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고 싶은 말은 오베론(레니 제임스) 이 샹샹바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음... 세잌스피어 리톨드 시리즈 중에서 가장 판타지적인 요소가 많았고 또 가장 연극적인 각색이었다. 맥베스에서도 약간 환상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건 전체 스토리에 엄청나게 영향을 주는 요소는 아니었는데, 한 여름 밤의 꿈에서는 이 판타지적인 요소가 없으면 이야기가 굴러가지 않는다. 원작에서도 요정왕 오베론과 요정여왕 티타니아(샤론 스몰), 요정 퍽(딘 레녹스 켈리)가 없으면 안됐었는데 각색본에서도 이 부분은 마찬가지. 하긴 사랑의 묘약을 다루고 있으니 별 수 있으랴만은. 중간중간 끼어드는 퍽, 혹은 오베론의 설명은 굉장히 연극적이다.

  사랑의 본질 의미 뭐 이런거 추구하는 건데 워낙 우연도 많고 주인공들 말도 설득력이 떨어져서 그런 부분으론 전혀 감흥이 없었다. 테오(빌 패터슨)와 폴리(이멜다 스턴톤)의 딸 헤르미아(조 태퍼)가, 어릴 때부터 함께 있어온 제임스(윌리엄 애쉬)와의 약혼식 당일에 진짜 연인 젠더(루퍼트 에반스)를 데려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여기에 헤르미아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속으로 제임스를 좋아하고 있었던 헬레나(미쉘 보나르)까지 합세해서 누가누가 커플이 될 지 보이게 된다. 다만 이 과정이 하룻밤 새, 그것도 사랑의 묘약을 통해서 풀어가려는 수를 쓰다보니까 보는 입장에서는 좀 황당해지는 전개가 나오는거지. 티타니아가 약혼식 유원지의 개그맨 보턴(조니 베가스)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좀 뜬금없고 그건 화나기까지 하더라. 오베론 이 샹샹바가... 마누라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자고 그런 짓을 하냐... 입만 딱벌어짐. 게다가 자기 혼자 북치고 장구치더니 혼자 깨닫고 사과하러 옴... 이게 뭐야...

  가볍게 보면 그냥 하룻밤 사이의 가벼운 소동으로 끝낼 수 있는 이야기고 재미도 고만고만한데... 개인적으로는 네 개의 시리즈 중 가장 별로였다. 젠더가 부자라니, 부자라니! 제임스가 헬레나한테 다시 고백하는 건 귀엽다 생각하면서도 아 뭐냐 싶고. 주요한 캐릭터가 다른 것들에 비해 많아서 그런가 어디에 집중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 난 별로.

  셰익스피어 소설 중에서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서 보기 전에 망설였다. 괄괄한 여자를 '길들인다'는 거 자체가 좀 거부감이 있어서... 풍자극이라고 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걱정하면서 켰다. 괜찮은 듯 하면서도 내가 생각했던 불편한 점도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편이었다.

  전체적으로 과장된 로맨틱 코미디를 노린 것 같은데, 캐릭터들의 과장도 대단하다. 현대극이니 그 과장된 부분이 더 눈에 띄기는 하는데 페트루치오(루퍼트 스웰)는 그나마 괴짜 짓을 하는 '그나마 현실적인' 건달 날백수로 보이는 반면, 캐서린 미놀라(셜리 헨더슨) 쪽은 현실에 저런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싶은 캐릭터가 되어 있었다. 툭하면 화내고 성격 더러운 서른 여덟의 하원 의원. 말만 들으면 현실적인데 캐릭터 묘사가 너무 불같다. 의원직을 가지고 있으면서 저 정도로 말도 안되는 일에 화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있나, 싶고. 가운데 손가락 욕에서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귀여운 면모도 있긴 했지만 워낙 기본 캐릭터가 그래서 그런가 현실감각이 떨어져버렸다. 둘이 투닥대면서도 결혼에 이르는 장면도 억지스러워서 저 상황에서 누가 결혼하겠냐! 싶고. 신혼 여행지 가서는 좀 낫긴 했는데... 지친 기색이 역력해져서 뭔가 맘을 놓아버리는 캐서린 탓에 좀 멀쩡해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둘이 사랑에 빠지는 게 약간 불명확해 보였다.

  연예인인 비앙카(제이미 머레이)의 연애는 뭐 그냥저냥 심심했다. 공항에서 만난 말도 제대로 안통하는 이탈리아 청년 루첸티오(산티아고 카브레라)와 연애하는 게 좀 뜬금없이 느껴졌다. 스타니까 엉뚱한 짓을 할만하다 싶기도 한데 사랑보다는 애완동물을 바라보는 그런 느낌... 그래도 이런 캐릭터 매력있긴 하더라. 자기 자신을 똑부러지게 알고 있어서. 매니저이자 엉뚱한 결혼의 원흉인 해리(스티븐 톰킨슨)는 약간 찌질해 보였다. 순정남이니 뭐니 치장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막판에 자매들의 엄마(트위기)와 사귀게 된 데서는 더 깼다.

  캐서린이 사랑에 빠지게 된 거 좋지만서도 이야기 마지막에 혼전계약서에 관해 이야기 할 때는 너무 싫었다. 남편을 띄워주는 수준을 넘어선 말들에 기분이 나빠짐. 중반 이후로는 그래도 이 드라마에 적응하고 있었는데 막판에 기분이 상했다. 난 농담으로라도 그런 식의 말이 싫으니까.

  모르겠다. 재미 없는 건 아닌데 다룬 소재가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반대되는 것이 있어서...

  어우 이거 뭐 이리 불편하냐... 맥베스가 원래 비극이어서 불편할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런식으로 자기파멸에 이르는 내용을 현대담으로 보고있자니 더 묘하게 현실적이었다. 고전으로 볼 때보다 소름 끼치는 느낌이었다. 내용이 엄청 복잡스럽진 않은데도 팍팍 이해되는 구조라서 그런가 난 좋게 본 편. 그래도 뭐 다시 보고 싶진 않은 느낌이네. 난 비극 안 좋아해서...

  이제 막 미슐랭 별점 3점을 획득하게 된 레스토랑의 주방장 조 맥베스(제임스 맥어보이). 레스토랑이 이 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조의 힘이 컸지만 레스토랑의 소유권은 조가 아닌, 조에게 아버지나 다름 없는 던칸 도허티(빈센트 레건)에게 있다. 게다가 던칸은 레스토랑 일에 크게 관여하지 않기에 던칸만 없으면 조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상황. 야망있는 아내이며 레스토랑의 지배인인 엘라(킬리 호위스)가 계획을 짜고 부추켜 조는 결국 던칸을 살해하게 된다. 모든 계획은 엘라가 짰지만 실제 살인을 저지른 것은 조이기에 조는 죄책감에 휘둘리면서 모든 것을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전에는 노래와 시가 함께 하던 주방의 분위기는 점점 안 좋아지고, 죄책감과 성공에 대한 열망이 뒤섞인 광기 안에서 조는 중심을 잃고 절친한 친구 빌리(조셉 밀슨)를 부하 조니(그레고리 치즘)를 시켜 살해하기에 이른다. 오랜 시간 레스토랑과 함게 한 웨이터 맥더프(리처드 아미티지)와 던칸의 아들이며 견습생인 말콤(토비 켑벨)은 뭔가 잘못 되었음을 눈치채고... 뭐 이러니 저러니 해서 점점 조는 미쳐간다. 어느 정도냐면 그렇게 강한 엘라 또한 자살햇는데도 그걸 전해주는 로디(베리 워드)에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조는 조 때문에 가족을 잃은 맥더프에게 살해당하고, 레스토랑은 말콤에게 다시 넘어가고, 빌리의 아들들이 그 레스토랑을 이어갈 것 같은 분위기로 끝.

  ...인데 묘사를 왜 했나 싶구나. 아니 뭐 고전과 비교하시라고. 스토리 자체가 대단한 것은 아닌데 앞서 말했듯 배경이 현대인데다가 진행 이해가 잘 되는 단순한 구조면서 재미도 있어서 좋았다. 빌리 너무 훅 간거랑 중반부까지의 진행에 비해 후반부가 약간 허술한 느낌이란 게 아쉽긴 하다. 연기들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제임스 맥어보이 점점 미쳐가는 게 보기 재밌었다. 이 사람은 순한 얼굴로 웃는 것도 어울리는데 이런 역할도 참 잘어울리는 듯. 야망 어린 엘라를 연기한 킬리 호위스도 좋았고. 근데 킬리 호위스 보면서 어디서 봤는데 어딘진 모르겠고 이 기분 나쁜 이미지는 뭘까... 고민했더니만 티핑 더 벨벳의 키티였어ㅋㅋㅋㅋㅋ 으 싫을만 했네ㅋㅋㅋㅋㅋㅋ

  볼만함. 결말 대충 알고 보면서도 괜찮게 봤다.

  BBC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셰익스피어 리톨드 시리즈를 보기 시작했다. 첫 작품이 헛소동. 원수가 된 사이인 베아트리스(사라 패리쉬)와 베네닉(데미안 루이스) 한 커플과, 또 사랑에 빠져 있으면서도 돈(데렉 리들)의 방해로 인해 결혼 앞에 큰 고난을 맞게 된 히어로(빌리 파이퍼)와 클로드(톰 엘리스) 커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깨알같이 웃긴 건 전자. 후자 쪽 커플은 너무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커플의 느낌인지라... 그래도 둘 다 나름 픽션적인 부분이랑 현실적인 부분이 섞여있는 판에 후자 쪽 현실이 더 가혹하고 현실적이긴 했다.

  기본 베이스는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느낌. 그래서 그런가 현실적인 면을 가미해도 아 그런가 싶은 느낌이 있긴 했다. 밝은 이야기라 그런가 보는 데는 무리 없고, 약간 손발이 오그라들긴 해도 로맨틱 코미디로 보면 좋았다. 주변 사람들이 베아트리스와 베네딕을 서로 착각하게 만드는 건 좀 참견이 지나치다고 느꼈지만 뭐 드라마니까. 그나마 둘이 티격태격하면서도 애정이 남아있는 상태니 망정이지... 히어로와 클로드는 너무 빨리 사랑에 빠져서 그게 좀 헷갈렸음. 이건 뭐 데이트 신청하더니 금방 결혼잡네... 히어로 성격이 밝고 착한 아가씨인 건 알겠는데 난 마음에 들진 않았다. 클로드가 오해한 게 히어로 탓이란 건 아닌데, 돈같은 싸이코패스는 일찌감치 떼놨어야죠. 알아보는게 쉽진 않겠지만. 클로드는 멍청이. 오해했더라도 결혼식 장에서 그렇게 깨버리는 건 상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상대에게 잘못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1퍼센트도 하지 않았단 말이냐... 히어로는 나중에라도 클로드 받아주진 마세요. 돈은 감옥 보내고 싶은 지경^^ 착각은 적절히.

  그냥 밝고 명랑한데 좀 얼기설기 고전 베이스에 맡겨버리고 쉽게 간 부분이 있는 듯 해서 아까웠음. 그냥 밝고 유쾌하긴 하다. 보는 데 질려서 못보겠다 이런 느낌도 없었고.

  전부터 보려고 했는데 오늘에서야 봤다. 과학자 스티븐 호킹을 다룬 드라마인데, 루게릭이 막 발병했을 젊은 시기의 이야기. 사랑을 다뤄서 약간 낭만적이기도 하고, 막 발병했을 시기라는 점에서 절망적인 정서도 있고(하지만 실제 인물이 살아있기 때문에 썩 비극적이진 않았다), 인간 스티븐 킹을 픽션 소재로 잘 활용 한 부분은 좋았다.

  스티븐 호킹(베네딕트 컴버배치)은 막 박사 과정에 들어간 이십대 초반의 청년. 제인 와일드(리사 딜론)를 만나 막 연애를 시작하는 시점이다. 과학학도로서의 재능도 있고 노력도 해서 꽃을 만개해야 하는데, 이 시기에 병이 발병한 것. 고작해야 2년을 버틸 수 있는 병 탓에 스티븐은 위축되기도 하지만 뭐 포기하지 않고 자기 꿈을 밟아나가는 그런 이야기.

  물론 이런 사람 곁엔 주변 도움이 꽤 있다. 아버지(아담 고들리)와 어머니(피비 니콜스)의 도움은 대단한 것이라기 보단 은연중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 또 학문적인 면에서 이야기가 많이 이뤄지다 보니 담당 교수인 데니스 시아머(존 세션즈), 동료 학자라 할 수 있는 로저 펜로즈(톰 와드)와의 조합이 꽤 괜찮았음. 제인 와일드는 따지자면 부모님과 같은 노선이었는데 그보다는 더 나은 입장이었던게, 루게릭 발병 후인 스티븐 고백을 듣고도 그를 받아 들였다는 점에서 그랬다. 학문적인건 거의 스스로 만들어 낸 업적이지만 영화 보는 입장에선 주변의 은근한 도움이 눈에 띄었음.

  프레드 호일(피터 퍼스)의 이론을 반박하면서 대립하게 되는 모습은 좀 재밌었음. 프레드 호일을 너무 경박하게 그려놓은 게 아닌가 싶다만... 뭐 학문계의 싸움이야 독해지려면 얼마든 독해질 수 있으니까. 좀 더 유치하게 그려진게 안타까운 정도.

  아노 펜지어스(마이클 브랜든)와 밥 윌슨(톰 호킨스)의 어수선한 노벨 상 인터뷰 장면은 왜 나오나 했더니, 빅뱅 이후의 복사열 증명이 되는 거라서 나오는 거더라. 난 처음에 아 이거 때문에 진행이 막 끊기네 싶어서 짜증이 났었는데 뒤에 호킹의 이론을 뒷받침할 증거가 따단, 하고 나타나는 거라서 놀랐다. 아이디어는 좋았지만 그래도 그걸 집어넣은 구성은 여전히 별로라고 생각함.

  보면서 음 베네딕트 연기 좋네... 하긴 했는데 사실 내용은 그에 못 미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얘네가 이론 설명해봤자 나는 알지 못할 뿐이야... 그냥 발견했네. 오, 이론을 찾았네. 이 정도밖에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보면서 약간 시큰둥. 그게 아쉬움. 난 좀 더.. 뷰티풀 마인드 같은 느낌을 바랐었던 거 같다. 그건 굉장히 매끄럽고 헐리웃느낌이 나게 각색이 된 작품이고, 이건 예산 적은 TV영화긴 하다만 아쉬운 느낌을 버릴 수 없다.

  HBO에서 2005년에 방영한 TV영화. 1부와 2부 둘로 되어있는데, 1부에서는 엘리자베스 1세(헬렌 미렌)와 레스터 백작(제레미 아이언스)의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면, 2부에서는 레스터가 죽고 난 뒤 그의 양아들인 에섹스 백작(휴 댄시)과의 관계를 주로 다루었다. 역사를 잘 아는 기무니와 함께 봤더니 중간중간 배경지식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ㅎㅎ

  엘리자베스 1세의 인생을 총조명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그려내려 노력한 이야기. 일단 연애의 이야기가 중심 이야기로 작용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그녀의 정치적 능력보다는 성격이 두드러져 보였다고 생각한다. 이게 1부에서는 조금 더하고, 2부에서는 에섹스를 다루는 그 솜씨 탓에 정치적 능력이 눈에 들어온다. 1부에서는 약하게 느껴지던 모습들이 2부에서는 뚜렷하겨 윤곽이 잡힌다고 할까... 즉위 30년 된 여왕의 힘이 느껴진다.

  1편에서의 엘리자베스의 인생과 관련한 이야기라고 하면 역시 결혼 이야기. 이건 물론 왕위 계승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중요했다. 충신(을 가장한 가장 아끼는 애인)인 레스터와는 결혼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여러모로 결혼 이야기도 밀려들어오고 해서 결국은 프랑스의 앙주 대공(제레미 코빌롤트)과의 혼담이 오가는데, 생각보다 둘이 말도 잘 통하고 어울렸는데 성공하지 못한 혼담이라 아쉽다. 이미 혼담이 오갈 시기에 앙주 대공과의 나이차가 상당했는데도 둘이 괜찮았다고 그러더라. 하지만 프랑스 쪽의 앙주 대공의 형이 이 결혼을 탐탁잖게 생각했고, 영국 쪽 또한 앙주 대공이 가톨릭교도라는 이유로 거슬려 했어서 오히려 외부 세력에 떠밀려 결혼하지 못했다고. 레스터 쪽에서는 한시름 놓을 일이었지만... 고 레스터도 몰래 결혼해서 애까지 생긴걸 들켜버려서 왕궁 출입을 금지당한다. 이 때 앙주 대공의 하인이 실수인 것 마냥 그 사실을 알리는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다. 기무니가 옆에서 "궁중암투로는 저 쪽을 당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러는데 조금 웃었다.

  아무튼 레스터가 왕궁 출입 금지당하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종교 문제로 로마에서 파문당하고, 스페인과는 전쟁을 치룰 위기에 처하고, 암살 위험은 여전히 도사리고, 앙주 공도 죽고... 하는 여러가지 문제가 겹치고 그래서 마음의 안식을 얻고자 레스터를 7년만에 불러내지만 뭐 달달한 연인으로 변신하진 않더라. 이전에도 이미 몇 번이나 거절당한 레스터가 이 쯤 와서는 아예 확실하게 '영원한 친구' 선언을 듣는 장면이 있었다. 불쌍한 레스터... 라는 생각도 많이 안 들었던게 결국 할 건 다 해먹었던 거 같아서. 아무튼 레스터가 돌아온 후에는 구교를 대표하는 스코틀랜드의 메리(바바라 플린)를 사형시키고, 그 때문에 스페인과의 전쟁이 발발하고 고런 일들이 이어진다. 영화에서는 네덜란드 전쟁에 장군으로 참여했던 레스터가 그걸로 인해 병세가 생긴 것 같은 것처럼 나오더라. 2편에서 에섹스가 전장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엘리자베스가 막으려고 하는 장면들은 이런 일에서 기인한 것이다... 라는 설명은 되었다.

  스페인과의 전쟁은 승리했지만 이어져 오던 병세 탓에 레스터는 죽는데, 그 오랜 시간동안 제일 총애받았던 레스터가 죽는 장면은 조금 애처로웠다. 죽으면서 자신의 의붓아들인 에섹스를 부탁하는 장면이 나오더라만... 뭐 그 부탁의 의미와 같은 방법으로 보살핀 건지는 모르겠다(...)

  2부에서는 레스터의 의붓아들인 에섹스와의 관계가 이야기의 중심을 덮고 있는데 1편보다는 확실히 더 재미있었던 게, 이 에섹스란 녀석이 너무 철이 없고 아기같다 보니까 엘리자베스가 오냐오냐 해주면서도 또 칼같이 잘라내는 진행이 보기 즐거웠다. 처음에 에섹스가 설치는 걸 어디까지 받아주려나 싶었는데 엘리자베스로서는 최대한 관용을 베푸는 모습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왕 앞에서 칼을 뽑아들려는 장면까지 나왔으니 오죽하랴. 레스터가 자신의 능수능란한 정치방법은 가르쳐주지 못한 것인지, 에섹스에서는 그런 게 없어서 어린 풋내만 가득할 뿐, 막상 베어물면 텁텁하고 신 맛이 나는 덜 익은 사과를 보는 것 같았다. 버릇이 잘못 든 애가 어디까지 기어오르는 지 확실히 볼 수 있다.

  에섹스의 몰락에 대해서는, 추밀원의 다른 신하들이 에섹스를 굳이 계략에 빠뜨리려 했다기 보다는 에섹스 본인이 화를 자초한 부분이 너무 많았다. 모함도 있기는 있었겠지만서도 이런 부분이 영화에서 너무 드러나니까, 그렇게 내쳐져도 할 말이 없어 보였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니랄까봐 여자 임신시키고... 그것도 빼도박도 못하게 추밀원 의원 중 하나인 월싱햄 경(패트릭 말라하이드)의 딸이었다. 어이구. 그걸로 확실히 신임을 잃은 뒤로 아무것도 제대로 한 게 없는 듯. 그 과정이 보면서 짜증도 나고 그랬던 게, 본인의 위치를 파악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참 그랬다. 신임을 얼마나 잃었는지, 자기가 어떤 부분까지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몰라서 너무 설쳐대니까. 그렇게 총애받던 남자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서 국가에 대한 반역죄로 죽는 것을 보곤 세상사 허무하구나 싶었다.

  고 뒤로 마음을 정리하고 통치에 힘쓰는 모습이 잠깐 나오고, 남은 건 죽음인데 엘리자베스의 죽음은 적절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 같다.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그 중 한명은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이게 되었고) 가슴속이 텅 비어버린 듯한, 고목나무 같은 모습으로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는 게 선선하면서도 무겁게 다가왔다.

  덧붙이면 추밀원 의원들과 엘리자베스 여왕이 밀고 당겨대는 장면들도 꽤 재미있었다. 항상 나오는 세 명을 보는 재미가 있는데, 월싱햄과 윌리엄 세실(이언 맥디어미드)과 그의 아들 로버트 세실(토비 존스). 로버트야 후반부에나 나오니까 진중한 모습이 많았다 쳐도 앞의 두 사람은 여왕에게 실컷 얻어맞는 장면 같은 게 웃겼다... 그리고 그 진지한 로버트 세실은 여왕과 둘이 있을 때 '피그미'라고 불리워서ㅜ.ㅜ... 뭐 여왕이 나중에 가서는 애칭이라고 해주긴 했다만 본인 속이 좋진 않았을 것 같은데.

  기무니가 이쪽 왕들은 '일하는 기계' 같았던 반면 저 쪽은 휴식은 또 확실하게 취해주는 면이 있다고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파티라던가, 왕이 춤춘다던가 하는 장면들은 우리나라 배경에서는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저 쪽 왕들에게 좀 더 자율성이 있었던 것 같다. 동시에 암살 위협도 배는 많은 것 같고... 종교 문제는 영화로만 봐도 골머리가 아프다. 그 쪽의 가치가 내 머릿속에 잘 박혀있지가 않다 보니까 왜 저런 걸로 싸워? 왜 남의 나라 일에 참견이야? 하는 부분이 있기도 했다. 이건 내가 그 쪽 사람이 아니어서 확실히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배우들 연기는 말 할 것도 없이 좋은데, 특히 헬렌 미렌의 엘리자베스 1세 연기는 너무 좋았다. 온통 냉철하다가도 한 순간에 감정적이 되기도 하는 모습들. 얼음같다가도 화르륵 타오르는 모습들은 보는 내내 질리지가 않을 만큼 좋은 연기였다. 제레니 아이언스나 휴 댄시는 그 역할 때문인지 곱게 보이진 않았지만 각각 매력이 있었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진중할 땐 진중하면서도 어떨 땐 비열해 보이고, 치졸하기 짝이 없어보이는 변화를 보여줬고 휴 댄시의 경우엔 항상 열혈인 모습이었지만 마지막에 확 진지해진 모습을 보고 살짝 놀랐다. 추밀원 의원들은 다 연기가 좋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토비 존스의 연기가 좋았던 게, 어떻게 보면 무표정인데 거기에서 감정이 다 느껴진는 부분들이 있었다. 확실히 연기들은 흠잡을 데 없는 듯.

  쓰고보니 불평도 있은데 이것 저것 사건이 많아서 확실히 재미는 있는 편이었다. 연애 이야기랑 역사를 잘 편집해서 좋았다. 난 역사물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봤다. 역사물에 관심있는 사람이면 훨씬 더 재미있게 볼 거라고 생각한다.

제인 오스틴의 설득
감독 애드리언 셔골드 (2007 / 영국)
출연 샐리 호킨스, 루퍼트 펜리-존스, 안토니 헤드, 토비어스 멘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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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인 오스틴 삼부작 TV시리즈 중 가장 음울했던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결말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진행 내내 배경이 너무 어두웠고 두 주인공인 앤 엘리엇(샐리 호킨스)과 프레데릭 웬트워스(루퍼트 펜리-존스)사이에서의 감정이 확확 드러나지 않아서 보면서 아 답답해, 하고 가슴을 쳤던 작품. 앤이 일기를 쓰거나 하는 장면등으로 앤의 1인칭 시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때문인지 주인공의 마음의 슬픔이나 억눌린 마음이 더 가슴에 확 다가왔다.

  크로포드 제독 내외(피터 와이트, 마리온 베일리)에게 부동산 중계업자가 한 말에 따르면, 엘리엇 집안에서 유일하게 분별있는 사람인 앤은 사람은 좋지만 이미 혼기를 놓쳐버린 노처녀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20대 중후반이긴 하지만 뭐 작중 시대인 18세기 후반, 19세기 초에는 노처녀인 듯. 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집안의 재정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마음씨 여리고 바른 아가씨. 엘리엇 집안은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 월터(안소니 헤드)와 맏언니인 엘리자베스(줄리아 데이비스)의 사치 때문에 재정에 관해서는 상황이 좋지 않다. 이전에는 부유하며 동시에 권위를 지닌 가문을 등에 업은 아가씨였지만, 지금 앤에게 남은 것은 나이와 허울 좋은 권위 뿐인 것이다.

  이런 앤은 젊은 시절 청혼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게 바로 지금의 웬트워스이다. 프레데릭 웬트워스는 지금이야 높은 지위에 올라 성공한 젊은이이지만, 이전에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청년이었기에 당연히 앤은 집안의 반대를 맞았었다. 옆에서 멘토가 되어주는 레이디 러셀(앨리스 크리지)까지 '설득'했었기 때문에 앤은 웬트워스의 청혼을 거절하고 만다. 앤에게 그건 사랑하는 이를 자의로 떠나보낸 슬프고 괴로운 기억으로 남고 만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기억이고 추억에 불과했던 웬트워스가 앤의 동네로 오면서 앤은 웬트워스와 재회한다. 딱하게도 앤의 처지는 좋지 못하다. 아버지와 큰언니가 바스로 가서 자리잡고 있는 새 앤은 여동생 메리 머스그로브(아만다 헤일)의 집에서 잠시 더부살이 하는 처지니까.

  앤의 떨리는 가슴과는 상관없이, 당연하게도 웬트워스는 앤에게 관심이 없는 듯 굴고 앤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의 감정교류가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는 새 웬트워스는 메리의 딸인 루이자 머스그로브(제니퍼 하이갬)과 맺어지는 듯 하고, 루이자를 제치더라도 옆에는 헨리에타 머스그로브(로자먼드 스티븐)까지 웬트워스에게 큰 관심을 보이며 앤의 심정은 더더욱 좋지 못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둘의 마음은 대화가 없이 더더욱 표류하는 배처럼 되어버린다. 

  루이자가 다치고, 앤이 바스로 돌아오면서 둘 사이의 오해는 더더욱 깊어져간다. 앤은 루이자의 혼인소식을 후에 듣게 되는데 철썩같이 그 상대가 웬트워스일 것이라 믿고 실망하며, 이 상황에서 자신의 사촌인 윌리엄 엘리엇(토비어스 멘지스)이 자신에게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을 알고 그와 맺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방안을 생각하게 된다. 바스로 온 웬트워스는 반대로 윌리엄와 앤의 소문을 듣고 불쾌해하며 자신에게 기회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때 앤이 나름의 용기를 내 그 소문이 거짓이라 말하고, 대화없이 켜켜히 오해를 쌓아가던 그들의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하게 된다. 루이자의 결혼 상대 또한 웬트워스가 아닌, 웬트워스의 친구인 벤윅(핀레이 로벗슨)이었던 것이다.

  런닝타임 내내 둘 사이의 침묵과 오해만을 보여주던 이 답답한 드라마는 끝까지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데, 앤이 막판에 발바닥에 불이나게 뛰어다니는 것을 보면 내가 숨이 찰 정도(...) 그 과정에서 앤의 친구인 스미스 부인(메이시 딤블비)을 통해 윌리엄이 사실은 나쁜 사람이라는 것까지 확인시켜주다니. 그렇찮아도 바쁜데 말이다.

  원작을 안읽어봐서 뭐라고 말을 못하겠는데 원작 또한 이런 느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오해가 가득하고, 막상 주인공 남녀인 둘은 체면과 예의 때문에 자신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기회조차 잘 얻지 못하는 이야기. 이 드라마가 다른 드라마들에 비해 유독 어두웠던 건 주인공 앤의 성격 탓도 컸다. 계속해서 갇혀버린 듯한 인생에 순응하니까... 계속해서 타인에게 설득당하니까 말이다. 거기에 끊임없이 제 탓을 해대는 독백 장면까지.

  결말이 해피엔딩인데도 참 멀리 돌아왔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했던 이야기. 다류가 말한 그대로, 요약하자면 '삽질' 일수도.

맨스필드 파크
감독 이언 B. 맥도널드 (2007 / 영국)
출연 빌리 파이퍼, 미쉘 라이언, 블레이크 릿슨, 더글라스 핫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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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은 신데렐라 스토리 같았던 이야기. 사촌인 귀족 버트람 가문에서 자라나게 된 패니 프라이스(빌리 파이퍼)가 집안의 궂은 일을 하는 존재에서 의지되는 존재,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 중간 전개까지는 재미있었는데 정작 패니와 에드먼드(블레이크 릿슨)가 사랑에 빠지는 감정노선은 잘 못잡아준 것 같아서 아쉬웠다. 그래도 에드먼드의 감정 부분 정리만 빼면 나머지 캐릭터들의 매력이 있는 탓에 재미는 있었다.

  버트람 가문 사람들은 뭐 나름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패니가 남의 집에 와서 속마음 앓이를 했던 건 알겠지만서도, 버트람 경(더글라스 호지)이나 레이디 버트람(젬마 레드그레이브)이 특별나게 괴롭히거나 하는 부분도 없었고... 사촌언니들인 마리아(미쉘 라이언)나 줄리아(캐서린 스테드맨)도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고 적당히 부리는 정도? 남자 형제들은 그보다 잘 대해주는 것 같다. 에드먼드야 말할 것도 없고, 장남인 톰(제임스 다시)도 쾌활하니 성격 좋던데. 오히려 같이 얹혀사는 입장인 노리스 부인(매기 오닐)이 대놓고 패니에게 너는 아랫것이야, 아랫것이야 세뇌를 해서 그렇지... 따지고 보면 패니 참 버트람 가족 사이에서 잘 지낸다. 가족들이 패니가 없으면 불안정해ㅋㅋ 특히 레이디 버트람께서. 에드먼드를 향한 사랑 말고는 특별히 욕심이 없는 캐릭터라 더 그랬던 듯.

  이 안정적인 집안에 크로포드 남매가 나타나면서 평지풍파가 부는데, 이미 재력과 권위를 가진 러시워스(로리 키니어)와 약혼중인 마리아가 헨리 크로포드(조셉 비티)와 바람이 나고, 패니가 짝사랑하는 에드먼드는 메리 크로포드(헤일리 앳웰)를 좋아하게 되면서 노선이 꼬여댄다. 헨리와 메리는 꽤 죽이 잘 맞는 남매인데 둘다 꿍꿍이가 있기는 해도 자기 욕망에 있어서 거리낌이 없고 직설적이라 오히려 보는 재미가 있었다. 마리아야 원래 러시워스에게 인간적 매력을 못느끼고 있어서 그랬다만, 에드먼드가 메리에게 이끌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어쨌든 요 애정전선이 마리아가 결국은 러시워스를 선택해 결혼해서 떠나버리고, 에드먼드도 일로 집을 비우고 이것저것 꼬이면서 연애노선은 생각치 못한 방향으로 튀었는데, 이 헨리가 패니에게 반한 거. 권력만 쫓을 줄 알았더니 꽤 진지하게 구애를 해 와서 재미있었다. 패니를 위해 패니의 오빠인 윌리엄(조셉 모건)까지 돕는데도 패니는 헨리의 프로포즈를 거절하고, 이 일로 버트람 경도 화를 크게 내지만서도... 구애 과정 자체는 즐거웠음. 워낙에 솔직한 캐릭터라 그런건지.

  그래서 그런지 이 헨리가 마리아랑 바람나서 도망간 게 꽤 충격이었다... 마리아야 그럴 수 있다 쳤어도, 이 앞에서 열혈 구애하던건 뭐지 싶어서ㅋㅋㅋㅋ 패니는 재산도 없었기 때문에 헨리의 구애가 꽤 진실해 보였었거든. 뭐 아니라서 실망. 그냥 리셋 전환이 빨랐던 건지 뭔지. 톰이 아프고, 그래서 집안이 조금 어두워지고... 에드먼드가 돌아오고 일이 너무 확확 진행되었다. 에드먼드가 마리아에게서 정떼는 과정까지도 너무 빨랐다 싶었는데, 에드먼드가 패니에게 반하는 것도 엄청 빨라! 아니 이건 너무 설명 없이 빠르잖아 임마... 라는 느낌. 눈앞의 보석을 새삼 발견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라는 느낌이었다.

  음, 뭐 영국은 친척간에 결혼이 되어서 그런가 요런 러브 스토리가 되는구나 싶었다. 스토리 자체는 꽤 재미있지만 주인공 캐릭터들보다 오히려 크로포드 남매의 캐릭터가 활기차고 매력있었고, 애정의 감정정리가 잘 안되어서 조금 실망했다. 재미는 있었다만, 뒤에 곱씹으니 단점도 참 많았구나.

노생거 사원
감독 존 존스 (2007 / 영국)
출연 펠리시티 존스, 제이제이 페일드, 리암 커닝엄, 캐더린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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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에서 제작한 제인 오스틴 시리즈 3부작 중 한 편. TV영화라 할 만한 길이였고 세 편 다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제일 처음 본 게 노생거 사원. 그 다음이 맨스필드 파크, 설득 순으로 봤다. 세 편 나란히 보고 나면 노생거 사원이 제일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순진하게 자란데다 소설을 많이 읽어 망상벽을 가진 소녀 캐서린 몰란드(펠리시티 존스)가 생소한 도시인 바스로 오면서 겪는 사랑 이야기 정도가 되겠다.

  몰랜드 부부(게리 오브라이언, 줄리아 디어든)도 가난한 집은 아닌 거 같은데 집에 원체 애가 많아서 호화롭다던가 그런 삶은 아니다. 앨런 부부(데스몬드 바릿, 실베스트라 르 토젤)는 알고 지내던 사이인데 캐서린을 많이 예뻐하는 듯, 얘를 데리고 가서 바스에서 지내게 해 준다. 바스는 18~19세기 초 런던을 벗어나 영국 상류사회를 이끌던 중심지. 당연히 꿈많은 소녀에게는 딱 적절한 도시이다. 게다가 캐서린은 꿈이 많다 못해 어찌나 망상벽이 큰지 소설에서 읽은 부분을 자기 이야기로 치환하여 상상하는 모습을 시시각각 보여준다. 십대 소녀라는걸 감안하면 뭐 그래도 귀여운 수준이긴 하다만.

  목사가 될 예정인 틸니 집안의 차남 헨리 틸니(JJ페일드)와 처음 만나 호감을 갖지만, 틸니 가문에 대한 안좋은 소문 탓에 캐서린은 이모저모 망설이게 된다. 그렇게 망설이는 사이에 사귀게 된 친구이자 미래의 새언니가 될 예정인 이자벨라 쏘프(캐리 멀리건)는 자신의 오빠 존(윌리엄 벡)과 캐서린을 맺어주기 위해 온갖 술수를 써대고, 캐서린은 그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근데 이게 별로 심각하지는 않고, 일단 호감에 있어서는 헨리가 너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냥 쏘프 남매에게 휘둘리는 정도? 사실 존과 이렇다할 연애 파트는 없었고, 쏘프 남매는 어떻게 봐도 너무 별로라서 거 참. 캐서린이 그렇게 순진해빠지지만 않았어도 정체를 금방 알아챘을 거다.

  틸니 삼남매 중에서 차남 헨리와 삼녀 엘레나(캐서린 워커)는 유독 끈끈한 형제애를 보여줘서 좋았다. 특히 엘레나는 정말 현명해 보였음. 이렇게 두 남매는 착하고 좋은 심성을 보여주는데 반해, 아버지인 틸니 장군(리암 커닝햄)과 장남인 캡틴 틸니(마크 다이몬드)는 속물 근성을 가진 고위직 그 자체. 둘다 뻔뻔스런 모습이 짜증나긴 하는데, 이 모습 때문에 프레데릭에게 이자벨라가 물먹은 걸 생각하면 좀 좋았기도 했다. 캐서린의 오빠 제임스(휴 오코너)와 사귀던 이자벨라는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 프레데릭에게 갔다가 바로 차이니까(...) 사실 뭐 제임스 입장에서는 그런 집안과 엮이지 않은게 차라리 다행.

  주인공 남녀의 연애노선 자체는 사실 별로 굴곡이 없었다. 둘이 서로에게 빠져있는 모습이 너무 분명했으니까. 틸니장군이 자신의 저택인 노생거 사원으로 초대했을 때도 캐서린과 틸니 남매는 잘 지냈었고, 막판에 캐서린의 망상벽으로 인해 헨리가 화를 냈던 것도 잠깐의 분노에 불과했으니. 캐서린이 노생거 사원에서 갑자기 쫓겨나게 되는 위기도 사실 헨리와 관련된 일은 아니었다. 틸니 장군 그 속좁은 영감이 캐서린네가 부유치 않다는 걸 알고 금세 맘을 돌려버린 것일 뿐. 아무튼 얘네 두 남녀의 사랑은 그다지 고난이 없는 편이었다. 마지막에 헨리가 찾아올 거라는 것도 자연스레 알 수 있었을 정도였다.

  시리즈 중 가장 생기있고 발랄했던 이야기. 확 재미있진 않았지만 나름 캐릭터들이 가진 싱그러운 매력이 있었다.


램프의 요정
감독 전원 (2007 / 한국)
출연 김동욱, 이정우, 임주은, 고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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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 CGV 에이틴 에피소드 4. 에피소드 네 가지 중에 소녀X소녀랑 18은 봤고, 세번째 에피소드는 못봤음. 영화관에서 개봉한게 아니라 그런지 포스터가 없다. 아놔 근데 이 사진 왜이래; 교복이라도 입혀놓던가... 뭔가 영화랑 상관없는 사진이라 깜짝 놀랐음.

  TV용으로 제작한 것이라 그런지 한 시간 가량되는 짧은 런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었는데, 보고 나니까 더 길었어도 좋았을 것 같다. 이야이가 숭덩숭덩 빠져버린 것 같인 기분이 들어서. 그냥 영화라고 생각하고 보면 좀 부족하고, TV용이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제 몫을 해낸 영화였다.

  여러가지 부분에서 아마추어적인 부분이 느껴진다. 편집이라던가 연출... 소소한 부분에서 드러나는 것들이 못내 아쉽다. 짧은 시간 안에 밀어넣는 이야기를 만들어야했는지 캐릭터나 스토리도 많이 도식적. 

  좀 신선하고 상큼한 기분이 들었던 캐릭터는 기범이 누나(고서희)였다. 이 인물이 너무 대충 다뤄져서 아쉬웠음. 동희(김동욱)나 기범(이정우)이는 뻔한 캐릭터긴 했는데 그래도 참 풋내나는 것이 귀엽고 좋더라. 수정(임주은)은... 뭐랄까 페이크; 진짜 페이크. 차라리 없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곁다리 캐릭터중 가장 아쉬운 것은 애들의 싸가지 없는 선배 진석(이호영). 동희, 기범, 수정 이 셋을 다룰 것이 아니라 동희, 기범, 진석 이렇게 다뤘으면 이야기가 더 나았을 것 같다. 그러면 너무 본격 퀴어영화가 되어서 부담스러웠던걸까-_-;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램프의 요정은 꽤 볼만하다. 일단 내가 학원물에 환장한 여자라(...) 이런 뻔한 설정도 참 좋더라. 짝사랑하는 기범의 감정이 참 귀엽고, 애틋하게 다가와서 그것도 좋았고... 기범이 감정세계를 참 잘 다뤄놨다.
 
  근데 나 궁금한거 있는데... 진석이 자기 패거리 다 있는데서 완전 커밍아웃(+아우팅)한거아냐. 뭡니까, 진석이 속한 패거리는 교내 퀴어 일진 클럽...? 그렇다면 기범이는 옛날에 그곳에 속해 있었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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