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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코맥 매카시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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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재미없기로 무섭게 소문이 나있고,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에게 큰 관심을 가진 것도 아니어서 읽을 생각 없었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재밌게 보긴 했지만 그건 영화였고. 아포칼립스 배경을 되게 안 좋아하는데 어쩌다 보니 읽고싶어져서 샀다. 글이 되게 강단있고 툭툭 친다는 느낌이었다. 한계가 보이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고난들이, 삶에의 끈질긴 집착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다고 읽을 때 마냥 행복했다던가 그런 이야긴 아니지만.

  책은 밑바탕이 되는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주진 않는다. 하나부터 열까지 짚어주진 않지만 현실의 상황이 어떤 지는 소름끼치도록 잘 느껴진다. 자연에서 나오는 음식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버린 세계, 강도들이 날뛰고, 약한 자는 빼앗기고 강간당하며 심지어 먹히기까지 하는 그런 세계 묘사는 이상할 정도로 현실적이다. 이런 절박한 상황 속에서는 단순한 자연의 논리가 지배한다는 것이 놀랍도록 설득력 있었다. 인간 본성이 선하다고 믿는 타입은 아니어서 더 그랬다.

  '남자'와 '소년'은 이런 불확실한 세계 속을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걸어나간다. 끊임없는 그들의 길 속에는 고난이 대부분일 뿐 행복은 그림자만 언듯언듯 보여질 뿐이다. 며칠을 굶기도 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이제 마지막이다, 이제 마지막이다 싶을 때에도 언제나 희망은 있다. 이런 이어짐은 소설의 결말에까지 이어진다. 지치면서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생명력이 거기에 있다.

  살기 위한 남자와, 아직은 꿈을 꾸고 있는 소년의 부딪침,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만남.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 길은 모두 하나로 통하는 것만 같았다. 희망이 있다는 믿음. 길가에서 만났던 노인은 그런 면에선 희망이 없는데도 살아남은 사람 같았고, 약탈자들은 그 희망보다는 눈 앞에 있는 것들을 쫓고 있는 것 같았고. 기분이 번잡했다.

  소설 초반 쯤에 남자가 소년에게 죽지말라고, 네가 죽으면 나도 죽고싶어진다고. 그랬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소년이 거기에 뭐라고 대답했더라. 저와 함께 있고싶어서요? 응.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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