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왼발 (1990)

My Left Foot 
9.5
감독
짐 셰리던
출연
다니엘 데이 루이스, 브렌다 프리커, 커스틴 셰리던, 이나 맥리암, 시릴 쿠삭
정보
드라마 | 영국, 아일랜드 | 98 분 | 1990-12-00


  아카데미 받은 연기나 봐야지 하면서 봤는데 아 진짜 주연상 백번 줘도 아쉽지가 않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로, 크리스티 브라운이라는 더블린 출신의 작가/화가의 삶을 다룬 이야기. 그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아서 자신의 의지대로 가눌 수 있는 것이라고는 왼발밖에 없었다. 즉 불편한 몸을 가지고 작가와 화가가 되었다는 이야기. 게다가 그의 집은 노동계급인지라 그에게 휠체어를 떡 하고 사줄만한 돈조차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무지막지한 벽돌공 아버지와 줄줄이 딸린 형제들, 딱 보기에도 고되어 보이는 어머니. 크리스티 브라운의 삶이 어떤 것이었는지 보이지 않는가.

  영화는 크리스티 브라운(다니엘 데이 루이스/아역: 휴 오코너)의 어릴 적부터의 삶을 보여주고 그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보여주는데, 이 인물을 다룰 때에 개인의 장애 뿐 아니라 그가 가진 배경이란 것도 아주 중요하게 작용하는지라 보는 내내 흥미로웠다. 중간 중간 뚝뚝 끊기는 듯한 편집이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이 가진 힘이 강해서 보는 내내 안쓰럽고 또 힘을 내라고 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애가 어느정도 클 때까지 브라운 가 사람들은 크리스티가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 그 때문에 온 힘을 다해 쓰러졌던 어머니(브렌다 프리커)를 구해냈을 때도 사람들의 오해만 사더라. 그렇게 찡한 장면이 따로 없었는데. 크리스티가 MOTHER를 바닥에 써냈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훌쩍.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낸 뒤 크리스티의 삶은 아마도 조금은 더 나아졌던 거 같지만... 그래도 열아홉이 되도록 휠체어 하나 없었으니 그의 삶과 나아가 그 가족들의 삶이 보였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건 그의 어머니와 그의 형제들이 그에게 아주 좋은 가족이었다는 것. 아버지는 강압적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쯤 가서는 좋은 모습도 보여주었고.

  크리스티가 자신의 꿈을 제대로 펼칠 수 있고 좀 더 평범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준 닥터 엘렌 콜(피오나 쇼우)의 경우엔 어떻게 보면 구원자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대상이기도 했는데, 뭐 후자 쪽이야 크리스티 본인이 극복해야 할 문제였고... 엘렌 쪽의 문제라면 미세스 브라운이 걱정했던 것처럼 희망을 갖게 내버려둔 점일까. 근데 희망이 나쁜 건 아니잖아. 이 정도의 좌절은 사람이라면 한번씩 겪는 거고... 다만 크리스티에게는 그게 남들의 것보다 훨씬 크게 다가왔던 게 문제였지만. 나쁜 사람같진 않았다... 그보다는 크리스티를 도우려고 노력했던 그 모습들이 더 크게 보이더라. 그런 것들을 극복했으니 크리스티 또한 엘렌을 다시 만나고 그랬겠지.

  캐릭터가 마냥 착한 캐릭터도 아니었고(그렇지 현실이니까) 마냥 나쁜 일만, 좋은 일만 있지도 않은 그런 삶의 이야기여서 좋았다. 그리고 연기가 정말 무척이나 좋았다. 아약이었던 휴 오코너의 연기도 기가막혀서 손을 막 쥐게 되었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뇌성마비 연기야. 말할 필요도 없이 좋았던 그런 영화.

노생거 사원
감독 존 존스 (2007 / 영국)
출연 펠리시티 존스, 제이제이 페일드, 리암 커닝엄, 캐더린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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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에서 제작한 제인 오스틴 시리즈 3부작 중 한 편. TV영화라 할 만한 길이였고 세 편 다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제일 처음 본 게 노생거 사원. 그 다음이 맨스필드 파크, 설득 순으로 봤다. 세 편 나란히 보고 나면 노생거 사원이 제일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순진하게 자란데다 소설을 많이 읽어 망상벽을 가진 소녀 캐서린 몰란드(펠리시티 존스)가 생소한 도시인 바스로 오면서 겪는 사랑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

  몰랜드 부부(게리 오브라이언, 줄리아 디어든)도 가난한 집은 아닌 거 같은데 집에 원체 애가 많아서 호화롭다던가 그런 삶은 아니다. 앨런 부부(데스몬드 바릿, 실베스트라 르 토젤)는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캐서린을 많이 예뻐하는 듯, 얘를 데리고 가서 바스에서 지내게 해 준다. 바스는 18~19세기 초 런던을 벗어나 영국 상류사회를 이끌던 중심지. 당연히 꿈많은 소녀에게는 딱 적절한 도시이다. 게다가 캐서린은 꿈이 많다 못해 어찌나 망상벽이 큰지 소설에서 읽은 부분을 자기 이야기로 치환하여 상상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보여준다. 십대 소녀라는걸 감안하면 뭐 그래도 귀여운 수준이긴 하다만.

  목사가 될 예정인 틸니 집안의 차남 헨리 틸니(JJ페일드)와 처음 만나 호감을 갖지만, 틸니 가문에 대한 안좋은 소문 탓에 캐서린은 이모저모 망설이게 된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사귀게 된 친구이자 미래의 새언니가 될 예정인 이자벨라 쏘프(캐리 멀리건)는 자신의 오빠 존(윌리엄 벡)과 캐서린을 맺어주기 위해 온갖 술수를 써대고, 캐서린은 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근데 이게 별로 심각하지는 않고, 일단 호감에 있어서는 헨리가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냥 쏘프 남매에게 휘둘리는 정도? 사실 존과 이렇다할 연애 파트는 없었고, 쏘프 남매는 어떻게 봐도 너무 별로라서 거 참. 캐서린이 그렇게 순진해빠지지만 않았어도 정체를 금방 알아챘을 거다.

  틸니 삼남매 중에서 차남 헨리와 삼녀 엘레나(캐서린 워커)는 유독 끈끈한 형제애를 보여줘서 좋았다. 특히 엘레나는 정말 현명해 보였음. 이렇게 두 남매는 착하고 좋은 심성을 보여주는데 반해, 아버지인 틸니 장군(리암 커닝햄)과 장남인 캡틴 틸니(마크 다이몬드)는 속물 근성을 가진 고위직 그 자체. 둘다 뻔뻔스런 모습이 짜증나긴 하는데, 이 모습 때문에 프레데릭에게 이자벨라가 물먹은 걸 생각하면 좀 좋았기도 했다. 캐서린의 오빠 제임스(휴 오코너)와 사귀던 이자벨라는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프레데릭에게 갔다가 바로 차이니까(...) 사실 뭐 제임스 입장에서는 그런 집안과 엮이지 않은게 차라리 다행.

  주인공 남녀의 연애노선 자체는 사실 별로 굴곡이 없었다. 둘이 서로에게 빠져있는 모습이 너무 분명했으니까. 틸니장군이 자신의 저택인 노생거 사원으로 초대했을 때도 캐서린과 틸니 남매는 잘 지냈었고, 막판에 캐서린의 망상벽으로 인해 헨리가 화를 냈던 것도 잠깐의 분노에 불과했으니. 캐서린이 노생거 사원에서 갑자기 쫓겨나게 되는 위기도 사실 헨리와 관련된 일은 아니었다. 틸니 장군 그 속좁은 영감이 캐서린네가 부유치 않다는 걸 알고 금세 맘을 돌려버린 것일 뿐. 아무튼 얘네 두 남녀의 사랑은 그다지 고난이 없는 편이었다. 마지막에 헨리가 찾아올 거라는 것도 자연스레 알 수 있었을 정도였다.

  시리즈 중 가장 생기있고 발랄했던 이야기. 확 재미있진 않았지만 나름 캐릭터들이 가진 싱그러운 매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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