼 생각도 안했겠지. 꽤 구성이 좋았기 때문에 후속으로 다음 이야기가 나오지 않은 게 안타까웠던 드라마. 그래도 3편만으로 큰 이야기는 마무리되긴 한다.

  비밀에 싸인 '로스트룸'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오브젝트'인 '열쇠'가 필요하다. 미닫이 문이고 열쇠를 넣는 구멍만 있다면 어디에서든지 로스트룸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열쇠. 로스트룸에서 나가고 싶을 땐 바라는 장소와 그곳에 있는 문을 떠올리면 된다. 로스트룸으로 인도해주는 장점도 있고, 문만 있다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는 것이다. 다만 주의할 점. 로스트룸에 열쇠 없이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가는 사물이건 동물이건 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만다. 예외가 되는 것은 오브젝트들 그 자체 뿐이다.

  로스트룸 안에서 오브젝트들은 아무런 힘이 없는 평범한 물체이지만, 바깥 세상에 나온 오브젝트들은 제각기 기묘한 힘을 발휘한다. 열쇠가 어떠한 문에서 쓰든간에 로스트룸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각각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오브젝트들은 파괴 불가능하다. 오브젝트들은 로스트룸 안에서만 파괴 가능하지만, 파괴한 순간 다른 어떤 물건으로 대치되어 그 속성이 보존된다. 오브젝트들은 그 하나만으로는 하찮은 기능을 할 때도 많지만, 여러 개가 복합적으로 보였을 때 숨겨진 또 다른 기능을 발휘하기도 한다.

  오브젝트들은 서로가 어디있는지 텔레파시처럼 알 수 있는 그러니 기능이 존재한다고 한다. 로스트룸에서 만들어진 유일한 사람 오브젝트인 '소유자(팀 귀니)'가 오브젝트들의 텔레파시를 피해 떨어져 사는 이유가 이것. 아, 이 물건들의 원래 소유자인 이 사람은 오브젝트들처럼 변하지 않고 파괴되지 않는다. 죽을 수도 없고 늙을 수도 없다. 상당한 장점처럼 느껴졌지만, 사실은 로스트룸에서 모든 오브젝트들이 시간에 상관 없이 리셋되는 것처럼 이 사람의 인생도 리셋되어버려서 아내조차 이 사람의 존재를 잊게 된다. 외롭겠네요...

  드라마 내에서 오브젝트를 다루는 사람들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오브젝트의 위치를 추적해서 알려주고 돈을 버는 수지 강(마가렛 조)이나 물건과 관련된 정보다 물품을 파는 수드(제이슨 앤툰)같은 사람도 있고, 물건을 숭배하고 모조리 모아 신을 영접하려고 하는 '재통합 교단'과 물건으로 인한 피해를 막으려는 '군단'같은 단체도 있고, 그냥 소소하게 혼자 물건을 사용하거나 물건을 혼자서 모으는 사람도 있다.

  뭐라 부를 수 없는 1961년의 어떤 '사건' 이후 로스트룸이 만들어졌으며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로스트룸이 발견된 당시 물건을 모으고 실험하던 '콜렉터스'라는 단체도 있었지만, 1966년에 벌어진 악몽같은 사고 이후 해산한다.

조 밀러(피터 크라우즈)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형사 조 밀러. 딸 애나와 둘이서 살아가는 싱글 대디. 범죄사건을 해결하다 어쩌다 보니 로스트룸의 '열쇠'를 얻게 된다. 우연찮게 손에 넣은 이 열쇠 탓에 오브젝트를 노리는 여러 단체와 사람들의 표적이 된다. 거기까진 좋았고 별로 조 자체도 그다지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는데 모든 것이 리셋되어버리는 로스트룸에 딸 애나가 들어가서 없어져버리기에 딸 애나를 되찾기 위해 오브젝트들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오브젝트에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며 협력과 배신관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적당히 유순하면서도 능글능글한 성격인데 애나 때문에 필사적이 되어가는 모습이 좋았음.

애나 밀러(엘르 패닝)

  조 밀러의 딸. 뭐 커다란 역할을 한다고는 할 수 없는데, 처음 로스트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던 조 밀러에게 물건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알려준 사실을 자신을 통해 그대로 조 밀러에게 보여주고 만다.

제니퍼 블룸(줄리아나 마굴리스)

  '군단'의 일원. 처음엔 로스트룸의 열쇠를 빼돌리기 위해 조에게 접근하는데, 나중에 가서는 조의 가장 큰 후원인이 된다. 연인관계 비슷한 것도 되고. 군단의 일원이던 오빠가 오브젝트들 때문에 미쳐서 정신병원에 있다. 그 때문에 이 군단 일을 시작한 것 같은데, 그런거 치고는 엄청 열성인지도 모르겠고... 조를 좋아하는 것도 처음엔 좀 애매했으니까. 사람을 짧은 시간 동안 잠재우는 '손톱 다듬는 물건'을 가지고 있다.

윌리 자브로우스키(피터 제이콥슨)

   감초같은 조연 윌리. 사람을 뉴멕시코  갤럽으로 보낼 수 있는 '버스표'를 가지고 있다. 오브젝트와 관련된 다른 단체와도 상관없고 그냥 혼자서 오브젝트를 사용하는 걸 즐거워 하는 사람. 그걸로 나쁜 짓을 하는 거라곤 자기를 괴롭히거나 성가시게 하는 사람을 갤럽으로 날려보내는 것 정도이다. 병원에서 만나게 된 조를 몇 번 갤럽으로 날려보냈다가 결국은 잡히는데, 그 뒤로 오브젝트에 대해 조에게 기초적인 설명을 다 해준다. 그에 관련된 사람이나 단체에 대해서도. 심성은 착하다고 봄.

하워드 '위즐' 몬태규(로저 바트)

  첫 시작에 등장하는 위즐. 무엇이든 심을 대면 전자렌지 처럼 익혀버리거나 폭파시킬 수 있는 '볼펜'을 가지고 있다. 얘도 오브젝트를 모으고 싶어하긴 하는데 기력이 좀 달리는 듯. 애나를 로스트룸에 갇히게 한 원흉인 탓에 조가 아주 안 좋아 한다. 뒤에 조를 도와주는데도 별로 안 좋아함. 오브젝트 다 뺏기고 거의 거지같은 몰골이 되었었다. 뭐로 보나 선량한 타입은 아니고 머리 굴리는 타입.

마틴 루버 박사(데니스 크리스토퍼)

  조와 같은 경찰서에서 일하는 사람인데, 알고 보니 평범한 사람이 재통합 수도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재통합 수도회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하는 꼬라지가 결코 성실치는 않아서 악한 사람에 가까웠다. 조에게 살인 누명도 씌우고 악한 짓을 마다하지 않는 걸 보면 이미 훌륭한 재통합 수도회의 일원. 하지만 그렇게 들어간 재통합 수도회에서는 머저리 취급을 받는 느낌.

칼 크로이츠필드(케빈 폴락)

  '군단'의 일원이었지만 물건을 혼자서 모으게 된 사람. 따라서 여러가지 오브젝트를 가지고 있다. 기억의 단편을 현실처럼 보여줄 수 있는 '쿼터'라던가, 달걀을 완숙시키는 '손목시계' 같은 거. 사채업자 같은 느낌인데 돈도 많고 냉정하고 그렇다. 처음에 완전 악한 이처럼 보여졌었는데, 알고보니 물건에 이렇게 집착하는 이유는 백혈병에 걸린 아들을 고치기 위해서다. 라는 모습을 보여줘서 '잠시' 훈훈했었다... 나중에 조와 협력해서 모든것을 치유시키며 파괴시킬 수도 있는 '유리눈'을 손에 얻는다. 알고 보니 아들은 이미 애저녁에 죽었고, 조가 보던 백혈병에 걸린 아들은 '쿼터'를 통한 기억의 단편이었다. 비극적인 결말의 소유자. 이거 참 마냥 욕할 수도 없는 인물이었다.

  3편 분량에 꽉꽉 이야기가 들어차 있었음. 나중에 '소유자'의 부탁으로 로스트룸 안에서 소유자를 죽이고 소유자를 이은 오브젝트가 되는 조. 오브젝트가 되었기에 로스트룸에서 사라지지 않게 되어 열쇠 없이 방에 들어가 딸 애나를 데리고 나온다. 제니퍼와 함께 셋이서 길을 떠나는 걸로 끝이 난다.

  글쎄 조의 이야기만 치면 나름 깔끔한 결말이었는데, '군단'이나 '재통합 수도회'의 내용을 더 담아 후속작이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 마틴 루버가 살아있었고, 여러가지 더 써먹을 수 있는 소재였는데. 조금 아쉬움. 그래도 참 재밌었구나.

  HBO의 식스 핏 언더. 5개 시즌, 각 시즌 당 12편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길이의 드라마이다. 그거에 비해선 굉장히 오래 뒤에 시즌 피날레를 보았다. 그리고 되게 먹먹한 기분에 사로잡혀 조금 우울해 했다. 이건 새드 엔딩이 아닌데, 그렇다고 우리 정말 행복하게 살았어요. 라는 식의 해피 엔딩도 아니다. 어쩌면 그건 이 드라마가 우리의 삶 자체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생이라는게 해피니 새드니 정해진게 아니니까.

  사실 식스 핏 언더는 딱히 보려고 했던건 아닌데, 덱스터의 마이클 C. 홀이 나온다는 소리에 혹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은 상당히 만족한다. 사람들이 월메이드 드라마, 월메이드 드라마 해서 얼마나 잘만들었나 했는데... 이야기 구조가 상당히 좋고 왔다갔다 하는 면도 없어서 마음에 들었다. 개인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블랙코미디와 싸늘한 현실 사이를 줄타며 세밀하게 그려낸다. 또한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감정교류와 다툼, 화해, 얼버무림 등의 과정을 상당히 현실성있게 그려서 마음에 들었다.

  드라마 자체가 '장의사 집안'을 다루고 있으므로 매 화 어떤 이의 죽음을 다루게 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우울해지는 것은 아니고, 가족들 사이의 관계, 인물과 인물들 사이의 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뒤얽혀 상당히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장의사였던 아버지인 나다니엘(리차드 젠킨스)가 죽은 후 남은 가족들의 이야기로 드라마는 시작되는데, 이로 인해 시카고에 살던 장남 네이트(피터 크라우즈)가 집으로 돌아오면서, 어머니 루스(프란시스 콘로이), 아버지를 도와 장의사 일을 하고 있던 남동생 데이빗(마이클 C. 홀), 다소 철없는 여동생 클레어(로렌 앰브로스)... 온 가족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의 간격은 쉽게 메워지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것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있고, 온 가족의 연애사도 꽉꽉 이어진다. 아, 피셔 앤 선즈에서 일하는 장의사인 페데리코(프레디 로드리게즈)의 이야기도 끼어있다.

  가족들의 삶이라야 뭐.. 이것저것 삶 자체에 대한 있을법한 고민이 많다. 직업에 관련해서도 그렇고, 주변의 삶도 그렇고 특히 연애에 관해서. 이놈의 가족들이 연애를 어찌나 쉼없이 하던지... 거기에 다 감정적으로 힘들고 끈적거리는 연애들만 가득 차 있어서 연애만 보는 것도 힘들더라. 연애의 현실을 다루는 건 웬만해선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가장 짜증났던 건 역시 네이트와 브랜다(레이첼 그리피스)사이의 끈질긴 연애 그리고 그 결말까지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리사(릴리 테일러)에게 동정심은 안들더라. 리사는 네이트 뿐 아니라 내게도 매력없는 여자였다. 네이트는 연애하는 꼬라지를 보면 가끔가다 정이 확확 떨어지는 구석이 있다. 오히려 클레어 쪽이 낫게 보이기도. 하지만 클레어 역시 만만치 않은 막장임은 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특히 시즌 초반에는 진짜 철없음의 정도가 심해서 보기 괴로울 정도였다. 

  루스 캐릭터는 나중 갈수록 기분이 나빴다. 자꾸 이기적이란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시즌 쯤에 있는 그녀의 히스테리에 질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면이 따뜻한 엄마였던 것은 확실했다.

  가족들 중에선 데이빗이 그나마 가장 좋았는데, 직업적으로도 나름대로 소신있는 면이 있었고 연애에 있어서도 보기 좋았어서. 게이 파트너인 키스(매튜 세인트 패트릭)와 갈라섰다가 합치면서의 과정들, 입양까지의 그 모든 과정이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어주는 모습들이 보여서 좋았다. 연애 문제로는 다른 커플들에 비해 보기 매우 좋았음. 

  페데리코는 피셔 집안을 깔보는 모습이 있는, 은근 밉상인 장의사였는데 나중 갈수록 정이 들긴 들더라. 페데리코 부부는 잘나가다가 폭삭 깨졌던 게 재미있었다. 바네사(저스티나 마샤도)가 다시 받아주면서도 온전히 받아주지 않았던 그런 느낌까지도 잘 살렸었다.

  다른 애들은 뭐 잘 기억나는 애들 없고.. 빌리(제레미 시스토) 정도가 인상 깊었음. 정신병자인데 막 미워하기도 참 그런 캐릭터였다. 시즌 후반부 가서는 더욱 정들었고. 배우가 정신병자 역할 너무 잘하더라. 미묘하게 진짜 같았다ㅋㅋㅋ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식스 핏 언더는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아있고 침울한 게 있는데 마지막 시즌 가서는 진짜 폭발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면, 클레어가 뉴욕으로 떠나는 장면에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보여주는데 아 진짜 그게 너무 인상 깊었다. 다른 가족들이 죽는 모습들도 다소 충격적인데 키스가 그런 방법으로 죽을 줄 몰랐다. 그리고 데이빗이 양로원같은데서 젊은 키스를 보는 장면에서 울컥 눈물이 나오더라. 죽으면서 먼저 간 사람을 그런 식으로 보는 거가 마음을 자극했다. 루스 죽을 땐 조지가 그렇게 슬퍼할 수가 없더라. 나머진.. 클레어가 그 변호사랑 이어져서 좋았고, 데이빗 아들 중 한명 게이 된거에서 한참 웃었음. 남자 파트너랑 손잡고 가는거. 아마도 큰아들이 아닐까 싶다.

  여운이 깊다.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생각할 거리도 주었고, 여러 모로 정말 잘 만들어진 드라마였다. 인물과 인물이 이어진 모든 구성 요소들, 우리 삶 속에서의 죽음. 죽은 뒤의 삶까지 모두 좋았다.

매우 좋았던 마지막 장면. 데이빗이 죽으면서 키스 보는 부분은 아직도 울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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