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소설 중에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보기 전에 망설였다. 괄괄한 여자를 '길들인다'는 거 자체가 좀 거부감이 있어서... 풍자극이라고 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걱정하면서 켰다. 괜찮은 듯 하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불편한 점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과장된 로맨틱 코미디를 노린 것 같은데, 캐릭터들의 과장도 대단하다. 현대극이니 그 과장된 부분이 더 눈에 띄기는 하는데 페트루치오(루퍼트 스웰)는 그나마 괴짜 짓을 하는 '그나마 현실적인' 건달 날백수로 보이는 반면, 캐서린 미놀라(셜리 헨더슨) 쪽은 현실에 저런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싶은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툭하면 화내고 성격 더러운 서른 여덟의 하원 의원. 말만 들으면 현실적인데 캐릭터 묘사가 너무 불같다. 의원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일에 화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싶고. 가운데 손가락 욕에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귀여운 면모도 있긴 했지만 워낙 기본 캐릭터가 그래서 그런가 현실감각이 떨어져버렸다. 둘이 투닥대면서도 결혼에 이르는 장면도 억지스러워서 저 상황에서 누가 결혼하겠냐! 싶고. 신혼 여행지 가서는 좀 낫긴 했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해져서 뭔가 맘을 놓아버리는 캐서린 탓에 좀 멀쩡해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게 약간 불명확해 보였다.

  연예인인 비앙카(제이미 머레이)의 연애는 뭐 그냥저냥 심심했다. 공항에서 만난 말도 제대로 안통하는 이탈리아 청년 루첸티오(산티아고 카브레라)와 연애하는 게 좀 뜬금없이 느껴졌다. 스타니까 엉뚱한 짓을 할만하다 싶기도 한데 사랑보다는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 그래도 이런 캐릭터 매력있긴 하더라. 자기 자신을 똑부러지게 알고 있어서. 매니저이자 엉뚱한 결혼의 원흉인 해리(스티븐 톰킨슨)는 약간 찌질해 보였다. 순정남이니 뭐니 치장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막판에 자매들의 엄마(트위기)와 사귀게 된 데서는 더 깼다.

  캐서린이 사랑에 빠지게 된 거 좋지만서도 이야기 마지막에 혼전계약서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너무 싫었다. 남편을 띄워주는 수준을 넘어선 말들에 기분이 나빠짐. 중반 이후로는 그래도 이 드라마에 적응하고 있었는데 막판에 기분이 상했다. 난 농담으로라도 그런 식의 말이 싫으니까.

  모르겠다. 재미 없는 건 아닌데 다룬 소재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반대되는 것이 있어서...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
감독 바랫 낼러리 (2008 / 영국)
출연 에이미 아담스,프란시스 맥도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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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포스터만 보고 에이미 아담스가 페티그루인줄 알았잖아... 아니었네요. 아무튼 1930년대에 나왔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한다. 책을 안봐서 책이랑 비교는 불가능하고. 직장을 잃고 갈 데 없는, 보수적인 미스 페티그루(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우연히 미국인 연기자 델리시아 라포스(에이미 아담스)의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 겪는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것 답게 진행이 빠르며 동시에 재치 있었다. 다만 내용이나 사건의 진행, 해결 자체는 좀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델리시아는 사랑스럽다. 바람둥이에다가 꿈만 화려한 여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 삶의 바탕에 깔린 가난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법도 했다. 극단주의 아들인 필(톰 페인), 막대한 부를 지닌 클럽 주인 닉(마크 스트롱), 가난하지만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열정있는 피아니스트 마이클(리 페이스) 중에서 누굴 선택할지는 스토리상 자명하니 일이었지만, 이게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면 누굴 선택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삶은 한번 뿐이라는 이유로 마이클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허영심 강하고 꿈 많은 소녀가? 하긴 인간적인 면에서는 마이클 쪽이 가장 낫긴 했다. 필은 너무 어렸고(행동거지까지), 닉은 너무 강압적인 마초 이미지라 싫었음. 델리시아가 조를 두고 바람을 피우면서도 뻔뻔하게 굴었던 에디스(셜리 헨더슨)처럼 아예 속물적이진 않은 사람이라는 데 희망을 걸어야 한다니.

  페티그루에게는 꿈과 같은 하루 동안의 이야기. 순발력있고,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점에선 좋았지만 사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더라. 그녀의 구원은, 그 실마리는 그녀가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남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슬펐다. 란제리 디자이너 조(시아란 힌즈)는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왕자님 같은 위치에 서 있어서 썩 괜찮은 해결 방법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너무 동화적이고... 페티그루에게 닥친 가난이라는 문제상황의 해결이 좀 아쉬웠다.

  보고나서는 비판할 게 있다만, 그래도 볼 때에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달콤하고 상냥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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