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톤먼트 (2008)

Atonement 
8.2
감독
조 라이트
출연
제임스 맥어보이, 키이라 나이틀리, 로몰라 가레이, 시얼샤 로넌,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정보
로맨스/멜로, 드라마 | 영국, 프랑스 | 122 분 | 2008-02-21


  제목 봤을 때부터 이게 뭔가 행복한 이야기가 될 거 같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영화 절반가량 와서는 더 그렇게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막판 반전이랄까, 실제 이야기가 드러났을 땐 그냥 그렇구나... 하고 수긍하게 되었다. 이언 매큐언 소설 원작인데 괴로워서 원작을 읽을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영화 속에서도 액자식 구성으로 된 틀이 나오는데 아무래도 사건을 보고 묘사하는 것이, 주인공인 세실리아(키이라 나이틀리)나 로비(제임스 맥어보이)가 아닌, 브라이오니(시얼샤 로넌/로몰라 가레이/바네사 레드그레이브)의 시선이기 때문에 사건 자체가 객관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다만 더 낭만적이고, 더 애틋하고, 그래서 더 안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브라이오니의 비뚤어진 마음 탓에 로비가 감옥으로 들어가는 그 부분까지의 내용은 특히 더 그랬다. 열세살 아이가 저지른 한 번의 거짓말은 로비의 운명 뿐 아니라, 세실리아와 로비의 사랑을 터무니없이 흔들어 놓으니까. 브라이오니가 로비에게 느꼈을 사랑과 그만큼의 배신감은 알겠지만 그냥 그렇다 하고 넘어가기엔 질이 참 나빴다. 그렇기에 브라이오니가 이 '속죄'를 써내려간 것이기도 하겠지만.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브라이오니 탓에 서로 갈라지게 된 연인은, 군인과 간호사가 되어 다시 만나지만 그마저도 그 시간이 길지 못했다. 오년이 지난 뒤까지 서로에 대한 마음을 간직한 채였고, 그 후 서로가 죽을 때까지 그러했을 연인이라 마음이 안타깝고 그랬다. 로비의 계급이 높았다면 처음의 그 오해가 생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안타까움. 계급 생각하니까 막판 쯤에 네가 한 일을 다시 바로잡으라면서, 집안의 일꾼이었던 대니(알피 알렌)의 탓이 아니었냐는 식으로 이야기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고것도 좀 마음에 걸리더라. 결국 그런 일을 저지를 만한 대상으로 잡는 게 하인이었으니까.

  열여덟이 되었던 브라이오니가 그 때마저 언니를 찾아가지 못한 두려움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냥 가볍게 넘기기엔 너무나 큰 일을 저질렀으니까. 시간이 흐르고 점점 자랄수록 자신이 한 일의 크기가 자신의 안에서 커져갔을 텐데 그 기분이 어땠을까. 그렇다 해도 한 사람의 인생을 망쳐버린 걸 결국 마주보지 못했다는 게 괘씸하긴 했다. '사건'의 주체였던 폴 마샬(베네딕트 컴버배치)과 로라 퀸시(주노 템플)도 괘씸하긴 마찬가지. 하지만 그래도 애넨 자신들만의 이유라도 있었지. 브라이오니는... 짜증난다.

  소리와 화면 탓에 약간 엉성할 수 있는 줄거리가 확확 와닿았다. 특히 그 타자기소리와 얼굴이 클로즈업 되는 장면은 서늘하고 그렇더라. 열세살의 브라이오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제가 봤어요. 하는 장면의 클로즈업과 타자기 소리, 동시에 로비가 잡혀가면서 그의 어머니가 차를 내려칠 때 나던 탁음이 뒤섞였을 땐 내 심장이 쿵쿵 뛰었다. 화면과 사운드가 좋았다.

  나이가 들어 작가가 된 브라이오니가 써내려간 소설이 그들에 대한 참된 속죄가 될 수 있을까. 그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소설 안에서라도 행복을 주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하지만 실제의, 현실의 사람들은 기분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고 오히려 먹먹한 기분이 더 들게 하는 영화였다. 단순히 그들이 함께 할 수 없었다는 현실보다, 그들을 그렇게 몰아갔던 환경이 안타까워서.
2011/10/09 -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 존 르 카레 (열린책들, 2005)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감독 토마스 알프레드슨 (2011 / 영국,프랑스,독일)
출연 게리 올드만,콜린 퍼스,톰 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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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렛 미 인의 팬이라는 건 이 영화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 된다. 한국에서 그다지 흥행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 그럴만 하다 라는 생각을 했다. 감독의 전작은 그렇다치더라도, 원작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은 '스파이'라는 소재를 듣고 007 시리즈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영화는 액션이 난무하고 박진감 넘치는 스파이 영화가 아니다. 박진감이라는 게 사람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은 내 딴에는 아주 조용히 숨을 죽이고 감상해야 했던 그런 영화였다. 원작을 봐서 모든 걸 알고 있었음에도 연출 방식과 전개 방식에 만족한 편이었다. 아, 그래도 짐 프리도(마크 스트롱) 캐릭터의 사소한 변화에 관해서는 섭섭한 마음이 남아 있기는 하다만...

  게리 올드만이 조지 스마일리에 캐스팅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잘 어울리겠다 생각은 했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더 마음에 들었다. 카를라를 회상하는 조지 스마일리의 모습은 책 속의 그것이었는데, 아무튼 회상 장면 하나 없이 그를 떠올리는 게리 올드만의 연기가 탁월했다. 좁은 어깨에 지워진 무거운 세월과 짙은 피로가 보이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 장면이랑, 피터 길럼(베네딕트 컴버배치)이 연인과 헤어지고 나서 우는 장면. 짧은 데도 참 인상에 남더라.

  피터 길럼 하니까, 피터가 자료실에서 자료를 빼오는 장면도 좋았다. 최대한 덤덤하게 그리고 어떻게 생각하면 얕은 수를 가장 교묘하게 썼어야 하는 거였는데... 그거 너무 잘해서 좋았음. 그 와중에 긴장할 만큼 긴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고. 이 첩보 시리즈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건 조지 스마일리가 아니라 피터 길럼이었기 때문인가 보면서 더 애정을 주었던 것도 같다.

  책보다는 영화가 더 액션이 있었다. 그렇다고 물론 다른 스파이 영화처럼 그런 건 아닌데, 그래도 책에서 읽던 것과는 차이가 있었다. 특히 리키 타르(톰 하디)의 작전 과정과 짐 프리도의 고문 과정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리나(스베트라나 코드첸코바) 캐릭터 다뤄지는 거 보고서 깜짝 놀랐다. 아니 뭐 이리나를 이리저리 곱게 다뤄주어야 한다는 건 아닌데, 그래도 좀 놀랐다.

  정보국 고위 간부급에 침투된 스파이를 찾아내는 만큼 그 고위 간부급 캐릭터들도 가볍게 다뤄질 애들이 아니었는데... 로이 블랜드(시아란 힌즈)는 좀 심심하긴 했는데 나머지는 다 좋았다. 뻔뻔스러운 신사 느낌의 빌 헤이든(콜린 퍼스)야 말할 것도 없고, 무거운 인상으로 하지만 머리를 가장 많이 굴리고 있을 것 같은 퍼시(토비 존스)도 좋았고... 의외로 가자 좋았던 건 토비 에스터헤이즈(다비드 덴칙). 어떻게 보면 가장 먼저 조지에게 걸려든 것 같은 느낌이지만 그 때의 연기도 발군이었고ㅎㅎ 난 이런식으로 비굴할 때 비굴한 캐릭터들이 사랑스럽기도 해서 그른가.

  범인 밝혀졌다고해서 우와! 뭐 이런 건 전혀 없었다. 내가 미리 책 읽어서는 아니고... 그냥 내용이 그랬다. 누가 봐도 그렇지 않았을까. 그 범인이 드러나기 직전까지 장소를 드나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다들 누가 범인인가, 누가 범인인가 이거에 집착하진 않게 되지 않았을까. 범인이 누구냐보다는 범인이 왜 그런 길을 선택했느냐가 더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 역할을 그 분은 뻔뻔스레 잘 해내더라. 하지만 동시에 그 설명을 들으면서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는 수긍이 간다면 나쁜 것일까.

  콘트롤(존 허트)이 살아있을 때의 마지막 파티 장면이 계속 교차되는데 정보국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의 캐릭터가 보여지기도 하고, 동시에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겪을 내면의 복잡함까지도 보이는 편집이었다. 짐 프리도와 빌 헤이든, 조지 스마일리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또 달랐고.

  별거 아닌데 리키 타르 영화 내에서 제일 젊은 데 제일 촌스러웠다. 뭐 임마... 하긴 젊은 애들이 유행을 따르는 법이겠지요.

  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봤다. 과학자 스티븐 호킹을 다룬 드라마인데, 루게릭이 막 발병했을 젊은 시기의 이야기. 사랑을 다뤄서 약간 낭만적이기도 하고, 막 발병했을 시기라는 점에서 절망적인 정서도 있고(하지만 실제 인물이 살아있기 때문에 썩 비극적이진 않았다), 인간 스티븐 킹을 픽션 소재로 잘 활용 한 부분은 좋았다.

  스티븐 호킹(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막 박사 과정에 들어간 이십대 초반의 청년. 제인 와일드(리사 딜론)를 만나 막 연애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과학학도로서의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해서 꽃을 만개해야 하는데, 이 시기에 병이 발병한 것. 고작해야 2년을 버틸 수 있는 병 탓에 스티븐은 위축되기도 하지만 뭐 포기하지 않고 자기 꿈을 밟아나가는 그런 이야기.

  물론 이런 사람 곁엔 주변 도움이 꽤 있다. 아버지(아담 고들리)와 어머니(피비 니콜스)의 도움은 대단한 것이라기 보단 은연중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또 학문적인 면에서 이야기가 많이 이뤄지다 보니 담당 교수인 데니스 시아머(존 세션즈), 동료 학자라 할 수 있는 로저 펜로즈(톰 와드)와의 조합이 꽤 괜찮았음. 제인 와일드는 따지자면 부모님과 같은 노선이었는데 그보다는 더 나은 입장이었던게, 루게릭 발병 후인 스티븐 고백을 듣고도 그를 받아 들였다는 점에서 그랬다. 학문적인건 거의 스스로 만들어 낸 업적이지만 영화 보는 입장에선 주변의 은근한 도움이 눈에 띄었음.

  프레드 호일(피터 퍼스)의 이론을 반박하면서 대립하게 되는 모습은 좀 재밌었음. 프레드 호일을 너무 경박하게 그려놓은 게 아닌가 싶다만... 뭐 학문계의 싸움이야 독해지려면 얼마든 독해질 수 있으니까. 좀 더 유치하게 그려진게 안타까운 정도.

  아노 펜지어스(마이클 브랜든)와 밥 윌슨(톰 호킨스)의 어수선한 노벨 상 인터뷰 장면은 왜 나오나 했더니, 빅뱅 이후의 복사열 증명이 되는 거라서 나오는 거더라. 난 처음에 아 이거 때문에 진행이 막 끊기네 싶어서 짜증이 났었는데 뒤에 호킹의 이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따단, 하고 나타나는 거라서 놀랐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그래도 그걸 집어넣은 구성은 여전히 별로라고 생각함.

  보면서 음 베네딕트 연기 좋네... 하긴 했는데 사실 내용은 그에 못 미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얘네가 이론 설명해봤자 나는 알지 못할 뿐이야... 그냥 발견했네. 오, 이론을 찾았네. 이 정도밖에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보면서 약간 시큰둥. 그게 아쉬움. 난 좀 더.. 뷰티풀 마인드 같은 느낌을 바랐었던 거 같다. 그건 굉장히 매끄럽고 헐리웃느낌이 나게 각색이 된 작품이고, 이건 예산 적은 TV영화긴 하다만 아쉬운 느낌을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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