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파괴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열린책들,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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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완전 재밌어ㅋㅋㅋㅋㅋㅋ 산 거 하나도 후회 안할 정도로 재밌었다. 노통브 소설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단연 '앙테크리스타'인데, 그 소설을 읽는 내내 느꼈던 짜증과 스트레스와 그에 걸맞는 결말이 내게 환희와 웃음을 줬기 때문이다. 사랑의 파괴는 어느 면에서 앙테크리스타와 참 닮아 있는 소설인데, 결말이 앙테크리스타와는 다른 방향으로 갔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재밌었다. 이 소설 나름대로의 자기파괴적인 폭발이 너무 웃겨서 비식비식 웃었다. 그런데 이건 소설의 주인공이 7살짜리여서 웃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조금만 더 나이가 많았어도 스트레스를 주체할 수 없었을 거다. 어린 시절에 하는 치기어린 생각과 충동적인 사건들은 거의 모두 용서받을 수 있다.

  소설의 주인공은 고작 7살인 여자애 '나'. 중국 상하이의 외인지구에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며 놀던 꼬마애가, 자신이 놀던 부류와는 전혀 다른 고고한 '엘레나'를 만나면서 사랑을 느낀다. 전쟁놀이를 혐오하고 모두를 깔아보는 듯한 엘레나에게 나는 매료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과 다른 대상에게 경외감을 느끼듯이.

  이 소설이 재밌는게 7살짜리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거다. 마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수준이 7살짜리에게 머물러있음에도 본인이 아는 것을 확신하고 의심하지 않는다. 이 아이가 보는 시선 안에는 중국 사회, 혹은 자신을 둘러싼 아이들의 사회, 어른들의 사회를 보는 시선이 담겨있는데, 또 신기하게도 이게 진실을 꼬집어서 그런 부분도 재미있었음. 문화혁명기의 중국사회를 당돌한 외국인 꼬마가 바라보는 모습은 신선했다. 아이들 사회의 전쟁놀이도. 그러나 역시 이 소설의 진수는 사랑이니라... 사랑. 얼마나 감미로운 단어야 그래.

  자존심을 다 내버리고 사랑을 얻으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운동장을 팔십바퀴를 뛰도록 사랑을 외쳐도 돌아오는 것은 냉소 뿐이다. 그런 그녀가 엄마에게 받은 충고대로 엘레나를 무시하면서 사랑을 얻어가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또 흥미롭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애에게 진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낼 수 없음으로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니. 아이러니하지만 또 있을 법한 상황. 그래서 그런가 이런 고난을 거쳐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모든 걸 털어놓는, 예정된 파괴의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다. 결과도 생각만치 비참하지 않았다. 그냥 부끄러운 기억 하나와, 그로 인한 교훈을 얻었을 뿐. 그런 기억은 누구나 있잖아.

  즐거웠음. 재밌게 봤고, '나'가 느끼는 지겨운 사랑에 대한 묘사는 굉장히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 내 사랑. 넌 나 때문에 고통을 받는 거야. 내가 고통을 좋아해서가 아냐. 네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편이 더 좋겠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 네게 행복을 가져다 주기 위해서는 우선 네가 나를 사랑해야 하는데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잖아. 하지만, 네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네게 불행을 주는 건 가능하거든. 그러니까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서 먼저 네가 불행해져야 하는거야―이미 행복 속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다시 행복하게 만들겠니? 그러니까 나는 널 행복하게 만들 기회를 얻기 위해서 먼저 널 불행하게 만들 수밖에 없어. 어쨌든 중요한 건 그게 나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사실이야. 사랑하는 엘레나, 내가 너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10분의 1만이라도 네가 내게서 느낀다면, 네가 고통스러워함으로써 날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넌 기꺼이 고통을 받아들일텐데.
  나는 기쁨으로 정신이 몽롱해져 있었다.

『사랑의 파괴』, 아멜리 노통브, 열린책들, 1999, pp. 6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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