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카피하다
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2010 / 프랑스,이란,이탈리아)
출연 줄리엣 비노쉬,윌리엄 쉬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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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코파카바나 볼 때 같은 영화관에서 하길래 관심 좀 생기네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보게 되었다. 감독이름을 참 많이 들어서 그렇기도 했고, 줄리엣 비노쉬도 뭐 데미지에서의 연기를 잊을 때라는 생각도 들어서. 그땐 역할이 워낙에 뻣뻣해서 매력이 진짜 반감됐을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만...

  근데 이 영화 내가 별로 안 좋아하는 진행의 영화더라. 요컨대 비포 선라이즈/선셋 타입의 두 남녀가 만나서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길을 걷는 그런 영화. 그래서 처음 시작하고 십분쯤 만에 아 난 죽었다, 하긴 했으나 그럭저럭 재밌게 보았다. 영국인 작가 제임스 밀러(윌리엄 쉬멜)이 자신의 책 '기막힌 복제품'의 강연 차 이탈리아에 들렀다가 팬인 엘르(줄리엣 비노쉬)와 만나며 진행되는 이야기. 엘르가 하루동안 근교의 시골 지역을 소개해주겠다고 하여 그 곳에 들러 많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는데 그 부분에서부터 두 사람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더라. 다소 철학적인 담론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개인의 경험 차이에서 묻어나는 간단한 대화일 수도 있지만 두 사람은 참 달랐다. 가볍게 보면 남녀차이일 수도 있겠고.

  비포 선라이즈/선셋 시리즈와 달랐던 거라면 중간부터 펼쳐지는 역할극. 이게 또 재미난데 15년간 산 부부처럼 역할극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 극은 실제와 교묘하게 맞물려 마지막 부분에 가서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아닌지 헷갈리게 만든다. 무엇이 사실이어도 상관없겠지만 연기와 진행되는 내용이 맞물려 처연한 기분을 내는 데 참 묘하더라. 식당에서 립스틱을 바르던 엘르의 모습은 여느 사랑에 빠진 여성 같아서 귀여웠고, 침대에 누워 가지 말라고 애원하던 모습은 차분하면서도 깊게 슬펐다. 제임스는 똑똑하면서도 어눌한 느낌이 있었는데 그런 서투름이 마음에 들었지만, 뭐 9시 기차 이야기로 단호함을 엿볼 수도 있었지. 사랑 이야기로 보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해도 별 상관없는 그런 이야기. 다만 두 사람이 나누던 수 많은 대화 안에서 나는 오히려 제임스의 쪽에서 생각하게 되는 걸 보니 이전부터 그랬듯 내 사고방식도 참 남성쪽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은 했다.

  촬영이 좀 신기한 게 이야기를 하게 될 때면 내가 말하는 상대방을 보게 되는 촬영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면 엘르가 말을 할 때면 나의 시선은 제임스가 보고 있는 것을 담고 있는 것. 몰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담론을 좋아한다면 추천. 연기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
감독 롭 마샬 (2011 / 미국)
출연 조니 뎁,페넬로페 크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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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평을 많이 듣고 가서 그런가 생각보다는 무난했다. 근데 뭔가 쫀득쫀득하게 사람 끌어당기는 맛은 덜했음. 여전히 잭 스패로우(조니뎁)는 매력있지만, 그 외의 인물들이 좀 활약이 덜 했던 것 같다. 검은 수염(이안 맥쉐인) 캐릭터가 약간 흥미가 생길 뻔 했는데 그 이상이 안나오고 좀 뻔한 악역으로 가서 안타까웠다. 갑작스레 등장한 전여친이자 검은수염의 딸 안젤리카(페넬로페 크루즈)는 왜 마냥 선한 것인가. 이래서 어떻게 잭을 사귀었었나 하는 생각을 했다. 바르보사(제프리 러쉬)가 이전같은 모습이라 그나마 더 좋았음. 이전 같은 모습은 잭의 아빠 티그(키스 리차드)가 더 심한가..ㅎㅎ 이 쪽은 특별출연이었기 때문에 뭐. 새 캐릭터에서 주연급은 이게 전부. 조연에서 선원 스크럼(스티븐 그레이엄)이 있지만 딱 눈에 띄는 장면은 한 컷 정도였고, 목사 필립(샘 크라플린)은 저게 왜 나왔을까 날 고민하게 했고, 인어 시레나(아스트리드 베흐제-프리스베)는 예쁘긴 했다. 목사와 인어의 연애담 낭만적이고 좋은데 이 이야기에 끼기에 되게 뜬금없고 엉망으로 끼어 있다는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목사 나름의 개그샷은 웃기긴 했다만, 둘의 "넌 다르잖아" 드립에서는 오그라드는 손발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 외엔 또... 인어 타마라(젬마 워드)의 짧은 출연이 기억에 남고, 마차 안의 장면에서 특별 출연해주신 주디 덴치가 눈에 띄었다. 더 이상은 없음.

  완전 다른 새로운 이야기긴 했는데 그게 매력이 별로 없었다. 젊음의 샘이라는 소재를 찾아 떠나는데 별다른 흥미가 돋는 장면이 부족했다. 싸움도 좀 지지부진 지루했고... 잭이 이전처럼 재기발랄해보이지 않았는데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름 젊음의 샘을 찾는 패거리가 셋이나 되는데 그 셋의 명확한 대립이 썩 눈에 안띄어서. 아, 그리고 초반 장면이 너무 길다. 탈출장면은 흥미로워야 하는데 이건 좀 길어서 지루해지는 감이 있었다. 썩 영리하지도 않았고. 검은 수염의 배에 탄 뒤의 이야기도... 검은 수염이 대단한 선장이라는 게 확 안들어오더라. 또 마술을 부리네.. 요 정도였음. 오히려 2, 3편의 문어가 더 눈에 기억이 났어요.

  잭 캐릭터가 좀 의아했던게 젊음의 샘에서의 그 선함은... 뭐지? 이것은 내가 아는 잭 선장이 아닌데. 원래 선과 악을 넘나들었지만 여기서는 너무 착한 듯 하여 놀랐음. 마지막에 키스했으면 정말 실망했을 텐데 그건 아니었네. 뭐랄까 안젤리카와의 관계를 말로만 설명하고 넘어가니까 왜 저 여자를 사랑했을까... 고런 생각을 했다. 안젤리카는 예쁘긴 한데, 잭의 애인으로서의 그런 기질이 잘 안보였음.

  아 그리고 이거 무슨 엉뚱한 종교드립 나와서 멍때렸다....ㅎㅎㅎ 스페인 사람들 어이없게 나옴ㅋㅋㅋㅋㅋ 오직 신만이 영생을 주신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얔ㅋㅋㅋ이거 캐리비안의 해적 맞냐고.... 멍..... 하긴 목사 캐릭터도 너무나 너무나 뜬금 없었음...ㅎㅎㅎ 인어 뭍에서 다리 생기는거만 좀 신기했나...

  기존 시리즈를 본 사람들이라면 아쉬울 수 있는, 그러나 또 기존 시리즈를 본 사람들이 아니라면 이걸 왜 봐야하나 싶은 영화였다. 기대 안하면 재밌음. 여전히 잭 캐릭터는 재미있었다.


코파카바나
감독 마르끄 피투시 (2010 / 프랑스)
출연 이자벨 위페르,롤리타 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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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드블로그 시사회에 당첨되어서 갔다 왔다. 카피 탓에 모녀의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속았다. 이건 모녀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중년마저 지나가려 하는 엘리자베스 '바부'(이자벨 위페르)의 인생 이야기다. 바부가 갑자기 변화하려 애쓰는 데엔 딸 에스메랄다(롤리타 샤마)의 역할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모녀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의 카피에 뒷통수맞기는 몇번 당해봤지만 독립영화쪽에서도 이럴 줄은 몰랐어서 좀 당황했었다.

  카피와 상반된 영화라고 해서 이 영화가 별로다 라고 말하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영화는 적당히 현실과 판타지가 섞인 듯한 모습으로 가벼운 즐거움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그 점이 어떤 이에게는 좋을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싫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내게는 무리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이어서(나는 개연성만 있으면 약간의 판타지적 요소도 괜찮으니까) 결말을 보고서도 아, 이건 뭐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아니고 되게 쉬운 해결방식이지만... 뭐 어울리네. 싶었다.

  이 영화는 개인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인데, 정확히는 여태까지 자유롭게만 살아왔던 바부가 세상과 마주치는 이야기이다. 바부는 가볍다. 재미가 없으면 금세 관두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폐도 많이 끼쳤다. 어떤 직장이든 금세 관뒀던 바부이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딸 에스메랄다가 바부에게 자신의 결혼식에 오지 말기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에스메랄다의 입장은 이렇다. 엄마의 가볍고 돌발적인 행동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폐가 될 수 있다는 것. 그 속에는 결혼식 비용에 관한 것도 얽혀 있어서, 뻔히 결혼식 비용을 감당하지 못할 엄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바부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그녀를 오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당연히 바부는 이에 격분하여 자신도 스스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콘도를 파는 직장을 구해 벨기에까지 떠나온다.

  놀랍게도 이런 바부의 인생은 생각보다 잘(!) 풀려나간다. 살가운 성격 탓에 가림없이 친구를 사귀어 나가고, 그 와중에 남자친구 바트(유겐 델나트)도 만나고(바부 자체는 남자친구라기보다는 섹스프렌드로 생각하는것 같지만), 친구들의 도움으로 좋은 지점을 찾아 고객을 많이 유치해 승진도 하고, 직장 상사 리디(오레 아티카)의 눈에도 든다. 물론 질투를 하는 성격 안좋은 직장동료 이렌느(챈털 밴리어)도 있지만 이 정도는 우습게 넘길 수 있는 배포가 있어서 괜찮다. 자기 인생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챙길 줄도 알아서 길거리 노숙 여행자인 소피(마갸리 보크)와 커트(귀욤 고익스)에게 지나칠 정도로 호의를 베풀기도 한다. 이런 팔랑팔랑한 진행은 바부의 캐릭터와 맞아떨어지면서 영화를 보면서 약간의 청량감을 느끼게 해준다. 동시에 아슬아슬한 기분도 들고.

  바부의 캐릭터는 한없이 가볍다. 본인의 가벼움 탓에 악의가 있어서라기보단 생각없이 민폐를 끼친다. 도서관에서 떠드는 것, 친구 파트리스(루이 레고)의 구애를 가볍게 무시하는 것, 수잔(노에미 르보브스키)에게 차를 빌린다거나, 남자친구 같은 바트의 입장은 생각치도 않고 자신의 인생 경로를 결정해 버리는 것 같은 일들. 그러나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다. 소피와 커트에게 베푸는 호의만 봐도 그렇다. 물론 거기에는 자신이 원하는 자유로운 모습이 투영되어 있긴하지만, 바부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것들은 일반적인 동정을 넘어선 호의이다. 한마디로 바부의 성격은 전형적인 '애는 착해요' 타입.

  영화를 보는 나로서는 한번 스쳐지나가는 인물이지만 주변 사람의 입장에선 그럴 수가 없다. 바부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딸 에스메랄다와의 충돌은 여기에서 발생한다. 딸을 무척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바부이기에 그녀는 많은 인생의 결정들을 스스로만을 위해 내려왔다. 그 때문인지 에스메랄다는 정착하고 싶어 쥐스탱(조아킴 롬바드)과의 결혼을 서두르게 된다. 그나마 십대 시절에는 서로의 시선이 맞았던 것 같지만 딸이 성장한 이후로는 그럴 수 없어진 것 같아 약간 안타깝기도 했다.

  에스메랄다가 어머니를 무조건 나쁘게 보고 있진 않다. 그렇기에 벨기에까지 어머니를 보고 오고, 또 엄마의 무심함에 화를 내고 그랬던 거겠지. 결혼식에 오지말라고 해놓고서는 바부를 염두에 둔 계획을 짜는 것도 그랬다. 바부는 참 재미있는게 연애사에 있어서는 빠삭해서 그런가 에스메랄다가 왜 화가 났는지 잘 파악해 쥐스탱에게 조언을 주는 캐릭터면서, 정작 자신과 딸 사이의 문제는 무엇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그런 마주치지 않는 평행선이 영화 끝까지도 분명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영화는 하늘하늘한 감각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지나가기에, 둘 사이의 마주치는 부분만을 강조하여 행복한 여운을 남겨 준 거겠지.

  영화에 큰 사건은 없는데 긴장감이 조금은 있다. 왜냐하면 지켜보기엔 바부의 행동들이 너무나 아슬아슬하기 때문이다. 그런 행동으로 인해 벌어지는 바부 커리어의 종말은 예상된 것이었다. 언제 오느냐가 중요했을뿐. 사실 바부가 직장을 관두고 나온 돈으로 카지노에 들어갔을 땐 이 영화 정말 이렇게 끝내려는 건가 싶었는데 판타지를 마음껏 발휘하여 해피하게 돌린 건 좀 의외였다. 카지노를 데우스 엑스 마키나로 쓰다니! 보통이라면 질색할 전개인데 이 영화에서는 묘하게 어울렸으니 다행.

  전반적으로 다들 연기가 편안해서 좋았다.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이 영화를 혼자서도 잘만 이끌어나가더라. 마치 바부가 이자벨 위페르 본인인 것처럼. 딸 에스메랄다 역은 이자벨 위페르의 친딸인 롤리타 샤마가 연기했는데 비슷한 수준의 편안함을 보여줬다. 둘이 있을때 아무래도 분위기다 더 자연스러웠던 게 좋았다.

  생각했던 것 같은 모녀의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바부의 진정한 행복찾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바부에게는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사는 것이 행복이니까.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감독 줄리 테이머 (2007 / 미국)
출연 에반 레이첼 우드,짐 스터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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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류네 갔을 때 다류가 보여줘서 봄. 음... 테일이와 다류는 만족한 거 같았는데 나는 별로였다. 비틀즈 음악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인데, 스토리를 너무 영화에 짜맞췄다. 베트남전이 벌어지던 당시의 미국 상황을 녹여내고 뭐 이런 시도들은 좋았지만 그 구성이 영 내 마음에 들지는 않더라. 나는 꼭 짜여진 구성이 좋다.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사라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하고 그러는데 영 혼란스럽기만 하더라. 그렇다고 내가 옴니버스 영화를 싫어하는 건 아닌데 이건 좀 산만하고 별로였다. 감독이 비틀즈 음악으로 뮤지컬을 만들고 싶었구나... 영상미를 실현해보고 싶었구나 뭐 그런 생각은 들었음. 꼴라쥬 같은 게 나올 때마다 예쁘긴 한데 미쳐버릴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틀즈 노래로 만든 영화 아니랄까봐 주인공 이름은 주드. 여자 주인공 이름은 루시... 뭐 이런 식이었다. 아버지(로버트 크로헤시)를 찾아 미국으로 밀입국한 주드가, 아버지가 일하는 교내에서 맥스(조 앤더슨)라는 애를 만나 절친한 친구가 되고, 그의 여동생인 루시를 소개받고... 그리고 맥스와 뉴욕으로 떠난다. 뉴욕에서는 집주인인 세이디(데이너 푸치스)를 만나고, 기타리스트 조조(마틴 루더)를 만나고, 레즈비언 친구 프루던스(T.V. 카피오) 같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모두가 그 당시의 풍조에 흔들리고 영향을 받으며 그로 인해 그들의 삶에 변화가 나타난다. 베트남전 당시의 상황을 담고 있어서 군문제나 전쟁, 평화 뭐 이런 소재들이 버무려져서 제법 무게감도 있다. 

  전체적인 맥락이 단순하고(남자와 여자가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 안에는 전쟁에 관한 이념, 개인의 투쟁이 들어있고 뭐 그런식)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는 아니다. 전체적인 스토리보다는 짤막짤막한 장면들이 더 마음에 들었다. 사실 보면서는 이건 고문이야... 이러면서 봤다. 뮤직비디오 서른개를 연달아 보는 기분이었으니까. 보고나서 시간이 좀 흐르니까 그래도 괜찮았다, 하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부르는 장면들에는 뮤지컬감독인 감독의 역량이 미친듯이 발휘되는데 그 자체로는 훌륭하지만 이야기 안에서 보면 쓸데없거나, 혹은 너무 단순하거나, 너무 설명이 없기도 했다. 난 전체 구성이 이어지는걸 좋아하는 스타일이라 이 영화가 안 맞았던 거고. 그렇다고 이 영화가 별로다 라고 말하고 싶진 않은게 이건 단순히 내 취향이 아닌 거라서.

  주드 캐릭터가 은근히 형체가 잡히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 하나 보자고 밀입국까지 한 청년인데 낯선 곳에서 어리숙한 느낌이 있었다. 루시 캐릭터는 음... 물들지 않겠다더니 평화 사상에 물들어서 운동까지 해서 좀 웃겼음ㅋㅋㅋ 나쁘진 않았다. 주체적인 여성상이라서 그런가ㅋㅋㅋ 서로 흔들리고 있긴 했지만 주드를 좀 더 잡아주길 바랐다. 세이디와 조조는 다시 합칠 줄 알았고... 캐릭터가 재니스 조플린이랑 지미 헨드릭스에서 따온게 너무 보여서 재밌었음. 세이디 역 배우 목소리 너무 좋았다. 프루던스는 할 말이 없네요... 등장부터 퇴장까지 애매모호하게 처리되고 말았다. 조연 로버트로 나왔던 보노ㅋㅋㅋ 소소하게 웃김. 가장 좋았던 캐릭터는 맥스. 히피정신에 빠진 이 대책없는 청년에겐 싱그러운 매력이 있었다. 전쟁 후에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모습이 그래서 더 좋았고.

  비틀즈 팬이라면 더 즐겁게 볼 수 있을 영화. 전체적인 이야기의 구성이 중요하다면 별로 추천하지 않고, 개별 장면은 좋았다.

윈터스 본
감독 데브라 그레닉 (2010 / 미국)
출연 제니퍼 로렌스,존 호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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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누랑 볼 영화 알아보다가 이거 보기로 했다. 요새 볼 영화 너무 없어서 고르기 힘들었음... 윈터스 본은 얼마 전에 다류랑 보러가려다가 안 본 건데 어째 연이 닿아서 또 보게 되는구나. 사실 크게 기대 안했는데 오 나 엄청 재미있게 봤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불평했던 결말까지도 나는 마음에 들었다. 왜냐면 이 영화는 리(제니퍼 로렌스)의 이야기이지, 리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니까. 나는 그의 이야기는 별로 궁금치 않았다.

  한적한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리. 리에게는 돌봐야할 아픈 엄마와 아직 어린 동생 소니(이사야 스톤), 애쉬리(애슐리 톰슨)들이 있다. 아버지는 가석방중이지만 이주 째 보이지 않는다. 여기까지는 힘들어도 살만할텐데, 어느날 마을의 보안관 바스킨(가렛 딜라헌트)이 와서 알리길, 아버지는 보석금을 내고 가석방 된 것이고, 그 보석금을 낼 때 땅과 부지를 포함해 냈기 때문에 아버지가 재판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집과 부지가 나라에 몰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할 사람은 리 뿐이다. 리는 그동안 찾지 않던 아버지 제섭을 찾아나서려 한다.

  여기까진 평범한데, 그런 그녀를 보는 마을의 시선이 탐탁치 않다. 옆집 여자(쉘리 웨게너)는 와서 가만히 있으라 충고하고, 삼촌인 티어드롭(존 호키스)에게 찾아가 아빠와 친했던 리틀 아서(케빈 브레즈나한)를 찾아가려 한다고 하자 멱살을 잡으며 가만히 있으라 한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리틀 아서 또한 아버지의 행방을 모르며, 모든 길의 끝에 서 있다고 여겨진 텀프 밀튼(로니 홀)의 집에 찾아가지만, 그를 만날 수 없다는 그의 아내 메랍(데일 딕키)의 말만 매몰차게 듣는다. 모든것이 막혀서 힘들어 할 때 가석방 담당자(테이트 테일러)까지 찾아와서 모든 게 몰수될 거라 다시 한 번 말하고, 리는 다시 한 번 절박해진다.

  서로 혈연이든 무엇이든간으로 이어져 있는 마을 사람들이 '건들지 말라'는 일을 리는 건들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메랍일가에게 호되게 당하고 티어드롭에게 구출되며, 아버지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 티어드롭이 사실은 자신을 보호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들을 감지해나간다. 그 와중에도 힘든 삶은 계속되고, 어찌어찌 그 일들을 해결해나가는 이야기.

  리가 그렇게 강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리의 삶을 보면 알 수 있다. 범죄자인 아버지, 오히려 자신이 돌보아야 하는 어머니, 어린 동생들. 가지고있는 것은 서너푼인데 그것마저 빼앗길 지 모른다는 절박함은 리를 강하게 만든다. 리는 동생들에게 궂은 일을 하는 방식을 알려주고, 동시에 그들이 자신의 삶을 물려받지 않게 노력한다. (동생들의 교육에는 굉장히 신경을 쓰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리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보면 특히나.) 그녀에겐 너무 신경쓸 일이 많아서 약해질 수가 없다. 아버지의 팔을 잘라내는 그 순간에도 복수보다는 당장 살아가야 하는 삶을 생각할 뿐이다.

  리가 주체적으로 사건을 해결해나간다는 느낌보다는 상황을 헤쳐나간다는 느낌이 더 강했고, 그녀의 삶이 묻어나서 좋았다. 나는 보는 내내 굉장히 흥미진진해서 그런가 제섭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해서는 신경도 안쓰이더라. 영화에서 설명된 대로 배신한 것이 알려져 죽었겠지... 정도. 보면서 캐릭터의 느낌이 확 달라졌던 건 티어드롭. 초반에 리의 목을 움켜쥘 때만 해도 아니 저 사람은 뭔가 싶었는데 그게 다 리를 신경써서 한 행동이었다는 걸 알고나선 모든게 달라졌다. '마을의 규칙'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티어드롭이었지만 그래도 제섭을 굉장히 아꼈다는 것도 보면서 느껴졌고. 차에서 보안관과 대치하는 장면 또한 멋졌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될까. 범인을 알았다고 말하던 티어드롭은 왠지 복수를 할 것 같기도 하지만... 그동안 그가 보여줬던 태도나 조카들을 생각하는 태도를 보면 안 그럴 거 같다. 리는 일단 동생들 곁을 지키겠지만 언젠가는 군대에 가겠지. 그 또한 동생들을 위한 행동일 것 같다.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영화 전반적인 분위기나 이끌어나가는 방식, 캐릭터의 상황들이 흥미로웠다.

하얀 리본
감독 미카엘 하네케 (2009 / 오스트리아,독일,프랑스,이탈리아)
출연 마리사 그로왈트,야니아 파우츠,미카엘 크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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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류가 권해줘서 봤다. 처음엔 이거 언제볼라나, 싶었는데 또 금방 보게 되는구나. 역시 뭔갈 하는 건 타이밍. 그때 그때 적절한 순간이 있는 것만 같아...ㅋㅋㅋ

  세계1차대전 직전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다가, 흑백영화라서 좀 답답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영상적인 면에서 그런 건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밝은 곳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는 것처럼 화면이 선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자체의 느낌은 아무래도 무거울 수밖에 없는데 답답하다기 보다는 기저에 깔려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훔쳐보는 게 흥미로움에 가까워서 재미있었다.

  영화는 노인이 된 교사의 나레이션(에른스트 야코비)로 시작되고, 중간 중간 개입이 있지만 그 당시 일어났던 일에 대한 설명에 가깝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에 악이 어떤 식으로 피어나는 지에 대해, 은유적이지만 또한 직접적인 느낌으로 설명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영화의 장르가 스릴러로 구분되어 있던데 다른 것들과는 다르다.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문제가 진행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사소하게 양배추 밭을 흐트러놓는 데서 시작하지만, 그 일들은 점점 커진다. 남작의 아들 시지(피온 무테르트)가 거꾸로 매달린 채 얻어맞거나, 화재가 일어나거나, 나아가 다운 증후군 아이인 카를리(에디 가힐)이 심각하게 얻어맞는 일들로. 사건의 강도가 중요하다기보단 사건들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마음 속에 피어나는 감정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악의가 창궐하게 된 계기는 또 무엇인가. 영화는 그걸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찝찝하게 만들었다. 마을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일상적인듯 비틀려있다. 농부는 아내가 죽어도 내년의 일을 위해 남작에게 항의할 수 없다. 풍족하게 살고 있는 남작(울리히 터커)과 남작 부인(우르시나 나르디)의 집안에도 부부문제가 강렬히 드러난다. 남작부인의 변덕만으로 일하러 왔던 에바(레오니 베니쉬)는 쉽게 해고된다. 목사(버그하트 클로브너)는 아이들을 신심을 바탕으로 한 강한 압제 속에 키운다. 클라라(마리아-빅토리아 드래거스)와 마틴(레너드 프로소프)가 받는 스트레스는 목사의 앞에서 해결되지 않지만, 동시에 뒤에서는 스멀스멀 커간다. 마틴은 자위를 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에게 몸이 묶이기까지 하는데, 이 때의 표정이 참 그랬다. 난간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던 마틴을 붙잡고 교사(크리스티안 프리에델)가 왜그랬느냐고 묻자, 마틴은 "신이 자신이 죽질 않길 바라나봐요"라고 대답한다. 다른 집의 아돌프(레빈 헨닝)은 새로 낳은 아기에 대한 발언과 형제를 밀쳤다는 이유로 어머니에게 뺨을 얻어맞으며, 이런 그의 스트레스는 아기방의 창문을 열어두는 것으로 발현된다. 여행을 갔다 돌아온 시지는 아이들에 의해 강에 밀쳐지기도 한다. 마을의 의사(라이나 보크)는 산파(수잔느 로타)와 불륜관계를 맺어오지만 그녀를 잔인한 방식으로 버리고 딸인 안나(록산느 두한)을 추행한다. 보이지않는 모든 것들이 잘못되어 있었다. 게다가 있을법한 이야기라 더 신경을 곤두서게 하더라.

  그나마 밝은 부분을 꼽으라면 교사와 에바의 연애였지만... 뭐 이것도 완전 밝다고만은 할 수 없고. 안나의 동생 루돌프(밀얀 카틀렌)가 죽음에 대해 묻는다던가, 목사의 아들 구스타브(티볼트 세리에)가 새를 들고 목사에게 키워도 되느냐 묻는 대화장면 같은 끔찍하지 않고 또한 은유적이 장면들이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참 거식했던 것은 사실.

  여튼 이런 모든 상황과, 마을에서 일어나는 수상쩍은 사건들이 그나마 해결되려는 조짐을 보였다가 그대로 소멸해버리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나마 눈치를 챈 교사가 사실을 목사에게 언급했을 때 목사가 내보이는 반응은 역겨운 것이었다. 아이들은 순수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니, 그런 사고가 아이들을 어떻게 자라게 될 지는 그 뒤에 벌어진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있기에 보이는 거겠지.

  문제가 제시되지만 문제의 해결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하다기보단 많은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던 영화. 괜찮았다.

  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봤다. 과학자 스티븐 호킹을 다룬 드라마인데, 루게릭이 막 발병했을 젊은 시기의 이야기. 사랑을 다뤄서 약간 낭만적이기도 하고, 막 발병했을 시기라는 점에서 절망적인 정서도 있고(하지만 실제 인물이 살아있기 때문에 썩 비극적이진 않았다), 인간 스티븐 킹을 픽션 소재로 잘 활용 한 부분은 좋았다.

  스티븐 호킹(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막 박사 과정에 들어간 이십대 초반의 청년. 제인 와일드(리사 딜론)를 만나 막 연애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과학학도로서의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해서 꽃을 만개해야 하는데, 이 시기에 병이 발병한 것. 고작해야 2년을 버틸 수 있는 병 탓에 스티븐은 위축되기도 하지만 뭐 포기하지 않고 자기 꿈을 밟아나가는 그런 이야기.

  물론 이런 사람 곁엔 주변 도움이 꽤 있다. 아버지(아담 고들리)와 어머니(피비 니콜스)의 도움은 대단한 것이라기 보단 은연중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또 학문적인 면에서 이야기가 많이 이뤄지다 보니 담당 교수인 데니스 시아머(존 세션즈), 동료 학자라 할 수 있는 로저 펜로즈(톰 와드)와의 조합이 꽤 괜찮았음. 제인 와일드는 따지자면 부모님과 같은 노선이었는데 그보다는 더 나은 입장이었던게, 루게릭 발병 후인 스티븐 고백을 듣고도 그를 받아 들였다는 점에서 그랬다. 학문적인건 거의 스스로 만들어 낸 업적이지만 영화 보는 입장에선 주변의 은근한 도움이 눈에 띄었음.

  프레드 호일(피터 퍼스)의 이론을 반박하면서 대립하게 되는 모습은 좀 재밌었음. 프레드 호일을 너무 경박하게 그려놓은 게 아닌가 싶다만... 뭐 학문계의 싸움이야 독해지려면 얼마든 독해질 수 있으니까. 좀 더 유치하게 그려진게 안타까운 정도.

  아노 펜지어스(마이클 브랜든)와 밥 윌슨(톰 호킨스)의 어수선한 노벨 상 인터뷰 장면은 왜 나오나 했더니, 빅뱅 이후의 복사열 증명이 되는 거라서 나오는 거더라. 난 처음에 아 이거 때문에 진행이 막 끊기네 싶어서 짜증이 났었는데 뒤에 호킹의 이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따단, 하고 나타나는 거라서 놀랐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그래도 그걸 집어넣은 구성은 여전히 별로라고 생각함.

  보면서 음 베네딕트 연기 좋네... 하긴 했는데 사실 내용은 그에 못 미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얘네가 이론 설명해봤자 나는 알지 못할 뿐이야... 그냥 발견했네. 오, 이론을 찾았네. 이 정도밖에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보면서 약간 시큰둥. 그게 아쉬움. 난 좀 더.. 뷰티풀 마인드 같은 느낌을 바랐었던 거 같다. 그건 굉장히 매끄럽고 헐리웃느낌이 나게 각색이 된 작품이고, 이건 예산 적은 TV영화긴 하다만 아쉬운 느낌을 버릴 수 없다.

미스 페티그루의 어느 특별한 하루
감독 바랫 낼러리 (2008 / 영국)
출연 에이미 아담스,프란시스 맥도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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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포스터만 보고 에이미 아담스가 페티그루인줄 알았잖아... 아니었네요. 아무튼 1930년대에 나왔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라고 한다. 책을 안봐서 책이랑 비교는 불가능하고. 직장을 잃고 갈 데 없는, 보수적인 미스 페티그루(프란시스 맥도맨드)가 우연히 미국인 연기자 델리시아 라포스(에이미 아담스)의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 겪는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다룬 것 답게 진행이 빠르며 동시에 재치 있었다. 다만 내용이나 사건의 진행, 해결 자체는 좀 가볍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델리시아는 사랑스럽다. 바람둥이에다가 꿈만 화려한 여자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 삶의 바탕에 깔린 가난을 생각하면 이해가 될 법도 했다. 극단주의 아들인 필(톰 페인), 막대한 부를 지닌 클럽 주인 닉(마크 스트롱), 가난하지만 그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열정있는 피아니스트 마이클(리 페이스) 중에서 누굴 선택할지는 스토리상 자명하니 일이었지만, 이게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사람이라면 누굴 선택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삶은 한번 뿐이라는 이유로 마이클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 그렇게 허영심 강하고 꿈 많은 소녀가? 하긴 인간적인 면에서는 마이클 쪽이 가장 낫긴 했다. 필은 너무 어렸고(행동거지까지), 닉은 너무 강압적인 마초 이미지라 싫었음. 델리시아가 조를 두고 바람을 피우면서도 뻔뻔하게 굴었던 에디스(셜리 헨더슨)처럼 아예 속물적이진 않은 사람이라는 데 희망을 걸어야 한다니.

  페티그루에게는 꿈과 같은 하루 동안의 이야기. 순발력있고, 나름의 기준이 있다는 점에선 좋았지만 사실 그 외에는 잘 모르겠더라. 그녀의 구원은, 그 실마리는 그녀가 제시하긴 했지만 결국 남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슬펐다. 란제리 디자이너 조(시아란 힌즈)는 좋은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이었지만, 왕자님 같은 위치에 서 있어서 썩 괜찮은 해결 방법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너무 동화적이고... 페티그루에게 닥친 가난이라는 문제상황의 해결이 좀 아쉬웠다.

  보고나서는 비판할 게 있다만, 그래도 볼 때에는 즐겁게 볼 수 있었다. 달콤하고 상냥한 이야기.

글래스톤베리
감독 줄리언 템플 (2006 / 영국)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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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영국의 음악 페스티벌이며, 전 세걔적으로도 그 규묘를 자랑하는 '글라스톤베리 페스티벌'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비씨에서 제작한 걸 보니 이 나라는 정말 락의 나라로구나...ㅜㅜ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여튼간에 두시간 십분 정도로 길이도 꽤 길었고, 보는 내내 약간 지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벌써 4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축제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식으로 진행되어 왔는지에 대한 역사. 마이클 이비스라는 젊은 농부가 시작한 이 축제는 이제 전 세계적인 규모의 축제로 발전해버렸다. 처음에는 천 오백명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십오만명이 참가하는 축제. 어설펐던 진행이 점차 견고해지고, 원래의 히피 정신 같은게 사라져 가는걸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축제 내부의 상황이 나오는데 빠지지 않는 건 마약. 징글징글하게들 하더라... 이런 걸 보면 우리나라 락페가 낫다는 생각을 안할 수가 없었음. 그리고 나체족들 보고 깜짝 놀람. 어째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안을 활보하는 건지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뭐 그래도 다들 음악 즐기고, 그러는 건 좋더라만.

  진행에 관한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던데, 그럴 만도 한 듯. 한 인터뷰가 인상깊었다. 인터뷰어가 "축제에 가실 건가요?"라고 묻자, 주민이 이렇게 대답하더라. "가야지. 총을 들고."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 법한 대답이었다. 그리고 담장에 관한 것. 지금 담장 둘레나 높이가 어마어마하던데 끊임없이 그걸 뚫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스릴을 위해서... 그거에 대처하는 방식도 무지막지하더라. 감시카메라도 많고, 경비들도 많았고... 여러모로 신기했다. 2000년에 결국 담장이 무너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오고, 그래서 2001년엔 쉬고 담장을 '제대로' 쌓았다는 데서 이거 장난아니구나, 생각했음. 그 와중에 로스킬레 페스티벌에서는 10명이 깔려죽기도 했다고 해서 막 놀람. 놀러가서 저게 무슨 개죽음이냐.... 오폐물 처리 과정 나올때는 역겨워서 혼났고.

  축제를 통해 사람들이 가지는 낭만도 은근히 잘 드러낸 것 같다. 한 보험회사 직원이 인터뷰가 있었는데, 여기 와서 진짜 자신을 찾는다고. 그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럭저럭 이 페스티벌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듯. 그런데 난 왜인지 이걸 보고 글래스톤베리에 가고 싶은 생각은 사라졌다... 무서워요.

블라인드
감독 타마르 반 덴 도프 (2007 / 벨기에,불가리아,네덜란드)
출연 할리나 레진,요런 셀데슬라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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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출신 남자 배우가 불가리아에서 찍은 네덜란드 영화... 복잡도 하여라. 여자 주인공은 네덜란드 배우고 나머지 배우들도 그 쪽 출신인 듯. 아무튼 배경이 좀 특이하다 했더니 불가리아였단다. 되게 황량해 보일 땐 황량하고, 따뜻한 느낌일 땐 한 없이 따뜻한 느낌을 주던 그런 배경이었다.

  영화가 완벽하게 짜여진 느낌은 아니고, 약간 어설픈 듯 하면서도 사람 감성 자극하는 게 있다. 이런 진행은 렛미인에서 본 것 같아서 처음 느낌이 좋았다. 시대배경이 확실친 않은데 1880년대인 것 같다. 중간에 수술하는 장면에서 새로 나온 마취제라면서 코카인을 사용하는 게 있었다. 여튼 지금의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이런 배경은 영화의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과부인 어머니 캐서린(카테리네 베르케네)과 살고 있는 눈이 먼 소년 루벤(요런 셀데슬라흐츠). 집은 넉넉하지만 어릴 땐 보이던 눈이 멀어버린 터라 루벤의 성격은 제멋대로이다. 짐승처럼 악을 쓰거나 소리를 지르고, 제대로 씻지도 않으려 드는 모습을 보며 영락없이 곱게자란 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런 루벤에게 책을 읽게 하기 위해 어머니가 고용한 사람인 마리(할리나 레진)는 딱 봐도 다른 사람과 같은 생기를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 움츠러들어있고, 그러면서도 사소한 것에 공격당한 것처럼 발끈하는 태도는 그녀가 가진 상처를 짐작하게 할 만 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소년과 자신의 외모에 깊은 콤플렉스를 가진 여자의 만남은 당연한 것처럼 사랑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이 과정이 영화에서 가장 즐겁고 재미있었다. 책을 던졌다는 이유로 뺨을 때리고 자신은 나가지 않는다며 루벤의 머리채를 휘어잡는 마리. 마리가 소설을 읽을 때 악을 써대던 루벤. 모나기만 했던 둘의 감정은 점점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어 나간다. 마리의 향을 느끼고, 머리색을 묻고, 눈 색깔을 물으며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그녀를 상상하는 루벤과, 그런 루벤의 "당신은 아름답다"는 말에 혹하는 마리 둘 다 어떻게 보면 참 어리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지 못하는 것을 아름답게 그려나가는 소년도, 그런 소년에게 거짓말을 해나가는 마리도 어리석고, 어렸다. 그런데도 참 예뻤다. 서로가 입술을 맞대고, 도망가고, 쫓는 모습들은 긴장감이 있어서 두근거렸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장애를 가진 셈이었다. 루벤은 시각을, 마리 또한 그 시각에게 난도질당하는 마음의 장애를. 그런 둘이었기에 그 사랑이 더 순수해 보였다.

  그러나 앞서 심어둔 거짓말은 뻔한 결과를 낳는다. 루벤이 의사 빅터(얀 데클레흐)의 도움으로 눈 수술을 받게 되면서 지금의 안정된 상황은 모두 뒤흔들리고 마는 것이다. 마리는 달아나고, 루벤의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지고 방황하지만 결국 안정을 찾고, 마리를 다시 만나게 되고. 이런 진행이 중반 이후에 이루어지는데, 위기 상황이나 진행이 특별할 게 없어서 좀 아쉬웠다. 중반 이후의 진행이 약간 루즈하다고 느낀 건 이 때문이었다. 진행상황이 눈에 보일 만큼 뻔해서... 심지어 그 마지막 장면까지도 보면서 아 얘 다시 그렇게 되겠고만, 했다. 편지 읽을 때 감이 확 와버렸어. 그 장면이 내게 안타까움이나 여운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닌데... 아무래도.

  마지막 장면의 경우엔 난 어쩐지 해피엔딩인 것만 같다. 다시 그들의 세상으로, 그녀가 자신을 두려워 하지 않는 손 끝의 세상을 보게 된 루벤의 미소가 거짓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그리고 왜인지 마리 또한 돌아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원 중심의 배경과 음악이 영화에 잘 어울렸다. 약간 어설픈 편집까지도 영화에 잘 어울렸다. 나는 괜찮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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