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7 - 싱글맨 /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싱글맨
감독 톰 포드 (2009 / 미국)
출연 콜린 퍼스,줄리안 무어,니콜라스 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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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좀 뒤늦게 본 편. 책은 덤덤하면서도 음울하게 진행되었는데, 영화는 이 느낌을 또 화려한 톤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음울보다는 좀 비현실적인 느낌이 있었다. 이 화려한 담담함에도 불구하고 조지(콜린 퍼스)가 과거 짐(매튜 구드)이 죽었던 비극을 떠올릴 때면 우울함이 확 배가되어 다가오는게 신기할 지경. 평소의 느낌들은 화보를 하나하나 이어붙인 듯한 섬세함이 있다. 감정은 절제되어 있다가도 몇 몇 장면에서 터질듯이 분출되어 오히려 강조되는 느낌이었다.

  짐을 잃은 뒤 삶에 더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조지는 차분하게 자신의 죽음을 준비한다. 집을 정리하고, 사무실을 정리하고, 친구를 만나보는 날. 이 날은 평소와 일관되게 같으면서도 약간씩의 변주가 있다. 왜인지 눈에 띄는 제자 케니(니콜라스 홀트)와 이야기를 하는 것, 스페인 청년 카를로스(존 코타자레나)과 만나게 되는 것, 끊임없이 집에 오라고 재촉해대는 친구 찰리(줄리안 무어)의 집에 가서 조촐히 파티를 하고, 잠시 바에 나갔다가 케니와 우연히 마주쳐 바다에 뛰더든다던가 하는.

  그런 일상의 변주는 대부분 의미없이 지나가지만 케니와의 만남만큼은 의미를 갖는다. 그에게서 생기를 얻고 그에게 느끼는 감정을 통해, 이전에 짐에게서 느꼈던 활기를 다시 얻게 된 조지는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힘을 얻는다. 그러나 운명같이 행복에 젖은 그 날밤 조지는 쓰러져 짐과 같은 길을 가게 된다.

  찰리의 역할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포스터에 줄리안 무어의 역할이 강조된 듯해 신기했다. 찰리는... 그냥 두고 보기엔 안타까운 면이 있는 헤테로 친구. 찰리가 '정상적인' 연애 운운할 때는 조지가 흥분한 것처럼 나도 신경이 거슬리긴 했지만, 그 외에는 지켜주고 싶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케니는 조지가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인물은 아닌 거 같지만 젊음의 풋풋함만큼은 잘 느껴지더라. 과거의 모습들을 통해 드러나는 짐의 모습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다정했는지 느껴져 좋았다. 조지의 생활하는 모습들은 건조해서 재미가 덜했지만, 짐과 있는 장면들에서 나타나는 생동감이 너무 좋았다. 짐을 잃었을 때의 그 북받치는 감정들도.

  영화가 화보같다는 느낌이 드는건 건축물이나 소품들도 그랬지만 등장하는 인물들도 만만치 않아서. 애인을 막 잃어 상심하면서도 그 감정을 아무데서나 드러내지 않는, 뻣뻣하면서도 섬세한 조지 역에 콜린 퍼스가 등장한 것도 그랬지만 그의 친구인 여자라는게 줄리안 무어요, 죽은 애인은 매튜 구드, 가슴을 흔들어놓는 학생에는 니콜라스 홀트라니. 심지어 같이 일하는 동료로 리 페이스가 나오질 않나, 우연히 만나게 되는 스페인 청년 카를로스가 존 코타자레나. 옆집에는 지니퍼 굿윈이 살고 있습니다... 남편으로 나오는 테디 시어스도 만만치 않은 얼굴. 인물부터 소품, 배경까지 이러하니 화보 느낌이 안날 수가 있나.

  마지막에 짐이 나타나서 조지에게 키스하는 장면이 좋았다.
싱글맨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그책,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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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자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퀴어문학 3종 중 하나. (나머지는 마틴 앤 존, 모리스. 셋 다 내가 골랐다.) 이 책이 가장 얇기도 했고, 세 책 중 가장 읽고 싶었던 것이기도 해서 아르바이트 가는 길에 집어들었다. 오며가며 하는 시간에 다 읽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진 건 당연히 영화 싱글맨 때문. 내가 콜린 퍼스도 좋아하고 니콜라스 홀트도 좋아하고 하다보니까 영화에 대해 알게 되었었다. 개봉하면 보러 가야지... 했는데, 개봉 전에 어째 원작을 먼저 읽게 되었다. 좋은 걸지 나쁠 걸지는 영화를 보고 나서 판단해야지. 하지만 책을 읽은 결과, 영화가 몹시 보고싶어졌다. 이 내용을 도대체 어떻게 각색했는지 너무 궁금해서.

  배경은 1962년의 미국. 주인공은 58세의, 이제 막 같이 살아오던 동성애 파트너를 잃은 영국인 교수 조지. 처음엔 1인칭 소설인 줄 알았는데 3인칭이다. 시종일관 조지는 -한다. 라는 투라서 1인칭이라고 생각해도 거의 무방했다. 책 한권이 조지의 하루 아침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의 이야기. 그만큼 묘사가 자세하고도 또 내용이 섬세하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듯한 조지의 내면을 보고 있자면 나까지 약해져버리는 기분이 든다.

  교통사고로 파트너 짐을 잃고, 이제는 나이까지 먹어버린 몸뚱아리로 혼자만의 고독한 삶을 이어가는 조지의 인생은 처음부터 무겁고 짓눌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조금조금씩 느낌이 바뀌긴 하지만 케니를 만나게 되기 전까지는 전체적으로는 음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에게 짐의 빈자리는 너무나 크다.

  집, 고속도로, 학교, 도리스의 병실, 체육관, 슈퍼마켓, 샬롯의 집, 케니를 만나게 되는 바, 집으로 이어지는 조지의 하루 여정을 지켜보는 것은 무척이나 길고 인내를 요구한다. 하지만 동시에 흥미롭다. 이 하루 동안에 나는 조지가 지금 생각하는 일들 뿐 아니라, 최근에 겪은 일들까지 전부 알 수 있으니까.

  소설에 담긴 모든 것을 어떻게 풀어내기가 힘들다. 이건 한 꺼져가는 인간의 삶의 불꽃이 어떻게 흔들리느냐의 문제같았다. 다만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침의 집과 도리스의 병실. 나머지 부분이야 조지의 늙고 힘든 몸뚱아리를 가누기 위한 여정에 기댄 바가 컸지만, 이 부분은 짐과 연관되어서 가슴 시리게 하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략) 이렇게 작은 집에서 조지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느낀다. 외로움을 느낄 빈 공간이 없으니까.
  그래도……
  매일, 해마다, 이 좁은 장소에서, 작은 스토브 앞에 팔꿈치를 맞대고 서서 요리하고, 좁은 계단에서 간신히 서로 스쳐 지나가고, 작은 욕실 거울 앞에서 함꼐 면도하고, 계속 떠들고, 웃고, 실수든 고의든, 육감적으로, 공격적으로, 어색하게, 조급하게, 화나서든 사랑해서든 서로 몸을 부딪은 두 사람을 생각하라. 두 사람이 곳곳에 남긴, 깊지만 보이지 않는 길들을 생각하라! 주방으로 가는 문은 너무 좁다. 손에 그릇을 든 두 사람이 서둘러 가면 이 문에서 부딪치기 십상이다. 거의 매일 아침 계단 아래를 내려온 조지가 자기도 모르는 새 갑자기 참혹하게 꺾인 듯, 날카롭게 갈린 듯, 길이 산사태로 사라진 듯 느끼게 되는 곳도 여기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늘 처음인 양 또다시 통증을 느끼게 되는 곳도 여기다. 짐은 죽었다. 죽었다.
  통증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선 채로 꼼짝도 않는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혹은 기껏해야 짐승의 끙끙소리를 짧게 뱉는다. 그런 뒤 주방으로 걸어간다. 이 아침의 통증이 심인성일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너무 고통스럽다. 통증이 지난 뒤에는 약하게나마 안도감을 느낀다. 심한 경련이 일어났다가 사라진 것과 비슷하다.

『싱글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그책, 2009, pp.10~11

  내가 다 아팠던 묘사. 일상적인 부분에서의 상실감이 너무 잘 드러나 있었다. 책 중간중간 아픈, 그런 부분들이 있다. 담담하게 짐의 죽음을 전해듣고, 5분만에 샬롯을 찾아가 엉엉 울었던 조지의 모습이라던가.

  결말은 오히려 오늘의 조지에게 어울리는 일일런지도 모른다. 도리스를 방문했고, 샬롯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위안했고, 케니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욕망을 다시 한 번 일깨웠으니까. 그러니까 이제 남은 것도, 남을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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