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영화인데 이제서야 봤다. 그리고 본 뒤에서도 또 한참만에 감상을 쓰는구나. 그냥 생각한 만치의 영화. 옴니버스 식 영화는 산만해지기 쉬운데 인물들을 긴밀하게 잘 엮어낸 것 같다. 주제도 일맥상통하고... 그래서 옴니버스 영화 치고 꽤 흥행한 거겠지.
낭만적인 장면도 많지만 묘하게 그 낭만이 껄끄럽게 보이는 장면들도 많다. 친구인 피터(치웨텔 에지오포)의 아내(키이라 나이틀리)를 좋아하는 마크(앤드류 링컨)의 이야기는, 마크의 행동에서 낭만이 묻어나면서도 피터 입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입장에서 회사 사장 해리(알란 릭맨)을 꼬시는 직원 미아(하이케 미카취일)의 이야기는 미아의 입장에선 달콤할 수 있지만, 해리의 아내 캐런(엠마 톰슨)에게는 가슴찢어지는 상처를 남긴다. 모든 사람이 1:1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도, 사랑할 때 만큼은 서로만을 바라보는게 정석이라 그런지 남겨진 짜투리 사람들은 슬퍼지는 것 같다.
전체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있고 대부분은 가슴따뜻한 이야기인지라 딱히 할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재미있었던 커플이라면 포르노 배우 커플. 잭(마틴 프리먼)과 주디(조안나 페이지)의 이야기는 굉장히 싱그러웠다. 잘 사귀어 나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좋았던 건 작가 제이미(콜린 퍼스)와 가정부 오렐리아(루시아 모니즈)의 이야기.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피어나는 사랑이라는 게 참 미묘하다 싶으면서도 믿고싶고.
영국 수상(휴 그랜트)과 비서(나탈리)의 이야기는 너무 판타지가 가미되었다 싶었고... 반대로 너무 현실적이었던건 사라(로라 리니)와 칼(로드리고 산토로)의 야이기인데, 연애가 사실적이었다는 게 아니라 사라의 상황이 그랬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오빠 탓에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기와 그걸 놓지 못하는 여자라니. 가족이라는 이름의 사랑도 포기할 수 없는 사라의 인생에 자신만의 사랑이 있긴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앞으로도 쭉 그런 상황이겠지. 해리와 캐런의 이야기도 나름대로 현실적이었고, 캐런의 대처 또한 그랬다. 해리가 한동안 사과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싶다.
아, 머저리 영국남자인 콜린(크리스 마셜)의 미국 정복기(...)는... 난 반전이 있을 줄 알았는데 없어서 그게 더 놀라웠음.
그냥 무난무난하다. 실망도 없고 대단한 놀라움도 없지만 그럭저럭 보기 괜찮은 영화.
새로 부임한 매력적인 미혼의 영국 수상(휴 그랜트)은 발랄하고 귀여운 비서 나탈리(마틴 맥커친)에게 첫눈에 반한다. 수상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의식해 그녀를 멀리하려 하지만 보면 볼수록 매력이 넘치는 그녀에게 점점 빠져들고 만다. 고민 끝에 그녀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만 사랑 고백이 담긴 그녀의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고 자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 오르는 뜨거운 사랑을 깨닫는다. 크리스마스 이브 날, 주소도 모른 채 그녀가 사는 동네로 무작정 찾아 나서는데.
새 아빠 대니얼(리암 니슨)은 엄마를 잃고 방에 혼자 틀어박혀 지내는 아들 샘(토마스 생스터)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사실 샘은 좋아하는 여자 조안나 앤더슨(올리비아 올슨)을 두고 짝사랑의 열병에 빠져 있었던 것. 새 아빠는 아들의 사랑을 이뤄 주기 위해 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짜낸다. 크리스마스 이브 학예회, 여자친구 앞에서 멋지게 드럼을 연주하고 싶은 샘은 밤낮없이 방에 틀어박혀 드럼 연습을 한다. 드디어 학예회가 끝나고 작별인사도 못나눈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해 새 아빠와 함께 공항으로 달려가지만, 그녀는 이미 가족과 함께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버린 후... 어쩔줄 몰라하던 샘은 무작정 비행기로 뛰어 든다.
소설가 제이미(콜린 퍼스)는 바랑둥이 여자친구에게 상처 받고 남부 프랑스의 작은 별장에서 소설을 쓰면서 마음을 달랜다. 그가 머무는 동안 집안 일을 돕기 위해 젊은 포르투갈 여인 오렐리아(루시아 모니즈)가 온다. 이 둘은 말은 한마디도 통하지 않지만 왠지 모르게 서로에게 끌리고, 매일 헤어지는 시간을 너무나도 아쉬워 한다... 떠날 무렵까지 결국 그녀에게 사랑 고백을 하지 못하는 제이미... 점점 더 커가는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어쩔줄 몰라하던 그는 크리스마스 이브 날, 드디어 포르투갈로 그녀를 찾아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선물을 준비하는데...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동료 칼(로드리고 산토로)을 오랫동안 짝사랑해 온 사라(로라 리니). 드디어 회사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꿈에 그리던 그와 함께 춤을 추게 된다.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그녀의 새로운 매력에 마음이 끌린 그. 결국 그녀를 따라 그녀의 집으로 오게된다. 뜨거운 눈빛이 오가고 분위기는 무르익어 마침내 고대하던 사랑을 나누려는 찰나, 요양소에 있는 그녀의 아픈 남동생에게 전화가 온다. 아쉽지만 그녀는 그를 남겨두고 누나를 찾는 동생에게 달려가는데... 과연 이들의 사랑은 이뤄질 수 있을까?
무뚝뚝한 남편 해리(알란 릭맨)의 주머니에서 하트목걸이를 발견하고 기쁨에 설레여하는 캐런(엠마 톰슨). 그러나 크리스마스 이브, 정작 해리가 건넨 선물은 CD. 그렇다면 그 목걸이의 주인은?
이제는 한물간 로커 빌리(빌 나이히)에게 오랜동앗 매니저 일을 맡아주며 고생해온 조(그레고르 피셔). 데뷔때부터 빌리와 음악 활동을 함께해온 그는, 다시 재기를 꿈꾸는 빌리와 함께 리바이벌곡 'Christmas Is All Around'를 크리스마스 음반 차트 1위에 올려 놓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는데... 크리스마스에 이들은 과연 1등을 할 수 있을까?
신랑 피터(치웨텔 에지오포)와 신부 줄리엣(키라 나이틀리)의 결혼식. 신랑의 제일 친한 친구 마크(앤드류 링컨)는 정성을 다해 웨딩 촬영을 해준다. 하지만 신부 줄리엣은 자신을 차갑게 대하는 마크를 서운하게 생각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크의 집에 웨딩 테이프를 찾으러 간 줄리엣은 온통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득 채워진 화면을 보고 감격한다.
...이 아니고, 아니 그래도 진짜로 너무 불쌍했다. 마이클 래드포드의 베니스의 상인은, 주인공이 샤일록(알 파치노)이라고 해야 옳았다. 다른 이들은 거의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안토니오(제레미 아이언스)와 베사니오(조셉 파인즈)의 눈물겨운 우정이니, 베사니오와 포시아(린 콜린스)의 사랑이야기니, 포시아가 남자로 변장해 판결을 내려주는 기지고 나발이고 샤일록만 불쌍하다.
원전을 그대로 잘 해석했다는 평이 많지만 원전 자체가 불평등한 모습을 담고 있는 관계로 영화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예나 지금이나 종교차별은 꼴사납다. 애당초 유태인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고서 고리대금업을 한다고 몰아세우는 작자들이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거 같진 않지만 말이다. 차별의 근본조차 내겐 와닿지를 않아서. 내가 보기엔 어차피 한 뿌리인 것을(...)
알 파치노의 샤일록 해석이 너무 좋았던 관계로 샤일록이 나오지 않는 장면에선 오히려 재미가 떨어지는 신기함이. 처음부터 유태인 지구를 나누고 빨간 모자를 씌워 유태인을 차별하더니, 안토니오는 더러운 고리대금업자라며 자신을 개라 부르고, 돈 빌리러 온 주제에 이자는 낼 수 없대서 살덩이 하나 걸고 돈빌려줬다. 끝까지 꼿꼿한 이 크리스천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딸년 제시카(줄레이카 로빈슨)는 그 크리스찬 로렌조(찰리 콕스)와 눈이 맞아 돈을 훔쳐 떠나버렸으니... 나라도 그런 복수심을 품을 것 같았다.
나머지 캐릭터들의 설득력이 너무 떨어져서 샤일록에게 더 눈이가고 그랬다. 흥청망청 있는 재산을 탕진하고 친구의 돈과 살덩이를 걸고 아내를 맞으러(!) 떠나는 베사니오가 제일 꼴보기 싫었다. 그다지 능력있는거 같지도 않았고... 도대체 포시아는 어느 부분에서 베사니오에게 매력을 느꼈던 걸까? 알 수가 없다. 베사니오와 포시아의 시종인 그라티아노(크리스 마셜)와 네리사(헤더 골든허쉬)도 주인들처럼 한눈에 반했으니 딱 어울리는 주인과 하인의 짝들이다. 안토니오도 그렇지, 아무리 우정이 중요하다 한들 베사니오같은 치에게 돈을 빌려주다니. 안토니오와 베사니오의 관계는 둘만 있을 때에는 너무 노골적인 동성애가 들어있어서... 그래 뭐 사랑으로 감싸안으신건지.
샤일록의 딸도 너무 마음에 안들었던게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둘러싸고있는 상황을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아버지를 떠날 수 있느냐다. 그래 이것도 뭐 사랑으로 감싸안았겠지. 그래도 너무 짜증이 났다. 중간 중간 망설이는 듯한 모습이라던가, 영화 마지막에 가서는 후회나 회한에 찬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 한들 용서가 안 되는 캐릭터더라.
하이라이트인 법정 모습에서는 주변을 둘러싼 패들이 모두 샤일록을 욕하며 자비를 베풀라 말하는게 너무 가소로웠다. 먼저 자비를 베푼 적은 한 번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하대하며 멸시했던 자에게 자비를 바라는 건지 그 심리가 우스웠다. 자신들이 강할때는 자비를 주지 않으면서 약할 때에는 자비를 베풀라 간청한다니? 모든 상황이 변장한 포샤로 인해 뒤집혔을때 바닥에서 온 몸을 끌어안고 끅끅대는 샤일록의 모습은 세상 누구에게라도 동정심을 불러 일으킬 것 같았다. 자비, 그 놈의 자비를 백번은 외치다가 상황을 뒤집어놓고서 그런 자비를 베풀지 않는 자들의 모습은 어떻고? 돈을 빼앗고, 목숨을 구걸하게하고, 종교까지 앗아가는 그들의 자비에 역겨움으로 속이 메스꺼웠다. 끝까지 유태인은 들어라, 라는 식으로 '유태인'으로 규정하는 것도 너무 이상했다.
요새 제레미 아이언스가 너무 좋아서 본 거였는데 도저히 공감이 안 가는 캐릭터라서 보다 지쳤다. 법정에서 살덩이 베어내기 준비할 때, 기절하듯 쓰러지는 장면이 아름다웠다는 거 정도만 내 마음의 위안(...) 알 파치노는 연기 잘한다 잘한다 했지만서도 여기서는 진짜 사무쳤다. 빗속에서 딸 이름을 부르면서 우는 모습, 기독교인들에게 유태인들은 기독교인과 같지 않은가 하며 몰아붙이던 모습, 법정에서의 모습들. 모두가 완벽했다.
연기도 좋았고 원전도 잘 살렸지만 내용에 있어서 내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많아서 보면서 힘들었다. 카타르시스가 아닌
스트레스가 쌓이는 영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