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거타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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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앨프리드 베스터 (시공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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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상 읽으면 바로바로 쓸 수 있었으면.. 읽은 지 일주일 넘은 거 같은데. 꼭 다까먹고 쓰네ㅋㅋㅋㅋ 하여튼 다류가 빌려줘서 봄. SF계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이라고 해서 흥미가 있긴 했지만, 또 SF라서 해서 그닥 볼 생각은 없었는데...ㅎㅎ 만나러 갔는데 빌려주길래 읽기 시작. 절판되었다가 다시 잠깐 복간되어서 알라딘에서만 팔고 있는 것 같다. 마음에 들면 사려고 했는데 살 정도로 마음에 들진 않았음. SF가 내게는 안맞아요. 원제가 The Stars, My Destination이던데 왜 한국어 제목은 타이거 타이거로 했는지 모르겠다. 완전 안어울리는 건 아니니까 된건가...

  공간이동 능력인 '존트'가 일상화된 미래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수준 이하의 노동자 걸리버 포일이 주인공으로 등장. 걸리버 포일이 타고 있던 우주선 '방랑자 호'는 파손되어 우주를 떠돌게 된다. 그 안에서 거의 6개월의 시간동안을 간신히 살아남은 걸리버 포일은 마침내 자신을 구해줄 수 있을만한 우주선, '보가'를 발견. 하지만 보가는 걸리버 포일의 구조신호를 무시하고 지나쳐버린다. 이 분노가 걸리버 포일의 탈출 의지를 불태워 걸리버 포일은 미아상태를 벗어나고, 동시에 보가에게 복수하기 위한 일들을 시작한다는 이야기. 그 탈출 사이에 '현대'의 사회와 전혀 다른 '과학인'들이 사는 곳에 불시착하면서 얼굴에 '방랑자N♂MARD'라는 문신이 새겨지는데 이게 걸리버 포일을 구분하는 일종의 표식이 되어버린다. 문신을 지운 후에도 분노할 때엔 마치 호랑이처럼 얼굴에 문양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여튼간에 또 과학인이 사는 소행성에서 탈출하여 지구로 돌아온 걸리버 포일은 '보가'를 향한 복수를 준비해나간다.

  근데 이 복수의 과정이라는 게 되게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어서 처음에 좀 놀랐음. 주인공 자체가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에드몽처럼 선량한 느낌은 전혀 없고, 무지했던 동물이 복수를 위해 거듭난다는 느낌이어서 그나마의 선한 의지는 막판이 가기 전까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난민인 가족을 둔, 일방 텔레파시 능력자 로빈을 괴롭히기도 하고, 정신병원에 갇힌 뒤 만난 지즈벨라를 배신하기도 한다. 무자비했던 과정들은 교육을 통해 점점 나아지긴 하는데 본성만은 끝까지 남아 있었다. 안티 히어로 같은 면모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더라. 그렇다고 프레스타인이나 그의 딸 올리비아, 다겐함과 양-요빌의 편에 서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여타 선량한 주인공들과는 약간 달랐다는 소리.

  방랑자 호에 있던, 세계를 멸망시킬 수도 있는 PryE 10kg에 의해 걸리버 포일은 여러 사람의 표적이 된다. 본인은 별로 그에 신경쓰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부를 획득하고 '보가'와 관련된 인물을 찾아나가고, 그 최상위에 위치한 프레스타인을 몰락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뒤에 말끔하게 변하는 모습은 확실히 몬테크리스토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그보다 저급이라는 건 옆에서 로빈의 코치를 받았다는 데에서 드러나긴 하지만서도 이 정도면 그 이전의 노동자 걸리버 포일이 아니었으니까. 거기서 프레스타인의 딸인 올리비아에게 홀딱 반한건 좀 웃기긴 했다만. 워낙에 본능적인 포일이었던 터라 이해도 갔다. 물론 사랑, 사랑이 모두를 갈라놓지만.

  '보가'호가 방랑자호의 구조신호를 무시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안에 있던 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우주공간에 버리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이 일의 꼭대기에 올리비아가 있다. 맹인인 자신의 불행에 다른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이었던 것. 이 사실을 알고 거의 폭주하게 되는 걸리버의 모습이 재미있었음.

  마지막의 걸리버는 그동안의 '개인적인 복수'의 면모를 모두 지우고 일종의 영웅 역할을 하는데, 판단 자체를 수뇌부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아닌 개인들에게 맡겨버린다. 걸리버 포일에게 무슨 특별한 점이 있어서 '우주 존트'를 실행했건 말건 그건 내게 중요해보이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깨우쳐가고, 성장하는 모습이 좋았음. 그리고 그 성장의 개인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발돋움 한 게 인상깊었다.

  걸리버가 폭주하는 부분에서 굉장히 책에서 쓸 수 있는 표현법을 많이 썼다. 글자를 늘이거나, 키우거나, 모양을 변경하고 배열하는 방식들. 책 안에서 시를 보는 것처럼 신선했음. 순수문학에서 많이 보지 못했던 방식이네요.

  이야기가 재밌고 뭘 말하려는 지는 대충 알겠는데 느낌은 고만고만했다. 확 와닿지 않더라. 인물의 짐승같은 매력으로 커버하기엔 내 취향까진 아니고 재미는 있고...

"너는 누군가?"
"어디에서 왔는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가야할 곳은 어디인가?"

『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시공사, 2004, p. 36

  "내가? 나는 살아가고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을 되돌려주었어. 일반인들은 우리같이 무리하게 몰아대는 사람들 때문에 오랫동안 매맞고 끌려다녔어. 억지로 몰아대는 사람들...... 세상을 자신들 앞에 꿇어앉히지 않고는 못 배기는 호랑이 같은 인간들이 끌고 다녔다고. 우리는 모두 호랑이야. 우리 셋 다 말이야. 하지만 우리가 대체 뭐길래 강제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모든 결정을 도맡아 하려는거야? 이제 세상이 알아서 삶과 죽음 사이를 선택하도록 놔두라고. 왜 책임을 지려 하냔 말이야?"
  양-요빌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원해서 책임지려는 게 아니야. 우리는 내몰린 거야. 평범한 사람들이 피하고 있는 책임을 대신 지도록 강요받고 있는 거라고."
  "그럼 피하지 못하게 하라고. 자기 의무와 죄를 맨 처음 그걸 잡은 기형아의 어깨에 떠넘기지 못하게 하라고. 언제까지 세상의 속죄양 노릇을 하며 살 생각이야?"

『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시공사, 2004, p. 376

내 이름은 걸리버 포일.
내 나라는 지구.
내가 머무는 곳은 깊은 우주.
그리고 내 목적지는 별들.
 
『타이거! 타이거!』, 앨프리드 베스터, 시공사, 2004, p. 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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