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아들의연인
카테고리 소설 > 한국소설 >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정미경 (문학동네,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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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포스팅을 안해서 포스팅 할 게 쌓였네요. 그와 별개로 기억은 점점 흐려져서 이거 내용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게 슬픈 일. 그래도 뭐 대략적인 감상만 말해보자면...

  여성적인데 굉장히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아무리 화자가 남자여도 문장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되게 여성적이었는데, 그와 별개로 다루고 있는 소재나 표현하고 있는 감정들은 현실의 극에 치달아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꽤 편한 감정은 아니었스요. 그래도 잘썼다는 생각을 했다. 단편집이라지만 단편에 따라 각각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었는데, 뭐 그 호불호 이전에 소설 자체는 꽤 괜찮고만. 그랬음. 너무 통속극 스럽지 않나? 했던 것들도 따지고 보면 뭐 그래 그 통속극이 우리 사는 일상이니까. 있을 수 있겠네. 그런 생각을 하게 되고... 빤한 소재 가지고도 괜찮게 썼어서 적어도 읽고나서 후회하진 않았다

  기억나는거만 몇 개 말하면... '너를 사랑해' 같은 경우엔 진짜 소설집의 처음을 장식하는 단편인데도 썩 맘에 안들었었는데, 그 소재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비참하다 싶은 남녀 짝이 벌이는 일들은 결말이 좋지 않을 것만 같아서 즐기지 않는 편이라서. 근데 또 막상 다 읽고나면은 얘네의 감정에 꽤 이입하게 되어서 나쁘지 않았음. '내 아들의 연인'은 진짜ㅋㅋㅋㅋ 이거 뭐야 드라마야? 하면서도 좋았다. 부유한 중년 여성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아들의 가난한 여자친구. 담담한 묘사 안에서도 억눌린 감정의 틈새가 조금씩 보여서 좋았다. 나는 여전히 아들 녀석이 핑계대는 짓거리가 유치하고 또 어이없다고 생각한다. 꾸미지 않는 편이 좋다. '매미'는... 이런 건 솔직히 내가 좋아하는 스토리라 할 말이 없다. 내가 공연 후에 이명을 꼭 겪는 편이라서 그런가 약간 더 공감하기 편하기도... 그리고 인문계 남자의 현실 같은 것들도 좋았고, 여자와의 관계에서 나오는 그런 것들... 밑에서 헤엄치고 있는 어두운 것들이 막판에 튀어나온 것이 좋았다. 뭐 그게 희극적인 결말을 낳진 못하더라도. '시그널 레드'는 그냥 정신적으로 장애있는 남자 보는 것 같았고. '밤이여, 나뉘어라' 같은 경우엔 뒷부분에서 소름이 쫙쫙 끼치는데 주인공이 그 친구를 만나지 않았다, 그런 기억이 없다 하며 뒤돌아서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한 평생을 쫓으며 이기자고 했던 천재가 그런 식으로 살고 있다면 나라도 잊을 것 같다. 그가 몰락한 게 기쁘기 이전에, 그를 쫓는 열망을 잃어 몰락하는 날 보는 게 더 슬플 것 같다.

  나쁘지 않았다. 엄청 좋진 않았고.
프랑켄슈타인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메리 W. 셸리 (열린책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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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빅터 프랑켄슈타인 이 개새끼야....

  뭔가 내가 상상했던 프랑켄슈타인이랑 달라서 놀랐다. 난 괴기영화에 나오는 이미지에 익숙해져있어서 프랑켄슈타인이, 정확히는 이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이 것'이 이런 생물일 줄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만들어지는 것도 중반부 이후의 일일 줄 알았었다. 근데 그게 아니고 초반에 후딱 만들어지고 그 이후의 상황으로 가더라. 참고로 프랑켄슈타인은 이 이름없는 괴물을 만든 사람의 이름. 빅터 프랑켄슈타인. 그에게는 이름조차 없다.

  초반엔 1인칭으로 시작되는데도 불구하고 주인공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느끼는 모든 감정들에 이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것'의 입에서 나오는 진술을 듣게 되면 그가 저지른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것에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오로지 겉모습만으로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사랑의 한 조각조차 얻지 못하는 그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파진다. 그가 아무리 믿을만한 말을 내뱉어도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는다. 그의 창조자조차 그의 생김새때문에 그를 혐오하는 마당에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단지 이해받고 기댈 곳이 필요했던 그가 세상에 분노하게 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창조자인 빅터가 그를 혐오하고, 마을 사람들이 그를 혐오하는 데에는 오직 외모라는 이유 하나만 존재할 뿐이다. 더군다나 '그 것'이 가지고 있는 지적 수준과 마음씨를 본다면 그를 동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빅터가 수많은 핑계를 대도 그렇다.

  쫓고 쫓기는 막판의 상황은 오히려 '그 것'에게 삶의 이유를 주었을 것 같다. 자신을 찾는 유일한 단 한사람 빅터가 죽게 됨으로써 그로서도 더 이상의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 것이겠지. 여튼지간에 읽는 내내 이런 식으로 서술자가 아닌 객체에게 이입하게 된 소설도 흔치 않을 듯.

  뭐 괜찮았다. 생각만치 괴기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그냥... 좀 안쓰럽고, 그렇다.
대기불안정과그밖의슬픈기상현상들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리브카 갈첸 (민음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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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도 특이하고 진행 방식도 흥미롭고, 그렇다고 감정 묘사가 부족한 것도 아니어서 난 엄청 재밌게 읽었다. 어느 날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도플갱어가 앉아있더라, 그래서 아내를 찾아 나서는 정신과 의사 레오의 이야기. 정신과 의사 아니랄까봐 정신의학, 분석학에 관련된 묘사가 생겨난다. 거기에 자칭 왕립기상학회 회원이라는 레오의 환자 하비의 이야기가 섞여들면서, 기상학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온다. 기상학 이야기가 나오며 기상학자인 츠비 갈첸이 소설 속으로 기묘하게 융합된는데, 이 츠비 갈첸은 작가 리브카 갈첸의 아버지라는 점에서 한 번 더 웃게 만드는 소재였다.

  굉장히 즐겁게 봤는데 쓰려니까 뭘 써야할 지 모르겠다만... 모든 보이는 것은 '가짜 레마'가 '진짜 레마'임을 말함에도, 레오가 진짜 레마를 찾아나서는 과정이 가장 흥미로우며 또 주목해야 할 부분 같다. 레마의 모습과 레마의 기억을 가지고 있음에도 레오는 주관적인 판단 하에 현재 옆에 있는 레마가 가짜라고 믿는다.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 실제와 가상의 구분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도 의문을 갖게 하고, 또 내가 인식하는 타인에 관한 부분이 얼마나 맞을 수 있는지, 내가 인식하는 데 문제가 생긴다면 타인의 존재가치 또한 내 안에서 다른 방식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 뭐 그런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다가오게 하는 소설이었다.

  근데 뭐 철학적인 이야기 안해도 그냥 재밌다. 난 판타지로 시작해서 현실로 끝나는 이 결말까지도 좋았다. 약간 서스펜스 읽는 느낌도 들었고ㅋㅋㅋ 좋았음. 근래 읽은 소설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다.
명예
카테고리 소설 > 독일소설
지은이 다니엘 켈만 (민음사,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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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피가 흥미로워서 샀던 소설. 컴퓨터, 인터넷, 전화 등의 소재를 통해 '나'를 규정하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교묘히 뒤틀려 있어서 그 부분도 흥미롭다. 맨 처음 소설을 읽고 당황했던 게 이게 단편집이었나? 였는데, 서로 연결된 부분이 있으면서 또 각개의 소설로서도 말이 되는 연작 소설 모음집이더라. 그래서 그런가 크게 가로지르는 주제는 비슷한 듯 하다. 소재는 전부 다르고 각개의 소설로서도 매력이 있다.

  모든 단편들이 다 만족스러웠다 말하긴 힘들지만, 내게 엄청 매력적으로 다가온 단편들도 있어서 좋았다. '토론에 글 올리기'와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는 정말 마음에 들었다. 전자의 경우 남 이야기 같지 않은(...) 트롤의 모습에 감탄했다. 인터넷과 현실 사이에서의 갭이 그리 크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이중적인 캐릭터보다는 이렇게 적당히 약점에 빠진 캐릭터가 좋다. 후자의 경우엔 모든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거짓말과 그에 따른 결과들이 폭풍우처럼 몰아닥치는 점이 아주 좋았다. 파멸밖에 남지 않은 미래를 앞둔 주인공의 태도도 마음에 들었고. 그 외에 마음에 들었던 건 '탈출구'와 '목소리' 정도. 이 두 소설은 소설집 안의 소설 중에서도 꽤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되는데, 두 소설이 떠맡고 있는 주제가 '나'를 만드는 부분을 파고든다는 점에서 비슷했던 것 같다. 전화를 통해서 랄프가 될 수 있었던 에블링이나, 이미테이션 랄프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고 또 잃게 되는 랄프의 이야기나 둘 다 재미있었다. 나머지 단편들도 무난무난하게 괜찮았지만 썩 취향이랄 건 없었고... 여튼 난 이런게 좋더라.

  구성이 가장 흥미롭고, 소재도 괜찮고. 마음에 든 편이었다.
나는전설이다(밀리언셀러클럽18)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리처드 매드슨 (황금가지,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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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도 전에 읽은건데 지금 감상을 쓰는걸 보면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없다는걸 알 수 있구나... 하여튼 다류한테 빌려서 읽음. 전부터 읽어보고는 싶었는데 도서관 가기는 귀찮고 사기는 왠지 돈아까울 거 같아서... 장르문학은 안읽는 건 아닌데 사는 건 좀 망설이게 되더라. '나는 전설이다'가 중편으로 맨 앞에 있고, 뒤에는 단편들로 배치. 다 읽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전설이다'가 가장 재미있었고, 단편들은 그럭저럭하게 읽었지만 대부분은 취향이 아니었다. '매드 하우스'만 조금 재미있었다. 호러 소설은 썩 취향이 아닌 것 같다. 나는 전설이다 쪽은 호러라기 보단 나름의 고찰이 있어서 좋았지만. 설정 만든것도 지금 읽어도 재밌고.

  나는 이런 좀비물이 딱 질색인데, 원체 디스토피아물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데다가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공감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살아남기 위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말이 허무로 끝난다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주인공의 비참함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고... 비참함이 있는 건 좋은데 언제나 행복한 결말이 좋고, 혹은 주인공 본인이 담담하게 넘겨버리거나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을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좀비물 같은 건 거기와 완전 동떨어져 있다. 주인공들은 꼭 살아남으려 발버둥치고 그 끝에 구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는 전설이다'의 중편이 꽤 마음에 들었는데 네빌이 가진 삶에 대한 욕구가 일단 마음에 들었고, 네빌이 죽는 과정까지도 꽤 낭만적이었기 때문이다. 몇몇 판단이 아쉽기는 했지만 네빌은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과거를 무작정 그리워하지 않았고, 미래를 받아들였다. 그런 일련의 사고과정이 나름의 설득력이 있었다. 그렇게 지구 최후의 마지막 세대가 된 네빌의 사고를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 끝이 구원은 아닐 지라도 뭔가... 의미있지 않은가. 새로운 인류의 전설이 된 게.

  좀 편식하는 편인데 장르 소설치고 느낌이 좋았다. 다만 다른 단편들은 별로.
별에서온아이
카테고리 소설 > 세계문학 > 영미문학선
지은이 오스카 와일드 (웅진씽크빅,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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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아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니라. 그것만은 확실했다. 동화집이지만 오히려 내용 안에서 현실적인 면이 너무나 많이 들어가 있어서 끝을 보고서 이게뭐야, 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그런 놀라움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이야기를 내 머릿속에 남기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이 동화라는 걸 생각하고 그 독자를 고려했을 때, 딱히 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진 않았다. 가장 유명하면서 동시에 이 소설집의 가장 첫번째에 있는 '행복한 왕자'를 읽을 때부터도 씁쓸했는데 거의 모든 동화가 현실과 뒤범벅되어서 낭만적이고 달콤한 환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헌신적인 친구'나 '공주의 생일' 같은 것은 읽으면서 꽤 괴로운 느낌이었다. '공주의 생일'에서 마음이 부서져버린 난쟁이를 보면서 참 한숨이 나오더라. 그나마 좀 교훈적이면서 편안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자기만 아는 거인'과 '어린 왕'일까... '별에서 온 아이'는 굉장히 교훈적인 이야기였으나 결말 한 줄로 모든 것을 뒤집어버렸다. 깜짝 놀랐음. '어부와 그의 영혼'은 전개가 좀 의외였는데, 난 영혼을 없앤 어부가 더 나쁜 사람인 줄 알았기에... 뭐 요것의 결말은 그나마 좀 나은가.

  동화들을 읽으면서 오스카 와일드가 진짜 섬세한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도 꽤 즐겁게 읽었지만, 동화 쪽에서도 그런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될 줄은 몰랐다. 희곡은 내 취향 범위가 아니어서 일단 패스해뒀는데 나중에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 글들이 되게 섬세하다. 번역된 것인데도 찔러온다. 내용이 마음 아픈 것들이라 그런가 더 그랬다. 이거 쓸 당시의 오스카 와일드를 생각하면 좀 슬퍼진달까.

  좋았으나 슬펐다. 여러모로.
오후네시
카테고리 소설 > 프랑스소설
지은이 아멜리 노통브 (열린책들,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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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 후 조용한 곳에서 여생을 살기 위해 <우리집>에 정착한 에밀과 쥘리에트 부부는, 매일 네시에 자신들의 집을 찾아오는 베르나르뎅 씨를 만나게 된다. 이게 반가운 이웃이면 모르겠지만 팔라메드 베르나르뎅은 괴짜에 가까운, 같이 있으면 한없이 괴로운 이웃이다. 예의가 몸에 밴 에밀은 그를 거절하지 못하고, 몇 번 피하려고도 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은 쉽사리 무너진다. 그 이후 만나게 되는 팔라메드의 부인 베르나데트는 지능이 떨어져 보이는 괴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에밀은 한없이 베르나르뎅씨를 피하다가 그의 무례로 제자를 잃을 지경에 처하자 예의를 잃고 폭발하고, 그 일로 그를 떼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후에 이러난 베르나르뎅씨를 '구해서' 오히려 고통에 빠뜨리게 되는데, 해서 결말까지의 진행은 너무나 노통브식.

  결말 보고 정말 전형적인 노통브식 해결방법이네 하고 허허 웃어버린 소설. 나쁜 건 아닌데 워낙 앞에 읽은 것들이 있으니까 그런가 신선하진 않았다. 자기해석이 너무 강하지 않나 싶기도 했고... 이 작가 세계관도 진짜 견고하구나. 아직 사놓고 안읽은 거 두 권인가 남아있는데 그것도 이런 식의 결말이라면 좀 실망할 것 같다. 이번 소설도 신선하지 않았던 게 결말이 너무 아멜리 노통브식 결말이었거든. 난 이 작가의 생각의 진행 방식이나 서술 방식은 꽤 마음에 들어하지만... 자기 복제같아서 좀 지루했다. 소재 자체는 읽었던 것중에 가장 신선하긴 했다만, 그렇다고 해서 팔라메드 베르나르뎅 씨의 행동의 이유가 명쾌하게 설명된 것 같지도 않고, 원인보다는 사건의 진행과 결과 이런 것들에 더 치중했더라. 나는 원인도 궁금한데.

  그리고 에밀의 사고방식이 다른 소설들에 비해 조금 공감하기 어려웠다. 항상 예의를 차리던 인간이 한 순간 핀트가 나간 것까지는 좋은데, 뭔가 높은 수준의 사고방식을 가지고서 자신에 맞게 끼워넣은 느낌도 있었다. 이게 노통브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소설은 소설이니 거기까지 나가면 안 되겠지.

  이미 노통브의 소설을 몇 권 읽은 후라서 그런가 아쉬움. 재미없는 건 아닌데.
2008/04/28 - 지킬 박사와 하이드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책만드는집, 2007)

지킬박사와하이드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웅진씽크빅,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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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다른 판본으로 읽었는데 책이 생긴 김에 한 번 더 읽었다. 뒤에 단편들도 읽은 셈이고... 여전히 매력적인 소설이다. 저번에 읽을 땐 안그랬는데 이번에 읽으니 약간 구성이 꽉 짜여진 느낌은 덜하구나 싶은 아쉬움이 있긴 했다. 그래도 재미있었음. 이중인격을 극대화한 느낌이라서 독특하고. 그래도 나는 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식의 변화는 좀 무서운 것 같다.

  시체도둑은 짧은 이야기였지만 소재 때문에 강렬했다. 이건 세 편의 소설 중에 가장 간단하고 또 단순했는데 그렇게 완벽하단 느낌은 없었다. 그래도 흥미본위로 읽기에 즐거웠다. 약간 텔레비전에서 설화 듣는 느낌이었다. 시대배경이 예전이라 그런가 살인 사건이 조사되는 모습 이런 거보다 묵인하고, 쉬쉬하고 넘어가는 그런 모습들이 자연스레 느껴졌다.

  오랄라는 예상 외로 아주 좋았다. 계속해서 느껴지는 신비롭고 꽉 막힌 듯한 느낌이 좋았다. 관찰자의 눈에 보여지는 비밀을 간직한 집안이 내게도 신기하게 다가왔으니까. 오랄라 캐릭터가 너무 성스러워서 뭔가 더 괴기소설처럼 진행되어도 좋지 않았나 싶었지만, 그건 어머니 역할만으로 충분하긴 한 것 같다. 근데 아무리 봐도 흡혈귀 같은데. 그건 아닌 거 같아서 소재가 아깝기도 하고, 순문학으로서는 이게 더 낫기도 하고. 애틋한 헤어짐까지도 좋았다.

  세 편 다 완전 잘썼다 라는 느낌은 안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재미있어할만한 부분을 잘 짚어내고 또 작가 본인이 자신이 손댈 수 있는 선에서 즐겁게 쓴 소설이라는 느낌이었다. 재미있었다.
공중곡예사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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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놓고 한참만에 읽은 듯. 그리고 여전히 나는 읽은지 일주일이 지나서 감상을 쓰고... 집에 놀러왔던 친구가 이거 재밌어 해서 아 맞다 그거 읽어야겠다 하면서 읽었다. 폴 오스터의 소설은 이게 처음인데 꽤 마음에 들었다. 글이 생각보다 진중하고 무게감이 있어서 놀랐다. 왜 되게 가벼울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무겁다고 해서 재미없거나 지루한 건 아니고 오히려 파고들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다루고 있는 소재는 가벼운 듯 가볍지가 않았따. 판타지이면서 또 판타지가 아니었고.

  제목만 보고 처음엔 아, 서커스단에 들어가서 공중곡예를 연습하는 사람의 인생담인가. 뭐 그정도를 상상했었다. 그런데 진짜 하늘을 나는 이야기다! 오. 소설의 상상력이여. 소재부터 나의 상상력의 빈곤함을 일깨워주더라. 고아인 '월터'가 유대인 사부 '예후디'를 만나서 하늘을 나는 방법을 배우고, 또 그 이후의 월터 인생 전반을 통과하는 이야기. 예후디의 집에 간 월터는 당시 월터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이 소설의 시대배경은 1920년대 정도!) 흑인 '이솝'과 인디언 아주머니 '수'와 살게 된다. 또 한명, 같이 살진 않지만 현명하면서 또 약간 괴짜같기도 한 '위더스푼' 부인도 있다. 처음 월터는 이솝과 수를 이상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하고 혐오하지만 그럼 감정들은 교육으로 인해 점점 나아지며 결국 그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고, 또...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또 만나고. 험난한 월터의 인생 여정이 묘사된다. 1장이 끝날 때엔 너무나 충격적이라서 눈물도 안났는데, 2장 끝날 때엔 참 많이 울었음. "좋았던 시절들을 기억해라.", "내가 너한테 가르쳤던 것들을 기억해."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 하나에 펑펑 눈물이 나더라. 3장은 읽으면서 가장 심드렁하기도 했는데 월터의 삶이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또 월터의 타락을 바라보는 심정이 편치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4장은 마무리되는 이야기였기에 나쁘지 않았고.

  나는 이 소설에서 월터가 하늘을 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보진 않았다. 그걸 시작으로 엮인 인간관계와 이야기 진행들이 중요했지. 1장의 흥미로움과 2장의 진득한 무거움 속에서 묻어나오는 삶의 단면들이 참 좋았던 소설.

  앞으로도 몇 번 더 읽어볼 것 같음.
폭풍의언덕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문학선
지은이 에밀리 브론테 (민음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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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정신병자들의 향연인가... 워낙에 유명한 소설인지라 좀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별로였다. 이건 에밀리 브론테의 자매인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네. 자매가 내게 무슨 짓을 한거지... 오히려 극 내용으로만 보면 제인 에어 쪽이 더 탄탄해 보인다. 폭풍의 언덕은 집안의 가정부 넬리의 입에서 전해지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좀 이상했다. 구성 방식이 영... 근데 재미는 이 쪽이 더 있었던 게, 캐릭터들이 워낙에 강렬해서 그랬다. 그래도 내 취향은 별로 아니었다. 나는 나쁜 캐릭터 좋아하는데 여기 나오는 '나쁜' 캐릭터들은 동정할 가치도 없어ㅎㅎ

  1대와 2대에 걸친 이야기인데, 캐릭터들이 다 혈족으로 맺혀있어서(오 친척결혼 가능한 나라시여) 읽으면서 관계 정립하느라고 초반에 좀 헷갈림. 케서린 언쇼와 힌들리 언쇼가 일단 남매고, 언쇼 집안에 히스클리프가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야기의 서술은 가정부인 넬리가 맡는다. 가정부지만 힌들리와 나이가 같음. 소설 주인공 1세대들과 동년배라서 그 나이에 맞는 시선을 보여줄 때도 있다.

  캐서린은 말괄량이 캐릭터고 힌들리는 약간 허세 있지만 그래도 괜찮은 남자애였던거 같은데, 히스클리프로 인해 여러모로 두 캐릭터 영향을 받게 된다. 아버지에게 히스클리프와 비교당하며 히스클리프에 대한 증오를 쌓은 힌들리는,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히스클리프를 핍박한다. 이 상황에서 캐서린과 히스클리프는 그래도 서로를 의지하며 잘 노나 싶더니,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좋아하면서도 그의 가난과 무지함을 견디지 못해 안전한 선택(...)인 린턴가의 에드가와 결혼한다. 이 에드가가 나쁜 사람이라면 좋겠지만 점잖고 괜찮은 사람이란 게 오히려 내 속을 태웠다. 여튼 이 과정에서 캐서린의 속마음을 알게 된 히스클리프는 언쇼 집안과 린턴 집안에 복수를 다짐하며 마을을 떠난 후, 한참 후에 다른 사람이 되어 되돌아온다. 여기서부터 복수극의 시작이다.

  마을로 돌아온 히스클리프는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있던 힌들리의 집에 정착한다. 일단 도박으로 이미 위더링 하이츠 저택을 손에 넣은 상태인데, 여기서 또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던 헤어턴의 사랑을 얻는데 그를 좋은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 망치는 길로 인도한다. 1대 뿐 아니라 2대를 망치고 있는 셈. 난 여기서부터 히스클리프를 용서할 수 없었다(...) 또 히스클리프는 주기적으로 캐서린과 접촉한다. 옛 친구의 귀환에 마냥 신난 캐서린은 그를 항상 환영한다. 에드거의 불만을 사더라도 신경쓰지 않는 쿨함... 속터져서 내 참. 이 와중에 에드거 린턴의 동생인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에게 반했다는 사실을 알고 화를 내는 걸 보면 어이가 없어 소설 안으로 뛰어들어가고 싶을 정도. 그리고 이걸 생각없이 히스클리프에게 말하는데, 히스클리프는 린턴 가문 또한 망치기 위해 이사벨라를 이용하여 둘이 도망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사건들이 겹쳐 캐서린은 결론적으로 보면 자기 화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망. 죽기 전에 딸 캐서린, 즉 캐시 린턴을 낳고 죽는다. 이사벨라 쪽은 후에 본색을 드러낸 히스클리프에게 질려 히스클리프의 아이를 잉태한 채 다시 도망. 린턴 히스클리프를 낳는다. 이렇게 캐서린이 죽으면서 1대의 이야기가 마무리 되는 셈. 난 너무 이해가 안갔던 게 캐서린. 자유분방한 아가씨인건 좋은데 민폐는 끼치지 말라 이거야. 히스클리프는 좋지만 가난한 그는 싫어. 에드거는 안정되고 편안하지만 히스클리프에게 끌려. 이게 뭐야 이 싸이코패스야.... 그러다가 결국 자기 화를 감당 못하고 죽지를 않나. 어이가 터졌다.

  캐서린이 죽어서 정신을 차리면 히스클리프가 아니죠. 끝까지 언쇼 가와 린턴 가를 망가뜨리려는 히스클리프의 계획은 2대로 넘어가 계속되는데, 캐서린이 죽은 뒤 그의 오빠인 힌들리 또한 죽게 되고 남은 아이 헤어턴은 하인의 상태로(자신은 그런 지도 모르는 무지몽매한 상태로) 자라게 된다. 히스클리프가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힌들리의 복수를, 그 아이에게 고대로 한 셈. 캐시의 경우 에드거 린턴의 지극한 사랑으로 자라나지만 어머니를 닮은 구석도 분명 존재해 이게 재앙의 씨앗이 된다. 린턴 히스클리프는 이사벨라가 죽은 뒤 잠시 에드거의 집에 맡겨지지만 히스클리프가 그 존재를 쫓아 아이를 빼앗아간다. 본디 몸이 약하고 성격도 그다지 강하지 못했던 린턴은 히스클리프의 집에서 더 버릇없고, 더 유약하게 자라난다. 이 세 아이가 만나는 장면들이 좀 웃긴데, 어쨌든 히스클리프의 계략으로 세 아이는 다시 재회한다. 셋 다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만 캐시는 하인같은 모습의 헤어턴이 자신의 사촌이라는 데 질색을 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하지만, 린턴의 경우 지극한 정성으로 보살피려 든다. 헤어턴의 상처가 보여버려... 헤어턴은 캐시의 눈에 잘 들려 노력하지만 캐시의 무시와 본인의 무지가 겹쳐 좋지 않은 결과만을 낳는다. 나약한 린턴은 캐시에게 더욱 매달며 애같이 구는데 캐시는 그를 내버려두지 못하고 연락을 하다가 결국 히스클리프의 계략에 말려들어 그와 억지로 결혼하게 된다. 좋지 못한 타이밍으로 에드거까지 사망, 결국 양 집안의 재산을 손에 넣으며 히스클리프는 두 집안을 몰락시키는 자신의 계획을 이룩한 셈. 린턴 이 자식은 보면서도 끝까지 짜증이 났던데 야 이 징징이 새끼야.... 몸 약한건 참겠는데 정신이 이따위인건 참을 수가 없더라. 게다가 결혼하고 나서 홀랑 죽어버려 히스클리프의 계략에 한 몫을 해주어버렸다. 어이구 속터져.

  그래서 위더링 하이츠에는 히스클리프, 헤어턴 언쇼, 캐시와 하인들이 이상한 동거를 하게 된다. 집안 분위기가 좋을 리 없지만 이 상태가 계속되는데, 헤어턴의 배려를 마침내 캐시가 깨닫고, 또 그런 캐시로 인해 헤어턴이 변해나가면서 상황이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런 상황을 지켜보는 히스클리프는 자신의 복수가 틀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며 결국은 죽는다. 해서 이 두 사촌끼리 결혼할 모양새를 풍기며 훈훈하게 끝나는 이야기... 인데 훈훈하지가 않단말이다 나는!

  일단 캐릭터들이 너무너무너무 민폐쟁이들이다. 심지어 서술자 넬리마저도 그렇다. 끼어들어서 왜 괜찮을 수 있는 일을 괜찮지 않게 만든다던가 정작 끼어들어야 할땐 끼어들지 않느냔 말이다. 하인의 입장도 있겠지만 이 부분이 무척 열이 받았음. 그리고 1대의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은 천하의 개... 여기까지. 둘이 사랑해서 결혼했으면 이런 일도 없을 텐데. 아 이건 캐서린 탓이구나! 그래 이 사람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다. 왜 두 남자 이것저것 재느라고 사람들 속을 헤집어놓느냐. 게다가 에드거랑 결혼했으면 제대로 행동했어야지 히스클리프를 놓지 못하는 행동들은 또 어쩌고. 와 내가 보다가 책 찢어버릴뻔. 히스클리프도 자기 연애는 자기 연애고 애들은 애들이지 왜 2대까지 건드려. 복수의 정당성이라고 하기엔 너무 지나치지 않느냔 말이다. 에드거가 나쁜 사람이었으면 말도 안해... 그리고 히스클리프 어린시절 보면 얘도 썩 심성이 바르고 올곧지도 않아요. 또 1대의 힌들리. 야임마... 애아빠가 엄마 죽었다고 애를 그렇게 방치하다니 용서할 수가 없다... 그리고 히스클리프 괴롭힌 것도 애 때야 이해가 간다만 다 커서도 그러지 말라고... 1대에서 봐줄수 있는 건 에드거, 오직 신사 에드거 뿐이에요. 2대는 애들이 다 이런 상황에서 자라서 이해가 간다만 여기서도 캐시가 좀 짜증이 났음. 어쩜 그리 엄마의 단점만을 닮았는지 하지말란 건 다해요. 발을 빼려면 좀 빨리 빼던가... 와오. 그러나 2대의 상진상은 역시 린턴 히스클리프. 이 징징이자식을 그냥...! 어쩜 이렇게 오만불손하고 짜증나게 자랐는지 자식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하게 해주는 캐릭터였다. 캐시랑 그 난리 쳐서 결혼했으면 잘해줘야지 어쩜 아빠한테 그런 거만 배워서ㅡㅡ 흐아 끝까지 싫었다. 헤어턴의 경우엔 별 말 하면 안될 거 같음. 얘는 상황이 그랬지 애 심성이 괜찮았다. 삐뚤어진 모습을 좀 보여주긴 했어도 이해할 만한 수준이었고, 또 자기 변화하려는 모습이 기특했음.

  내가 이거 왜 봤지. 전혀 낭만적이지 않는데다가 캐릭터들에게 정을 줄 수 없는 소설이었음. 교훈은 뭐 사람에게 잘 대하자 정도인가. 어쩌라고...? 그래서 총평. 막드도 이런 막드가 없다...... 제인 오스틴이 정말 연애소설 잘쓰는 거였구나.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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