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
감독 바랫 낼러리 (2008 / 영국)
출연 에이미 아담스,프란시스 맥도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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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포스터만 보고 에이미 아담스가 페티그루인줄 알았잖아... 아니었네요. 아무튼 1930년대에 나왔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한다. 책을 안봐서 책이랑 비교는 불가능하고. 직장을 잃고 갈 데 없는, 보수적인 미스 페티그루(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우연히 미국인 연기자 델리시아 라포스(에이미 아담스)의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 겪는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것 답게 진행이 빠르며 동시에 재치 있었다. 다만 내용이나 사건의 진행, 해결 자체는 좀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델리시아는 사랑스럽다. 바람둥이에다가 꿈만 화려한 여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 삶의 바탕에 깔린 가난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법도 했다. 극단주의 아들인 필(톰 페인), 막대한 부를 지닌 클럽 주인 닉(마크 스트롱), 가난하지만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열정있는 피아니스트 마이클(리 페이스) 중에서 누굴 선택할지는 스토리상 자명하니 일이었지만, 이게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면 누굴 선택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삶은 한번 뿐이라는 이유로 마이클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허영심 강하고 꿈 많은 소녀가? 하긴 인간적인 면에서는 마이클 쪽이 가장 낫긴 했다. 필은 너무 어렸고(행동거지까지), 닉은 너무 강압적인 마초 이미지라 싫었음. 델리시아가 조를 두고 바람을 피우면서도 뻔뻔하게 굴었던 에디스(셜리 헨더슨)처럼 아예 속물적이진 않은 사람이라는 데 희망을 걸어야 한다니.

  페티그루에게는 꿈과 같은 하루 동안의 이야기. 순발력있고,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점에선 좋았지만 사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더라. 그녀의 구원은, 그 실마리는 그녀가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남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슬펐다. 란제리 디자이너 조(시아란 힌즈)는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왕자님 같은 위치에 서 있어서 썩 괜찮은 해결 방법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너무 동화적이고... 페티그루에게 닥친 가난이라는 문제상황의 해결이 좀 아쉬웠다.

  보고나서는 비판할 게 있다만, 그래도 볼 때에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달콤하고 상냥한 이야기.
2009/12/17 - 싱글맨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맨
감독 톰 포드 (2009 / 미국)
출연 콜린 퍼스,줄리안 무어,니콜라스 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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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뒤늦게 본 편. 책은 덤덤하면서도 음울하게 진행되었는데, 영화는 이 느낌을 또 화려한 톤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음울보다는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었다. 이 화려한 담담함에도 불구하고 조지(콜린 퍼스)가 과거 짐(매튜 구드)이 죽었던 비극을 떠올릴 때면 우울함이 확 배가되어 다가오는게 신기할 지경. 평소의 느낌들은 화보를 하나하나 이어붙인 듯한 섬세함이 있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다가도 몇 몇 장면에서 터질듯이 분출되어 오히려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짐을 잃은 뒤 삶에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조지는 차분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집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정리하고, 친구를 만나보는 날. 이 날은 평소와 일관되게 같으면서도 약간씩의 변주가 있다. 왜인지 눈에 띄는 제자 케니(니콜라스 홀트)와 이야기를 하는 것, 스페인 청년 카를로스(존 코타자레나)과 만나게 되는 것, 끊임없이 집에 오라고 재촉해대는 친구 찰리(줄리안 무어)의 집에 가서 조촐히 파티를 하고, 잠시 바에 나갔다가 케니와 우연히 마주쳐 바다에 뛰더든다던가 하는.

  그런 일상의 변주는 대부분 의미없이 지나가지만 케니와의 만남만큼은 의미를 갖는다. 그에게서 생기를 얻고 그에게 느끼는 감정을 통해, 이전에 짐에게서 느꼈던 활기를 다시 얻게 된 조지는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힘을 얻는다. 그러나 운명같이 행복에 젖은 그 날밤 조지는 쓰러져 짐과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찰리의 역할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포스터에 줄리안 무어의 역할이 강조된 듯해 신기했다. 찰리는... 그냥 두고 보기엔 안타까운 면이 있는 헤테로 친구. 찰리가 '정상적인' 연애 운운할 때는 조지가 흥분한 것처럼 나도 신경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 외에는 지켜주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케니는 조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인물은 아닌 거 같지만 젊음의 풋풋함만큼은 잘 느껴지더라. 과거의 모습들을 통해 드러나는 짐의 모습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다정했는지 느껴져 좋았다. 조지의 생활하는 모습들은 건조해서 재미가 덜했지만, 짐과 있는 장면들에서 나타나는 생동감이 너무 좋았다. 짐을 잃었을 때의 그 북받치는 감정들도.

  영화가 화보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건축물이나 소품들도 그랬지만 등장하는 인물들도 만만치 않아서. 애인을 막 잃어 상심하면서도 그 감정을 아무데서나 드러내지 않는, 뻣뻣하면서도 섬세한 조지 역에 콜린 퍼스가 등장한 것도 그랬지만 그의 친구인 여자라는게 줄리안 무어요, 죽은 애인은 매튜 구드, 가슴을 흔들어놓는 학생에는 니콜라스 홀트라니. 심지어 같이 일하는 동료로 리 페이스가 나오질 않나, 우연히 만나게 되는 스페인 청년 카를로스가 존 코타자레나. 옆집에는 지니퍼 굿윈이 살고 있습니다... 남편으로 나오는 테디 시어스도 만만치 않은 얼굴. 인물부터 소품, 배경까지 이러하니 화보 느낌이 안날 수가 있나.

  마지막에 짐이 나타나서 조지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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