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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락되는가? 세계 어느 나라던 간에 예술 작품의 음란성 시비는 끊이지 않는다. 예술 작품의 음란성 시비는 당국과 언론간의 시비 거리이며, 문화와 풍습에 따라 제도를 달리하고 있다. 이처럼 성이 문학뿐 아니라 여러 예술에 소재로써 사용되게 되면 여러 가지 시비를 달고 다니게 된다. 포르노그래피 예술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포르노란 무엇인가? 포르노를 인간의 육체 혹은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묘사, 서술한 것으로서 성적인 자극과 만족을 위해 이용되는 성표현물이라고 본다면 어디까지를 성표현물로 보아야 할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포르노를 내용에 따라 구분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는데 그 구분의 기준은 노골성과 내용의 반사회성이다. 한 예로서 폭력적인 성표현물, 비폭력적이지만 인간의 지위를 하락시키고, 품위를 손상하며,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을 묘사한 성표현물, 아동포르노, 성에 관한 일반인의 가치관에 직접적으로 배치되는 성표현물을 하드코어 포르노로, 성행위 또는 성행위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성기노출이 포함된 비폭력적․비품위손상적 성표현물, 성기의 노출이 없는 비폭력․비품위손상적인 성표현물, 나체 등을 소프트코어 포르노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성적 표현만으로 덧칠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포르노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사드의 ‘소돔 120일’은 성적 표현으로 가득 차 있지만 ‘소돔 120일’을 포르노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예는 많은 다른 예술작품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볼 때, 포르노와 에로티시즘의 경계는 확실히 구분 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포르노라고 낙인찍힌 작품은 언제까지나 포르노로 남아있는 것인가? 사드의 ‘소돔 120일’은 그를 둘러싼 온갖 악명에 가득 찬 신화 때문에 거의 2세기 간을 천박한 금서로 묻혀 지내야 했다. 사드가 사상사나 문학사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 그의 작품 속에서 문학적 급진성을 발견해내면서부터였다.

  또, 공자에 의해 편찬된 《시경(詩經)》에는 후대 지식인들에 의해 음란물로 판정받은 많은 문학작품들이 실려 있다. 이 음란물들은 "시경 삼백편의 시를 한 마디로 말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라고 단언한 공자의 권위에 밀려 내내 《시경》에 실렸고 유학을 배우는 청소년들은 수십 세기 동안 이 음란물을 암송했다. 일견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이 같은 상황은 문학작품이 갖는 감화력은 특수한 것이라는 원칙이 승인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까지 전래되던 시 3000여 편 가운데 305편을 뽑아 《시경》을 편찬하며 공자는 "본받기에 충분할 만큼 착하지 못한 것이나 경계를 삼기에 충분할 만큼 악하지 못한 것을 가려내어서 버리셨다."고 주자는 주석했다. 즉 《시경》에는 극단적으로 선하고 윤리적인 작품과, 극단적으로 악하고 음탕한 작품이 각각의 도덕적 자극을 위한 표본으로서 함께 있는 것이다.

  공자는 음란성이 짙은 문학작품에 대한 검열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리얼한 문학적 표현에 도달한 것은 그것의 음란성을 막론하고 "문학에 의한 인간의 형성과 교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공자는 '사회적 통념'이란 명분을 앞세운 얄팍하고 모호한 잣대에 의해 잘리고 붙여진 문학에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것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가? 지금 포르노라 불리는 문학들이, 현재에는 포르노라 규정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현재의 가치기준만으로 어떻게 예술 작품에 포르노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는가?

  포르노는 법적으로 19세 미만인 자는 관람할 수 없다. 그렇다면 포르노에 대한 사전검열이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19세 미만인 자가 관람할 수 없다면, 19세 이상인 자의 포르노 관람은 허용한 셈이다. 허용한 이유는 19세 이상이 포르노에 대한 판별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하여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19세 이상인 성인조차, 일정 수위 이상의 포르노에서는 판별력을 가질 수 없다는 말인가? 포르노에 대한 검열은 그것을 접하는 관람자들에 대한 우롱이다. 이미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것에 또 하나의 제도를 덧씌우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리이다.

  이러한 검열에서 예술 작품은 해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금기와 위반의 성 인식으로부터의 해방이 필요하다. 성은 예로부터의 금기시 되어왔으며 그 금기를 충동으로 인해 위반할 때는 그만큼 죄의식과 고뇌를 경험하게 된다. 성행위가 원래 생식 차원에서 출발했지만 동물과 달리 인간은 성행위를 에로티즘으로 승화시켰다. 예술 작품은 원초적이고 거친 성을 에로티즘으로 승화시키는 하나의 매개체 역할을 했다. 예술 작품은 그 동안의 인간의 성 문화를 원초적인 본능인 동물성의 차원으로 보는 것을 벗어나, 제도와 문화에 의해서 주어진 금기와의 투쟁 속에서 인간의 본질 성으로 승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대법원 판결 중, 한 미술교사의 개인 사이트 내 나체 사진 게시를 음란물로 판결한 것이 있다. 이에 반발하여 대법원 앞에서 퍼포먼스를 한 작가 김윤환은 “현대 미술이란 시대정신의 표현이며, 시대의 징후를 민감하게 포착하여 일상에 충격을 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사회를 성찰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대법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으며, 예술창작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을 법으로 규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예술이 음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법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예술 작품은 성적 표현을 함유할 수 있다. 이 경우 예술이 갖는 사회적 의미와 가치를 따져보고 예술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 장치를 가져야 한다. 검열이라는 이름 하에 예술 작품의 표현의 자유, 더불어 작품을 만들어낸 작가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가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작가의 상상력이 검열이라는 이름 하에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사람들을 외설과 음란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의무와 함께 예술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자의 의무는 19세 이상 된 자의 판별력에 의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보고, 후자의 의무 또한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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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때 쓴 거. 이거 쓰다 새벽에 울었었다. 대체 무슨 소리를 써야하나 하고ㅋㅋㅋ 화나가지구 너무 쓰기 싫어서 막 울었음... 그런데 어떻게 다 썼네 쓰긴ㅋㅋㅋ 기사에서 짜집기 한 부분은 눈에 확보이네 아주... 어이구 한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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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드럼스 영상을 조금 보여줬을 뿐인데
전에는 뭘 보여줬던건지 하도 예상가는게 많아서 슬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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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 of Life
Tree of Life by h.koppdelaney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외할머니께서 저번 주에 별세하셨다. 향년 92세. 모두들 호상이라고 그랬다. 외할머니 본인에겐 어떨 지 모르겠다. 생전에 몸에 좋은 걸 찾으시며 건강을 관리하셨던 분이니 그 분에겐 그렇지 않을 것 같다.

  80대까지만 해도 나이에 비해 정정하셨던 할머니인지라, 100세까지 사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할머니도 90대가 되자 급속히 쇠약해지시더니, 한 번 넘어져 다친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시다 세상을 떠나셨다. 다치고 나서 낫지를 않고 계속 아파하시면서 치매까지 오셔서 더 마음이 아팠었다.

  외할머니는 마지막 즈음에는 노인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올해 1월에 병원에 갔다가 나도 모르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노인병원의 그 서늘한 조용함이 등골시리게 싫었고, 침상에 누워 엄마도 알아보지 못하고, 다리도 펴지 못하신 채 누워 계시던 외할머니 모습이 슬펐다.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니 외롭고, 몸이 아프니 슬픈 곳. 옆 침상의 할머니의 푸념까지 더해져 그곳은 정말 악몽같았다. 편안하고 안정된 의료를 지원해줄 수 있을 진 몰라도 거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 때 차라리 이런 모습이라면 편하게 돌아가시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막상 돌아가시고 나니 그리움이 앞서니까... 외할머니가 서너달 내로 돌아가실 거라는 걸 엄마와 이모, 외삼촌들은 모두 알았다. 다들 담담하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받아들임이라는 건 실제 그것을 접했을 때와는 달랐던 모양이다. 장례식 내내 다들 슬퍼하기도 했지만 일상적인 잡담도 하고, 웃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발인을 하는 순간부터서는 정말 다들 슬프게 우셔서 기분이 묘해졌다. 나도 울었지만 내가 그 분들과 같은 감정으로 울었는지 헷갈린다. 외할머니와는 커다란 추억이 없었다. 아무래도 사는 곳이 달랐으니까... 게다가 그 분은 손주들만 열 일곱이셨다. 어쩌면 엄마가 우는 모습이 내게는 더 슬프게 보여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기억이 난다. 길게 길러 쪽을 지고 계셨던 머리가 싹둑 잘려 있었을 때의 서운함,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나이의 내게 화투패 맞추는 법을 알려주시던 모습, 툇마루가 있던 시골집, 디딤돌에 올려져 있던 고무신. 우리집에 몇개월 계셨을 때 내 방 침대에 앉아 두런두런 말씀을 건네시던 모습... 나는 왜 대답을 잘 하지 않았던 건지. 뭐 그런 모습과 그런 생각들.

  이렇게 문득문득 그리워 질 거다. 본인이 평소에 불교를 믿으셨는데, 극락왕생 하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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꺅 주소변경 언제 다한다
블로그 리셋한 기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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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잘 지내다가도 매사에 의욕이 확 떨어지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딱 그런 시기인 것 같다. 갑자기 팬질도 다 허무하게 느껴져서 사진폴더 봤더니 더 허무해졌다. 얼굴 보면 행복하고 좋은데 딱 그때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말마따나 니가 내게 밥을 먹여주니 눈길을 한번 주니.

2 근데 원래 팬질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거다. 대가 없이, 생각없이 애정 주는 거니까. 그냥 내가 지금 조금 멍한 상태라서 질렸다고 생각하는 걸거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프로필 등록하고 업로드하고 그러다가 갑자기 오늘이 무슨 날이라고 싫어질리가...

3. 그러고 보니 네이버에 스트록스 프로필 전부 등록됨. 사진은 내가 같이 첨부한걸로 안했더라. 설마 자기들이 알아서 찾은걸까ㅋㅋㅋㅋㅋ 근데 이것도 3집 사진들은 아니어서 또 벙찜. 뭐지 네이버... 팬이라도 있는거니. 인큐버스랑 쿡스 프로필도 수정 좀 해줘 제발...

4. 대학원을 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이 없다니. 돈을 벌어야지... 돈이 최고다... 이, 삼년 벌어서 대학원 가고싶다. 근데 그때 쯤 되면 안갈 거 같기도...

5. 컴퓨터 그래픽 드라이버를 바꿨더니 해상도가 맛이가서 한참 고생했다. 그냥 선하나 바꿨더니 원상복귀 됐고, 망가진 시간도 삼십분 정도였지만... 그 삼십분 동안 지옥을 봤다. 빼도 박도 못하는 컴중독이다.

6. 엄마가 졸업을 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난 정말 하기 싫은거 억지로 했었는데, 엄마는 스스로 했다. 우리집에서 제일 의욕있고 제일 똑똑한 사람 같다. 꼭 그런건 안닮는다.

7. 엄마 졸업식에서 나, 동생, 엄마 이렇게 셋이 사진을 찍었는데
엄마와 동생의 교집합은 이목구비
엄마와 나의 교집합은 골격
아빠랑 찍을 땐 반대.
그래서 나와 동생의 교집합은 제로.

8. 뭔가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남은 건 없네. 하루 종일 문자를 주고받으면서도 외로워서 참을 수 없을 거 같은 때가 있다. 난 원래가 인간관계로 삽질하는 인생인거 같다. 아무튼 사람들이랑 있어도 외롭단 내 말에, 유네는 내가 친구들이랑 있을 때 잠을 자기 때문이라고 농담조로 말했다.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라고도. 맞는 말이다. 내겐 좋은 친구가 있으니까 아마 괜찮을 거다.

9. 그래도 내일 약속인 압구정은 가기 싫다.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지하철 노선도 검색하다가 사실은 신촌보다 가깝단 걸 알고 좀 놀랐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 가기 싫은 거겠지. 이사나 가고 싶다.

10. 주절주절  쓰다보니 또 엄청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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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민족주의, 거기에서 나온 표현들
(짱X, 대륙의... 아무튼간에 비하 표현은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내가 전체주의에 좀 거부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다)

눈먼 법의 수호자
(머리는 가볍게 가슴은 뜨겁게!)

전라도/경상도 놈들은~
(어떻게 저런 사고가 나올 수 있는지 뇌 해부 필요)

기자, 교사, 교수, 여류작가
(성별 확정 안해주면 몰라볼 정도냐)

걘 너무 싸구려야, 우리 XX는 그런 성격 아니거든, 걔가 좀 마음이 약하잖아
(애정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건 이해하는데, 가끔 이게 진짜 지나친 사람들이 있다.
마치 그게 진실인 것 마냥. 연예인이랑 개인적으로 아시기라도 하시는건지)

어줍잖은 선민의식
(정말이지 너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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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떠오르는 건 이 정도인가
내가 너무 까칠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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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감상문'으로 도배 된 리퍼러 보니 눈물이 난다

얘들아 숙제는 스스로 하는거란다
감상문 하나 스스로 못쓸 거면 나가 뒤지시고 자퇴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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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일 케이크였던 딸기 치즈 케이크. 이대 근처의 가게에서 파는 거란다. 속이 다 크림치즈고 밑에는 파이. 텔이가 사들고 왔는데 아주 맛있었다. 그날 밤엔 슥헤가 페레레로쉐 한무더기를 들고 왔다. 그것도 맛있었다. 먹는게 남는거다. 사실 생일 당일엔 기분이 그냥 그랬.. 아니 별로였다. 엄마 아빠가 둘다 내 생일을 잊어버렸어... 그날 내내 구박만 받았는데...

2. 요새 쿡스가 너무 좋다. 항상 좋아했지만. 싱글 B사이드 듣다 보니까 행복해지고 있다. 아담 램버트 앨범 들어봤는데 타이틀 곡 빼고는 아직 적응이 안된다. 확실히 목소리는 좋다. If I Had You 이거 좋던데 나는. 로비 윌리엄스 신보는 Starstruck이란 곡이 참 좋더라... 오케이 고 신보는 이전과 확 바뀐 것 같았는데 나쁘진 않았다.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가 있어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좋았다. 또... 쉐어드 세븐 곡을 듣게 됐는데, Step inside your love 이 곡이 맘에 들어서 베스트만 들어보았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스텝 인사이드 유어 러브같은 느낌이 나는 건 의외로 적던데...

3. 일렉트로도 조금씩 듣는 중. 요새 듣는건 크라프트베르크랑 시미안 모바일 디스코 정도... 예전엔 일렉 질색했는데, 일렉도 잘 골라들으면 취향에 맞고 좋은 듯. 그래도 영 안맞는 것들도 있다. 듣다가 포기한 Aphex Twin이나, Venetian Snares을 생각하면... 으. 항상 남이 듣고 좋아하는 음악은 나도 좋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저 두 뮤지션은 듣자마자 소름이 쫙 돋아서 결국 꺼버렸다. 베니션 스네어스는 절대 못들을 것 같다. 뭐 하긴 이런 식으로 취향 갈리는 건 다른 음악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4. 갑자기 신물이 난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알던 사람들이 비겁하게 굴었던 만큼이나 나도 비겁하니까. 갑자기 다 때려치고 싶은 거 같은 기분도 드는거다. 내가 하는 행동들이 착한척인지, 착한건지 가끔 헷갈린다. 분명한건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건데. 화내는게 싫다. 그럼 내가 사물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내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그런 기분이 든다. 아, 이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지? 화를 내면서도 내 머릿속에 있는 건 그따위 생각인거 같다. 결국은 아무리 심각한 척 하고 스트레스 받아도 진짜 내 진심은 고작 그정도라는 거 아닐까...

5. 뭔가를 하긴 해야하는데, 뭘 할까. 나보다 더 다급한 건 엄마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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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Lovers by Nad Renrel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동거란 사전적으로는 단순히 같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회적인 의미에서 동거는 어떠한가? 여기서는 곧 사실혼에 입각한 관계의 동거의 의미가 강하다. 최근 몇 년 동안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동거에 관한 이야기를 부쩍 많이 다뤄왔다. 동거라는 말만 나와도 쉬쉬하던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그만큼 동거라는 행위는 사회적인 현실이 되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중년층의 동거에 대한 인식이 나쁜 편에 속한다. 당장 우리 부모님께 동거에 관해 물어만 보아도 크게 화를 내신다. 중년층에게 있어서 동거는 결혼을 회피하고 성관계만을 위해 동거한다는 의미가 큰 것 같다. 또한 우리나라처럼 순결을 중시하는 가치관이 있는 사회에서, 그 사실혼 관계가 겉으로 드러나는 동거는 좋은 시선을 받을 수 없다. 특히 딸을 가진 부모라면 이러한 현실에 동의하여, 동거에 관해서 굉장히 안좋은 시선을 보낸다. 

  막상 동거를 하는 나이 대는 중년층보다는 청년층이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거에 관해서는 청년층의 의견이 아닌 중년층의 의견이 왜 나오는가? 바로 중년층은 청년층의 부모이니까 그렇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자식들은 부모의 품 안에서 자라난다. 따라서 다른 나라에 비해서 부모와 자식의 유대 관계가 깊은 편이며, 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뗄 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식으로 정의되고 있다. 부모는 자식이 커가는 와중은 물론이고, 다 커서까지도 그들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 이런 가족 유대적인 환경은 자식이 자식의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하기도 한다. 동거도 바로 이러한 경우이다.

  중년층이 이렇게 동거를 반대하고 나섬에도 불구하고, 동거는 현실이다. 나는 동거에 찬성한다. 한국에서는 지금 30만 쌍이 결혼을 하면 그 절반인 14만 쌍이 이혼을 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통 부부간의 성격차이와 가족과 시부모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잘 살펴보면 서로에 대한 완벽한 이해가 바탕이 되지 않은 현실, 그리고 가족이 둘의 결합이 아닌 가족과 가족 간의 결합이 되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이혼이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타협의 부족이다.

  아무리 오랜 기간 연애를 했다고 하더라도, 같이 살아보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배우자가 양말을 벗어 제대로 세탁기에 집어넣지 않는다고 생각해보자. 그 일은 몹시 사소하지만, 10년이고 20년이고 그것이 반복된다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고부간의 갈등도 그런 식이다. 요새 주부들이 들어가는 사이트에 가 보면 이런 글들이 눈에 꽤 띈다. 시부모가 하루에 한 번씩 전화하고, 그것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남편에게 말하면 남편은 그런 일 가지고 무슨 불평이냐고 한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의 삶에 너무 간섭하기도 하며, 배우자에 대해 배려가 없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가 반복되면 당연히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다.

  과거의 여자들은 이러한 일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이혼은 상상치도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율이 높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의 여자들은 다르다. 현대의 여자들은 남자와 똑같은 권리를 주장한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이러한 스트레스는 당연히 오래 견디기 힘들고 종당에는 이혼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는 발달하여 의식은 높아져 간다. 그러나 남자들은 자신들의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가부장적인 체제에 익숙해진 상태이다. 여기에 여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알았다. 가부장적인 남편은 자신의 아버지와 같은 행동을 요구하지만, 여자들은 순응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혼을 한다. 어쩌면 여성 인권의 신장 또한 이혼율의 원인이라면 원인일 수도 있겠다.

  동거는 높은 이혼율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동거를 통해 배우자의 세세한 습관을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이 양가의 합의를 얻어낸 동거라면 가족들의 간섭이 어떠한지도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함께 살아봄으로서 결혼의 예행연습이 될 수 있다. 이런 식이라면 굳이 호적에 이혼을 표시해가며 사람과 헤어질 이유가 없다. 상대방을 겪고 판단해서 하는 결혼이라면 실패할 확률은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더 줄어든다.
 
  그러나 굳이 결혼의 예행연습이니 뭐니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동거는 유익한 편이다. 둘이 함께 산다면 생활비와 집세 등이 많이 절감된다. 굳이 모르는 타인을 룸메이트 삼는 것보다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편이 좋다. 결혼에 비해 서로에게 얽매일 이유도 적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무거움에서도 해방될 수 있다. 결정적으로, 서로 사랑해서 한시도 떨어지기 싫다는데 동거를 해서 안 될 이유는 또 무엇인가? 20대 이상이라면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서 있는 나이이이다. 또한 그것을 실제로 실행할 수 도 있는 나이이다. 자신의 판단 아래 동거하는 것이 죄가 될 이유는 없다. 부모는 자식에게 조언할 수는 있으니, 자식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동거 현실은 너무나 열악하다. 법적인 것도 그러하고, 사회적인 시선도 그렇다. 사실혼 관계가 법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효력은 너무나도 적다. 같이 살고 있는 자신의 동거자가 당장 죽을 위기라 해도, 다른 동거자는 수술 동의서에 서명할 수 없다. 결혼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데도 보고만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고 살다가 배우자가 죽으면 상속권도 받을 수 없다. 이 얼마나 불합리한가?

  사회적인 시선도 만만치 않다. 앞서 서술했지만 중년층이 가지는 동거에 관한 시선은 몹시 좋지 않다. 굳이 중년층이 아니라도 그렇다. ‘나는 동거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라고 말하는 젊은 층의 사람도 실제로 동거하는 커플을 보면 신기하게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전에 동거기록이 있다고 하면, 이 사람에 대한 진실성부터 의심한다. 남자의 경우에는 헤어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결혼한 뒤 배우자 가정에 알려지면 평지풍파가 일 지경이다. 실제 드라마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다룬 적이 있었다. 여자 주인공의 동거사실이 시댁에 알려지면서 여자 주인공은 많은 고초를 겪는다. 문제는 이것은 현실이라는 것이다. 실생활에서 ‘동거하고 있다.’라는 식의 말을 꺼내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십상이며, 좋지 않은 시선을 받게 된다. 우리나라에서의 동거는 폭탄을 껴안고 산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아무런 보호도 없다. 이 와중에 동거문화 열풍이니 뭐니 해서 ‘사랑해서 하는 동거’가 아닌, ‘동거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동거’를 위한 사이트마저 생기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프랑스는 동거가 일상화된 나라이다. 프랑스의 동거 혹은 독신 인구는 전체 인구의 1/3에 달한다. 프랑스에서는 세계 제 2차 대전 이후 여성들의 여권이 신장되었다. 이에 따라 가정주부를 거부하고 남자들의 일을 하게 된 여자들이 생겨났다. 이에 1968년 5월 68혁명이 일어나면서 독립적 사고를 증진하고, 자신뿐인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자 하는 사상이 널리 퍼졌다. 이를 통해 동거의 일상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프랑스에서는 동거를 많이 선호하고 있고, 전체 출생아의 45%가 동거부부에게서 난 아이들이라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렇게 동거가 횡횡하는 이유는 일단 제도적으로도 확실히 동거가 뒷받침되기 때문일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PACS 법을 통해 동거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이 법을 통해 동거하는 이들은 결혼한 이들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PACS 법은 동성애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어 프랑스의 다양성을 볼 수 있게끔 한다.

  또 프랑스인들이 가지는 개인주의가 동거에 한 몫을 한다. 그들의 부모는 자식이 동거를 하는데 관여하지 않는다. 갓 성인이 된 아이가 동거를 한다고 해도 조언할 뿐 말리지는 않는다. 그들의 부모는 우리나라의 부모들처럼 헌신적이지 않으며, 자식을 품에 안고 키우지도 않는다. 개인주의가 발달했기 때문에 그들은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지는 무게감과 책임감에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으레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을 해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받아왔다. 그래서 그 무게감이 덜하지만, 프랑스처럼 개인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더욱 더 그 무게감이 더해지는 것 같다.

  프랑스처럼 우리나라에서 동거가 횡횡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사회적 시선이 몹시 안 좋지 않은가? 그러나 점차 동거 인구가 늘어난다는 통계는 동거가 점차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온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가족은 전통적으로는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해 왔다. 물론 이러한 변화가 단번에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직도 이 부분에서는 많은 문제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이 일반화 되었고 이것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나라 특유의 가족형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부모 가족과 자식 가족이 각각 따로 살지만 가까운 거리에 집을 두고 서로 자주 왕래하는 식의 수정 확대가족이나, ‘영구별거’가 아닌 ‘일시별거’의 의미를 가지는 수정 직계가족 등의 형태가 그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낸다. 동거가 점차 밑에서 올라와 그것이 현실문제로 대두된다면, 사람들은 새롭게 그것을 적응해 나갈 것이다.

  앞서 말했듯 동거는 현실이다. 언제까지 순결이니 뭐니 내세우면서 현실을 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동거에 대해 찬성이니 반대이니, 우리 사회는 이미 동거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동거가 실생활에 도움을 주는 장점들은 확실히 있다. 금전적으로, 정서적으로도 그렇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 안에서 동거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케케묵은 사상을 빗대어 자신을 옭아매고, 혹은 자식을 옭아매거나, 그에 얽매여 자립심을 잃거나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내가 나의 의지로 동거하고 있다는데 남이 욕한다고 그 욕을 들을 필요는 없다. 동거를 한다고 하여 문란한 관계로 보는 것은 먼지 쌓인 과거에 사는 사람의 일이다. 실제로 동거를 하지 않는 모든 연인 관계가, 성관계 없이 이루어진다면 또 모르겠다. 과도한 유대관계에서 나타나는 단점을 깨달아야 한다. 문란함과 도덕성을 따지기 이전에 실리를 따져야 한다. 그것을 깨닫고 나면 동거가 나쁘다고 만은 볼 수 없다.

  물론 동거가 가지는 나쁜 점들도 존재할 것이다. 제도적인 것, 사회적인 것을 빼고 서로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책임감의 상실, 너무나 가벼운 만남과 이별, 결혼에 대한 가치 상실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그러한 인간적인 면들만 따져 동거를 무조건 반대하기에는 시대가 너무 변하지 않았나?

  현대의 가족관계에서 나타나듯, 사람들은 언제나 중도의 또한 적절한 방식의 해결 방안을 찾아냈다. 곧 스스로 자정작용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람을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인간미가 결여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될지, 혹은 이혼율을 줄이며 서로에 대한 이해의 가치를 높이는 사회가 될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혹 인간미가 결여된 사회가 된 들 어떠한가? 사람들은 스스로 그것들을 선택했을 것이고, 스스로 그것에 적응해 나갈 텐데. 우리에겐 우리 스스로를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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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썼던 프랑스 관련 교양 과제에 냈던 거. 어린 생각이다만 나는 동거의 효율성 만큼은 긍정하는 편... 동시에 그에 대한 편견도 물론 가지고 있는 기묘한 상황. 아무튼 내가 한다고 하면 그전에 우리 엄마가 날 죽이겠지..

정말 아무 이유없이 짜증나서 미쳐버릴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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