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눈물 감상문'으로 도배 된 리퍼러 보니 눈물이 난다

얘들아 숙제는 스스로 하는거란다
감상문 하나 스스로 못쓸 거면 나가 뒤지시고 자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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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전상국 (민음사,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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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선과 악의 모호한 구분과, 우매한 전체 집단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은 화자이며 모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대, 선으로 보이나 사실은 위선에 둘러싸인 임형우와 담임선생님. 절대 악이나 집단에 의해 변모하게 되는 최기표. 그리고 나머지 아이들의 집단으로 구성된다. 소설은 각 인물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러나 크게는 선과 악으로 나눌 수 있는 인물들의 성격은 결과적으로는 선과 악 중 어느 것도 아닌 모호한 것이 되어버린다.

  소설 안에서 최기표는 악으로 대표되는 존재이다. 그에게 피해를 당하는 아이들은 함부로 불만을 토로하지 않는다. 나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아직 의문점이 있다. ‘머리에 털나고 처음인 그런 무서운 린치’를 당한 이유대조차도 담임이 최기표를 미워하는 데에 반감을 가진다. 최기표가 행하는 악에 피해를 입은 이러한 집단이 최기표를 미워하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나는 그것을 일단은 최기표가 가진 악행의 순수성에서 찾고 있다. 악행에 순수가 있다는 것은 모순되는 말일지 모르지만, 그의 악행은 정직하다. 누군가를 괴롭히고자 몇날 며칠을 고민하여 괴롭히거나 누군가를 괴롭히기 위해 도시락을 훔쳐 먹는 것이 아니다. 그저 메스껍기에, 배가 고프기에 그런 짓을 하는 것이다. 그가 행하는 악은 계획적이지 않다. 보기에 메스껍기 때문에 사람을 때리고, 배가 고프기 때문에 도시락을 훔쳐 먹는다. 이러한 그 악행의 순수성-순전히 단순한 감정 욕구에서 불러일으켜진 악행-은 어쩌면 사람들에게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게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 품을지언정 집단적으로 책망치 않는 최기표에 대한 규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한다. 담임선생님과 임형우가 그 규제의 발원지이다. 담임과 임형우는 그 성격이 약간 다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같은 성격의 인물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들의 위선에서 드러난다. 담임은 임형우보다 노골적이다. 그에게 있어서 최기표는 자신의 완벽한 항해에 방해 요소가 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방해 요소인 최기표를 규제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나서지는 않는다. 그 필요로서 등장하게 된 것이 임형우다. 임형우는 천천히 자신의 계획을 실행해 나가는 야심가다. 최기표를 몹시 위하는 척 하면서도 담임이 그를 옭아매는 데 일조하는 인물이다. 임형우는 단순히 담임의 말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는 아니지만 담임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서 최기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한몫을 한다. 이 둘은 최기표를 ‘구원’한다는 슬로건을 앞에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은 최기표를 통해 자신들을 치켜세우는 데에 마음이 쏠려 있다. 소설 중반부에 나오는 신과 악마에 대한 짧은 말은 이런 상황의 윤곽을 더욱 뚜렷하게 보이게끔 한다. 그들은 선을 가장한 위선이다.

  소설에는 이러한 선과 악의 대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그것을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대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화자이니까 빼 놓는다 하더라도 나머지 아이들은 도대체 어떠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그저 우매한 집단이다. 담임과 임형우가 꾸며놓은 일대로 이끌어지는 집단에 불과하다. 그러한 그들을 나는 우매한 집단이라 표현한다. 그렇다고 이런 우매한 집단을 만만하게 여겨도 되는 것일까?

  임형우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먼저 집단을 섭렵한다. 최기표에게 어느 정도 다가섰을 뿐더러 나중에는 자기희생을 통해 재수파 아이들(그들도 결국은 집단의 일부분이다.)까지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성공한다. 임형우는 왜 집단을 끌어들였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집단이 우매함과 동시에 드러나지 않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누가 말했던가. 개인은 사회 안에서 살아가며 집단에 의해 평가받으며 집단의 평가에 따라 개인의 가치는 성립된다. 이러한 것을 따져 볼 때 소설 안에서 최기표가 가지고 있는 위치는 최기표 자신이 쟁취한 것도 있지만 집단에 의한 힘이 더 강했으리라 본다. 이문열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반의 대장이었던 엄석대가 가지던 집단에 의한 권력과 같이 말이다. 최기표는 재수파 라는 소수의 집단에 의해 악의 근원지로 자리 잡고 반 아이들이라는 집단에 의해 그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임형우가 대중이라는 집단을 이끌어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임형우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유대와의 대화에서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임형우는 재수파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는 것에서 이미 완벽하게 대중을 사로잡았다. 임형우는 이유대에게 ‘우리가 무서워했던 건 기표가 아니라 기표를 둘러싸고 있는 재수파들’ 이라는 말을 한다. 즉 최기표가 가지고 있는 힘이 최기표 본인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집단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집단을 손에 넣으면 최기표도 자연스럽게 손에 넣어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반의 순탄한 항해에 방해가 되는 최기표를 얌전히 시키기 위해서 임형우는 집단을 효과적으로 이용한다. 영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정확한 판단이다. 이후 최기표가 반에서 원래의 입지를 잃고 단순히 불쌍한 아이로 전락해 버린 것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집단의 무의식적인 행동은 임형우와 담임이 계획했던 대로 최기표를 규제하게 된 힘이다. 

  집단은 최기표를 무서워함으로써 최기표를 반의 권력자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최기표를 나약한 인물로도 만들었다.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집단은 지도자에 의해 전에 가졌던 개인의 인상을 잊고 새로운 인상을 덧그려 나간 것이다. 최기표가 가출까지 할 정도로 가졌던 두려움은 자신의 현실 변화뿐만 아니라 과거와 너무나 대비되는 집단의 태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전상국의 우상의 눈물은 소설 안에서는 선과 악으로 구분되는 인물들이 소설 밖에서 볼 때는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모호성을 통해 인간의 선악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다. 또, 집단의 우매함과 더불어 집단의 무서움을 보여줌으로써 명확한 세태 판단 없이 휩쓸려가는 대중을 비판하는 모습도 들어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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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다시 기억남. 이거 재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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